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
“….”
“….”
언뜻 검은빛이 감도는 푸른 바다 위, 홀로 외로이 표류하는 배 한 척.
출렁-
가벼운 물살이 일어 배가 한 차례 출렁일 때마다 붉은 낚시찌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
그러나 다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자물자물하는 낚시찌를 무료하게 바라보던 검은 눈이 반쯤 감겼다.
흠칫!
순간, 낚시찌가 깊게 물에 잠겼다.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이더니 낚싯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언제 무료했냐는 듯 한껏 부풀어 오른 기대감을 끌어안고 낚싯대를 힘차게 잡아끌었던 다은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힝….”
물고기가 낚이기는커녕, 바늘에 건 미끼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퐁당.
다은이 의욕 없는 손으로 다시 찌를 던졌다.
또다시 시작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
찌의 움직임을 따라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던 다은이 입을 열었다.
“…카나.”
“….”
“카나야. 카나야아아아.”
귀찮게 왜 부르는 거야.
옆에 앉아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연습을 하던 나는 계속되는 다은의 부름에 못 이기고 대답했다.
“왜.”
“나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래.”
평소 다은이 하는 말은 공기 반 헛소리 반으로 되어 있어서, 들어봤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은이 또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직감하고 고개를 돌렸다.
“너무해.”
“안 너무해.”
다은은 자신 있다며 낚싯대를 집어 들 때는 언제고, 심심해 죽겠는지 좀처럼 몸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그렇게 심심하면 대련이나 하든가.”
“그치만 배 위에서 싸우면 흔들려서 균형 잡기가 힘든걸.”
“그런 것도 미리 경험해 봐야지. 정 힘들면 자세 잡는 연습이라도 해. 그러면 균형 잡는 데 도움이 되겠지.”
“피… 그냥 놀아주면 어디 덧나나….”
입술을 삐죽 내민 다은은 불만스레 투정부리면서도 낚싯대를 거치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낚였나 안 낚였나 잘 봐줘야 해. 알았지?”
“…내가?”
“카나가 시킨 대로 수련하는 거니까 카나도 책임져야지!”
“…그런가?”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탓에 헷갈려서 고개를 갸웃거리니 다은이 혀를 쏙 빼물었다.
“헤, 농담이야.”
“아냐. 봐줄게.”
“어? 정말로?”
“그 정도야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외팔 검객과 크루모의 그림자.
그 둘과의 만남이 자극이 된 건지 최근 다은은 상당히 열정적으로 수련에 임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자발적으로 검술을 연습하겠다고 나가는 것도 모자라서, 병상에 누워 있는 나에게 찾아와 검술에 대해 물었을 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
‘…너 누구야.’
‘응?’
‘아, 아니야.’
그러니,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인 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
수련하기 싫다고 뺀질대던 다은이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감개무량한 일이잖아.
학생이 기특한 행동을 했으면 상을 주는 게 선생의 도리 아닐까?
“잠깐! 그런 거라면 다른 상을 받을 테니까 방금 한 말은 취소할래! 고작 낚싯대를 봐달라는 부탁으로 카나가 내린 상을 낭비할 수는 없어…!”
“안 돼. 낙장불입이야.”
“치사해…!”
“꾸준히 성실하게 하면 또 줄게.”
“약속한 거야.”
무슨 상을 준다고 말도 안 했는데 다은이 의욕을 불태웠다.
“그런데 카나야. 낚시해 본 적 있어? 어떻게 낚아야 하는지 알아?”
“그냥 당기면 되는 거 아니야?”
“삐! 오답이야! 어쩔 땐 힘을 주고, 또 어쩔 땐 힘을 빼면서 물고기의 힘을 빼는 게 낚시의 핵심이야. 무작정 당기기만 하면 힘도 많이 들고, 자칫하면 낚싯대가 부러질 수도 있어. 실제로 초보 낚시꾼들이 많이 하는 실수니까 알아두면 좋아.”
다은은 은근히 밀당하는 게 포인트라느니, 챔질이 중요하다느니 떠들었다.
낚싯대 앞에 선 채로 시큰둥하게 다은의 낚시학개론을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그렇게 잘하는데 왜 못 낚았어?”
“…이 녀석! 아픈 곳을 찔렀겠다?”
손가락을 음험하게 꼼지락거리던 다은이 내가 낚싯대를 들어 올리는 걸 보자 후다닥 도망갔다.
“두고 보자!”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남기며 멀찍이 도망간 다은을 물끄러미 보던 것도 잠시.
이젠 제법 검사 태가 나는 다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물살에 흔들거리는 찌에 집중했다.
물고기를 잡아본 적은 있지만 낚시를 해본 건 처음이라서, 낚싯대를 잡고 있는 게 상당히 낯설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잡는 방법을 알 리 없었으나, 그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무게중심을 찾아 바꿔 잡은 걸 자랑스러워 여겨야 할까.
고민거리조차 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미숙한 것보단 낫겠지.”
자세라도 제대로 잡는 게 어디야.
처음 만났을 때의 다은은 자세도 제대로 잡지 못했는걸.
유유히 흘러가는 바닷물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다은을 험담했다.
아니,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험담은 아니지.
이따금씩 들리는 다은의 기합과, 배에 와서 부딪히는 파도와 바람 소리를 음악 삼아 낚싯대를 잡고 있기를 한참.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보며 상념에 잠겨 있자니, 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세상과 동떨어져서 잠시 여유를 즐기는 느낌이랄까.
그건 그거고, 딱히 취미로 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럴 시간에 검을 한 번 더 휘두르거나 잠이나 자는 게 좋으니까.
풍덩!
“…?”
멍하니 시간을 녹이고 있을 때, 찌가 물속으로 깊게 잠겼다.
