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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9

99화 최강의 성배기사

이번 역사의 재현에서, 세 가지 변동점이 있었다.

첫째는 끝내 오크 군단의 추격을 가로막고 협곡 방어에 성공한 레온과 제레아. 하여 성배기사 제레아의 생존이 길게 이어진 것.

둘째는 우주궤도에서 추락했으면서도 불타지 않고 끝내 착지에 성공한 야피의 존재.

셋째는 본래의 역사대로 선제후들에 의해 전멸당할 호송단을 지켜낸 베아트리체.

이 세 가지 변동점에 비하면 추격 끝에 성물을 넘겨받고, 미친 듯이 라이온하트 국경을 향해 달린 구대성은 이 모든 기적의 변동점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요소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허억… 허억…!

그의 발악에 가까운 도주는 분명──

“멈춰라!”

“우리는 불타는 검 기사단이다! 너희들은 누구냐!”

이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한 수였다.

* * * *

침묵이 오간다.

이 자리에 눈과 입은 많았으되, 그것을 움직이는 건 오직 붉은 기사뿐이다.

“네놈들…….”

불카누스가 주변을 확인한다.

죽어나간 왕국의 기사와 기수들.

하늘에서 추락한 야피가 전한 메시지.

끝내 성물을 가지고 중간에서 마주친 구대성과 한하리.

모든 게 명확해진다.

제국이 왕국을 배반했고,

그들이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부들부들,

갑주가 떨린다. 분노로 요동친다. 투구의 바이저 속 시선이 차가운 겁화를 일으켰다.

“변명해봐라.”

“뭐라… 고?”

“네놈들의 영혼 한 자락 남김없이 태워버리기 전에, ‘죽는 것만으로’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

볼프하르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불카누스를 응시했다. 그의 검에 넘실거리는 핏빛으로 가득 찬다.

“여전히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신의 개들. 너희들의 오만함이 오늘의 위기를 가져왔음을 모르는가.”

볼프하르트.

제국 임페리얼 가드의 사단장이자 13선제후 중 한 명.

파괴와 살육의 대악마 크누아와 계약한 자.

본래도 불카누스에 버금가는 거인이 이제는 그보다 세 배는 크게 팽창했다. 그것이 단지 덩치가 커진 것만은 아니다.

파괴와 살육의 권능은 지극히 심플.

심플하게 강하고, 파괴적이다. 오로지 살육에 특화된 존재인 것이다.

“너희들은 오늘 제국의 힘 앞에 굴복할 것이다!”

“흥…!”

불카누스는 제국의 오랜 열등감을 알았다.

왕국보다 몇 배는 큰 덩치이면서 그들의 영향력은 언제나 왕국에 뒤처졌다.

당연한 일이다. 인본주의자이자 신성으로의 독립을 외치는 그들이 신의 가호를 받는 영광의 라이온하트보다 나을 리가 없잖은가.

하지만 불카누스는 알았다. 제국이 신의 강령과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지.

놈들은 자신이 쥔 이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신민에 봉사하고, 그들을 수호하는데 제 목숨을 거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윗대가리들이 그리 방만하니 제국의 꼬락서니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다.

그런 것을 신으로부터의 독립이니, 인간제일주의니 하는 것으로 핑계 삼을 줄이야.

“고작 그것이더냐.”

“고작? 너희들은 이 절대적인 힘 앞에서──!?”

-꽈앙!

불카누스의 검이 볼프하르트를 내리쳤다. 강화된 그의 반사신경이 겨우 그것에 반응했으나 내리치는 검은 너무나 무거웠다.

‘무, 무슨 힘이…!’

악성을 강림한 자신이 힘에서 밀린다니? 도대체 어떤 괴력이어야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짓누르던 무게가 덜해진다. 불카누스가 재차 휘두르기 위해 검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노린 볼프하르트였으나 반격할 틈도 없이 다시 검이 내리친다.

“크읍…!”

“네놈들이 제국을 칭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 줄 아느냐?”

불카누스는 한 손으로 든 대검으로 연신 내리쳤다. 그에 비해 볼프하르트는 두 손으로 쥔 검으로도 막기에 급급했다.

