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95

95화 수행기사 제레아(1)

성물 호송단은 추격을 피해 계속해서 남하했다.

“이쪽일세. 발자국을 보아하니 몬스터들이 잘 지나지 않는 길이야.”

“저 짐승은 공격당하면 주변 무리를 부르는 습성이 있네. 하지만 전투에도 신중한 경향이 있지. 조용히 지나치세.”

87세의 수행기사 제레아. 그는 나이는 좀 더 어려지긴 했으나 그 노련함은 여전히 백전노장이라 할 수 있었다.

키메라 합성수들의 습격 이래 추적을 피해 냄새를 숨기면서도 키메라들이 쉽게 추적할 수 없을 법한 길로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덕분에 조금 돌아서 가고 있기는 하지만, 누구도 불평 따윈 없었고, 오히려 잡담할 여유까지 있을 정도다.

“와~ 그럼 제레아 경은 폐하의 젊은 시절을 아시는 건가요?”

하리는 눈을 반짝이며 레온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운이 좋은 것인지 두 번째 과거의 분신인 그는 딱 레온과 오크 정벌을 함께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제레아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건 구대성이나 다른 왕국기사, 병사들까지도 마찬가지였고.

“후후, 당시의 기억은 무척이나 강렬했지. 당대의 폐하께선 왕국 역사상 최연소의 성배기사셨고, 수행기사로서 쌓아온 위명도 드높으셨으니.”

용을 죽인 시조 드라고니아 대공가의 적법한 후계이자 16세의 나이로 수행길을 떠난 수행기사.

일반적으로는 수행길을 걷기 전에는 왕국기사로서 왕국에 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레온은 대공가의 적법한 후계였다.

다소의 과정을 뛰어넘었다곤 해도 곧장 수행길을 걸은 그는 대공가에 부끄럽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홀로 왕국민을 살해한 오크 부락을 토벌하는가 하면, 사교도들의 사악한 의식에 난입해 그들을 베어 죽였다.

후일 왕국 기사단 사령관이 되는 길두스 경이나 별철 광산의 수호자 안토크 경, 숲의 현자로 이름을 높이는 트리맨 군라르와의 모험.

그는 불과 20세의 나이에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선택을 받았고, 퀘스트를 받았다.

“폐하께선 랭퀄의 바다괴수 흐느끼는 여인의 유혹을 이겨내 그 목을 베셨고, 사악한 마녀를 재판을 통해 벌하셨네. 끝내는 세 개 부족을 통합한 오크 워로드를 일기토로 쓰러뜨려 퀘스트를 완수하셨지.”

27세.

최연소 워나이트.

최연소 성배기사.

그는 이제 군단을 다루는 실력을 시험받았고, 끝내 아홉 개 오크 연합부족을 이끄는 대족장이자 오크 투신 헬칸의 가호를 받는 군카르의 목을 베었다.

35세에는 제국 변방에서 흑마법사들이 소환한 악마대공 파라비티를 쓰러뜨리고 서거한 사자심왕의 뒤를 이어 15대 사자심왕으로 등극하니 그 영광과 명예가 왕국 역사상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눈부신 분이었네. 그토록 대단한 재능을 가지셨으며, 위대한 그릇을 지닌 분은 앞으로도 없을 테지. 그분과 함께 싸운 것은 더없는 영광이었어.”

제레아는 바다와 파도의 신 그리고 전쟁과 불꽃의 신의 선택을 받은 하리를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한하리 경. 그대는 폐하의 곁에서 그분을 살피고 배우시게. 그분만큼이나 신들께서 사랑하는 인간은 없으셨으니.”

“네, 넵!”

하리는 성물을 호송하면서 제레아에게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과연, 이 어린 나이에 이 정도의 성장. 심지어 레온과 신들이 직접 가르침을 주었다니 실로 놀라운 재능이다.

“…….”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하리와 구대성의 반응은 판이했다.

하리는 그것을 동경하며 자신도 그리 되고 싶었고, 구대성 또한 그것을 꿈꾸었으나 불가함을 알았다.

결국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까마득한 재능의 영역이기에.

* * * *

심야. 성물을 호송하며 적의 추격을 피하는 호송단에게 방심할 수 없는 시간이다.

비록 제레아가 냄새 차단, 소리 차단, 기척차단 등의 성법을 사용하며 안전망을 구축했지만, 호송단은 보초를 서며 위험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흐읍…! 후웁!”

구대성의 차례. 그는 협곡의 숨겨진 동굴 입구에서 검을 휘두르며 지루한 보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후우…….”

만신전에 입대한 이래 그는 꾸준히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온몸의 땀이 비처럼 흐른다.

“왕국검법이군.”

목소리가 들린 곳에는 희끗한 수염의 노기사가 있었다.

“저 때문에 깨신 겁니까…….”

“아니, 이 나이쯤 되면 잠이 없어진다네. 보초나 도울까 하여 왔네만.”

제레아는 모닥불 앞에 앉지 않고 그의 앞에 섰다.

