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붙잡고 있던 셀린이 손을 떼자 그의 주위를 맴돌던 황금빛 신성력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의 안색은 셀린에게 치료를 받기 전보다 확연하게 나아져 있었다.
여전히 창백하긴 했지만, 적어도 아까처럼 당장 픽 쓰러져서 숨을 거둘 것 같지는 않았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요. 하지만….”
“완치는 불가능하다…라는 말씀을 하시려는 거겠죠.”
“…죄송해요. 제가 부족해서….”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이미 죽어가던 몸, 수녀님 덕분에 조금의 유예를 얻을 수 있었는데 제가 어찌 수녀님을 탓하겠습니까. 그러니 부디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남자는 사신의 낫이 제 목에 드리워져 있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달관하는 자세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천 의식’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런 결말은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낯선 단어를 들은 셀린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승천 의식, 이요?”
“마기를 강제로 받아들여서 격을 높이는 의식이야.”
“혹시 저희 일족…. 아, 마족이라는 말이 편하시겠군요. 혹시 마족이십니까?”
“그렇게 보여?”
“그건 아닙니다만.”
셀린에게 설명하자 남자가 의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족들만 아는 의식을 내가 알고 있으니 저런 눈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지.
나도 에델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숙녀분이 말씀하신 대로, 승천 의식은 마기를 받아들여서 영혼과 육체의 격을 올리는 의식입니다.”
“음음.”
숙녀분이라.
그리 마음에 드는 호칭은 아니지만 꼬맹이나 꼬마, 소녀 같은 호칭과 비교하면 나쁘지만은 않은 호칭이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와 달리 셀린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마기를 받아들여서 격을 높인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굉장히 위험한 의식으로 들리네요.”
“하하. 실례라뇨. 실제로 위험한 의식이 맞으니 정확히 보셨습니다.”
“허용량 이상의 마기를 강제로 쑤셔 박는 짓이니까 당연히 위험하지.”
정순한 마나로 해도 위험한 짓인데, 하물며 마기로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니 오죽 위험할까.
쉽게 생각하면 가득 찬 위에 계속 음식을 때려 넣는 꼴이다.
그것도 언제,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모를 상한 음식을.
허용량을 넘은 위가 빵! 하고 터져서 죽든, 식중독 등으로 천천히 죽어가든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그리고 내 눈앞의 남자는 후자였다.
뭐…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고, 운 좋게 살아남아 더 튼튼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럴 확률이 몇이나 될까.
“지금까지 몇 명이나 성공했어?”
“…전 족장님과, 현 족장님. 두 분 뿐입니다.”
“두 명….”
얼마나 많은 분들이 시도했냐는 셀린의 질문에 남자가 말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이것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아티샤의 안내를 받아 이 먼 곳까지 오셨으니 저희의 사명이 뭔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오염된 마나를 정화하는 거잖아.”
“아,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다면 간략하게 설명해도 되겠군요.”
에델 님께 받은 사명, 사라진 권능, 넘쳐흐르기 시작한 마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나는 주의를 깊게 기울이지 않은 채 대충 흘려들었다.
“…해서, 아이들이 다른 대륙으로 이주하겠다는 걸 말리지 않았습니다. 사명이 중요한 만큼, 아이들의 목숨도 중요하니까요.”
그래도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는 있었다.
비교적 나이가 어린 마족들은 상대적으로 사명감을 덜 가지고 있다느니, 그래서 목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느니.
자칫 꼰대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어조에 탓하는 느낌이 없어서인지 그렇게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아르디나 대륙에 있는 마족들의 마을을 떠올렸다.
웃을 때도 은연중에 어둠이 느껴지던 얼굴들.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그들은 사명을 저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지.
“남은 이들은 아직 버틸 여력이 있거나, 끝내 버티지 못한다고 헤도 이곳에 뼈를 묻겠다고 다짐한 이들입니다.”
“대체 그깟 사명이 뭐라고.”
“하하….”
남자는 내 투정에 가까운 중얼거림을 웃음으로 흘려넘겼다.
“아무튼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버틸 수 없게 된 이들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아이들을 따라서 아르디나 대륙으로 떠나기. 두 번째,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기. 세 번째는….”
“승천 의식이겠지.”
이 정도로 밑밥을 깔았는데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눈치 없지는 않다고.
“승천 의식을 통해 격이 오르면 락시아에 남을 수 있어서 좋고, 실패해서 죽는다고 한들 이미 뼈를 묻겠다 각오한 몸이니 상관없다. 라는 거 아니야?”
“…정말 마족 아니십니까?”
“직접 확인해 보든가.”
머리를 덮은 머리카락을 슬쩍 들어 올리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의심하는 게 아니라 너무 정확하게 맞히셔서 한 말입니다.”
“나야 정답지를 읽어 봤으니까.”
“정답지…? 아, 그래도 한 가지 잘못 알고 계신 건 있군요. 저를 포함해, 승천 의식에 도전하는 이들은 실패해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당연히 성공하기를 바라시겠죠.”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앗.”
이해한다는 듯 나섰던 셀린이 머쓱하게 물러났다.
“실패하더라도 제 죽음이 락시아에, 그리고 일족에 도움이 될 테니 기꺼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실패하더라도 도움이 된다고?”
