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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7

리베리, 세데스, 발토라.

처음 들렸던 오르도를 제외하면, 굵직한 도시를 들를 때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써야 했다.

물론 그 시간들이 의미 없이 낭비된 건 아니다.

오히려 꼭 써야 했던 시간들이었지.

하지만, 그런 기다림들이 지루했던 것도 사실인걸.

‘…할만할지도.’

그래서 나는 다은의 말을 듣자마자 유스티나에게 향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유스티나는 아직 그녀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과연 무슨 업무를 보고 있을까.

잠깐 궁금증이 치켜들었지만, 내가 그것에 대해 묻는 것보다 유스티나가 나에게 왜 돌아왔냐고 묻는 게 더 빨랐다.

그렇게, 나와 다은이 번갈아 가며 설명을 마친 후.

조용히 듣고 있던 유스티나가 입을 열었다.

“…이 몸이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마족들의 마기를 모아서 승천 의식에 필요한 마기를 확보하겠다는 말이더냐?”

“정확해.”

“할 말이야 많다만.”

유스티나가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그녀의 얼굴은 낮에 봤을 때보다 피곤해 보였다.

다크서클만 있으면 아티샤라고 착각할 정도로.

“정녕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느냐?”

“…안 돼?”

“안 되느니라.”

“왜? 충분히 실현성 있지 않아?”

“후우.”

짧은 숨을 토해낸 유스티나가 말했다.

“그래, 발상은 좋았느니라. 하지만 그 정도의 마기를 모으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느냐? 그런 짓은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마기를 전부 끌어모아야 간신히 가능할 것이니라.”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말은 끝까지 듣거라. 제 한 몸 건사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이들인데, 그만한 수의 사람이 한꺼번에 뿜어내는 마기 사이에서 과연 멀쩡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빨리 흡수한다면 괜찮을지도.”

“전혀 괜찮지 않으니라.”

…단호하네.

반박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말이었다.

“설령 네 말대로 괜찮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있느니라. 우리에게 마기란 필요악과 같은 것. 우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마기지만, 동시에 우리가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 또한 마기이니라. 즉, 마기를 모조리 꺼내서 쓰라는 건 우리의 생명력을 모조리 끄집어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니라.”

“음, 그건 생각 못 했네.”

“…생명력을 끄집어내?”

“쉽게 생각하면 온몸의 피를 모조리 빼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니라.”

“헉.”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마기 탈진이 마나 탈진과 이름만 다르지, 실상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심할 경우 생명에 위험하거나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수도 있을 정도로.

그러나, 자의만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저니는 죽을 때까지 숨을 참을 수 있어?”

“내, 내가 뭐 잘못 했어? 갑자기 왜 그런 흉흉한 말을 해…?”

“…이해 못 하는 것 같아서 설명해 주려고 하는 거잖아.”

“…아하?”

한심하게 바라보니 다은이 머쓱하게 웃었다.

“손이나 도구를 안 쓰고?”

“응. 그냥 순수하게 호흡을 멈춰서 죽음에 이를 수 있어?”

“음… 안 될 것 같은데. 그 정도까지 가면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지 않을까? 생존 본능이란 게 있잖아.”

“맞아.”

아무리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마나도 마찬가지야. 생명을 이루는 근본적인 것이니 한계까지 끌어 쓰려고 해도 그렇게 하는 게 절대 쉽지 않지.”

그렇기에 일반적인 마나 탈진은 종종 볼 수 있어도, 그 정도로 극심한 마나 탈진을 보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죽음조차 불사할 정도로 강한 의지가 있거나, 타인의 의지가 개입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건 똑같지만.”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그에 관해선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구나.”

탁.

유스티나가 두꺼운 책을 덮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할 말이 끝나면 이제 가보거라. 슬슬 잠에 들어야 할 시간이니라.”

“잠깐만. 아직 안 끝났어.”

“…또 무엇이더냐.”

유스티나의 눈이 날카롭게 치떠졌다.

“꼭 마기를 끝까지 끌어다 쓸 필요는 없잖아. 절반 정도만 끌어다 쓰면 네가 걱정하는 마기 탈진이 생길 일도 없겠지?”

“아까 내가 한 말은 귓등으로 들었더냐?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마기를 전부 끌어모아야 간신히 이룰 수 있을 거라 하지 않았느냐. 그조차도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거늘…. 아니면 무어냐. 전부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것이냐?”

“부족한 마기는 다른 곳에서 충당하면 되잖아.”

“…마기를 충당해?”

어디서?

그렇게 묻는 유스티나에게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두워진 밤.

