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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7

96. 거지남매 – 복수

짙은 어둠이 깔린 밤, 루티나의 한 뒷골목이 북적였다.

그곳에 몰려든 사십여 명의 사람들은 추위를 막기 위함인지 아니면 중무장한 자신의 몸을 가리기 위함인지 두툼한 로브로 몸을 감싼 채 도열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레오가 말했다.

“바르트 경, 몸조심하십시오.”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공작 놈의 목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왕자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

“크흠.”

바르트는 레오 왕자님께 진심 어린 감사를 담아 경례를 올리고, 곁에서 불편하게 헛기침하는 하젠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제니아를 제외하고, 레오를 따르는 215명의 기사는 각각 130명과 85명으로 나누어졌다.

바르트는 4명의 동료를 이끌고, 하젠은 80명으로 구성된 4개의 기사대를 이끌고 테르탄 공작을 잡기로 결정되었다.

남은 130명의 기사는 레오 왕자님과 함께 에릭 왕자를 잡으러 왕성으로 가기로 했는데…

바르트는 의문이었다.

‘하젠 경은 왜 굳이 테르탄 공작을 맡겠다고 자원했을까?’

테르탄 공작과 에릭 왕자, 둘 중에서 누구를 잡으러 가고 싶으냐고 묻거든 기사라면 두말할 것 없이 에릭 왕자를 고를 것이었다.

공작에게 원한이 있는 바르트에겐 선택할 건덕지도 아니었지만, 기사들에겐 그편이 훨씬 영광된 일이니까.

그래서 누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예상했는데, 하젠이 테르탄 공작을 맡겠다고 자청하면서 배분이 쉽게 끝나버렸다.

제2 기사단장인 그가 결정을 내렸으니 제2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들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의외의 선택이었다.

하젠은 레오가 끌어모은 기사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자신이 왕자를 잡으러 가겠다는 욕심을 비췄다면, 필히 그렇게 됐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바르트도 팔을 등 뒤로 돌려 가볍게 몸을 풀면서 이 사소한 의문을 떨쳐버렸다.

만약 하젠 경이 배신할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뒷통수를 맞았을 거다.

“제니아, 레나를 잘 부탁하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자님은 제니아에게 공주님을 부탁한 뒤, 기사들을 이끌고 떠나셨다.

바르트의 의문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왜 왕자님께서는 본인께서 직접 왕궁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셨을까?’

왕자님께서 워낙 단호하시고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리 결정되었지만, 왕자님께서는 너무 감상에 젖으신 것 같았다.

에릭 왕자에게 몸소 복수하겠노라 작심하신 것일까?

그는 못내 걱정이었으나, 사실 이 순간 누구보다도 감상에 젖은 사람은 바르트, 본인이었다.

잡생각을 털어낸 그는 자신의 검을 꺼내어 상태를 확인했다.

날이 이리저리 뭉개져 성한 곳이 없는, 검신이 유달리 기다란 검.

바르트는 검날을 갈지 않았다.

검 끝만 뾰족하다면 충분하기도 했지만, ‘이것들’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바르트가 돌아섰다.

뒤에는 그와 오래도록 함께한 동료들이 서 있었다. 어둠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이글거리는 눈을 들고서.

– 복수

바르트는 까닥, 턱짓했다.

동료들도 끄덕, 미미한 고갯짓을 돌려주었다.

“준비됐지?”

그는 자신이 뱉은 말에 감격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혈관을 따라 맥동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해왔던가.

레오 왕자님께서 살아 돌아오셨으니, 이제 공작을 죽여 먼저 떠난 동료들의 넋을 달랠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달달달 흥분한 오른팔로 제 가슴을 쿵! 찌었다.

준비됐음을 알리는 수신호였다. 무척이나 오래전에 준비됐음을 강조하듯 세게 가슴을 쳤다.

한 동료가 입을 열었다. 결연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왕자님을 위해 목숨 바친 바린과 닐을 위하여.”

다섯 사람은 잠시 그들을 떠올렸다.

왕자님과 공주님을 모시고 달아났던, 어리지만 사려 깊었던 바린과 표현은 거칠지만 언제나 익살맞았던 닐.

그들은 잘해주었다.

왕자님과 공주님을 살리는 최고의 공훈을 세웠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이런 영광된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동료가 입을 열었다.

“용맹하게 달아난 루디와 웬디를 위하여.”

마차를 타고 달아났던, 잘생긴 루디와 근위기사단의 홍일점이었던 웬디가 떠올랐다.