“하하, 여기까지는 모르시나 보군요. 드디어 알려드릴 게 생겼다고 생각하니 기쁩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 봐.”
“승천 의식에 실패한 자들은 그 자리에서 몸이 터져서 죽거나, 터지지 않았다고 해도 몸이 망가져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게 되죠. 그러나, 죽음을 맞이할 때 저희가 품고 있던 대량의 마기도 사라지게 됩니다.”
“뭐? 그럴 리가….”
“아뇨. 가능합니다. 저희의 몸은 마기에 오염되었지만.”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창백한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영혼까지 오염되진 않았으니까요.”
죽음을 맞이하는 최후의 순간.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는 바로 그 순간에, 영혼과 마기를 섞어서 오염을 희석한다.
비록 정화가 아니라 희석인지라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해도 시간은 버는 건 가능했다.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마기가 폭주할 가능성이 있으니 승천 의식은 인적이 없는 곳에서 진행합니다. 실패한 이들도 한적한 곳으로 가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지요.”
그 말에 떠오르는 광경이 있었다.
해변에 늘어져 있던 시체들과, 어딘가로 향하던 중 미처 도착하지 못하고 죽은 듯한 길가의 시체들.
셀린도 나와 같은 것을 떠올렸는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경악하고 있었다.
“…미쳤어.”
영혼을 불태우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그런 짓을 서슴없이 하는 걸 보면 미쳤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남자의 말을 곱씹던 나는 피식 웃었다.
“하긴. 남 말할 처지는 아니구나.”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아무 말도. 그보다 살아 있는 사람은 다 중심부에 있는 거야?”
“네. 변방에 살던 이들은 거의 모두 아르디나 대륙으로 떠나고, 남은 이들은 중심부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을이 유지가 안 되니까요.”
“뭐, 그렇겠지.”
인구가 줄었는데 마을이 정상적으로 운영이 될 리 없으니 살아 남기 위해선 뭉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꽤나 길게 이어지던 남자의 말이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로 끝이 났다.
에델에게 들어서 승천 의식에 대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냥 그런 게 있다고 들었을 뿐, 당사자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건 몰랐던 건 마찬가지라서 나도 셀린처럼 생각에 잠겼다.
마족들이 그 어떤 종족보다 사명을 중시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제 이야기는 얼추 끝난 것 같으니,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하나만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뭔데.”
“여러분은 왜 중심부로 향하고 계신 겁니까?”
“굉장히 빨리 물어보네.”
“하하….”
하기야, 말할 틈이 없긴 했지.
“네가 말했던 승천 의식.”
그새를 못 참고 모닥불이 죽어가고 있었다.
남은 장작을 모조리 집어넣자 불꽃이 지금까지 보인 적 없던 크기로 몸집을 부풀렸다.
“그거, 나도 해보려고.”
물론 난 너희처럼 실패해도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
영혼을 바쳐서 남 좋은 짓을 한다니. 내가 그런 자기희생적인 일을 할 리가 없잖아.
반드시 성공한다.
성공해서….
막대기로 불쏘시개를 뒤적이던 나는 문득 주변이 조용한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남자와 셀린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정신이냐고 묻는 듯한 얼굴로.
“…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셀린은 알고 있을 만하지 않나?
“에델이 말 안 했어?”
셀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하, 어쩐지.”
그래, 승천 의식도 모르고 있었는데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리 없구나.
협업하는 사람끼리 목적도 모르는 건 명백히 이상하잖아.
에델은 이런 것도 알려주지 않고 뭐 한 거야.
‘역시 제대로 된 상관을 두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름 나쁘지 않았던 상관이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런 트러블이 일어난 적은 없었으니까.
밑에서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기사단의 행동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나였고, 혹시라도 의견이 갈릴 것 같은 낌새가 보이면 바로 휘어잡았거든.
주로 귀족 출신 놈들이 그랬는데, 불만에 가득 차서 반항하던 놈들도 진득하게 대화를 시도하면 내 뜻을 알아주더라.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째서인지 의무실의 환자가 늘어나긴 했는데, 기사가 고된 훈련 때문에 다치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잖아?
쾅!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깜짝이야.”
갑자기 셀린이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답지 않게 큰 목소리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깨겠어. 조용히 말해.”
“…실패하면 영혼이 사라진다는 말을 듣고도 할 생각이에요?”
“저희는 마기를 희석하기 위해 그런 방법을 쓰는 거지, 실패한다고 해서 영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
째릿.
말을 잇던 남자가 셀린의 눈총을 받고 침묵했다.
아티샤에게 아이라고 했던 걸 떠올리면 셀린보다 몇 배는 오래 살았을 텐데, 그녀의 기세에 완전히 눌린 모습이었다.
“오해하는 게 있는데, 이 방법은 에델이 먼저 제의했어.”
“…에델 님이요?”
“응.”
애초에 나도 에델에게 듣기 전까지 몰랐는데 이런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겠어?
“대체 뭐 때문에….”
“뭐 때문이긴. 이미 말했잖아.”
남자가 말한 승천 의식의 목적.
나는 지금보다 높은 격이 필요하고, 승천 의식에 성공하면-
“격을 올리기 위해서야.”
지금보다 훨씬 높은 격을 갖게 될 테니까.
아, 말을 잘못했네.
‘성공하면’이 아니다.
“반드시 성공할 거야.”
아까도 말했듯이 실패할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