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3

한국에는 ‘볼케이노 볶음면’이라는 이름의 컵라면이 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매운맛과 은근하게 느껴지는 감칠맛이 특징인 라면으로, 매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먹으면 자동으로 한국 욕이 튀어나온다고 해서 ‘한국어 주입기’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매운 라면.

얼마나 매웠는지 한 외국인이 볼케이노 볶음면을 먹고 불을 뿜으며 ‘한국인은 정도껏을 모르나’라고 말한 건 꽤 유명한 일이었다.

그 정도로 매운 볼케이노 볶음면이 한국 내 라면 매출량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한국인들의 매운맛 사랑은 굳이 입 아프게 떠들 필요 없을 것이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런 한국인 중 일부가 실리아 온라인을 플레이하며 불만을 품었으니.

“이 게임은 왜 매운 게 없나요?”

바로 음식에 대한 불만이었다.

“한국에서 만든 겜이면 매운 음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님?”

“리얼. 다음 날 화장실에서 못 나올 정도는 돼야 먹을 맛이 나지.”

“아 그건 좀.”

물론아르디나 대륙에도 매운 음식은 있었지만 한국인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한 면이 있었다.

“크르륵…! 매운맛, 매운맛이 필요해…!”

“기브 미 캡사이신!”

“히이익!”

자극적인 맛에 중독되어 미쳐가는 이들.

눈을 희번덕거리는 매운맛 좀비들의 속출에 플레이어와 NPC들이 기겁하며 몸을 피했다.

실리아 세계가 매운맛 좀비로 인해 멸망할 위기에 처한 그때, 좀비 중 하나가 번뜩이는 계책을 생각해 냈다.

“없으면 직접 만들면 되는 거 아님?”

그렇게 매운맛을 재현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지구에 있는 맛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최초가 아니었다.

전투가 아닌 다른 곳에 뜻을 둔 많은 플레이어가 이미 시도했고,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재현에 실패한 음식 중 상당수가 현대 식품공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재현은 할 수 있어도 품이 너무 많이 든다거나, 아예 재현을 할 수 없다거나.

매운맛 좀비가 추구하는 맛도 그런 부류였다.

볼케이노 볶음면 특유의 감칠맛 있는 매운맛을 자연적인 재료만으로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시도는 번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포기하고 계속 시도한 결과, 그의 노력은 결국 빛을 보았다.

“우, 우오오! 이게 대체 무슨 맛이지?! 혀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야!”

“아아, 모르는 건가…. 이건 매운맛이라는 것이다.”

“물, 물을 줘!”

“멍청한 소리! 매운 걸 먹고 물을 마시면 더 맵게 느껴진다는 걸 모르는 거냐! 여기 우유나 마셔라!”

“네 녀석… 해냈구나…!”

각고의 노력으로 세운 식당, ‘불타는 피닉스’.

파는 음식은 한국인들이 볼케이노 볶음면과 볼케이노 볶음밥이라고 부르는 ‘피닉스 볶음면’과 ‘피닉스 볶음밥’ 두 개와 얼얼한 입을 달래기 위한 우유뿐.

그럼에도 불타는 피닉스는 많은 한국인들과 매운맛을 좋아하는 외국인, 그리고 NPC들에게까지 퍼져 많은 성황을 이루었다.

오늘 저니가 가지고 온 음식은 바로 그 볼케이노… 피닉스 볶음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제 점심이죠.”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삼켜지는 시뻘건 색의 볶음밥.

저니는 볶음밥보다 볶음면이 더 좋았지만, 볶음면을 들고 묘지기가 사는 산까지 오면 면발이 퉁퉁 불어 터져서 볶음떡이 될 게 분명했다.

“…근데 이걸 줘도 되는 걸까?”

볶음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맵싸한 향을 맡으며 음흉하게 웃던 저니의 이성이 뒤늦게 돌아왔다.

“이딴 걸 가져왔다고 화내면 어떡하지? 기껏 쌓은 호감도가 날아가 버리면…?”

-그걸 이제 와서 걱정하네

-자 드가자~~~

-솔직히 방장도 궁금하지 않음?

-ㄹㅇ침이 싹 고이네ㅋㅋㅋ

“이 도파민 중독자들!”

물론 저니도 궁금하긴 했다.

과연 이 볶음밥을 먹고도 아무 반응도 안 보일 수 있을까?

그동안 쌓인 오기로 준비한 요리이건만, 막상 줄 때가 되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망설였다.

“그냥 오늘은 못 가져와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

-??????

-나

-에반데

-락

“호감도 깎이면 너희가 책임져 줄 것도 아니잖아!”

-우리가 왜??

-저희 호감도는 마이너스인데요?

-이 기회에 0부터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듯ㅇㅇ

“크으윽!”

저니가 분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잊고 있었다. 이놈들은 그녀를 놀리는 데 혈안이 된 놈들이라는 걸.

“요즘 유행하는 음식이라서 사와 봤다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 틀린 말은 아니잖아.”

망설이던 저니는 결국 볶음밥을 다시 집어넣기 위해 인벤토리를 열었다.

“다시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 오늘은 그냥 주지 말고-”

[미션 도착! – 볶음밥 주기]

-달성 시 500,000원

“오, 오십만?!”

나를 돈으로 사려는 겐가!

라고 말하기엔 너무 큰 돈이었다.

잘 걸렸다는 듯이 너도나도 돈을 얹어 불어나는 미션금을 보는 저니의 눈이 잘게 떨렸다.

