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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7

97화 수행기사 제레아(3)

느닷없는 제삼자의 등장. 그것도 공중에서의 등장에 선제후들은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저것은… 흑수리의 권속.’

‘짐승신의 권속이 어찌 사람을 따른단 말인가.’

‘사람을 따르는 게 아니다. 지배당하고 있다. 설마 신의 권속이 타락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비록 저열한 짐승들이라고 해도 신과 연결되었다는 건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헌데, 어찌 그것이 일개 필멸의 존재에게 가능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러한 의문도 그녀가 면사포를 거두자 이해하고 말았다.

높은 콧대와 가느다란 얼굴, 살짝 벌린 입가는 은은한 미소를 드러내며 여인으로서의 색향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교태로운 몸짓과 요염한 눈매의 매력적인 용모는 매료된다는 수준이 아니라… 타락하게 만드는 무언가.

“이런…!”

그 힘의 정체를 깨달은 선제후들이 저마다 정신방벽의 주문을 걸었다.

<정신간섭 무효화>

<심력 이중강화>

선제후들의 연이은 정신강화, 간섭차단 마법이 걸리고서야 이 땅의 생명체들은 겨우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심지어 라이온하트의 성물 호송단이나… 키메라들까지도.

“무례하군. 창부처럼 사내를 유혹하는 마력을 뿜어내다니.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긍지조차 없는 겐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법왕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모공이 송연해졌다.

자신이야 온갖 정신방벽 아이템을 두르고 있다지만, 병사들은 하마터면 저 마성의 마력에 홀릴 뻔했다. 병사들마저도 저 흑수리처럼 매료되었다면 일이 골치 아파졌을 테지.

저것은 남성을… 아니, 생명을 타락시키는 저주와도 같은 마력이 있다.

“죄송하게 되었네요. 아무래도 타고난 것이라.”

“흥…!”

그 말을 마법사들은 믿지 않았다. 이만한 마력, 이만한 타락의 힘이다. 거의 ‘마법적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을 타고난 외모만으로 가능하다고?

그런 게 있다면 실로 쾌락과 타락의 악성이 탐낼 마성이 아닌가.

‘하지만 그 이전에… 마법사로서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선제후 스타트우트 학장의 <라만타의 벼락>을 무효화시킨 마법.

어지간한 성법조차 해산시키는 고위 원소파괴를 넘어선 마법은 대마법사인 그들도 놀라운 것이다.

“그나저나… 저 키메라는 역시 마법사들이 만든 것이었군요? 조악하기 그지없어 오크의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요.”

“조악하다고?”

순간, 발끈한 법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국 마법사들 생명공학의 정수인 키메라를 두고 조악하다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그 강렬한 시선을 앞에 두고도 베아트리체는 미소로 화답했다.

“네, 지나치게 난잡하고… 품위가 없어요. 저런 건 악마들을 산 채로 고문할 때나 심심풀이로 만들 법한 물건인데 말이죠.”

“하…! 마법사가 고작 외견 따위에 집착하다니.”

“일단은 왕족인지라.”

베아트리체가 호송단의 후방에서 오크와 함께하는 키메라들을 힐끗 응시했다.

온갖 생명체들을 합성한 불쌍한 짐승들. 그 기괴한 생김새와 불운한 운명에 눈살을 찌푸리는 베아트리체.

“저런 덜떨어진 짐승까지 이용해야 한다니… 이 세계의 마술사들의 수준을 알 법하네요.”

그녀가 손짓했다. 순간, 어두운 자줏빛 기운이 키메라들을 향해 쏟아졌다.

-쿠익?

순식간에 안개무리가 키메라들을 감쌌다. 연기를 맡은 키메라들이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이내 몽롱한 눈으로 고개를 든다.

오크들은 직감적으로 위기를 느꼈다.

“놈들을 죽──!”

정확히 맞아떨어진 직감. 키메라들이 오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칫… 눈치챘나.”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차는 법왕.

