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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8

98화 수행기사 제레아(4)

800km 상공의 우주궤도. 사람의 발자취가 닿지 않는 천상의 영역에서 추락하는 물체.

-삐익! 삐익!

만신전 성배기사 야크트 스피너는 연이은 시스템 경고에 카메라 아이를 빠르게 움직였다.

-낙하속도 및 충돌각 계산. 행성 궤도 돌입까지 8초.

추락한다. 야피는 지상에서 ‘오크의 시선’에 부서진 위성에서 탈출하여 뛰어내렸지만, 이대로 맨몸으로 행성궤도에 돌입하면 동체가 전소해버릴 것을 계산했다.

-추락속도 감속. 탈출 시퀀스 개시.

야피는 긴급히 낙하산을 펼쳤다. 행성궤도진입 전에 속도를 줄여야만 동체가 불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변수에 의해 실패했다.

-촤악!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타이밍에 펼쳐진 낙하산이 산산조각난 위성의 조각에 의해 찢어졌다.

-삐익! 삐익! 위험계산 재측정.

측정완료.

궤도 진입과 동시에 전소까지 13초.

절망적인 계산을 내놓는 강인공지능의 메인 논리회로. 하지만 야피는 포기하지 않았다.

-긴급 감속준비. 재료 확보.

야피의 카메라 아이가 바쁘게 낙하하는 상공을 확인한다.

중심이 잡히지 않아 1초에 수십 바퀴를 돌면서도 초고성능 카메라 아이는 찰나의 순간, 상공의 위성 조각들을 확보.

완벽한 계산에 의한 동작 시퀀스로 강철 와이어를 던져 그것들을 휘감는다.

세 조각, 네 조각… 몇몇 필요한 부품을 확보했을 때, 궤도 진입까지 3초.

회수 시스템으로 그것들을 끌어당긴 야피는 즉각 로봇팔을 꺼내 용접기구로 갈아꼈다.

-2… 1… 중력궤도 진입

그 순간 야피의 동체가 시뻘겋게 익기 시작한다. 행성궤도에 진입하는 순간, 그 가속도로 인해 동체가 불타기 시작한 것이다.

소행성조차 행성궤도에 진입한 순간 순식간에 타버린다. 다시 말해 야피가 팔 한 조각 남지 않고 타버릴 때까지 앞으로 13초.

야피는 강철 와이어를 조작해 끌어모은 조각들을 이어붙였다.

성배기사란 그 자체로 성력의 허브. 그렇기에 이 작은 몸으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서 13초.

-긴급 장비 제작. 신성 에너지 사용.

야피의 기계팔이 바쁘게 움직인다. 실시간으로 태워지는 순간에도 이 강철의 성배기사는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움직였다.

그렇다.

야크트 스피너.

그는 철과 대장장이의 신성 헤토의 성배기사.

그런 그에게 자신의 몸과 재료가 실시간으로 녹아내리는 열악한 환경 따위는 실시간으로 수정되는 계산요소에 불과하다!

-치익! 치이익! 뚝딱! 치이이익!

8초.

-까앙! 깡! 깡! 까앙!

5초.

-재료 전소로 인한 추가수급 필요.

3초.

-동체분해. 최소 동작구동을 위한 부품을 제외한 모든 부품 사용.

2초.

다리를 떼어내고, 등짝의 커버를 절단하고, 무장을 조각내 구부러뜨린다.

1초.

그 순간, 완성된 것은 얇고 넓게 편 구체 같은 물건. 중요한 건 그다음.

성법 <도구제작>

성배기사의 성력이 구체에 부여된다. 바로 그 순간, 구체의 형상은 대장장이 신의 성력을 부여받은 성물로 화했다.

다음 순간, 하늘에서 별똥별처럼 떨어진 그것은 어느 초원의 한복판에 떨어졌다.

-콰아앙!

충돌의 여파로 산산조각난 구체에서 튕겨 나오는 야피.

-끼이이!

낙하의 충격이 전신을 타격한다. 아무리 야피라지만 800km 상공에서의 추락은 그에게 적잖은 피해를 줬다.

메인 컴퓨터를 제외한 모든 동체가 산산히 바스라졌고, 깨진 카메라 아이는 주변 상황조차 인지하기 힘들다.

성법으로 제작된 구체가 몸이 타오르는 걸 막아주지 않았다면 필시 온몸이 전소했으리라.

