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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3

⊹ 93화 ⊹

미르카에서의 일은 표면적으로는 적당히 넘어갔다.

하지만 적당히 넘어가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사실이란 여실히 존재하는 법이다.

회복통에 시달리는 동안 도아 일행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엉망진창인 성안은 그럭저럭 빠른 시일 내에 수습이 되었는데, 도아의 집요정인 로라 덕분이었다.

그녀의 복원능력은 뛰어났다. 이리저리 오두막을 옮겨야 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 수고쯤이야 수고도 아니었다.

로라 역시 레벨이 8이나 올랐다.

“이렇게나?”

“주인님이 잡으신 그 리치가 상당히 오래되었을걸요?”

로라의 말에 도아는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어쨌든 레벨 업은 레벨 업이다.

하지만 로라의 레벨이 그렇게 오르는 동안 슬프게도 댄버스 부인의 레벨은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

‘진짜 레벨 업은 하면 할수록 엄청 느려지네…….’

아쉬워하는 도아에게 댄버스 부인은 그저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미르카의 영주 부부는 아르맥이 돌아온 걸 보고 기뻐했다. 아르맥 역시 이 일로 자신감을 되찾은 듯 보였다.

미르카 도시 사람들은 생명력을 상당히 빨려서 피곤함과 어지럼증 때문에 고생했다.

사악한 마법사가 벌인 일이며 그걸 소영주님이 막았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아르맥이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사실을 전부 밝힐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도 왕실에서 조사단도 나온다면서.”

“네…….”

“나르카는 폐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고. 얽혀봐야 좋은 일은 없을 거 같은데? 아, 하지만 모험가 길드에 보고는 해 둘 거야.”

자유도시 그랑이 정보력으로 최고를 달리는 이유가 있다.

아르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모험가분의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고.”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 준 사람에게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이도 있으니, 감사를 표하는 사람에게 박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궁하지도 않고.’

도아가 여기 머무는 동안 다 써도 못 쓸 돈이 차곡차곡 그녀에게 쌓이고 있었다.

‘마지막 임무 전에 어디에다가 기부나 해야 하나.’

아르맥이 진지하게 말했다.

“도아 님, 저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무구를 받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꼭! 받아 주세요! 도아 님께 쓰인다면 무구도 기뻐할 겁니다.”

도아가 그 말에 뺨을 긁적이고 말했다.

“그럼 혹시 한손 방패 있어?”

❖ ❖ ❖

미르카 가문의 병기고는 상당히 훌륭했다.

아르맥은 고르고 고른 무기와 방어구를 내놓았지만, 도아는 방패만 집어 들었다.

“이게 방패야?”

아무리 봐도 너클처럼 생겼는데.

손가락 세 개를 끼우는 너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르맥이 말했다.

“손가락에 끼우시고 주먹을 쥐시면 됩니다.”

도아가 방패를 손가락에 끼우고 주먹을 쥐었다.

팟!

둥근 한손 방패가 튀어나오듯 형성되었다. 아르맥이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S급 무구입니다. 이름은 실드메이든이고요.”

도아가 픽 웃고 물었다.

“이름은 누가 지은 거야?”

“이슬 님이요.”

“어?”

도아가 놀라 그를 돌아보자 아르맥이 말했다.

“용사 이슬 님이 쓰시던 방패입니다. 300년 전 저희 가문의 병기고로 들어왔지요.”

“아, 그래서.”

영어 이름이구나. 도아는 방패를 바라보았다.

1200년 전 사람이 쓰던 방패인데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내 아이템도 남을까? 이름을 지어 줘야 하나.’

방패는 한눈에 봐도 흠잡을 곳 없이 훌륭해 보였다.

‘이것도 분명 세계수 아이템이겠지.’

도아가 걱정스럽게 아르맥을 보았다.

“그런데 나에게 줘도 돼?”

“네, 물론입니다. 실드메이든도 그편이 더 행복하겠지요.”

도아가 옆에 검을 집어 들었다.

“이거 내가 가져가도 돼? 내가 쓸 건 아니고, 쿠낙에게 주려고.”

마검을 부숴 버린 게 자신이니 책임감을 느끼는 도아였다.

아르맥은 그 말에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아 님의 부탁이시라면.”

“하하, 이건 나중에 필요 없어지면 반납하라고 말해 둘게.”

“네.”

아르맥이 한결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미르카는 상인들의 교류가 활발한 도시였고, 덕분에 귀한 물자가 넘쳤다.

아르맥은 물질로 모든 걸 보상하겠다는 듯 진귀한 물건들을 도아에게 연신 내밀었지만, 도아는 보석에도 금화에도 장신구에도 별 관심 없었다.

