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여덟 개 달린 소나, 다리가 여섯 개인 닭이나.
그 외에도 날개가 달린 돼지를 닮은 마물이나, 머리가 세 개 달린 양 등, 온갖 기이하게 생긴 생물을 보았다.
엄선하고 엄선해서 고른… 그나마 아르디나 대륙의 동물과 비슷한 것들만 말해서 이 정도였지, 개중에는 ‘이렇게 생긴 걸 먹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생김새의 마물도 있었다.
만약 아르디나 대륙에 풀린다면 여러 의미로 요식업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킬 생물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그것들을 먹을 수는 없었다.
“안타까운 거야?”
“혹시 모르지. 엄청 맛있을 수도 있잖아.”
궁금하지 않아?
내 말을 들은 다은이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카나는 정말 호기심이 많구나. 그래도 알지?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는 거.”
“…생각은 할 수 있잖아.”
“그래, 그래.”
이런 도전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그린 래빗’ 같은 몬스터를 먹게 될 수 있었던 거잖아.
그러니 우리도 후대를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친 선조를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고인 채로 썩어갈 뿐이다.
…라는 건 그냥 해본 소리.
내가 후대를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다 때려치우고 산에 틀어박혀 있지도 않았겠지.
“실패의 대가가 죽음이라면 두려워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 잠깐. 그보다, ‘그린 래빗’이 먹을 수 있는 몬스터였어?”
“안 먹어봤어?”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긴 걸 먹겠다는 생각은 못 하지 않을까?”
“응. 그렇긴 해.”
평소 같으면 다은이 호들갑 떤다고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게, 그린 래빗의 외형을 생각하면 동의를 할 수밖에 없거든.
털색깔부터 초록색인 데다, 입에서 독액을 질질 흘리고 있고, 길게 자란 손톱은 어지간한 가죽 방어구는 쉽게 찢을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다.
토끼처럼 긴 귀를 갖고 있어서 그린 래빗이란 이름이 붙은 거지, 귀를 제외하면 토끼와 닮은 것도 아니라서 이름을 바꾸는 걸 의논한다고 하던데.
매번 말로만 하고, 실제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너무 익숙해서 괜히 다른 이름으로 바꾸려고 하면 혼란이 생길 게 우려된다나 뭐라나.
“가죽부터 피, 심지어 내장까지 독으로 절여져 있다고 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먹는 거야…?”
“잡자마자 피를 빼낸 다음, 마나 용액에 30일 동안 담가 두면 독기가 빠져. 아, 내장 부위는 그렇게 해도 독기가 안 빠져서 못 먹으니까 조심해.”
“먹을 생각도 없고 만들 생각도 없어….”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고기만.
그리고 마나 용액에 담가 둔다고 썩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부패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독이 빠지지 않거나 썩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세심한 관리를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고오오오급 식자재.
그것이 바로 그린 래빗의 고기였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건데 카나는 먹을 거에 진심이구나.”
“…내가?”
“응. 햇볕 아래 고양이처럼 축 늘어져 있다가도 먹을 거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이는걸.”
“왜 하필 고양이야?”
“그야… 고양이 같으니까?”
그러니까 왜 고양이 같냐고 물은 건데.
다은 아니라고 할까 봐 핀트가 엇나간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카나가 먹을 걸 좋아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친해지지도 못했겠지?”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다은이 매일 가져온 음식 덕분에 식사를 준비하는 귀찮음을 덜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뿐이었으면 관심을 주지 않았겠지.
“그럼 뭐 때문이었는데?”
“…안 알려줄 거야.”
입으로 내뱉기엔 여러모로 곤란한 말이니까.
세계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이야기라서 입을 꾹 다물었더니, 다은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엉겨 붙었다.
보아하니 곡해에 소질이 있는 다은이 또 내 반응을 멋대로 해석한 게 틀림없었다.
여기서 어중간하게 반응하면 해명은 안 되고 공연히 귀찮아지기만 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지라 엉겨 붙는 다은을 대충 떼어놓으며 구경을 이어갔다.
락시아의 중심부인 이곳은 다른 나라들로 따지면 수도와 마찬가지인 곳.
그런 만큼 나름 이것저것 많긴 했지만….
뭐랄까, 목가적인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내가 아는 수도처럼 화려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저니는 제국 수도에 가본 적 있어?”
“제국 수도? 아~ 솔레로크를 말하는 거야? 당연히 가본 적 있지! 그 제국의 수도잖…. 음, 미안.”
“별로, 신경 안 써.”
제국에 귀의해서 전쟁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관광하러 갈 수도 있지 뭐.
“휴… 다행이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본 거야?”
“거기에 비교하면 여기는 어때?”
“여기? 음….”
잠시 고민하던 다은이 답을 내놓았다.
“평화롭지.”
소박하기도 하고.
근처에 서 있는 마족을 의식해서일까.
다은은 속삭이듯이 작게 덧붙였다.
“그렇구나.”
그 제국의 수도라면 그라시스의 수도보다 화려하면 화려했지, 덜할 리가 없지.