-메인─시─스, 템… 이상. 긴-급, 수리─피ㄹ…ㅇ…ㅛ

꿈쩍도 하질 않는다. 야피는 애써 기계팔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이미 한계 이상의 대미지가 축적된 동체는 그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멀쩡한 사운드 시스템이 무언가의 접근을 인지했다.

────

무언가 말이 오간다. 야피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이 오크인지, 야만족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축 늘어져 있는 야피의 동체가 들어 올려졌다. 깨진 카메라 아이가 ‘붉은 것’을 담는다.

“누구냐 넌. 네가 어떻게 성법을 사용하는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야피는 모든 시스템의 동력을 동원해 한마디 말을 전했다.

* * * *

베아트리체는 선제후와 제국군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부으면서도 상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이상하네요. 진작 소멸하고도 남을 화력을 퍼부었는데.’

선제후들이 버티고 있다. 그들의 역량을 웃돈 힘 앞에서도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

‘호송단은 출발시켰지만…….’

문득 베아트리체는 세 명의 선제후 중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쏟아지는 벼락 속에서 모습을 감춘 것이다.

만약 자신을 습격하기 위해 모습을 숨겼다면 대응할 수 있다. 집단 마술전의 기본은 접근해오는 적에 대한 대응.

호위기사들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성배기사도 아니고 그 이하라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나를 공격하기 위해 숨은 게 아니라면?’

그들의 최우선 목표. 방금 출발한 성물 호송단. 베아트리체의 시선이 빠져나간 호송단을 향하려던 그때──

“어딜 한눈을 파시나.”

쏘아지는 거대한 불덩이. 베아트리체가 손짓으로 막아냈으나 전개한 방벽에 금이 갔다.

‘전보다 더 강해졌다?’

자색의 시선 끝 로브를 두른 두 마법사들이 피식 웃는다. 그만한 폭격을 얻어맞은 마법사들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확히는 방벽을 전개하다 마력의 과다사용의 피드백이지만.

한 번. 앞으로 한 번 정도 제대로 두들기면 처치할 수 있다. 베아트리체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대마도 <멸리사안(滅理死眼)>

공간에 맺히는 섬뜩한 자줏빛. 그것들이 광속의 속도로 선제후들을 향했다.

“흐음?”

그야말로 섬격. 여기에 페이크를 섞어 사방팔방에서 쏘아지는 멸리사안이 여섯 줄기.

본래라면 지친 그들이 반응하지 못할 처형기였을 터.

<효과범위 확대화>, <육중발동>──

<고위 주문분해(HYPER SPELL BREAK)>

두 선제후가 연계한 마법들이 베아트리체의 마법을 분해한다.

대 마술전에서 상대의 주문을 무효화하는 것이야 흔한 일이라지만, 베아트리체의 대마도는 그들이 분해할 수 있는 한도를 넘었을 텐데.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베아트리체는 그 자체로 거대한 마력로이지만, 그 진짜 진가는 대기 중의 흩뿌려진 마력잔향을 이용하는 섭리를 이용하는 자.

대마도 <마력순환>

이 거대한 마술전투에서 그녀는 가히 무적. 같은 마력 사용자 상대로 그녀가 마력에서 밀리는 일 따윈 없다.

“윽…!”

그때였다. 쏘아낸 자신의 마력과 선제후들의 마력을 순환시키려는 그때, 이물이 들어왔다.

“마기?”

흡수한 마력은 명백한 이질이었다. 그것도 베아트리체가 너무나 잘 아는.

“……악마에게 혼을 팔았군요.”

“여기까지 우리를 몰아붙일 줄이야.”

선제후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본래라면 여기서 드러내선 안 되었다. 적어도 2년 후… 선출황제의 대의식이 끝나고서야 드러낼 힘.

하지만 베아트리체라는 변수는 그들이 규율을 어겨야 할 정도로 강력했다.

수세에 몰린 처지와 임무의 중대함을 볼 때, 여기서 임무 실패에 선제후 둘이 죽는 것보다야 차라리 도박을 거는 게 나으리라.

<악성강림>

무질서한 탐구. Great Demon 《젠다르》

<악성강림>

좀먹는 강욕. Great Demon 《누골》

사악한 마력이 선제후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 * * *

베아트리체가 홀로 제국군을 붙잡는 사이, 하리와 대성 그리고 제레아의 성물 호송단은 라이온하트 국경을 향해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서둘러야 하네!”