“자세가 조금 흐트러졌네. 배꼽 밑으로 팔이 내려가선 안 돼.”

구대성이 조언에 따라 검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제레아가 뽑은 검이 쏜살같이 검의 윗면을 때리자 검이 휘청였다.

“검은 휘두르는 무기일 뿐 아니라 가장 빠른 방어구이기도 하지. 언제나 대응할 수 있는 위치에 검을 두게.”

휘청인 검이 빈자리로 제레아의 검이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목을 내주게 된 구대성은 역시, 하고 감탄한다.

“내 손대중 하지.”

말이 채 끝내기 무섭게 제레아의 검이 매섭게 목덜미를 벤다.

-칵!

“윽…!?”

빠르다. 정말 손대중이 아니었다면 막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저릿한 충격에 팔이 떨린다.

-캉! 카앙!

상단에서 중단. 중단에서 다시 상단. 중단으로 때리는가 하면 하단.

제레아의 검술은 그야말로 충실한 정석 속의 노련함이 섞인 페이크를 주었다.

분명 빠르고 정확할 뿐인 뻔한 기계적인 움직임인데, 반격이 불가하다.

“크윽…!”

얼얼거리는 손목이 기어코 검을 놓쳤다. 제레아는 굳이 더 검을 휘두르지 않고 대성을 지켜봤다.

“기본기가 좋군. 반응도 나쁘지 않아. 정말 꾸준히 잘 훈련했어.”

“……별것 아닙니다.”

구대성은 칭찬이 어색했다. 확실히 그는 노력가다. 스스로가 열심히 한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그래도…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흐음?”

“한하리 양… 아니, 한하리 경과 저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차이가 크네. 하리 경은 노구가 보기에도 뛰어난 재능과 신의 사랑을 받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

역시 그런가.

최연소 A급 헌터. 바다와 파도, 전쟁과 불꽃의 선택을 동시에 받은 천재.

그 눈부신 재능은 결국 스스로가 목표한 것을 이룰 것이다. 노력의 보답을 받을 것이다. 끝내 성배기사가 될지도 모른다.

분명 엄두도 낼 수 없는 재능의 격차를 앎에도 대성은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기껏 만년 D급에서 C급으로 올랐다. 하지만 한 단계 오른 세상 위에는 까마득한 하늘이 몇 개나 있었다.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스스로도 믿지 않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처럼 노력하고 있다는 걸 칭찬받는 들 무슨 의미인가?

그저 노력을 낭비하고 인생을 소모하는 것이 아닌가.

“자넨 날 닮았구먼.”

“제가 말입니까?”

구대성은 나 따위가, 라는 말을 삼켰다. 상대는 기사다. 성배기사를 목표로 정진하는, 끝내 성배기사가 된 천재.

그런 그가 어찌 자신과 닮을 수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노구의 기사가 바라본 시선은 달랐다.

“나는 사실 기사의 재목이 아니었네. 내 형님이 더 재능 있는 분이셨지.”

보통 가문을 이어 영주가 되는 건 장남의 몫이다.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천재가 아니고서야 장남은 가문의 뒤를 잇는 걸 우선할 수밖에 없다.

차남인 그는 기사가 되기 위해 방랑의 길을 걸었다.

“미래의 나는 여신의 과업을 이루었다지? 지금의 나로서는 참으로 생소하고 놀라운 일이네.”

제레아는 그저 평범한 기사였다. 아니, 왕국기사 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했다.

하지만 그는 끝없는 수행길에서 더러는 오크를 쓰러뜨리고, 더러는 사교도들을 토벌하고, 더러는 괴수들을 사냥했다.

성공하기도 했지만 실패한 경우가 더 많았고, 누구도 그가 성배기사에 어울리는 재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초로의 나이에도 여전히 수행길을 걸으며 방랑하는 그를 우둔하다 조롱했지.

“그때는 참 많은 말을 들었어. 가족도, 동료도 심지어 폐하나 꿈속에 나타나신 꿈의 여인께서도 내게 포기하라 하셨지.”

너무도 당연하지만, 너무나 우둔하게 세월을 낭비하는 이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한 주변 사람들을 제레아는 자신의 행운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 포기하지 않으신 겁니까?”

“도전에 다른 이의 평가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세.”

모두가 제레아에게 불가능한 꿈을 꾼다고 말하였다.

누구나 성배기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범인에게는 불가능한 경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불가능.”

수행기사 제레아는, 87세의 제레아는, 미래의 자신이 이룩한 과업과는 관계없이 단호히 말했다.

“그것이 도전에서 제외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네.”

그것이 제레아라는 인간의 삶의 자세였고, 어느 시기의 제레아든 그는 그것을 관철해왔다.

그런 사내이기에 제레아는 과업을 완수하고 성배기사가 된 것이다.

“…….”

그 위대한 여정을 듣고도 구대성은 이에 공감할 수 없었다.

결국 그도 다른 이는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을 가졌던 것이지 않나.

그렇기에 도전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대성의 감상을 제레아는 알았다. 이 노구의 기사는 몇 번이고 그와 같은 눈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기사여. 젊은이여. 자네는 용(勇)을 아는가?”