키메라들은 확실히 굉장한 신체능력을 가졌지만, 그만큼 지능과 항마력이 떨어진다. 정신간섭 같은 능력에 특히나 취약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악수다. 스스로의 패를 드러내다니. 꿈과 죽음의 신도… 아니, 신관장 클래스인가.”

“왕국 놈들. 성배기사는 한 명만 보낸다더니 설마 성녀를 숨겨뒀을 줄이야.”

“이상하군. 이번 대 플르의 신관장은 남성이었을 텐데, 저 여인은 정보부의 주요 인물 리스트에 들어가 있지 않아.”

하리의 존재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설마 신관장급이 나타날 줄이야.

하지만 제국의 선제후들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상대는 결국 한 명. 대마법사 둘에 단장급 기사인 볼프하르트 사단장이 있다.

제국이 자랑하는 최강전력이 셋. 고작 신관 한 명이 추가되었다고 달라질 건 없다.

“차라리 기습이라도 했으면 나았을 것을.”

<점화>, <휘감기는 불꽃>──<화염구(Fireball>

법왕이 날린 거대한 화염구가 베아트리체를 향해 날아들었다. 흑수리를 붙잡고 있던 고삐를 당겨 회피기동을 실시하는 베아트리체.

화염구의 속도는 상당했지만, 비행야수인 흑수리의 기동성을 따라갈 정도는 아니다.

“흥…!”

<속도강화>, <움직임 유도>, <자동추적>, <마법형상변화>── <불타는 시선(Burning Eyes>

그 순간, 화염구의 형태가 변하더니 가느다란 광선처럼 공중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흑수리의 기동성을 아득히 웃도는 속도다.

이에 미려한 손가락으로 불타는 시선을 향해 가리키는 베아트리체.

마도 <육각 방패(hexa shild)>

베아트리체가 전개한 투명한 육각 방패가 불타는 시선을 가로막는다. 맹렬한 불길이 방패를 강타했지만, 그녀의 방어마법은 견고하기 짝이 없었다.

“멈췄군.”

그때, 스타트우트 학장이 마력을 발산했다. 여전히 상공을 어둑하게 깔고 있는 뇌운이 벼락을 쏟아내려는 것이다.

거의 동시, 법왕이 흑수리를 향해 쏜 속박마법이 적중했다.

“흐음?”

대항마력을 가진 자신이 아닌 흑수리를 향해 속박마법을 걸었다. 다음 순간 스타트우트 학장의 번개가 내리쳤다.

거대마법 <라만타의 벼락>

대마도 <최강 원소 무효화(SUPER ELEMENTAL CANCEL)>

다시 한번 벼락을 무효화하는 베아트리체. 하지만 공격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법왕과 스타트우트 학장. 두 사람이 동시에 마법을 쏟아부은 것이다.

거대한 화염과, 빛의 광선과, 천둥벼락과, 암석 덩어리가 베아트리체를 사방에서 두들겼다.

대마법사 두 명이 난타하듯 연달아 마법을 행사했으나 베아트리체는 여유가 가득한 눈빛으로 마도를 전개할 뿐이다.

물리공격은 육각방패들로 막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은 아예 무효화하거나 피뢰침 마법으로 타격대상을 흘린다.

분명 공격을 퍼붓고 있는 건 선제후들일진대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 보이는 건 그들이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마력인가!’

‘우리 둘의 연속공격을 혼자서 막아내다니!’

당황하는 그들에게 베아트리체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성법은 개념을 강제하는 힘. 믿음에서 비롯된 현상의 개변이지요. 분명 마술은 성법에 비하면 열등한 기술이랍니다.”

“네년…! 긍지 높은 마법사로서 어찌 그런 망발을!”

“마법은, 결코 성법보다 열등하지 않다!”

그것은 이 세계 마법사들의 역린이었다.

