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희 연구소가 소란스럽다.
내 격리실 옆에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확인하려고 다가가면 예린이가 후다닥 달려와서 껴안고는 보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보여줄 거라고 했던가?
그냥 몰래 들어가서 볼 수도 있지만 귀찮기도 했고, 뭔가 서프라이즈 파티 같은 느낌이라서 기대를 안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공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TV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뒤뜰에라도 나가서 놀려고 했지만, 황금 사신들이 기묘한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뚜방뚜방.
황금 사신들이 사방을 부산스럽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들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뚜방뚜방.
예린이가 공사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을 보고 흉내 낸 황금 사신이 나타난 게 시작이었는데, 귀를 막고 다니는 게 유행이 되어버렸다.
황금 사신들이 다들 귀를 막고 즐거운 것처럼 웃으면서 뛰어다녔다.
손을 못 써서 그런지 마구 뛰어다니다가 서로 부딪치고 넘어져서 데굴데굴.
그리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넘어진 황금 사신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얘네는 진짜 뭘 해도 재밌어 보이네.
그래서 열심히 격리실 내부를 뛰어다니는 황금 사신의 머리를 툭 하고 밀었다.
귀를 막고 뛰어다니는 황금 사신은 내 손가락에 밀려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데굴데굴.
그리고 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즐거운 것처럼 웃었다.
시끄러운 격리실에서 심심할 때마다 황금 사신을 쓰러트리는 놀이를 하고 있다가 보니, 어느새 격리실이 조용해졌다.
드디어 공사가 끝난 건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예린이가 환하게 웃으며 격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신아, 드디어 완성됐어!”
싱글벙글한 예린이는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번쩍 들어 올려서 나를 옮기기 시작했다.
***
의뢰인을 찾아 도착한 곳은 꽤 발전된 것처럼 보이는 도시였다.
조사한 바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폐허였지만, 지금은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지는 도시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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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를 만든 남자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몇 년 전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고풍스러운 가스램프를 하나 들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존재.
그야말로 이 도시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었다.
눈을 돌려보면 아직 비계로 덮여 있는 고층 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여기저기서 뚝딱뚝딱하는 공사 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리에는 활기가 넘치고, 건물 곳곳에 위치한 식당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생각보다 번듯하네, 그렇지?”
손바닥 위에서 앉아있는 황금 뿔 사신이를 간질이면서 말을 걸자, 황금 뿔 사신이는 간지럽다는 듯이 움츠리면서 웃었다.
생각보다 번화한 도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폐허였다고 해서 완전 허허벌판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람도 많고 건물도 크고 높았다.
그래도 확실히 발전 중인 도시라는 것이 느껴지는 것은 사방이 공사 중인 건물들이 잔뜩이라는 점이었다.
건설 현장에 흔히 쓰이는 가림판으로 둘러싸인 구획이 많았고, 공사 소음이 간간이 울려 퍼졌다.
시끄럽기도 했지만, 성장하는 도시의 단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 우리 의뢰인은 어디 계실까나.”
핸드폰을 열고 지도를 살펴보자, 황금 뿔 사신도 궁금한 표정으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우리가 여기에 있으니까, 조금 더 들어가야겠네. 알겠어?”
사신이는 집중해서 내 설명을 듣고 지도를 봤지만 이해하기 힘든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역시 사신이는 너무 귀여워.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주자, 헤실헤실 웃는 사신이.
꽤 강력한 정신 오염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사신이가 딱히 해를 입히지도 않으니까 괜찮은 거 아닐까?
행복하면 그만이지!
손가락에 볼을 비비는 사신이를 보면 행복하니까, 괜찮아.
황금 사신을 품에 안고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길수록 도시의 인상이 바뀌었다.
활기찬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도시는 점점 어둡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밝은 분위기와 생동감 넘치는 소음은 찾아볼 수도 없고, 침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거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던 새로 지어진 건물들 대신, 앙상한 속살을 드러낸 콘크리트 건물과 그 위를 대충 보강한 가건물들.
콘크리트 표면을 무질서하게 뚫고 나와 달라붙은 잡초처럼 건물에 달라붙은 어두운 분위기가 공기 중에 짙게 배어 있었다.
무질서하게 증축된 가건물들은 대낮에도 골목과 도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낙서로 뒤덮인 담벼락과 판자로 덮인 창문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슬럼이라니?
신생 도시에 슬럼가가 생기는 게 말이 되나?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지치고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
의심과 체념이 가득한 채, 골목 구석에 앉아서 시선을 던지는 남자.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커졌지만, 손안에서 따뜻한 온기를 주는 사신이를 보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의뢰인이 사전에 지정한 장소에 도착하자, 그 끝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만히 서 있는 소년이 보였다.
의뢰인인가?
좁고 희미한 불빛이 비치고 탁하고 퀴퀴한 연기 냄새가 가득한 골목에 선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고개를 돌린 의뢰인은 조금 놀란 것처럼 보였다.
