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물고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짧은 회의를 거친 결과, 우리는 물고기를 아티샤에게 넘기기로 했다.
생긴 건 그냥 새카만 비늘을 가진 물고기처럼 보여도, 사체에서 풍기는 마기가 녀석이 일반적인 물고기가 아니라 마물이란 걸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마기는 먹어도 딱히 상관없을 것 같은데.
먹지 못한다고 아쉬워할 때는 언제고, 강경하게 반대하는 다은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
“저희 사도들은 낚은 물고기를 가열 같은 조리를 거치지 않고 날로 잘게 썰어서 먹는 식문화가 있어요. 어때요? 아티샤도 한번 먹어볼래요?”
다은의 말을 들은 아티샤는 회의적이었다.
“생선을 날로 먹는다고…? 잘 상상이 안 되는데….”
“혹시 독 같은 게 있을까요?”
“글쎄, 그건 먹어봐야 알겠지….”
“어… 먹고 나서 알면 이미 늦은 거 아니에요?”
“조금 정도는 괜찮을걸…?”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 말인데요.”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다은과 아티샤.
생선을 회로 먹어볼 거냐는 말에서 시작된 대화가 어느새 독이 있냐 없느냐를 따지는 내용으로 흘러가 있었다.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묘한 그리움이 올라왔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마물 고기를 두고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질 때가.
‘단장.’
‘오, 카나. 무슨 일이냐?’
‘이거.’
‘엉? 아까 잡은 마물이구나. 이걸 갑자기 왜 가져 왔냐?’
‘먹어도 되지 않을까.’
‘흠… 네 경지 정도면 괜찮겠지. 좋아, 오랜만에 마물 고기 좀 먹어볼까?’
‘와아.’
‘…부단장님. 식사 준비 다 됐으니까 이상한 거 주워 먹을 생각하지 말고 빨리 오십쇼. 그리고 단장님.’
‘어, 엉?’
‘부단장이 이상한 걸 먹으려고 하면 말릴 생각을 해야지, 보호자라는 인간이 말리기는커녕 부추기면 어떡합니까? 독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에이, ‘세계수의 비탄’ 정도 되는 극독이라면 모를까. 카나나 나나 어지간한 독은 듣지도 않을 텐데 뭐 어때?’
‘…단장님. 부단장이 아직 어리다는 걸 잊었습니까? 어린아이는 어른보다 몸이 약하단 말입니다. 단장님이야 어찌 되든 알 바 아니지만,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부단장이 중독되기라도 하면 참사입니다, 참사!’
‘그, 그렇군…. …잠깐, 내가 어찌 되든 알 바 아니란 말은 뭐냐?’
‘게다가, 이걸 계기로 주워 먹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예? 부단장이 길거리에 떨어진 걸 주워 먹고, 그걸 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수군대는 걸 원하는 겁니까?’
‘…그건 안 되지! 카나! 미안하지만 마물 구이는 취소다!’
‘…둘 다 맞을래?’
얼굴을 잔뜩 찌푸린 에런의 앞에서 아빠가 쩔쩔매던 기억.
먼지가 뽀얗게 쌓인 기억을 꺼냈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지금 상황이랑 조금 다른 거 같기도 한데….
뭐, 큰 맥락은 같으니 상관없겠지.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이거인 거지, 비슷한 경험은 그 외에도 몇 차례 더 있었다.
생각보다 일정이 길어진 탓에 식량이 떨어졌는데, 식량을 조달할 곳도 마땅치 않았을 때라든가.
마물과 싸우다가 식재료가 마기에 오염되었을 때라든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한바탕 토론이 열리곤 했었지.
딱 지금처럼 말이야.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서 가벼운 마기에 저항할 수 있는 이들이 모이면 꼭 이런 일이 생기는 거 같아.
“…괜찮아요?”
“응… 생각보다 괜찮네…. 쫀득하고 고소해….”
“아니, 맛을 물어본 게 아니라 먹어도 이상 있는지 없는지를 물은 건데요.”
“으윽, 쿨럭….”
“그렇다고 갑자기 연기하지는 말고요.”
“이런 걸 원한 거 아니었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내가 추억에 잠겨 있는 사이, 둘의 대화는 또 몰라보게 진척되어 있었다.
가지런하고 정갈하게 썰어 놓은 회, 그 회를 한 점씩 집어 먹으며 소감을 말하는 아티샤, 화룡점정으로 옆에서 신성력으로 케어하는 셀린까지.
견습이라고 해도 엄연히 성녀 후보인 셀린인데, 그런 고급 인력을 고작 마물 고기를 먹는 데 이용하고 있다니.
에델 교 신자들이 봤다면 기겁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냠.
“헉…!”
“우물우물-”
“카, 카나야! 이런 거 먹으면 안 돼! 지지야, 지지!”
“…지지?”
졸지에 ‘이런 거’와 ‘지지’를 먹는 사람이 된 아티샤의 얼굴이 볼만하게 변했다.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카나는 마족이 아니니까 마물 고기를 먹는 게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한 거예요!”
뒤늦게 실언을 알아챈 다은이 허둥지둥 해명을 시도했다.
꿀꺽.
다은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열심히 오물거리던 회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실리아 세계에서는 육고기를 날로 먹는 식문화는 있어도, 바다 생물을 날로 먹는 식문화는 없었던 터라 나도 회를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전생까지 따지면 처음이 아니지만….