“용기… 말입니까?”

“또는 용맹일 수도 있지.”

“또는 사랑일 수도 있고.”

“또는 희망일 수도 있네.”

노구의 수행기사는 미소로 말했다.

“기사란, 용(勇)을 다루는 이라네. 우렁찬 용맹이며, 꺾이지 않는 희망이며, 순수한 사랑이지.”

“성배기사란 그러한 용(勇)의 정점. 용기의 상징이지.”

“자네는 성배기사가 용(勇)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당연히…….”

대성의 이 왕국의 기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그야말로 용맹한 기사들이다. 신념을 가지고 정의로우며 누구 하나 뛰어나지 않은 이가 없는.

그런 그들이 용(勇)을 가지지 않았다면 대체 누가 가졌다 할 수 있는가.

“아닐세. 그 누구도 처음부터 용(勇)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네. 그것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며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제레아는 잠시 숨을 삼키다가 확고한 시선으로 말했다.

“용(勇)이란 발휘되는 걸세.”

그 말에 대성은 심장이 덜컥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제레아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무슨 차이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의 말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젊은 기사여. 자네가 용(勇)을 가진 자가 되기를 기도할 때, 신들께서는 자네에게 용(勇)을 하사하실까? 아니면… 용(勇)을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

* * * *

추적을 따돌린 성물 호송단은 협곡의 출구에 다다랐다.

“제레아 경! 감시초소입니다!”

협곡의 몬스터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제국군의 초소. 이곳을 지나면 곧장 왕국 국경까지 일직선이다.

‘그러고 보면 제국 국경하고 맞닿아 있네. 원래 라이온하트에서 자주 야만족 소탕을 하던 곳이라 들었는데.’

라이온하트는 이 불모지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주기적으로 농노 수급과 사교도 처벌을 위해 출병했을 뿐.

이곳까지 영토를 확장한 것은 수십 년 전 제국이 진출한 탓이란 모양이다.

‘어?’

대성은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황혼의 제레아 경을 도와 성물을 라이온하트 국경선까지 호송하십시오.]

-부가 미션 : 제레아 경의 본대를 끝까지 사수하십시오.

부가미션인 ‘성배기사 제레아’ 경 쪽의 본대를 사수하는 퀘스트는 아마 함께 입장했었던 다른 이들이 클리어 중일 것이다.

문제는 메인 퀘스트인 성물을 라이온하트 국경선까지 호송하는 것.

‘왜 라이온하트 국경선까지지? 제국까지 온 시점에서 이미 호송 퀘스트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멈추시오!”

그때였다. 구대성의 생각을 가로막는 우렁찬 목소리. 제국 경비초소에서 들린 목소리였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우리들은 라이온하트 왕국 소속 성물 호송단입니다! 이전에 통과한 기록이 남아있을 거요!”

호송단의 리더인 스텔라의 외침에 곧 초소가 열리며 한 무리의 제국인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반갑네,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이여.”

호리호리한 노인이었다. 제레아 만큼은 아니어도 얼추 칠십은 먹었을 법한 인상. 하지만 이 세계에서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지구와는 다른 만큼 속단할 수 없다.

그는 고급스러운 망토를 두르고 지팡이를 쥔 사내였다. 무엇보다 그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이마의 왕관과도 같은 화려한 써클렛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노인의 등 뒤로 비슷한 화려한 붉은 망토와 녹색 망토를 두른 이들이 둘이나 더 있었다. 그들의 신분은 결코 앞선 노인에 뒤떨어지지 않았고.

“빛의 마도학파 수장인 법왕… 임페리얼 가드의 사단장 볼프하르트 경… 천상의 관측자 스타트우트 학장까지…….”

제레아는 생각지도 못한 거물들이 줄줄이 등장하자 낭패감을 숨기지 못했다.

“제국 13선제후들께서 어찌 이곳에 계시오?”

제국 선제후.

각각이 제국을 이루는 열세 가문의 가주들. 제국의 황제조차 이 열세 가문에서 선출된다.

그들은 더러는 위대한 전사이며, 더러는 위대한 마법사인 그들은 선제후가 되며 동시에 제국의 보물들을 하사받아 건국공신들의 힘을 이어받는다.

다시 말해 저 세 사람이야말로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열세 명 중 한 명이란 것이다.

그들 중 법왕이라 불린 노인이 제레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그 정체를 간파했다.

“아, 성배기사 황혼의 제레아 경인가. 아니, 좀 더 젋군. 자넨 그 분신이구려.”

그때였다. 호송단의 등 뒤로 먼지구름이 일었다. 따돌린 줄 알았던 오크들과 짐승신의 권수들… 그리고 키메라들이다.

“환영하네. 제국의 땅에 오신 것을.”

법왕이 두 팔을 벌렸다. 협곡의 안쪽에서 쫓아오는 괴물들은 신경도 쓰지 않으며.

“그리고 잘 가시게.”

다음 순간, 법왕의 손끝에서 쏘아진 빛이 제레아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