“그건 우리가 너희들의 존재를 용납했기 때문이다!”

-꽈앙!

철과 철의 충돌이 아닌, 내리치는 운석이 지상을 내리치는 것 같은 파열음. 충격파만으로 임페리얼 가드들은 자신들의 몸이 뒤로 밀리고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

“네놈들이 시건방진 독립을 외치는 것도!”

-꽈앙!

“네놈들이 불필요한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꽈앙!

“전부! 전부! 전부! 우리가 용납했기 때문이다!!”

-꽈아아앙!

일격을 받아낸 순간, 볼프하르트가 선 대지가 꺼지며 크레이터가 생긴다. 거대한 폭탄이라도 터진 것마냥 지형이 붕괴하고 충격파가 온 사방에 울린다.

“크으으…!”

볼프하르트는 불카누스의 검을 몇 번 받아낸 것만으로 만신창이었다.

갑옷은 으스러졌고, 자랑이던 대검은 금이 가 있다.

볼프하르트는 자신의 힘이 능히 성배기사를 능가한다 여겼다.

지금의 그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힘과 민첩, 완력과 끝없는 마력까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수준.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어째서 자신이 힘에서 밀리고, 어째서 이렇게 무참히 당하고 있단 말인가.

심지어 상대는 전력조차 아니다. 당대 최강이라는 불꽃의 성배기사는 이검을 다루는, 성검을 두 개나 하사받은 최강자.

불카누스는 아까부터 한 자루의 성검 만으로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은 제국 최강정예 임페리얼 가드의 수장.

제국 최강자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초인이다.

그런 자신이 왕국에 우글거리는 성배기사 한 명 쓰러뜨리지 못한다고? 압도당한다고?

“힘을 내놓아라, 크누아! 네 계약자로서 대가를 치르겠다!”

그 순간, 볼프하르트의 온몸에서 핏빛 기운이 치솟는다.

붉게 물든 하늘 위로 진홍빛이 칼날처럼 꿰뚫는다.

볼프하르트의 금간 갑옷은 팽창하는 육체에 이겨내지 못하고 폭발하듯 비산했다.

끝내 변모를 마친 볼프하르트는 인간의 형체를 벗어났다.

파괴와 살육의 대악마에 가까운, 끔찍하게 거대해진 육체와 염소의 다리. 날카로운 뿔과 흉포한 이빨까지.

“이제부터 이곳은 나의 땅이다!”

<영역선포 – 해골신전>

파괴외 살육의 악마가 가진 권능. 시전자에게 무한한 힘과 살육의 힘을 부여한다.

볼프하르트는 웃었다.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이,

들끓는 혈관이 전달하는 열락이,

공간을 지배하는 거대한 마력이.

이것이 전능감. 이것이 진정 초월자의 힘. 절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

온 세상이 그의 소음으로 가득 찬다.

끝없이 솟구치는 힘과 마력이 세상을 채운다.

이만한 힘 앞에서 그 누가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젠 성배기사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신들조차 이 힘에 대적할 수 없으리라.

“이….”

볼프하르트의 시선이 불카누스를 향했다. 그는 떨고 있었다.

하, 그렇게 건방을 떨어놓고 압도적인 힘 앞에 결국 굴복하는 것인가. 네놈도 결국 사람일 뿐이라며.

하지만 그 비열한 만족이 채워지는 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불카누스의 떨림이 두려움이나 굴종이 아닌 분노에 있음을 누구나가 깨달았기에.

“감히… 감히 네깟 놈이. 신들의 땅을 악성의 영역이라 선포하느냐.”

성력이 들끓는다. 넘실거리던 붉은 기운은 이미 화염으로 치솟고 있다. 세상의 공기가 태워지며 숨 쉬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로.

“네놈이 서 있는 이 대지. 왕국뿐 아니라 이곳, 저곳, 저 너머… 전부! 전부! 전부!!”

끔찍한 열기가 두 성검을 통해 치솟는다. 들끓는 분노를 형상화한 거대한 불기둥이 불카누스의 두 손에 들렸다.

“──신의 땅이다!!”