하기야, 다른 나라들 같으면 수도 한복판에서 농사를 짓지도 않았을 테니 구태여 비교할 필요도 없었긴 해.
에델이 내린 사명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서 그런가, 삶에 필요한 의식주 외의 다른 분야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느낌이야.
이런 지루한 곳에서 5개월 동안 있어야 한다고?
“역시 다른 방도를 찾아야겠어.”
의지가 더 확고해지는 순간이었다.
* * *
툭, 툭.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을 관광에서 돌아온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5개월을 버티는 건 무리야.
그렇다고 아르디나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건 번거롭기도 하고, 애초에 5개월이라는 시간을 기다릴 여유도 없어.
“….”
“카나야아~”
툭, 툭.
“…아, 쫌.”
왜 자꾸 건드리는 거야.
나는 아까부터 나를 툭툭 건드리는 다은을 노려봤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는 거야?”
“꼼짝없이 5개월을 기다리게 생겼는데 당연하지.”
“난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데? 기다리는 동안 다른 곳에 갔다 오든가 하면 되잖아.”
“그럴 수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거야….”
“응?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러고 보면 성국에서 떠난 이후부터 제대로 쉬는 날도 없었지….”
“무슨 소리야. 발토라에 있을 때 쉬었잖아. 그것도 며칠씩이나.”
“그때는 마도구가 완성되는 걸 기다리느라 어쩔 수 없이 쉰 거잖아. 내가 말한 휴식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쉬는 걸 말하는 거야. 그래, 리베리에 있었을 때처럼.”
“으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의 카나는 왠지 모르게 여유가 없게 느껴지는걸. 에델 신과 만나서 한 얘기 때문에 그런 거야?”
솔직히 신과 만나서 얘기했다는 게 쉽게 믿기지는 않지만….
다은이 중얼거렸다.
“그 탓이 없다고는 못 하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승천 의식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다은은 필사적으로 나를 뜯어말렸다.
자기와 다르게 나는 목숨이 하나지 않냐며, 차라리 자기가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고 했었지.
당연히, 나는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작 엑스퍼트가 나를 대신한다고?
그것도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오른 것도 아닌 엑스퍼트가?
‘재밌는 농담이야.’
정말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저렇게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좋은 생각이 났어!”
다은이 벌떡 일어나며 외치는 바람에 상념이 끊겼다.
어차피 별로 영양가 있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생각이 강제로 끊겼음에도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승천 의식을 치를 만큼의 마기가 없는 게 문제인 거잖아? 그러면 마기만 있으면 되겠네!”
“…와 정말 대단해.”
정말 획기적인 발견인걸.
다은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천재적인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거야?
“아니, 이걸 말하려고 그런 게 아니니까 일단 들어 봐!”
“…뭐, 알았어.”
“아잇, 정말!”
그렇게 말해봤자 여전히 미덥지가 않아서 미적지근하게 답했다.
“내가 옛날에 만… 동화책에서 본 건데…. 강한 적을 만났는데,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어서 온 세상 사람들의 힘을 끌어다 써서 이기는 내용이 있었어.”
“온 세상 사람들이?”
“응!”
“어떻게 힘을 끌어다 쓰는데? 동의를 구하는 거야? 그것보다 힘이라는 게 뭔데?”
“…힘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활력 같은 건데-”
주절주절 설명하던 다은이 별안간 정신을 차렸다.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한 건 할 수 있을까 없을까지…!”
“원리를 알아야 시도든 뭐든 해볼 거 아니야.”
“막, 동화책에 나오는 걸 보고 영감을 얻어서 기술을 만든다든가… 그런 거 못 해?”
“검술이라면 할 수 있어.”
근데 이건 검술이 아니잖아.
만약 마법이었다면 타인의 힘을 강제로 뺏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지.
마법쟁이 녀석들은 온갖 수단으로 귀찮게 하는 데 통달한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그런 마법을 쓰려면 대충 생각해도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안 될 텐데….
문득, 기분 나쁜 얼굴이 떠오르려고 해서 재빨리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지워냈다.
“역시 무리….”
“그러면 강제로 뺏는 게 아니라 자의로 건네주는 거면 어때?”
“자의로?”
다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지도.”
본래, 다른 사람에게 마나를 건네받는 행위는 금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다지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굳이 한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위급 상황에나 쓸 법한 행동이었다.
드래곤처럼 정순한 마나라면 몰라도 사람의 것은 오염이 되어 있어서 반발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어차피 마기를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마기를 몸에 직접 받을 필요도 없다.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마기를 모종의 방법을 통해 한 사람의 몸에 몰아넣는 게 승천 의식이니, 그냥 풀어놓기만 하면 뒷일은 유스티나가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
“물어보러 가야겠어.”
“어, 어어? 지금? 벌써 밤인데? 지금 찾아가면 너무 실례가 아닐까?”
“실례 좀 저지르지 뭐.”
당장은 실례일지 몰라도, 일이 해결되면 분명 나한테 고마워할 거야.
그러니 이제부터 저지르는 실례는 그걸로 대신하는 거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손해인 것 같긴 한데, 그 정돈 내가 이해해야지.
응. 나는 너그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