제레아는 성물이 담긴 함을 쥔 채 거침없이 말을 몰았다. 라이온하트 왕국의 군마는 세계제일. 그렇기에 뒤처지는 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으으…! 말아, 조금만 더 힘내 봐!”

하리와 대성. 제주도에서 구입한 레온이 보기에 기본 정도도 되지 못하는 말들.

두 사람의 말들은 라이온하트의 군마를 쫓기에 부족했고, 자연스럽게 최후미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저,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먼저 가세──”

그때였다. 하리의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구대성이 외쳤다.

“제, 제국군이 옵니다!”

검은 갑옷의 기병대가 호송단의 후미를 맹렬하게 쫓는다.

임페리얼 가드.

제국 황제의 근위사단. 다시 말해 황제의 뜻을 대행하는 무력집단은 라이온하트의 군마에도 뒤쳐지지 않는 최상급 군마만을 취급한다.

“어딜 가느냐!”

그 선두의 사단장은 볼프하르트. 괴력의 볼프하르트라 불리며 제국 최강자 중 한 명.

그의 검은 말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더니 하리의 등 뒤를 덮쳤다.

“윽…!”

성법을 휘두르는 하리. 그녀의 불꽃이 볼프하르트의 갑주를 휘감았으나 그뿐이었다.

순수개념 <갑주>

황제의 수호자라 불리는 임페리얼 가드 사단장에게 대대로 물려지는 최강의 갑옷. 그 갑옷은 실로 성배기사의 그것을 능가한다.

하리가 휘두른 불꽃 따위 갑주에 그을음을 내는 수준이었다.

“죽어라, 신의 창녀.”

양손대검을 한손으로 휘두르는 볼프하르트. 하리는 말의 고삐를 잡는 것조차 포기하고 뒤로 돌아 검을 막았지만…….

-꽝!

대포와 충돌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르는 하리. 그녀가 야구공처럼 뻥! 하고 날아가더니 바닥을 굴렀다.

“하, 한하리 양!”

대성의 목소리는 닿지도 못할 만큼 순식간에 튕겨 나간 하리. 볼프하르트가 말에서 점프했다.

그는 저들이 라이온하트 국경선에 도착하기 전에 반드시 전멸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

“전원 여기서 죽여주마!”

그 순간, ‘계약’한 악성과 자신을 연결한다.

<악성강림>

무자비한 파괴. Great Demon 《크누아》

그렇게 두 선제후와 마찬가지로 차원을 넘는 공간에 닿는 목소리. 이에 계약의 주체가 그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콰아아아아앙!

볼프하르트의 갑옷이 부서질 것처럼 팽창했다. 내부의 육신이 순식간에 폭증한 탓이다.

하지만 제국의 보물은 착용자에 따라 그 사이즈를 재조정한다. 순식간에 갑옷 재조정이 끝난 볼프하르트는 끔찍한 이형을 하고 있었다.

핏빛 광기가 눈가에 번들거렸으며, 드러난 살점에서는 터질 것 같은 핏줄기가 드러났다.

안 그래도 덩치가 큰 볼프하르트였으나 지금은 족히 두 배는 커졌다.

모두가 직감했다. 무언가 달라졌다.

고작 육신이 팽창한 수준이 아니다. 이 세상의 섭리가 일그러지며,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그 흉악함을 드러냈다고.

그런 것과 별개로 지상에 착지한 볼프하르트는 흉악한 입김을 뿜어내더니… 지상을 주파하기 시작한다.

-콰앙! 쾅! 콰앙! 쾅!

끔찍한 폭음이었다. 단지 지상을 달리는 것만으로 이런 굉음이라니.

볼프하르트는 구대성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가뿐히 지나치면서 오직 성물을 가진 제레아를 향했다.

“막아라!”

스텔라가 명령했다. 평민 기수들이 반전한다. 그 순간, 그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라이온하트를 위하여!”

“사자심왕을 위하여!!”

순식간에 말머리를 돌린 기수들이 창을 꼬나쥐고 볼프하르트에게 역돌격한다. 충돌의 순간──

-꽈아아앙!

갑옷과 부딪친 창이 부러지고, 말들이 박살나며, 기수들의 몸이 하늘을 난다.

그저 충돌한 것만으로 기수들의 전멸까지 3초.

“고맙다, 충성스러운 병사들이여.”

