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배가 시원하게 바다를 달렸다.
지구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배만큼 빠르진 않았지만, 오직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기엔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게다가 연료가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친환경적인….
‘-건 아닌가?’
마기를 친환경적이라고 말하는 게 맞나?
자신이 말하고도 아리송했던 다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 것 같기도.’
동물을 마물로 변화시키고 초목을 병들게 하는 기운이 친환경적이라고 할 순 없겠지.
짧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아무튼, 다은이 이렇게 쾌속하고 쾌적한 항해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힘을 회복할 때 빼고는 배를 모는 데 모든 시간을 쏟는 아티샤 덕분이었다.
“카나도 이런 거 할 수 있어? …음, 아니다. 그냥 잊어 줘.”
문득 치미는 궁금증에 카나에게 질문을 던졌던 다은은 빠르게 제 말을 철회했다.
‘카나라면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그 대가로 배가 반파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은 돛이 갈기갈기 찢어지거나.
그렇게 되면 다은에게는 걸레짝이 된 배로 망망대해를 표류하거나 카나의 손에 잡혀 하늘을 나는 미래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 익스트림한 경험을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아.’
최대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다은이었기에,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맨몸 비행은 사양이었다.
다은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카나를 달랬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드디어 다은의 눈에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스템 덕분에 감각이 완화되어 다소 거친 항해에도 멀미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오는 심심함과 답답함은 그대로였기에.
다은은 육지에 닿는 날만을 목이 빠지게 고대했었다.
그러나 막상, 그토록 고대하던 육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자.
“….”
꿀꺽.
다은은 쉬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지 못했다.
‘검은색 흙… 흑토가 농사 짓기 굉장히 좋은 흙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다은은 그러나 그 흑토라는 게 저 멀리 보이는 땅을 말하는 게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단순히 땅이 검다고 흑토라고 하기엔, 멀리서 보기에도 생명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씨앗을 땅에 심으면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는커녕 곧바로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느낌.
다은을 불안하게 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른 검은 안개는 온몸으로 햇빛을 막아서, 해가 쨍쨍하게 뜬 맑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스름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만약 소설이었다면 최종장의 무대로 나왔을 게 분명한 장소.
그런 곳에 선뜻 발을 들일 만큼 다은의 간은 크지 않았다.
검은 바람에 펄럭이던 돛이 멈추자 쌩쌩 달리던 배도 같이 멈췄다.
“난 여기까지야….”
“네? …아아.”
느닷없는 아티샤의 말에 고개를 돌린 다은이 그녀의 안색을 확인하고 곧바로 수긍했다.
안 그래도 핏기 없이 하얗던 안색이 더 하얗게 질려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참, 그랬지. 뿔이 부러져서 어쩔 수 없이 락시아에서 떠나왔다고….
“지금도 조금, 무리야….”
아티샤의 숨소리는 평온과 거리가 멀었다.
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드문드문 격한 숨을 쏟아내는 걸 보고 나서도 같이 가주면 안 되냐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일 것이다.
다은은 분함과 아쉬움이 섞인 눈으로 락시아를 바라보는 아티샤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안내해 주셔서 고마워요.”
셀린의 신성력이 아티샤를 감싸자 창백했던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족장님은 락시아 정중앙에 계셔…. 길은 닦여 있으니까 거기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아르디나인들이 마족들의 수장을 마왕이라고 일컫는 것과 달리, 아티샤를 비롯한 마족들은 족장이라고 일컬었다.
그들의 본래 모습이 정화자 일족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호칭이었다.
“작은 배를 내어줄 테니까 그걸 타고 가….”
“그럴 필요 있어? 이 정도 거리는 그냥 뛰면- 읍.”
“꼬, 꼭 부탁드릴게요…!”
다은은 망언을 쏟아내려는 카나의 입을 재빨리 막았다.
카나가 불만스럽게 올려보는 걸 애써 무시한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은을 비롯한 일행은 커다란 배에 묶어 놨던 작은 보트에 옮겨 탔다.
돛조차 없는 작은 보트라서 성인 남성 셋이 탔다면 비좁음을 호소했겠지만, 또래보다 훨씬 작은 카나와 성인 여성 둘이 타기엔 아무 문제 없었다.
‘셀린 같은 사람 세 명이었으면 좀 비좁았을지도….’
“무슨 일 있으세요?”
“네? 왜요?”
“시선이 느껴졌는데…. 기분 탓이었나 봐요.”
셀린의 특정 부위에 못 박힌 듯 시선을 두고 있던 다은이 시치미를 뗐다.
너무나도 천연덕스러운 반응에 셀린은 찝찝한 얼굴을 하면서도 다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다은이 씨익 미소 짓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진실은 수면 아래로 잠겨 들었다….
빤-
“….”
“….”
…만약 다른 목격자가 없었다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다은은 뒤늦게 그녀의 곁에 분홍색 소녀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것도 아주아주 불만에 차 있는 상태의.
