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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5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 그리고 차원을 넘어온 외부인인 플레이어들은 잘 실감하지 못하지만, 아르디나 대륙 곳곳에는 2차 종족 전쟁이 남긴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당연했다.

전쟁이 끝난 지 아직 반백 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비록 기나긴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땐 성국의 개입과 긴 전쟁으로 인한 피로 등으로 직접적으로 싸우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그 시절을 좋게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성국 같은 일부 사례를 제외하곤 마족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의 마을 ‘카틀란’의 입구를 지키는 청년도 그중 하나였다.

올해로 딱 스무 살이 된 청년은 종족 전쟁을 겪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절이 어땠는지는 귀에 피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잭.”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청년, 잭은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았다.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엄청나게 반가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아…. 위험하니까 여기 오시면 안 된다니까요.”

잭의 생각대로,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불편한 다리를 보조하기 위해 낡은 지팡이를 짚은 노인.

구부정한 허리를 툭툭 두드리던 노인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

“뭐? 위험? 이놈아, 내가 젊었을 땐 이것보다 더한 일을 겪었어!”

“하아….”

벌써 두 번째 내쉬는 한숨이었다.

잭은 노인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이 다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알아?’

“이 다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알아? 마을에 쳐들어온 마물과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생긴 영광의 상처다 이 말이야!”

‘사흘 동안 자지도 않고 어쩌고저쩌고….’

“나 때는 어? 마족들이 하도 많이 쳐들어와서 사흘 동안 한숨도 못 자고 싸워야 했어!”

“네, 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빨리 돌아가기나 하세요.”

“요즘 애들은 고작 몬스터에 겁먹어서 벌벌 떨기나 하고…. 에잉, 쯧!”

수없이 들은 말이라 그대로 읊을 수도 있었다.

하는 말만 들으면 마을을 위협하는 마족과 마물들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역전의 용사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잭은 노인의 실체가 역전의 용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인의 다리가 불편한 것은 그가 어렸을 때 약초를 채취하기 위해 산을 탔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족들이 쳐들어와서 싸우느라 잠을 못 잤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다른 노인들에게 진실을 들은 잭에게는 노인의 말이 그저 우습기만 했다.

그럼에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은 이유는, 허풍이 심하긴 해도 노인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옜다, 이거나 먹고 해라.”

휘익.

텁.

노인이 던진 빵이 포물선을 그렸다.

어렵지 않게 그것을 잡은 잭이 씨익 웃었다.

“이런 거 주시면 안 된다니까요.”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라, 이놈아.”

보초 일은 지겹다.

하루 종일 마을 입구에서 가만히 서서 경계만 하고 있는데 어떻게 지루하지 않을 수 있을까.

따라서 노인의 방문에 툴툴거렸던 잭이었지만, 사실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절대 먹을 걸 줘서 그런 건 아니었다.

“무슨 일 없고?”

“이런 한적한 동네에 무슨 일이 있겠어요? 있어봤자 길 잃은 몬스터가 찾아오는 정도지….”

“예끼! 그렇게 방심하면 없던 일도 생기는 법이야!”

“누가 방심했대요? 그냥 그렇다는 거 아님까.”

잭은 늘어지게 하품하며 노인의 말을 건성건성 넘겼다.

아예 듣지 않는 티를 내면 잔소리가 더 날아들 테니 마을 바깥을 향해 시선을 돌린 채로.

잭이 이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응?”

“뭐여? 무슨 일 있냐?”

“저거…. 아, 안 보이시나?”

“…지금 눈 좋다고 자랑하는 거냐? 그래, 이놈아! 네 똥 참 굵다!”

“아이, 똥 먹고 있는데 빵 얘기를…. 아니, 빵 먹는데 왜 똥 얘기를 하고 그래요? 입맛 다 버렸네.”

빵에서 구린내가 올라오는 착각을 느낀 잭이 얼굴을 구겼다.

그건 그렇고.

잭은 주머니에 먹다 남은 빵을 넣으며 바깥을 주시했다.

그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누군가 마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소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잭이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행상인이나 여행객이 마을을 찾아오는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어린 소녀 혼자 마을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드문 일이다.

게다가 무장이 없는 걸 보면 일감을 찾아 떠도는 용병도 아닌 듯했고.

“잭.”

근처를 지나던 상단에서 떨어져 나온 아이인가?

“…잭.”

아니, 얼굴이 곱상한 걸 보면 어디 귀족가의 여식이 가출한 걸지도.

“잭!”

“…아이고, 깜짝이야!”

소녀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잭이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노망났어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잭이 불퉁하게 물었다.

‘노망은 무슨! 보초가 정신을 빼놓고 있으면 되냐! 젊은 놈 아니랄까 봐 빠져가지고…’라고 호통치지 않을까.