지상으로부터 13m. 붉은 머리칼의 여기사가 검을 내리친다. 그녀가 신앙하는 빛이 검을 가호하고 사특한 것을 몰아내는 성검으로 화한다.

성법 <성검개방>

그녀가 내리친 검은 섬광과 함께 볼프하르트는 휩쓸었다. 악종에 치명적인 이 일격, 상급 악마라도 일격에 베어낼 수 있는 위력이다.

“무슨…!?”

하지만 볼프하르트는 그것을 견뎌냈다. 오히려 날파리가 앉은 것처럼 갑옷을 훑어내더니 스텔라를 붙잡았다.

“큭!?”

“시건방진 계집. 죽어라!”

볼프하르트가 스텔라의 목을 그대로 꺾어 버리려는 순간, 날카로운 섬광이 볼프하르트를 스쳤다.

“……!”

위협적인 예기에 스텔라를 놓고 물러서는 볼프하르트. 그의 시야에 중년의 기사가 보인다.

“제레아…….”

제레아. 그 과거의 분신이 볼프하르트를 가로막았다.

“성배기사조차 아닌 우둔한 시절의 네놈이 이 나를 막겠다는 거냐.”

볼프하르트는 제레아를 알았다. 그가 젊은 시절에도 유명한 수행기사였으니 당연했다.

왕국은 물론 제국과 머나먼 동방까지 유랑하면서 신의 길을 찾은 수행자. 누구나 우둔하다고 비웃었으나 끝내 성배기사의 과업을 이룬 자.

확실히 성배기사 제레아는 대단한 남자다. 그는 황혼을 노래하며 가장 명예로운 자리에 앉을 만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자는 아니다. 아직 개화하지 못한, 그저 과거의 순간을 박제한 존재.

임페리얼 가드의 사단장이자 제국 선제후. 대악마 크누아의 계약자인 자신과 비교할 존재가 아니란 것이다.

“나를 쓰러뜨리려면 성배기사라도 데려와야 할 것이다!”

“제국도 참으로 건방지기 시작했군. 그대들이 언제부터 성배기사를 논할 주제가 되었나.”

“이놈이…….”

볼프하르트는 건방을 떠는 제레아를 노려봤다. 성물의 힘이라도 빌릴 생각인──

“네놈! 성물은 어디에 있지!”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레아가 쥐고 있던 성물함이 보이질 않는다. 순간, 볼프하르트의 시야에 아직까지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누군가가 보였다.

처음 공격으로 튕겨 나간 붉은머리 신녀와 함께 제레아의 군마를 타고 달리는 별것도 아닌 잡병.

죽일 가치도 없어 무시했던 저 버러지가 성물함을 쥐고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얕은 수를…!”

볼프하르트가 바로 구대성을 향해 달리려 했지만, 제레아는 물론 스텔라까지 가세해 그를 막아섰다.

“이 나약해빠진 놈들이…!”

볼프하르트가 대검을 휘두르자 겨우 그것을 막는 두 사람. 볼프하르트는 곧장 임페리얼 가드들에게 구대성을 추적하라 명했지만, 그들 앞을 가로막는 또 다른 이들.

팔이 부러진 기수, 말을 잃은 기사. 성물 호송단의 움직일 수 있는 모두가 임페리얼 가드를 막아섰다.

그 중에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피를 토해내는 이들도 있었다.

스텔라가 외친다.

“영광스러운 라이온하트의 기사, 병사들이여! 호송단의 단장! 스텔라 버밀리온이 명령한다! 발검…!”

이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뽑는 자들. 압도적인 죽음을 앞에 두고도 그들 눈에는 투지가 가득하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죽는다!”

“”명 받잡겠습니다!!””

우렁찬 기세와 함께 달려드는 기마들. 그들의 끈질긴 기세에 오히려 임페리얼 가드들이 압도당한다.

기사는 물론이고 버러지 평민 나부랭이들조차 기사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덤비는 것이다. 그들이 질려버리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이 어리석은 광신도 놈들. 신들의 개들이…!”

볼프하르트는 예전부터 저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국은 철저한 신분제 국가다. 그곳에서 귀족은 고귀한 존재이며 평민들은 버러지 소모품에 불과하다.

반면 왕국 또한 신분제 국가인 건 마찬가지였으나 그 사회는 제국과 사뭇 달랐다.

철저한 청빈, 고귀한 맹세, 정의로운 규율을 목숨처럼 지키는 왕국의 귀족, 기사들은 신의 강령 앞에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다.