마기 사이로 어스름히 새어 들어온 달빛이 검은 장벽을 비추었다.

“딱 좋은 게 있잖아.”

“설마, 결계를 말하는 것이느냐?”

“결계? 저 새까만 장벽을 말하는 거라면 맞아.”

“절대 안 되느니라!”

쾅!

“결계는 중심부의 마기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이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니라! 그런 것을 없앴다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큰 재앙이 찾아올 터…! 그런 짓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느니라.”

답지 않게 흥분에 차서 책상을 내려치며 열변을 토하는 유스티나.

나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그녀가 말이 끝내고 호흡을 가라앉히는 걸 보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마기가 쌓일 때마다 이렇게 한 명씩 마기에 던져 넣을 생각이야? 죽을 걸 뻔히 알면서?”

“…!”

“글쎄. 내 눈에는 딱히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지 않아?”

“…그들이 원해서 자원한 것이니라.”

“방조했다는 말을 고상하게 하네.”

“승천 의식을 하겠다고 찾아온 건 너 또한 마찬가지 아니느냐. 네 말대로라면 이 몸은 네가 승천 의식을 치르는 것도 막아야 할 텐데, 그걸 원하는 것이더냐?”

“그럴 리가.”

“그렇다면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구나. 기분이 상한 건 사실이나, 일리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번 무례는 넘어가겠느니라. 하지만 다음은-”

“애초에 전제가 잘못되었어.”

“….”

유스티나의 말허리를 싹둑 자르자 그녀의 눈이 살포시 찌푸려졌다.

“그들과 나를 동일 선상에 놓으면 안 되지.”

그들은 실패하더라도 제 영혼을 바쳐 세계에 이바지하려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니까.”

실패를 상정할 거였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어.

나는 아직 살아서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자신감은 과할 정도로 넘치는구나. 그러나 알고 있느냐? 분에 넘치는 자신감은 파멸을 향한 지름길이라는 것을.”

“걱정은 고마운데, 정말 쓸모없는 걱정이네.”

나는 분에 넘치는 자신감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거든.

할 수 있기에 했고, 해야 했기에 했을 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난 늘 그렇게 살아왔어.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불안한 건 나도 이해해.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장벽 안에서 살아갈 순 없잖아. 그러고 싶다면야 말리진 않겠다만, 그건 아니잖아?”

나이가 들면 생각이 굳는다고 하던데….

그 때문일까, 최소 수백 년은 살았을 게 분명한 유스티나를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유스티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에델이 말했어. 승천 의식을 치르면 너희들을 붙잡고 있던 사명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너희 맘대로 살면 된다고.”

“…!”

유스티나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에델 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말이냐…?”

“난 이런 것 가지고 거짓말 안 해.”

“사명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신 게 확실하더냐.”

“응. 지금까지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도 말했어.”

“정말,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신 게 틀림없느냐?”

“몇 번을 말해. 그렇다니까.”

유스티나는 나에게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돌려주는 게 귀찮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그러나 유스티나가 저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어서 싫증 내지 않고 그녀가 물을 때마다 몇 번이고 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응. 나는 친절하니까.

몸을 일으킨 채로 묻던 유스티나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에델 님이 내리신 사명이 싫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느니라. 그러나, 버겁다고 느낀 적은 몇 차례나 있었지….”

정화의 권능이 약화되는 것을 느꼈을 때.

몸이 마기에 적응하기 위해 변하는 것을 알았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승천 의식을 치를 때.

그 외에도, 어깨를 짓누르는 순간은 수없이 많았다고 유스티나가 말했다.

“그래서 홀가분해?”

“그걸 묻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아직 승천 의식에 성공하기는커녕 준비조차 하지 않았거늘.”

게다가 그런 걸 대놓고 묻다니….

아티샤가 투덜거렸다.

“감수성이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이니라….”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나왔다…! 카나의 살초…!”

“…살초는 무슨.”

다은이 웬일로 가만히 있나 싶었더니, 분위기가 좀 풀리자마자 헛소리를 떠들었다.

까불대는 다은의 옆구리에 살초를 먹여 얌전히 만들어 준 나는 유스티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유스티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사명이 없는 삶이라니. …역시 아직 체감이 안 되느니라.”

이쯤 되면 에델이 최면이라도 걸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네 제안은 받아들이겠느니라. 네 말대로 언제까지 장벽에 갇혀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탁월한 선택이야.”

절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유스티나가 에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함락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에델 이야기부터 꺼내놓을걸.

괜히 다른 얘기만 주저리주저리 떠들어서 시간 낭비했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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