검푸스르한 물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춘 찌를 보다가.
“어라.”
낚싯대를 통해 묵직한 무게감을 전해 받고 나서야 물고기가 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물었다.”
소란을 느낀 다은이 한걸음에 다가왔다.
“뭐야, 뭐야?! 물었어?!”
“그런 것 같은데.”
“…문 거 맞아? 카나가 말한 물었다는 게 혹시 나를 말한 건 아니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다은은 내가 부들부들 떨리는 낚싯대를 보란 듯이 내밀고 나서야 의심을 거두었다.
“미안. 너무 덤덤해서 속이는 줄 알았어.”
“고작 물고기인데 호들갑 떨 이유도 없잖아.”
“아니… 손맛이라든가, 그런 거 안 느껴져?”
“…딱히?”
강렬한 정도를 따지면 검끼리 맞부딪칠 때가 더 심하지 않나?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다은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에휴, 일단 물고기부터 낚고 말하자. 물고기가 저항하는 게 느껴지지?”
“응.”
“강하게 저항한다 싶을 땐 잠깐 줄을 풀어줬다가, 힘이 줄었다 싶었을 때 다시 당기고. 이걸 반복하면서 힘을 빼는 거야. 알겠지?”
“응… 몰라.”
“…알겠다는 거야, 모르겠다는 거야?”
“몰라.”
그냥 당기면 될 거 같은데.
빠드드드드득!
“꺄아악! 카나야!”
시험 삼아 힘을 주자 낚싯대가 급격하게 휘어지며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불길한 소리를 냈다.
“오오….”
“오오…가 아니잖아! 잘못하면 부러질 뻔했다구!”
“안 부러졌으면 됐지. 저니가 낚을래?”
“아니! 이런 건 직접 낚아야지! 카나의 기념비적인 첫 물고기를 뺏어갈 순 없잖아.”
기념비…인가.
개인적으로는 ‘이런 걸 기념으로 삼아야 하나?’라는 심정이었지만, 다은이 끝끝내 거부하니 어쩔 수 없었다.
감질나게 깔짝거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으음.
좋아, 이렇게 하자.
마음이 동함과 동시에 짙은 갈색의 낚싯대가 서서히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바닷물에 잠겨 밑부분은 보이지는 않지만, 낚싯줄까지 마나를 머금은 것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촤아악!
요란한 물보라와 함께 새까만 물고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철퍽!
그리고 내가 휘두른 낚싯대를 따라 갑판에 물기 가득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끄집어내진 녀석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몸부림쳤으나 높은 난간은 그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그냥 두기는 좀 그런데.
힘차게 펄떡거리는 게, 가만히 두면 갑판을 한 바퀴 돌고도 남을 기세였다.
강제로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했던 거 같은데.’
어깨너머로 본 대로, 주먹을 말아쥐고 물고기의 머리를 향해 콩 내리쳤다.
퍽!
“앗.”
…힘 조절, 실수했다.
‘콩’ 하려고 했는데 ‘퍽’이라는 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물고기의 미래를 직감했다.
파삭.
내 주먹 모양대로 물고기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다.
내 주먹이 아무리 작다고 해도, 치명적인 급소에 난 작은 구멍은 생명을 앗아가기에 충분해서.
언제 날뛰었냐는 듯 축 늘어진 물고기를 보며 잠시 묵념했다.
“…도대체 어디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
물고기를 낚겠다고 마나까지 쓴 거?
아니면 주먹질 한 방으로 물고기를 침묵시킨 거?
내 행동을 지켜보던 다은이 황당하게 중얼거렸다.
앞엣것은 몰라도, 뒤엣것은 자기도 할 수 있을 텐데 호들갑이 너무 심하네.
“이 물고기는 이름이 뭘까.”
“딱 봐도 마물이잖아.”
“이름이 마물이야? 신기하네~”
“…물고기가 아니라 마물이라고.”
“…아하?”
이게 무슨 바보 같은 대화야.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한 다은이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이름이 마물이라는 줄 알았지 뭐야. 마물들은 이름이 없어?”
“오랫동안 토벌되지 않은 강한 놈들한테는 있지. 이런 놈들은 없지만.”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인 생명체라고 해서, 마물이 됐을 때의 모습도 같은 게 아니니까.
보이는 마물마다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면 끝도 없을걸.
“…그럼 못 먹어?”
“먹을 순 있지.”
“와! 그럼 우리 이거-”
“딱 한 번은. 원래 인생은 한 번이니까.”
“….”
“농담이야.”
“…정말이지?”
“응. 여차하면 셀린도 있으니까 죽을 만큼 아파도 죽지는 않을 거야.”
“못 먹는단 말이잖아!”
애초에, 아티샤의 관저에 신세 질 때 직접 요리한 게 뭐 때문이었는지 벌써 잊은 걸까.
몬스터 고기는 기겁하고 싫어하면서, 왜 이거엔 군침을 흘리는 건지.
다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직접 잡은 물고기를 먹는…. 그런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별 재미가 다 있네.”
왜 이렇게 집착하나 했더니 그런 이유였어?
“그런 거라면,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데. 재밌는지는 몰라도.”
“…에? 하지만, 아까는 낚시해 본 적 없다고….”
“낚시는 안 해봤지. 근데, 낚싯대로만 물고기를 잡을 필요는 없잖아.”
검은 답을 알고 있거든.
바다를 향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가벼운 물보라가 일고, 잠시 후 머리가 사라진 물고기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이런 건, 이런 건 낭만이 아니야!”
“어차피 잡아서 바로 먹는 건 똑같잖아.”
“달라! 다르다구!”
기껏 보여줬건만 어째서인지 다은은 조금 전보다 더 우울한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