그런 점이 아르맥에게 더욱 불을 붙여서 그는 귀한 모험가 아이템들을 내놓았다.

덕분에 도아는 옷이나 무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한가득 얻게 되었다.

아르맥은 도아에게 필요한 선물을 해 주는 것도 즐거웠다.

그조차도 스스로 쓸모없다고 여길 때, 도아 님은 그를 필요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에게 일을 맡겨주었다.

그건 정말로 별거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당연히 성안의 비밀통로와 함정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알현실의 바닥을 뒤집어야 드러나는 함정도 알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솔직히 칭찬받는 것도 어색했지만, 도아는 진지하게 ‘저 가짜는 모르잖아?’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르맥은 있는 힘껏 함정 레버를 당겼을 때의 그 떨리는 느낌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평소에도 함정을 관리해야 하는구나 같은 생각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주 작은 성공이었지만, 그는 그걸로 자신감이 생겼다.

성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걸 키울 수 있게 격려해 준 건 도아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그의 목숨만을 구해 준 게 아니었다.

아르맥은 그녀에게 실드메이든을 주는 것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도아는 미르카 성의 연무장에서 방패와 검을 들고 기본 동작을 해 봤다.

이리저리 방패를 돌리다가 도아는 방패의 무게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와…….’

누군가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을 때는 무게를 무겁게 한 후에 후려치면 되겠지.

‘무섭다.’

베리가 그걸 옆에서 보고 말했다.

“더아 님, 이제 팔 안 없어지는 거지요?”

“아하하……. 그렇지.”

요즘 베리가 무섭다. 도아가 다쳐 들어오면 대성통곡을 하기 때문에 눈치가 보였다.

쿠낙이나 로베른이 걱정하는 건 고마우면서도 그러려니 싶지만 베리는 다르다.

보호자로서 피보호자에게 걱정을 끼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베리가 도아 걱정으로 눈을 홉뜨면 도아는 얌전해지고 말았다.

베리의 걱정이 아니더라도, 확실히 한손 방패, 한손 검에 정통한 도아였다.

방패가 손에 들어오니 안정감이 남달랐다.

쿠낙도 새로 얻은 검에 만족해했다. 두 사람은 종종 합을 맞춰 보았다.

그러다가 붙은 팔의 통증이 한순간 너무 심해져서 검을 떨어트린 적도 있었다.

그날 베리에게 무척 혼난 데다가, 쿠낙이 밤새워 간호하는 바람에 부담스러웠던지라 도아는 그 뒤로는 몸을 사렸다.

바르샤는 방랑마법사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자세히 묻더니 그대로 잠들었다.

잠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접속을 끊었다고 해야 하나.

‘접속을 끊었다고 해야겠지.’

도아는 축 늘어진 그의 몸을 침대에 던져놓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접속하지 않는 게 불안했다.

도아가 바르샤에 대한 제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까지는 딱히 미치광이 같지 않은데?”

“…….”

로베른이 입을 벌렸다가 꾹 다물었다. 그가 드물게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도아가 물었다.

“왜 그래?”

“아니, 지금 그 인간이 한 미친 짓에 대해서 말하려 했는데, 짐이 입 밖으로 내뱉기에는 참담한 말밖에 없어서.”

“그 정도야??”

도아가 놀라 묻자 쿠낙이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말했다.

“전형적인 마법사라고 해야 할까요……. 제 실험을 위해서는 도덕이고 뭐고 없는…….”

“하지만 선은 안 넘은 거 아냐? 그러니까 아직 링 리더를 하고 있겠지.”

“그 선을 안 넘는 부분이 무척 애매해서…….”

도아가 흠 하고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래도 주문은 필요하니까, 일단 파티에는 받아 주자.”

“일단, 이라면?”

“내가 파티 리더니까 나중에 바르샤가 쓸데없는 짓을 하면 쫓아내면 되지.”

“그렇게 쉽게 쫓아질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만…….”

“S급이 둘인데 어떻게든 되겠지.”

도아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그녀의 임무 중 하나는 S급 파티를 만드는 거였다.

도아가 끙하고 팔짱을 꼈다.

“난 언제 S급이 되지?”

“꿈을 꾼다는 건 좋은 일이지.”

“꿈은 이루어지라고 꾸는 거야.”

도아는 팔짱을 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아직 9년이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퀘스트가 있으면 일단 깨야 하는 게 한국인의 피 아닐까?

어떻게 메인 퀘스트를 놔두고 주변을 돌아다니겠어요?

레벨 99의 토끼 공듀님 정도는 되어 줘야…….

도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아니, 아니. 너무 급하게 가지 말자. 여기는 게임이 아니니까.’

도아가 말했다.

“내일쯤 떠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팔은 다 나았나요?”

“응, 이 정도는 이제 괜찮아.”