맛이 어땠는지, 식감은 또 어땠는지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으니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무튼, 처음 먹는 회는 정말 나쁘지 않았다.
조금 비린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느껴지는 고소함이 쫀득한 식감과 맞물려 기분 좋은 맛을 선사했다.
한 점 더 집어 먹으니 다은이 신기하단 눈으로 나를 보았다.
“맛있어?”
“그럭저럭 먹을 만해.”
“그래? 신기하네…. 처음 먹는 사람은 거부감 느끼던데.”
그야, 맛은 기억 안 나도 지구에 살던 시절에 먹어 봤으니까 .
…라고 말할 수는 없었고, 설령 말한다 해도 들리지 않겠지.
“글쎄. 이것보다 더한 것도 먹어봐서 그런 거 아닐까?”
“더한 거?”
“쓰레기통에서 건져낸 빵이라든가, 반쯤 썩은 고기 같은 거.”
“…솔직히 말해 봐. 나 놀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응? 죄책감 들게 하려고…. 요즘 들어 자주 그런다…?”
음, 아니라고는 말 못 하지.
그래도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서 대답 대신 회를 한 점 더 집어 먹었다.
“에휴…. 그래, 많이 먹어. 잘 먹으니까 보기 좋네.”
다은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목소리에서 측은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걸 보면 방금 내가 한 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뭐, 객관적으로 봐도 주관적으로 봐도 불우했던 건 맞지.
하지만 다은이 오해하는 게 하나 있다.
“반쯤 썩은 고기가 얼마나 좋은 거였는데.”
뒷골목에 사는 부랑아들이 그 비싼 고기를 구경이나 할 수 있었겠어?
반쯤 썩었다고 해도 고기 발견하는 건 천재일우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많이 먹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말하고.
다은이 여전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도 어지간히 힘들게 살았나 보네….”
스윽.
아티샤가 제 앞에 놓인 회 몇 점을 내 앞으로 슬쩍 밀었고, 나는 그녀의 호의를 사양하지 않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양념을 찍어 먹었던 것 같은데,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니 어쩔 수 있나.
신성력을 뿜으며 지켜보던 셀린도 식사에 참여하고, 그 모습을 부럽게 보던 다은도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꺼림칙한 건 여전한지 한 점씩 먹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안 그래도 작은 조각을 더 잘게 잘라서 먹는 다은.
그녀가 입맛을 쩝 다셨다.
“이렇게 먹고 남은 거로 탕까지 끓여 먹는 것까지가 완성인데….”
“탕…?”
“네. 머리랑 뼈 같은 걸 모아서 끓이면 엄청 맛있거든요.”
“흠….”
아티샤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럴 법하지. 다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나조차도 저런 설명으로는 먹음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걸.
식사를 마치고,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셀린의 성법까지 받은 우리는 자리를 정리했다.
물고기가 워낙 커서, 넷이 먹었는데도 많이 남았더라.
“남은 것들은 어쩔까?”
“날고기니까 그냥 바다에 던져…. 아니면 미끼로 쓰든가….”
“하지만 생선들이 이걸 먹고 마물로 변하면 어떡해요?”
“이 부근에 멀쩡한 물고기가 있을까…?”
“아하.”
-라는 흐름으로, 남은 회까지 깔끔하게 처리하고 낚시에 흥미가 완전히 사라진 다은이 낚싯대를 원래 있던 곳에 가져다 놓는 것으로 일련의 일이 마무리되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흩어져서 각자 할 일을 하는 일행들.
다은은 난간에 기대어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고, 셀린은 다은 옆에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있었으며 아티샤는 배를 몰았다.
쭉 늘어놓고 보니 ‘할 일’이라고 할 만한 일을 하는 건 아티샤뿐이긴 하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밥 먹어서 나른하기도 하고, 할 일도 없으니 잠이나 잘까.
완만한 경사를 한 등받이 의자에 앉아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람.
마기가 섞여 있는 게 흠이긴 했지만, 낮잠을 청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머릿속을 비우고 바람을 느끼고 있으니 눈꺼풀이 서서히 무거워졌다.
라…-
“…?”
조금씩 감기는 눈을 굳이 막지 않고 있을 때, 바람에 실려 온 한 줄기 음률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가사가 있는 명확한 노래가 아닌, 가볍게 흥얼거리는 허밍.
다은이 자장가를 부르고 있는 걸까, 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다르게 허밍의 범인은 다은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다은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허밍에 당황하며 근원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선 셀린도 마찬가지였고.
다은도, 셀린도 아니면 남은 것은 아티샤인데.
나는 빠르게 의심을 거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티샤가 콧노래를 흥얼거릴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리의 톤부터가 높아서 헷갈릴 수도 없었고.
아티샤의 목소리는 상당히 낮은 편이거든.
그때, 어느새인가 다가온 아티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세이렌이네….”
“세이렌이요?”
“응…. 노래로 사냥감을 현혹해서 목숨을 앗아가는 몬스터야…. 이 근처에 둥지를 틀었나 보네….”
아티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슴푸레한 물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나는 인형들.
그 인형들은 우리가 타고 있는 배를 둥글게 감싼 채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그것을 지켜보던 다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못생겼는데요?”
“….”
…라-
…세이렌이 부르던 허밍이 잠깐 끊겼던 것 같은데.
아마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