그들로서는 분개할 만하겠지. 지식을 탐구하고, 수식을 세우고, 현상을 조사해 이루는 이적.

그야말로 현명한 자들의 상징이 된 이 힘이, 단지 신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길거리에 널린 버러지 농부들조차 사용하는 성법만도 못했으니까.

그들은 마른하늘에 우기를 섞어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약간의 산소만 있어도 불을 일으킬 수 있었고, 지력을 소모한 땅에 영양을 주어 작물이 자라게 할 수 있었다.

허나, 이 땅에 만연한 신앙의 신도들은 달랐다.

그들은 바라는 것만으로 벼락을 떨어뜨리고, 불을 일으키며, 작물이 자라게 하고 병마를 치유한다.

그저 바라는 것만으로.

그저 믿는 것만으로.

널리고 널린 천한 것들까지도 기적의 혜택을 받는 것이다.

이 어찌 분통하지 않겠는가.

힘이란, 지식이란 곧 그 사람의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현명한 자들이 사회를 이끌고, 지식과 그 혜택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어찌 자신들의 힘이 천한 것들과 비교되어야 하는가.

하물며 저 무식한 광신도들이 자신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욕스럽고 불합리한 것이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신성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는 건 그들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었다.

“많은 노고와 노기가 느껴지는군요.”

베아트리체는 말을 이으려다 격한 상대의 반응에 그 배경을 눈치챘다.

확실히, 성법이란 힘은 마술사인 자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불합리한 힘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마술… 아니, 이 세계에선 마법인가요. 결국 제 세계의 마술과 다를 게 없는데… 어찌 그리 ‘천박하게’ 사용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뭐라?”

마술. 즉 기술의 일종이다.

베아트리체는 법칙(法)과 기술(術)의 범위를 착각하지 않았다.

성법이 법칙을 개변하는 힘이라면,

마술은 섭리를 비트는 힘이다.

마력이라는 제5원소를 사용해 불 없는 곳에 불을 일으키고, 잔잔한 바다에 파도를 일으키며, 입자를 조정해 광선을 쏜다.

다시 말해, 이론과 상상… 그 모든 것을 이용해 무엇이든 가능한 비술.

“마법(法)에 집착해 마술(術)의 가능성을 도외시하다니. 제가 보기엔 여러분들이 더 이해가 안 된답니다.”

다음 순간, 베아트리체가 양손을 널리 뻗었다.

대마도 <마력순환>

지금까지 퍼부어진 수많은 마법들. 이를 막기 위해 전개되었던 무효화와 방어마술들까지도. 흩뿌려진 그 마력들을 한곳으로 집속, 재활용한다.

그 집속되는 마력은 대마법사인 선제후들조차 경악할 수준이었다. 그토록 거대한 마력이, 압축된 힘이… 새하얀 손가락을 통해 발해진다.

대마도 <멸리사안(滅理死眼)>

쏘아진 검은 광선. 법왕이 서클렛의 힘을 사용했다.

순수개념 <장벽>

선제후들에게 전승되는 성법에 필적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힘.

그토록 오랜 시간 대마법사들이 양산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한 기적의 힘은 베아트리체의 무시무시한 대마도를 막아냈다.

“방어의 개념인가요. 폐하의 성법 방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군요. 하지만… 뚫을 수 없다면 우회하면 그만인 것을.”

벼락이 요동치는 흑운들이 황금색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스타트우트 학장이 경악했다.

“서, 설마 내가 만들어낸 마법을…!”

상대가 만들어낸 현상을 이용. 자신의 마법으로 개화한다. 전보다 훨씬 강하게.

그 증거로 간간이 울리는 뇌기로 번쩍이던 먹구름들은 끝없이 요동치는 벼락으로 인해 황금색으로 변모했다.

대마도 <번광천벌(燔光天罰)>

울려라 공간이여. 내리쳐라 벼락이여.

만개하라, 빛의 꽃들이여.