그들이 수호하기로 맹세한 평민들조차 그에 응하듯 기꺼이 충성과 봉사를 바쳤고.

인간의 탐욕과 자율을 핑계로 신을 섬기기를 거부한 제국과는 사뭇 달랐다.

제국과 왕국. 두 나라의 격차는 그렇게 벌어졌다.

“너희들은…! 스스로 판단하기를 버린 가축들이다!”

볼프하르트의 대검이 제레아를 짓눌렀다. 고작 수행기사… 그는 대악마의 힘까지 빌어 증폭된 볼프하르트의 힘을 막아내는 것만으로 두 무릎이 부러졌다.

“제레아 경!”

“나는 신경 쓰지 마시게!”

제레아는 오히려 볼프하르트의 검을 받아냈다. 제 육신에 대검을 박으며 움직임을 봉쇄하려 한 것이다.

“멍청한 놈! 힘의 격차가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볼프하르트는 무지막지한 완력으로 검을 뽑아내며 제레아를 짓밟았다. 그의 검이 스텔라를 후려쳤고 그녀의 몸이 던져진 공처럼 바닥을 굴렀다.

“흐읍…!”

그때였다. 볼플하르트에게 살해당한 제레아가 곧장 일어선 것이다. 그는 이제 희끗한 중년을 넘어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부활속도가 빨라졌다?’

그것이 의아했지만, 볼프하르트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 그는 수행기사조차 아니었으니까.

“왕국기사 제레아 경. 이제 앞으로 몇 번 살아날 수 있지?”

“이 목숨을 여인께서 거두는 순간까지.”

제레아가 죽음을 불사하고 덤벼들었다. 가진 힘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하지만 수행기사 제레아건, 왕국기사 제레아건──편력기사 제레아건.

“허억… 허억…!”

그는 다시 일어선다. 맞설 수 없는 거악을 앞에 두고 포기하질 않았다.

“이제 마지막인가? 우둔함조차 사라진 풋내나는 애송아. 나를 쓰러뜨리려면 네 본체가 와도 부족할 텐데.”

“……신기한 일이야.”

젊은… 아니, 이제 청년의 태가 막 드러난 소년기사는 말했다.

“끝내 성배기사가 되었다는 것이. 이 부족한 기사를 여신께서 택하였단 말이지.”

피를 흘리며, 빈혈로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키는 제레아. 갑옷은 부서졌고, 온몸은 더럽혀졌으나… 그 눈은 티 없이 맑았다.

“성배기사란, 신들의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끝내 마주해 그 과업을 수행해내기 위해… 온 삶을 바치는 자들.”

“그들의 삶은 무수한 신앙 속에서 피어오른 가장 아름다운 꽃이니…. 그 눈부시게 빛나는 명예는 나의 꿈이었고, 나의 목표였어.”

제레아가 검을 들었다. 드높게 들어 올린 세검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날카로운 예기를 흘렸다.

갑옷과 육신이 부서지고 흩어진 상황에서조차 그의 검과 눈빛은 더없이 맑고 깨끗했다.

그는 수많은 재능 있는 기사 중에서도 그 한계를 몇 번이고 본 우둔한 자.

그 우둔한 길을 보다못해 포기를 종용했던 여신 앞에 자신의 삶을 관철한 자.

끝내 70년의 방랑 끝에 불가능한 과업을 하사받았으니.

“만물의 끝을 관장하는 여인이시여.”

“저승과 죄인들을 관장하는 관리자시여.”

“가장 낮은 곳에서 필멸자들을 인도하는 사공이시여.”

누구나 불가능하다 말했다.

그것이 넌지시 포기하라는 여신의 뜻임을 조언했다.

“제 목소리를 들어소서.”

“당신의 기사를 가호하소서.”

그러나 기사는 불가능에 도전했다.

도전에 다른 이의 평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불가능이 도전에서 제외되어야 할 이유도 찾지 않았다.

끝내 불가능함을 가능함으로 치환해, 죽음을 극복하였으니.

죽음의 여신이 보시기에 기꺼웠더라.

[본녀가 너를 가호하노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여전히 우둔하고 우직한 기사를 향해── 그 역사를 재현했을 뿐인 존재에게 여신이 미소 짓는다.

그것만으로 충분.

우둔한 자가 황혼의 끝을 노래한다.

“죽음께서 나와 함께한다.”