가로등 불빛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 황금 뿔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낡은 모자챙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기대에 차 있었다.
서로의 신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미리 정해둔 문구로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들었다.
대답은 재빨리 돌아왔고, 상대방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확인이 끝났다는 신호.
물론 우리 사무소는 이런 암구호는 웬만해선 쓰지 않는데, 의뢰인의 강력한 요청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걸 원하는 거지?
그냥 핸드폰으로 체크하면 안 되나?
“노란 탐정 사무소에서 왔습니다.”
내가 입을 열자, 소년은 낡은 모자를 벗었다.
얼굴 반쪽이 검은 육각형의 기둥으로 뒤덮인 소년.
이게 검은 녹인가, 보기만 해도 아무 이유 없이 바퀴벌레 수백 마리가 달려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오브젝트였다.
소년은 살짝 울먹이면서 사진 하나를 꺼냈다.
“가족을 찾아주세요. 누나를 찾아주세요. 요즘 다들 사라져 버리고 있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그러면 우선 숙소부터 잡고, 조사에 착수하겠습니다. 경과보고는 어떻게 할까요?”
내가 물어보자, 소년은 살짝 당황하더니 자기 집 주소를 찍어주었다.
소년의 집 주소를 받은 뒤, 나는 어두운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황금 뿔 사신이와 함께하는 사건 해결의 시작이었다.
***
예린이의 품에 안겨 도착한 곳은 텅 비어 있는 격리실이었다.
특별해 보이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고개를 돌려 예린이를 바라보니, 자신만만한 표정.
예린이의 옆으로 세희와 서아도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뭔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내 감각으로 살펴봐도 이 격리실 안에는 오브젝트 같은 것도 없고, 인간이 숨어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도대체 뭐지?
“사신아, 그럼 시작할게!”
예린이가 짙은 미소를 머금으며 격리실 밖에서 뭔가를 조작했다.
그러자, 뭔가 특별한 감각이 내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온몸을 골고루 밀어 올리는 힘.
둥실.
내 몸은 허공에 둥실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편안한 침대에 누운 것보다, 평온한 바다 위에 떠오른 것보다 훨씬 편안한 기분.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편안하게 공중에 떠올랐다.
이거 설마 격리실 바닥에다가 전자석을 깔아둔 건가?
도봉구 개구리를 처치하고 초전도체 능력을 얻었을 때, 생각만 했던 전자석 격리실.
언젠가는 만들게 하려고 했었지만, 사건이 너무 자주 터져서 까먹었던 건데!
어느새 재밌는 분위기를 읽고 찾아온 황금 사신들도 공중을 즐겁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 편안하다.
나는 눈을 감고 공중에 뜬 감각을 만끽했다.
언젠가는 비행 능력을 꼭 얻어야지.
이런 실없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
소년은 꿈을 꾸었다.
가족을 만나는 꿈을.
어느새 전부 사라져 버렸지만, 다시 되찾는 행복한 꿈이었다.
그 유명한 ‘노란 탐정 사무소’에 의뢰했으니 곧 가족을 찾아줄 거야.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 행복한 꿈.
“누나!”
소년은 꿈속에서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누나는 소년을 보면서 그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질척질척하게.
핏물이 흘러내리듯이.
그리고 갑자기 짙은 금속 냄새가 났다.
“누나?”
그리고 소년은 뺨을 두들기는 감각에 잠에서 깨어났다.
도대체 뭐야?
소년은 좋은 꿈을 방해당해서 짜증을 내며 볼을 문질렀다.
그리고 손을 확인하자, 손 안 가득히 번지는 핏물.
그리고 피 냄새.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들어서 눈을 뜨자, 이곳은 소년이 잠든 슬럼가의 허름한 집이 아니었다.
튼튼한 쇠창살로 가로막힌 창문 하나 없는 감옥.
그리고 소년의 눈앞에는 끔찍한 몰골의 시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시체에서 소년의 얼굴로 핏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얼굴을 제외한 뼈에서 살을 모두 발라낸 시체.
문득 소년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생각을 품고,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자.
“으아아아아악!”
그것은 누나였다.
불길한 예감을 안고 확인한 시체의 얼굴은 소년의 누나였다.
그 끔찍한 광경에 소년은 비명을 지르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어두운 골목을 지나서 소년의 집을 향해 나아갔다.
막상 숙소를 잡고 수색하려고 해도 의뢰인의 ‘누나’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찾아낼 수는 없었다.
헤어지기 전에 간단한 정보라도 얻었어야 했는데!
너무 아마추어적인 실수라서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괜찮겠지?”
손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사신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소년의 집에 가까워지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불에 탄 것 같은 재의 냄새.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소년의 집으로 뛰어가자, 나를 반겨준 것은 난장판이었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잘려 나간 문.
벽에 잔뜩 새겨진 발톱 자국.
커다란 짐승이 습격한 것 같은 흔적이 소년의 집에는 가득했다.
그리고 소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