쏟아지는 폭풍벼락. 선제후들이 전력을 다해 온갖 방어마법과 순수개념을 전개했으나 천재지변의 힘은 단지 한 면만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끔찍한 대파괴.

압도적인 파멸이 두 대마법사와 제국군을 덮쳤다.

* * * *

광오한 벼락의 난무.

성물 호송단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베아트리체는 대마도의 연속폭격 범위를 한정했다.

하지만 이 엄천난 대마도 앞에서 성물 호송단조차 질려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힘의 전개와 규모가 어지간한 성배기사들조차도 비견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끄음…….”

법왕의 기습을 받고 사망했던 제레아는 이전보다 젊어져 이제는 노인이라기보단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을 뜬 그는 즉시 상황을 판단했다. 분신체인 그는 자신이 과거의 분신이라는 것과 현재 수행하고 있는 성물 호송임무에 대해서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본체’에서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이식되었던 덕이다.

“아무래도 제국이 우리를 배반한 것 같군.”

“저희는 성물을 호송하던 중이었고, 제국의 음모에 의해 성물을 탈취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왕국기사 스텔라가 부상당한 어깨를 치유한 상태로 다가왔다. 그녀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고 제레아는 납득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분께서 능히 방종한 제국 놈들을 물리칠 것이십니다.”

이 말에 누구 하나 부정하는 이가 없었다. 사실이긴 했다. 베아트리체는 제국군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들리시나요?]

그때였다. 제레아를 비롯해 성물 호송단에게 메시지가 간 것은.

“여, 여왕님?!”

하리가 화들짝 놀라며 머릿속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귀엽다는 듯이 너머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하리 양, 그리고 호송단 여러분. 지금 당장 아군의 지원을 요청하세요.]

“예? 지금 완전 이기고 있는…….”

작금의 전황은 베아트리체가 홀로 제국군과 선제후 세 명을 압도하고 있는 추세였다. 그러나 베아트리체의 생각은 달랐다.

[선제후라는 자들에게서 기이한 힘이 느껴지더군요. 장기전으로 가면 저 혼자 감내하기 힘들어요.]

“알겠습니다.”

대답이 돌아온 것은 제레아였다. 그는 베아트리체의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한 듯 보였다.

“꿈과 죽음의 귀부인이시여, 명하신대로 따르겠습니다.”

이에 스텔라가 물었다.

“제레아 경. 협곡으로 돌아갈 생각이십니까?”

“아니, 너무 머네. 그쪽 전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렇다면…….”

그때, 시스템 메시지를 재차 확인하던 구대성이 외쳤다.

“왕국 국경…! 그곳까지 가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어도 구대성은 확신이 있었다.

이번 게이트의 메인 퀘스트. 성물을 왕국 국경선까지 호송하라.

이미 ‘제레아 경의 본대’를 사수하라는 퀘스트는 성공했다. 다시 말해 누군가… 야피가 됐든 레온이 됐든 서브미션이 클리어됐다는 소리.

즉, 이 메인 퀘스트만 성공하면 게이트 클리어 조건이 완수된다.

“하지만 저들을 뚫고 어떻게 왕국까지.”

“제가 길을 터 볼게요!”

하리가 나섰다. 그녀는 포마와 페토스의 신녀. 선제후의 방해만 없다면 그 화력은 이곳에서 으뜸이다.

“좋네. 스텔라 경, 호송단을 추스르게. 내게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으이.”

“예? 그게 무슨.”

“어서 준비하게.”

제레아는 말을 추스르고 랜스를 들었다. 베아트리체의 마법폭격으로 혼비백산하고 있는 제국군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고.

“국경선까지만 닿는다면… 그분이 계실 것이야.”

그것만으로 이 모든 전황이 정리된다. 그때까지 베아트리체가 버틸 수만 있다면, 성물 호송단이 잡히지만 않는다면.

“출발한다!”

그렇게 재개된 성물호송. 수십 기의 기수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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