당시에 가장 실력이 좋았던 이들이었고, 특히, 발랄한 웬디는 근위기사단의 활력소였다. 그녀의 사촌인 루디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잘해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그들은 아이셀 왕국 국경까지 달아났다고 들었다.

어찌나 격렬하게 저항했는지 종국에는 그물을 던졌다고 들었는데…

비겁한 놈들.

기사의 명예를 그딴 식으로 대접하다니. 다섯 사람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차례를 돌리듯 옆 사람이 순서를 받았다.

“동료를 위해 희생한 루도와 조엔을 위하여.”

오른 왕국으로 달아날 때, 적들의 추격을 늦추기 위해서 가장 먼저 희생을 자처한 이들이었다.

거구의 루도와 유난히 ‘창’을 고집하던 조엔, 그들은 장렬히 산화했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전(前) 근위기사들은 먼저 간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되뇌었다. 하젠 경을 포함한 제2 기사단의 기사들이 출발할 준비를 마치고 멀뚱멀뚱 바라보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건 그들만의 추모식이었다.

“마지막으로… 말을 훔쳐 달아난 그놈을 위하여.”

“띨띨한 자식.”

“웬수같은 놈.”

기마술이 뛰어났던 갈렌.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십 년을 함께했으나, 라퍼트 테르탄 공작의 손자인 팔라스 테르탄을 죽이고 쫓길 때 죽었다.

갈렌은 혼자 돌발적인 행동을 감행했다. 우리의 말을 모두 끌고서 동쪽으로 달아나버렸다.

우리가 이로타시 강에서 배를 탔음을 숨기려고…

만약 그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해군이 출동해 어선으로 위장한 배를 침몰시켰으리라.

“밥이라도 먹고 갈 것이지. 밥 먹는데 혼자 튀어 나가고 지랄이야… 빌어먹을 자식.”

욕을 내뱉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그와의 이별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함께한 시간이 워낙 길었기에 그의 돌발행동을 용서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다섯 사람의 눈에는 아직도 말을 타고 멀어지며 빨리 도망가라는 듯 손을 내젓던 갈렌의 모습이 선했다.

멍청한 놈.

바르트와 동료들의 심장이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가자.”

바르트는 동료들을 가로질러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료들이 스쳐 지나가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젠 경, 갑시다.”

그는 앞장서서 걸어 나갔고, 하젠은 저벅저벅 나아가는 복수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 * *

콘라드 왕국의 수도 루티나는 거대한 도시였다.

대륙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벨리타 왕국의 수도 오르빌보다도 훨씬 컸다.

드넓은 초원에서 식량이 풍족하게 유입되었기 때문에, 루티나는 불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처음 세워졌던 성벽은 허물어져 더 크게, 더 넓게 확장되었고, 성벽이 확장되면서 루티나 동쪽에 있던 야트막한 언덕까지 성안으로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 언덕은 귀족들이 밀집해 사는 ‘모리츠 대로’를 이루었는데, 그곳에 테르탄 공작의 저택이 있었다.

하젠 경과 바르트는 기사들을 이끌고 모리츠 대로에 도착했다.

대로에는 간간이 횃불이 일렁이며 루티나의 경비병들이 돌아다녔으나,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하젠 경이 푸른 섬광탄을 쏘아 올렸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그 섬광탄은 얇게 빛나는 기둥을 이루며 소리 없이 하늘로 치솟았고, 그에 응답하듯 멀리 왕궁 근처에서도 푸른 실선이 솟아올랐다.

작전을 시작한다는 신호였다.

그러자 모리츠 대로에서 피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르트와 하젠 경보다 먼저 도착해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기사들이 횃불을 향해 쇄도했다.

고작 두 명씩 짝을 이룬 병사들, 그들은 “누구냐!” 소리치지도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미안하지만, 경비병이 ‘기사들의 허가되지 않은 움직임’을 보고했다간 사소한 변수가 생길지도 몰랐다.

모리츠 대로 곳곳의 횃불이 꺼지자 바르트와 하젠 경이 이끄는 삼십여 명의 기사들은 걸음을 서둘렀다. 몇몇 저택 정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건 변수가 되지 않는다.

귀족 놈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이제 저 저택에 있는 귀족, 기사들, 사병들이 깨어나서 경계 태세를 취하겠지만, 그들은 저택에서 나오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게 되리라.

모리츠 대로의 몇몇 저택들에 불이 환하게 켜지는 것을 뒤로하고, 바르트와 하젠 경은 꾸준히 걸음을 옮겼다.

곳곳에 흩어져있던 기사들도 한 팀, 두 팀씩 일행에 합류했다. 경비병들의 피를 뚝뚝 흘리면서.