돈이 탐나는 게 아니라, 그 돈이 의미하는 게 무서웠다.

미션금이 이 정도로 불었다는 건 그만큼 불이 붙었다는 뜻이니까.

포기하고 미션을 취소했다간 채팅창이 화재 수준을 넘어 터져버릴 것이다.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신나게 피닉스 볶음면을 사 들고 온 업보를 청산하게 된 저니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묘지기에게 향했다.

“이, 이거….”

“….”

“오늘, 식사, 줄게.”

새로 배운 그라닉으로 더듬더듬 말하는 저니.

묘지기는 말없이 저니가 내민 음식을 바라봤다가, 저니를 보았다..

“….”

“….”

“….”

시선이 아프다.

시선에 물리력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누군가가 바늘로 자신을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바늘이 아니라 다 낡아빠진 검이었을지도.

‘나보고 이런 걸 먹으라고? 너, 제정신?’

묘지기의 시선이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여, 역시 나락이고 뭐고 포기할걸….’

나락이 무섭다 한들 죽는 것보다 무서울까.

시선에 찔려 벌집이 되어가던 저니는 차라리 묘지기가 먹지 말고 거절해 주길 바랐다.

거절해도 상관없으니까! 아예 트집도 잡지 못하게 내팽개쳐도 돼!

그렇게 되면 민심이 떨어질 걱정도 없고, 화난 묘지기에게 죽을 걱정도 안 해도 되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얼마나 좋아.

두근두근 뛰던 심장 소리가 쿵쾅쿵쾅으로 바뀌고 머리끝까지 후회가 차올랐을 때.

마침내 묘지기가 케이프에 가려진 팔을 뻗었다.

텁.

“엣.”

그와 동시에 저니의 바람도 산산조각 났다.

아까까진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볶음밥은 묘지기의 손에 들어가자 지옥의 악마들이 먹을 것 같은 음식으로 변모했다.

뜨겁게 흐르는 용암과 비참한 비명이 울려 퍼지는 지옥.

거대한 냄비로 볶음밥을 만들던 악마가 별안간 고개를 들더니 저니에게 손짓했다.

‘어서 와. 지옥은 처음이지?’

“…헉!”

지금 말리지 않으면 저 냄비 안에서 들어가는 건 밥이 아니라 자신이 되리란 걸 직감한 저니의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잠깐만-”

그러나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

우물우물.

그녀가 잠깐 정신을 놓은 사이 묘지기는 이미 붉은색 볶음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은 후였다.

‘제발, 제발….’

어쩌면 묘지기가 매운 걸 잘 먹을 수도 있잖아.

의외로 입맛에 맞을 수도 있는 거고.

…대체 그놈의 오기가 뭐라고 멍청한 짓을 했는지.

저니의 머릿속에서 부질없는 희망과 자기반성이 격렬하게 오갔다.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으니 그녀는 애써 쌓은 호감도가 날아가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켁.”

“…!”

“코, 콜록! 콜록콜록! 하, 하아….”

음, 난 망했구나.

늘 무덤덤하던 묘지기가 그토록 원하던 반응을 보이는 것에 저니가 허허로이 웃었다.

“적어도 안 아프게 죽었으면….”

그녀에게 손짓하는 악마가 어느새 셋이 되어 있었다.

저니는 설정을 열어 통각 비율 슬라이더를 왼쪽으로 쭉 당겼다.

“켈록, 켈록…!”

충격이 어지간히 심했는지 묘지기의 기침은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리여리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격한 기침에 저니를 비난하는 채팅창의 소리가 거세졌다.

-우우 쓰레기..

-아동 학대로 신고 넣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니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희들이 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아동이 아닐 수도 있거든?!”

-?? : 야 얘 하란다고 진짜 했어ㅋㅋㅋㅋ

-엥 저흰 그런 적 없는데용?

-매워서 죽으려고 하는데 뭐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님?;

-퍼클을 이렇게 달성하네

“아, 아참, 그렇지…!”

저니가 인벤토리에서 급하게 우유를 꺼냈다.

불타는 피닉스에서볶음밥과 같이 사 온 것이었다.

“이거….”

홱!

꿀꺽꿀꺽!

여태껏 보인 적 없던 굉장한 속도로 우유를 채 간 묘지기가 그대로 우유를 들이켰다.

꿀꺽꿀꺽 우유를 들이켤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떨리던 몸이 서서히 진정되어 간다.

어찌할 바 모르고 격하게 내쉬던 숨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스읍, 하….

아직 매운 기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것 같지만 확실히 나아진 모습.

그 말인즉 저니의 처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뜻이다.

저니는 곧바로 머리를 박았다.

“미, 미안!”

“….”

묘지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

이러다 침묵 속에서 익사하는 거 아닐까.

대역죄인 저니가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 마침내 묘지기의 입이 열렸다.

“미안, 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야.”

“…에?”

그러나 저니의 예상과 다르게 그 입에서 나온 것은 역정이 아니었다.

당장 검을 뽑아서 죽이겠다고 날뛰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건만.

-이걸 용서해줘?????

-진정한 인격자 묘지기 센세….

생각지도 못한 온화한 반응에 저니는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술렁였다.

그러나 그들의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카나.”

“네?”

“내 이름, 카나.”

묘지기가 어딘가 흐릿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

-???????????????

-이게 정답이었다고???

-❓❓❓

수많은 물음표 속 스쳐 지나간 채팅 하나.

그것을 본 저니도 조용히 공감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자….

묘지기는 매운 걸 좋아한다. 메모….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