다음 순간, 적색이검이 휘둘러졌다.

그 업화의 불길 속, 협곡과 이어진 제국의 땅 전체가 불탔다.

악성으로 오염된 대기의 한 자락조차 남기지 않고 정화하려는 듯, 끝없는 불길이 세상을 불태운다.

타락한 제국의 선제후와 선포된 악성의 영역을 모조리 불태웠다.

대지, 초목, 생물, 대기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불과 5초.

이 땅 위에 살아있는 생물은 불카누스와 스텔라뿐이었다.

* * * *

악성강림으로 증폭된 힘을 가지고 두 선제후는 승기를 잡았다 여겼다.

이만한 거대마력, 끝없이 전달되는 마법에 대한 지혜, 공간을 지배하는 탐욕스러운 강욕.

저 건방진 계집을 쓰러뜨리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물론 성물 호송단을 놓친 건 아깝지만, 그것도 볼프하르트가 갔으니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만한 대마법사를 포획할 수 있다면 성물 이상의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건방진 놈들. 이 참담한 사건의 배경에는 역시 제국이 있었나.”

그때였다. 베아트리체의 너머에서, 더 높은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황금빛이 있다.

“네, 네놈은…!”

“레, 레온 왕!”

그 느닷없는 등장에 두 선제후가 경악했다. 어째서 왕도에 있을 사자심왕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어머, 폐하. 늦지 않게 오셨군요.”

“오랜 친우를 전송하고 오느라 늦었네. 짐이 가세해도 되겠나?”

레온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는 베아트리체.

“저는 폐하와 달리 기사의 명예나 영광을 독점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요.”

“……언제 한 번 그대와 마땅한 명예를 취하는 것과 전투의 영광에 대해 논해야겠어.”

레온은 성창을 들고 전투에 가세하려 나섰다. 하지만 그때, 모두가 붉게 만들 하늘을 목격한다.

“저게 무슨?”

그 마술사 여왕조차도 당황할 법한 대규모 이상현상. 마치 하늘이 타오르는 것처럼 끔찍한 열기가 여기까지 전해진다.

두 선제후조차 저것이 대체 어떤 마법적 현상이기에 이곳까지 영향이 전해지냐며 경악했지만, 오직 레온만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다.

“이런. 아무래도 우리들이 나설 필요는 없겠군.”

“폐하?”

“그자는 짐와 필적할 정도로 악종에 대해 용서가 없지.”

다음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다. 마치 우주궤도에서부터 떨어져 타오르는 열기를 몸에 두른 것처럼.

“소, 소행성?”

“누가 메테오라도 소환한 것인가!”

대마법사 열 명이 열흘 밤낮을 의식을 치러야 겨우 소환할 수 있는 최고위 대마법. 대체 누가 그런 대마법을 시전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곧 알아챘다. 저것이 소행성이 아니고 갑주를 입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말도 안──!”

-꽈앙!

전장 한복판에 떨어진 유성은 사람의 형상을 한 갑주였다.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은 기사. 그의 손에는 그을린 상반신이 찢긴 채 들려 있었다.

“보, 볼프하르트 사단장!?”

그것이 산채로 상반신이 뜯긴 볼프하르트라는 걸을 알아본 선제후들이 경악했다.

“이 쓰레기의 동료들이로구나.”

볼프하르트의 시신이 쓰레기처럼 던져졌다. 제국 13선제후 중 한 명을 이리 대하고도 붉은 기사는 두 선제후를 파멸적인 시선으로 노려본다.

“너희 쓰레기들은 영혼 한 점 남기지 않을 것이야!!”

분노로 가득 찬 그는 선제후들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지도 않았다. 당장 눈앞의 악종들을 소각시키기 위해 온 세상의 불씨를 집속시킬 뿐.

신벌 <전장의 불꽃>

두 거검이 마치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휘둘러진다.

“머, 멍청한 놈! 힘을 그리 낭비하며 확산시켜서야──!?”

-쿠콰아아!

거대한 불기둥이 제국군과 선제후들을 통째로 집어삼킨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선제후들이 악마화까지 시행하며 온 힘으로 장벽을 전개했다.