한심한 듯, 그러면서도 경멸하는 듯한 분홍색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친 다은이 침을 꿀꺽 삼켰다.
“….”
“…카나야.”
“…왜.”
다은이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걱정하지 마. 카나도 언젠가 셀린처럼 클 수 있을 테니까. …음, 생각해 보니 좀 아쉬울지도. 그러면 이렇게 안는 걸 못 할 거 아니야.”
“그냥 죽어.”
“우와아악?! 빠, 빠져버려! 정말로 빠진다니까…!”
다, 닿았어…!
작은 손에 번쩍 들려 바닷속에 다이빙할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다시 착석한 다은은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보기 좋네요. 두 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훈훈해져요.”
“…농담하시는 거죠 셀린?”
“네? 진심이었는데….”
“…그래요. 고마워요.”
사이좋다는 말이야 고맙다만, 어떻게 방금 광경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아니면 내가 피해자라서 그렇게 느끼는 거고, 제삼자가 보기엔 사이좋은 광경이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셀린의 말을 들은 다은의 시청자들도 연신 채팅창에 갈고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게 채팅창이야 갈고리 공장이야…?”
“이거 받아….”
“받으라고요? 뭘… 우왓?!”
텁!
갑판에서 들린 목소리에 의문을 품던 다은이 머리 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피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카나가 팔을 뻗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건을 잡아챘다.
“이건…?”
“필요할 거야….”
한쪽 끝은 납작하고 다른 한쪽은 가는, 작대기를 닮은 무언가.
아티샤가 던진 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노였다.
더불어, 배에 처음 오른 날 다은이 만졌던 물건이기도 했다.
“그 배에는 돛이 없으니까….”
대륙으로 향하는 해류를 타면 굳이 노를 젓지 않아도 상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근방의 해류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만약 바다 쪽으로 흘러가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낭패인 상황은 없을 테니.
“자.”
“응? 이걸 왜 나한테…?”
“…? 젓고 싶어 했잖아.”
“어… 딱히 젓고 싶어 한 적은 없는데요.”
“…그래? 그러면 내가 해야겠네…. 아니면 셀린한테 부탁하거나.”
카나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다은의 눈도 잘게 떨렸다.
‘이건 분명 함정이야…. 나를 꾀어내려고 하는 요망한 카나의 함정…!’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다은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저니/논란/아동학대
-나
-나
-어린애한테 힘든 일 떠넘기고 편히 쉬는 쓰레기라는 나쁜 말은 ㄴㄴㄴ
-락
-우우 쓰레기
-구독 해제했읍니다,,,
“새, 생각해 보니 내 꿈은 뱃사공이었어!”
거센 물결을 거스르기엔 다은의 힘은 너무나 미약했으니까.
다은이 카나의 손에 들린 노를 반쯤 빼앗듯이 건네받았다.
애초에 갑자기 노를 내민 게 당황했던 것뿐이지 카나에게 떠넘길 마음은 없었는데….
셀린한테도 마찬가지고.
‘저 가는 팔뚝을 보고 어떻게 떠넘기겠어.’
한숨을 푹 쉰 다은이 양손에 들린 노를 고쳐 잡았다.
능숙하진 않지만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다.
멋지게 잘 저으면 카나가 나를 존경하는 눈으로 보지 않을까?
제법 그럴싸한 자세를 취한 다은이 희망찬 생각을 하며 힘차게 노를 저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다은도 잘하는 게 있었네.’
…잠깐, 이건 존경이 아니잖아.
심지어 칭찬도 아니고, 그냥 돌려 까는 거 아니야?
어째 상상을 해도 이런 것밖에 상상이 안 되는 건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다은이 열심히 노를 저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아가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는 것은.
다은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건 카나 덕분이었다.
“바보.”
스르륵.
카나의 손에 의해 매듭이 풀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보트를 꽉 붙들고 있던 밧줄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개쪽팔려.”
다은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처 가리지 못한 그녀의 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잘 다녀 와….”
“응.”
“다녀올게요.”
“감사합니다아….”
간단한 작별 인사를 끝으로 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락시아로 나아갔다.
* * *
며칠 동안의 항해 끝에 육지에 발을 디딘 다은.
“…우욱!”
오랜 시간 배를 탄 사람이 육지에 내렸을 때 멀미를 호소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배의 흔들림에 신체가 적응한 탓에 오히려 흔들림이 없는 상황에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은이 지금 구역질하는 것은 멀미 때문이 아니었다.
“시체가….”
셀린이 참담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낸 채 중얼거렸다.
반갑게 맞이하는 환영 인파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다은은 그렇다고 해서 이런 광경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시체.
그리고 시체.
주변을 둘러봐도 멀쩡한 인간은 한 명도 없었고, 오직 시체들만 남아 일행을 반겼다.
다은이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