그들이 거대한 테르탄 공작의 장원(牆垣)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오십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나머지 삼십 명은 뒷문으로 갔다.

으리으리한 담벼락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얼핏 보기에도 높이가 4미터는 될법한 공작저의 담벼락은 혹시 모를 침입자를 막고, 정원의 채광을 위해 비스듬히 ‘앞으로’ 쏠려 있었다.

고작 이걸 기울여보겠다고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을까? 모르긴 몰라도 땅을 엄청나게 깊이 팠으리라. 담벼락이 쓰러지지 않도록 온갖 공법을 이용했을 것이다.

정문을 지키던 경비병이 외쳤다.

“누구냐!”

수상한 자들이 몰려드는 곳이 이곳임이 확실해지자 한 명이 서둘러 안으로 달려가고, 남은 한 명이 바짝 긴장해 소리쳤다.

“여, 여기는 테르탄 공작가다. 용건이 있으면 먼저 신분을 밝, 악!”

– 서걱.

바르트가 섬전같이 달려가 경비병을 밟고 높이 뛰어올랐다. 뒤따라온 하젠이 경비병의 목을 쳐버렸다.

경비병이 든 창은 두 사람에겐 장식이나 다름없었다.

훌쩍, 담장에 올라선 바르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조, 종을 쳐! 빨리!”

정문 안에서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던 경비병이 소리쳤지만, 그의 바람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종을 치기 위해 달려가던 놈에게 바르트가 검을 던졌다. 검은 정확히 그의 등을 뚫어 심장을 터뜨렸다.

‘좀 전에 안으로 들어갔던 놈은… 저기 가는군.’

바르트는 정원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경비병을 확인했다.

빨리 쫓아가면 잡을 수 있겠다. 문을 열어주는 것이야 조금 천천히 해도 되겠지. 여차하면 다들 담을 넘으면 되니까.

생각을 마치기가 무섭게 바르트는 비스듬이 기울어진 담장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번쩍! 깜짝 놀랄만큼 눈이 부셨다.

‘마법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르트는 침착하게 착지해 균형을 잡았다. 그러곤 숨을 느릿하게 들이마시어 평정을 되찾았다.

이건 오래가지 않는다.

마나가 충분히 몸에 밴 엑스퍼트들에게 마법의 효과는 크게 반감되기 마련이었다.

그 때문에 기사는 마법사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병종으로 꼽혔다.

“하압!”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아까 종을 치라고 외쳤던 경비병이 달려들었다.

오른쪽, 발 구르는 소리.

사선 수직 베기, 강격이다.

순식간에 놈의 공격을 파악한 바르트는 몸을 크게 회전해 주먹질했다.

– 퍼석.

그의 주먹에 맞은 경비병의 안면이 흉측하게 뭉개졌다. 그리고 마법이 다했는지 서서히 새하얗게 가로막혔던 시야가 걷히는데…

바르트는 혀를 차며 중얼거리고야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

공작의 저택에 훤히 불이 들어와 있었다.

촛불이 켜진 것이 아니라 무수한 구체가 떠올라 정원과 저택을 눈부시게 밝히고 있었다.

또, 달려가는 경비병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저택이 소란스럽게 북적이기 시작했다.

마법.

누군가 담장을 넘으면 실명을 걸고, 저택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깨우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다소 곤란해진 상황이었으나 바르트는 웃었다.

차라리 잘 됐다. 잠든 놈들의 모가지를 따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다 때려잡아 주마.’

테르탄 가(家)의 피에 굶주린 그는 종을 치려던 경비병에게서 자신의 검을 뽑아내며 외쳤다.

“담을 넘지 마라! 담장에 마법이 걸려 있다!”

그는 달려간 경비병을 쫓아갈 필요를 잃고, 정문에 걸린 빗장을 풀었다.

우르르, 하젠 경과 기사들이 몰려들어왔다. 그와 함께 저쪽 저택에서도 기사들과 사병들, 테르탄 가문의 방계 가족들이 몰려나왔다.

“웬 놈들이냐!”

자다 일어났는지 산발이 된, 짙은 갈색 머리칼의 사내가 묵직하게 소리쳤다. 그는 왼손에는 공작가의 상징인 붉은 방패를, 오른손에는 브로드 소드(Broad sword, 검신이 넓고 상대적으로 짧은 편인 검)를 들고 있었다.

미디언 테르탄.

라퍼트 테르탄 공작의 아들이자 콘라드 왕국의 서부 변경백이었다.

그리고 그는 바르트가 죽인 팔라스 테르탄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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