제레아의 기세가 폭풍처럼 커져간다. 볼프하르트는 미숙한 청년기사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달라지는 건 없다!”

대검이 들린다. 이를 신호탄처럼 제레아의 신형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나는 불멸하지 않으나.”

“불멸한 것을 두르고 싸우니.”

“필멸을 극복하고, 승리할 운명인 것을.”

* * * *

전투가 끝났다.

성물 호송단과 임페리얼 가드의 싸움은 애초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소수에 대부분이 평민 기수인 그들과 제국 최강의 정예들. 아무리 기세가 올랐다곤 해도 무장부터가 차원이 다르다.

단지 뼈 아픈 건,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호송단을 처리하기 위해 30분이 넘는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는 것.

고작해야 편력기사에 불과한 자가 임페리얼 가드 사단장 볼프하르트를 상대로 마지막까지 붙잡았다는 것.

“빌어먹을 광신도 놈들!!”

볼프하르트는 연기가 되어 사라진 제레아의 흔적을 향해 분노의 발길질을 했다. 이내 목덜미의 상처를 부여잡았다.

고작 편력기사. 고작 편력기사 따위에게 당할 뻔했다. 악성강림으로 악마화하지 않았더라면 목이 꿰뚫려 죽는 것은 자신이었을 테지.

볼프하르트는 내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대체 이놈의 왕국 놈들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미쳐버린 광신자들이다.

“각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라이온하트 국경까지는 말을 타고 달려도 최소 반나절이니 지금부터라도 충분히 추격할 수 있습니다!”

“놈들을 바로 추격한다! 성물을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볼프하르트가 말에 오르지 않았다. 아직 악성강림의 효과는 몇 시간은 더 유지할 수 있다. 차라리 맨몸으로 달리는 것이 훨씬 빠를 테지.

“각하, 이자는 어찌 처리할까요?”

그때, 임페리얼 가드 중 한 명이 생존한 라이온하트의 기사를 가리켰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그녀는 호송단의 단장인 스텔라였다.

“허억… 허억…!”

검을 들 힘조차 부족해 양손으로 겨우 받치고 있는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투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처리해라. 생존자는 남기지 않는다.”

추적을 개시하기 전, 다 죽어가는 여기사를 향해 임페리얼 가드가 창을 겨눴다. 성력조차 모두 소진했음에도 스텔라는 검을 고쳐 잡았다.

“라이온하트에…….”

자신의 죽음을 왕국에 바치며.

충성스러운 기사는 마지막 영광을 노래한다.

“영광 있으──!?”

그 순간, 스텔라는 피부가 들썩이는 걸 느꼈다.

입술이 부르트고 대기가 타들어 간다. 그것이 명백한 이변이라고 느낀 모두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

그것은 유성이었다. 스스로를 태우며 떨어지는 유성.

하늘을 수놓는 붉은 기체가 온 세상의 대기를 태우며 구름마저 증발시킨다. 하늘이 시뻘겋게 타오르며 붉은 비가 쏟아지며 증발을 반복한다.

“……!”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괴이현상이었다.

제국의 대마법사들이 몇 번이나 주문을 겹치고 강화하여 이루는 것이 기상조작계 대마법.

그런데 저것은 그저 추락하는 것만으로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콰앙!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은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내며 사방으로 그 여파를 터뜨렸다.

삽시간에 주변을 파괴한 대폭발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붉은 기사.

겁화처럼 시뻘건 전신갑주.

장정 여럿이서도 드는 것조차 불가한 거대한 거검을 양손에 한 자루씩.

무엇보다 두려운 건 넘실거리는 화염. 닿는 것만으로 전소될 것 같은 화염은 자세히 보면 화염이 아니었다.

전신에서 흐르는 성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넘치고 있을 뿐.

“아, 아아…….”

검은 갑주의 전사들이 두려움에 떤다.

이 시대의 인간이라면, 누구도 저 전설을 모를 수 없다.

“도살자…….”

“참수기사…….

“신의 분노…….”

“……위치 헌터.”

“신벌 대행자.”

“파멸의 전쟁기수.”

최연소 성배기사, 악마 살해자 라이온하트의 위명에 버금가는, 당대 최강의 성배기사.

“나는 불카누스! 내가 불카누스다!!”

전쟁과 불꽃의 성배기사.

이 시대 최강의 성배기사가 맹렬한 분노를 쏟아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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