도아가 팔을 돌려 보이자, 로베른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목부터 팔뚝을 쓸어 올리더니 정확하게 절단되었던 부분에 멈췄다.

오싹 소름이 돋아 도아는 침을 삼키고 로베른을 바라보았다. 로베른이 손에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눈을 떠나지 않았다. 도아도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등에서 식은땀만 흘렸다.

‘토, 통각 오프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인간은 하면 귀신같이 알아챌 거 같단 말이야.’

파라이바같이 순도 높은 형광 빛의 푸른 눈동자가 이쪽을 꿰뚫어 본다.

슬슬 압통이 느껴질 거 같다, 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그 순간 로베른이 힘을 풀었다.

도아는 맥이 탁 풀렸다.

“어떤가요?”

쿠낙이 태연히 물었고, 로베른이 답했다.

“여행할 정도는 되는 거 같군.”

도아는 두 사람에게 이를 드러내 보였고, 로베른이 말했다.

“B급의 신용이 이렇게까지 떨어진 이유는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도아는 할 말이 없어서 그저 비딱한 표정으로 항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아가 떠난다는 말에 아르맥은 무척 아쉬웠지만, 왕실조사단이 그의 마음에 걸렸다.

‘첫 번째 달 축제에 가려면 시간도 너무 낭비했고.’

아르맥이 도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언제든지 일이 생긴다면 불러주십시오.”

“아르맥도 일이 생기면 지명을 넣어 줘.”

모험가 길드에.

도아의 말에 아르맥이 웃으며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 ❖ ❖

원래는 베리가 들어가 있던 바구니에는 이제 베리 대신 바르샤가 구겨져서 담겨 있었다.

베리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걷겠다고 말해 도아 역시 베리와 나란히 걸었다.

프롱드까지 가는 길은 막힘 없었다.

그 와중에 로베른 앞으로 특급우편이 도착했다.

고르아에서 온 새 옷이었다.

“B급이랑 여행하며 깨달았네. 어디를 들러서 여유롭게 둘러보는 일은 없다는 걸.”

“내 탓이 아닙니다.”

도아는 억울해서 항의했다. 로베른이 빙긋 웃었다.

“짐의 뜻을 곡해하지 말게. 싫다는 뜻은 전혀 아니라네. 가능하면 평생 함께 하고 싶을 정도지.”

“칭찬인가…….”

도아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야영을 위해 텐트를 치고 저녁 식사를 끝낸 후 로베른은 제 옷을 갈아입어 보았다.

“프롱드에 가는데 헌 옷을 입고 갈 수는 없지.”

“프롱드와 헌 옷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데.”

도아의 말에 로베른은 흰털이 달린 화려한 망토를 둘러매며 말했다.

“프롱드만큼 옷차림에 민감한 나라는 없으니까.”

“그래?”

“B급도 들어가 보면 알겠지. 그 차림으로는 가게도 못 들어갈걸.”

도아는 제 옷을 내려다보았다.

디자인이 예쁘거나 하지는 않지만, 건실한 모험가 복장이었다.

딱히 예의범절에 어긋나 보이지는 않는데.

쿠낙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프롱드 출신 모험가들은 옷차림이 하나같이 화려하지요.”

“정말요?”

“네. 옷을 잘 입는 사람을 프롱드 사람 같다고 하기도 하고요.”

“신기하네…….”

도아는 약간 머쓱해져서 제 옷을 바라보았다. 사실 옷차림이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가족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촌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지는 않았다.

‘프롱드 가면 나도 옷이나 맞춰야겠다.’

도아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로베른을 바라보았다. 쿠낙은 늘 검은색 옷을 입고 다니니 잘 모르겠는데, 이 인간은 정말로…….

‘키 크고 어깨가 넓으니까 뭘 걸쳐도 잘생겼는데, 화려한 옷을 걸치니까 진짜 장난 아니구나.’

소매 단추를 잠그던 로베른이 도아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왜? 새삼 짐에게 반했나?”

“입만 안 열면 좋을 텐데.”

도아가 중얼거리자 로베른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짐의 매력의 대부분은 지성에서 나오는데, 아직 B급은 어린아이로군.”

도아가 시선을 쿠낙에게 돌렸다.

“쿠낙은 옷에 관심 없어요?”

“지금 제 차림으로도 만족합니다.”

“하긴, 쿠낙도 안 그래 보여도 엄청나게 비싼 옷 걸치고 있지요.”

그의 옷은 전부 검은색이지만, 알고 보니 검은색으로 염색하는 게 무척이나 비쌌다.

그것도 균일하고 고급스럽게 검정으로 염색하는 건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쌌고, S급 모험가답게 전부 최고급품이었다.

싸구려는 하나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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