하지만 잭의 생각과는 달리, 노인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잭을 바라보았다.

“네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냐! 그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호각, 가지고 있지?”

“네? 호각이요? 그야 당연히 가지고 있-”

잭은 얼떨떨한 얼굴을 하면서도 허리춤에 걸어놓은 호각을 들었다.

마을에 위험이 다가올 때, 호각을 불어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것이 보초의 역할이었다.

“빨리 불어라!”

“네, 네?”

“…아이고, 답답해 죽겠다 이놈아!”

노인이 잭의 손에서 뺏은 호각을 불었다.

삐이이이이이-!

날카로운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일순간, 마을이 정적에 빠졌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

그것도 잠시, 노인이 분 호각 소리에 호응하듯 날카로운 소리가 마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노망이 났거나,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거나.

노인의 돌발 행동에 고민하던 잭의 무게추가 후자로 기울었다.

무기를 단단히 감싸 쥔 잭이 물었다.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네 눈에는 저게 안 보이냐?”

“소녀요?”

“소녀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노인은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잭이 답답해서 가슴을 쿵쿵 쳤다.

“아니….”

잭은 잭 나름대로 억울했다.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뭘 말하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마기 말이다, 마기!”

“마기?”

그제야 잭의 눈에 소녀의 주변에서 스멀거리는 검은 안개가 보였다.

비교적 평화롭게 자란 잭이라 해도 마물을 본 적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를 감싼 검은 안개의 정체가 마기라는 것도 알아볼 수 있었다.

“…마족?”

잭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에도, 소녀는 차근차근 마을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긴장감 어린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잭은 별안간 뒷덜미 잡아채는 손길을 느끼고 목이 졸리는 소리를 냈다.

“중얼거릴 시간 있으면 빨리 도망이나 가라!”

“켁, 켁! …네? 도망이요? 막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넌 저걸 보고 막겠다는 생각이 드냐?”

노인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린 잭은 바로 노인이 한 말을 납득했다.

소녀의 주변, 검은 안개가 닿은 초목이 순식간에 생기를 잃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납득했을 것이다.

색채가 넘치는 세상이 검게 물들고 있었지만, 정작 세상을 물들이고 있는 소녀는 이제 막 피어나는 꽃처럼 화사한 색을 띠고 있었다.

“영감님이 막으면 되잖아요.”

“…험, 험! 내가 나이만 먹지 않았다면 단칼에 해치울 수 있었을 텐데….”

당당했던 노인의 기세가 다시 쪼그라들었다.

믿음직한 모습에 순간적으로 부풀어 올랐던 잭의 기대감도 쪼그라들었다.

그럼 그렇지.

한숨을 쉰 잭이 노인을 등에 업었다.

불편한 다리로 도망가려고 해봤자 금방 따라잡힐 것이다.

“꽉 잡으세요.”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영감님 또 그러신다. 그러다 혀 깨물어도 제 책임 아닙니다? 군소리 말고 꽉 잡기나 하세요.”

“….”

노인이 입을 다문 것을 확인한 잭이 땅을 박찼다.

그 후로 몇 분 후.

평화롭던 마을 카틀란에 완연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 * *

정처없이 길을 걷는 소녀.

소녀에게 목적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발이 닿는 곳으로 향할 뿐.

그러니, 소녀가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

‘──. ────.’

‘…──.’

“….”

어쩌면 본능적으로 동쪽으로 가야 한다고 느낀 걸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소녀의 행보에 휘말린 사람들에게는.

태풍에 휘말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신을 찾으며 살아남았음에 안도하거나 태풍이 닥친 것을 원망하지, ‘왜’ 태풍이 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녀의 존재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쐐액!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예리하게 갈린 화살촉이 빛을 번뜩이며 소녀의 목숨을 노렸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눈치챘다고 해도 코앞까지 다가온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어쨌든 이대로라면 소녀가 붉은 피를 흩뿌리며 목숨을 잃게 되리란 것은 명확했다.

소녀가 외견처럼 평범한 소녀였다면 필시 그러했을 것이다.

화살이 소녀의 머리에 닿기 직전, 검은 안개가 물결처럼 가볍게 철썩였다.

툭.

“?”

화살은 단단한 벽처럼 앞을 막아선 검은 안개에 부딪히자마자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길가에 떨어진 죽은 나뭇가지를 던져도 이보다 맥없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목숨을 노린다는 것은 명백한 적대 행위

길을 걷다가 갑자기 목숨을 위협받았지만, 소녀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그런 소녀 앞에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단장님. 어쩌다 이런 꼴이 됐습니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이 담긴 목소리로 에릭이 물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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