그중에는 순수개념의 장벽을 소환하는 보물의 힘도 있었으나──

“그르으으으윽?!”

피부가 타들어간다. 혈관이 들끓었다. 정면에서의 화염을 막았음에도 급격하게 올라간 기온만으로 전신이 익어 버린다.

‘말도 안 돼! 이런 확산된 힘을 어찌 못 막는──’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허나, 이 불꽃의 기사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신벌. 그야말로 신벌.

대악마와 계약한 두 선제후가 재조차 남기지 않고 전소하기까지 채 3초가 걸리지 않았다.

압도적인 파괴. 전율하는 신의 기사. 도살자 불카누스.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선 그 어떤 악종도 살아남을 수 없다.

* * * *

불카누스의 등장으로 일단락된 협곡 전투. 모든 것을 전소시킨 그는 지상에 착지한 레온을 향해 걸어왔다.

-쿵! 쿵! 쿵! 쿵!

2m가 훌쩍 넘는 덩치에 족히 수백 kg은 될 법한 중갑이 움직이나 큼직한 소리가 협곡에 울린다.

바이저 속, 불타는 시선 속에서 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만신의 대리인! 사자심장의 주인이자 성배의 수호자! 라이온하트를 뵈오이다!”

궁중예법에는 다소 어긋난 말투였으나 레온은 그마저도 기꺼웠다. 그의 출신을 생각하면 이정도는 가벼이 넘길 수 있다.

“오랜만이군, 불카누스 경.”

“…….”

불카누스는 불과 얼마 전에 왕궁에서 만났을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 어째서 자신에게 오랜만이라고 안부를 전하는지 묻지 않았다.

“예, 폐하! 강녕하셨소이까!”

쩌렁쩌렁한 대답으로 모든 의문을 일축시킬 뿐이다.

“폐하.”

그때, 베아트리체가 레온의 옆으로 다가왔다. 게이트의 움직임이 있었던 탓이다.

[퀘스트를 성공하셨습니다.]

[황혼의 제레아 경을 도와 성물을 라이온하트 국경선까지 호송하십시오.]

-부가 미션 : 제레아 경의 본대를 끝까지 사수하십시오.

생존자인 두 사람은 볼 수 없었지만, 게이트를 연 장본인인 베아트리체는 게이트의 움직임에 대해 파악했다.

그리고 그것이 퀘스트 완수로 인한 클로징 현상이라는 것도.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다들 소집해야 해요.”

“흠…….”

레온은 불카누스를 바라보다 이내 결정을 내렸다.

“경. 그대와 할 말은 많으나 사태가 시급하여 먼저 움직여야겠다.”

“옥체가 향하는 길을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소이까! 뜻하는 대로 행하시면 그뿐!”

“경. 그대를 상징하는 물건 하나를 내게 내어줄 수 있겠는가?”

“필요하시다면.”

불카누스는 팔을 뻗더니 이내 불꽃의 링을 형성했다. 그곳에서 나온 것은 금이 간… 균열 속에서도 열기를 뿜어내는 단검 한 자루다.

“고맙네.”

이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불카누스에게 어떤 물건이지 아는 레온은 이 영광의 기사가 건넨 물건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작별이다, 불카누스 경.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야.”

이를 끝으로 레온은 하늘로 비상했다. 그는 불카누스에게 받은 단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신들의 낙원에는,

불카누스가 없다.

* * * *

필드 역에 흩어진 생도들을 회수하는 건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게이트에 입장하면서 그들의 출발점이 제각각 달랐던 탓이다.

하지만 베아트리체가 추적 마법을 걸어논 덕에 한 명 남김없이 찾아낼 수 있었다.

“폐, 폐하!”

“오셨습니까!”

-끼…룩.

마지막으로 라이온하트 국경선. 그곳에서 기사단과 함께 있는 하리와 대성, 야피를 만났다.

“이것이… 성물입니다!”

레온은 대성이 바친 성물함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단박에 알아보았다.

“놀랍군. 잃어버렸던 성물이 설마 이것이었다니…….”

이 또한 운명인가.

레온은 성물을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귀환한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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