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실 문을 열고 나서자 보인 것은 수많은 연구원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연구소의 풍경이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그들이 쳐다보는 격리실 안에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군. 우리는 오브젝트를 연구하는데, 어디에도 오브젝트가 보이질 않으니 말이야. 좀 더 가까이서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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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이서 보니 흐릿한 형상의 무언가가 격리실 내부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오브젝트는 없지만 현실에 있는 오브젝트의 형상을 비춰볼 수 있지. 과거의 오브젝트부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오브젝트까지 말이야.”
격리실 안의 흐릿한 형상은 내 모습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총알 세례를 받던 때의 모습이었다.
다른 격리실을 둘러보니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격리실에는 ‘회색 사신’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숲에서 처음 눈을 뜨던 나.
강철탑을 올려다보던 나.
격리실에서 TV를 보는 나.
강철 돼지상의 뱃속에 있던 나.
모두 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말이다.
십여 명의 사람이 내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무언가를 적고 있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입을 작게 벌려도 뭐라고 적고, 발걸음을 옮겨도 뭘 적고, 땅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도 뭘 잔뜩 적고 있었다.
“여기는 897번 자네를 위한 연구실이지. 사실 우리는 자네를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네.”
나를 기다렸다고? 도대체 왜?
“왜 기다렸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이군. 그건 우리가 기다리던 미래와 관계가 있어. 자네가 이 연구소를 찾아오고 한 달 안에 우리의 소망이 이뤄진다는 관측된 미래가 있거든.”
“30년에 달하는 길고 긴 기다림이 이제 겨우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거지.”
그러니까 당연히 환영하고 싶어지지 않겠나? 라고 웃으며 소장은 연구소를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연구소는 크기의 제한이 없는지, 소장이 걸음을 옮기는 만큼 점점 그 크기가 커져만 갔다. 그 늘어난 공간에는 그만큼 많은 격리실과 많은 오브젝트들이 보였다.
“자자, 아직도 보여 줄 것이 잔뜩 있다네. 자네가 꼭 봐야만 하는 오브젝트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지.”
소장이 휘적거리는 빠른 걸음걸이로 걸어간 끝에는 거대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평범한 엘리베이터로 보이진 않았다.
보통 엘리베이터에 열쇠를 꽂는 구멍이나 여러 인증장치가 달리지는 않으니 말이다. 소장은 그 복잡한 장치를 일일이 다 조작하더니 엘리베이터를 작동시켰다.
소장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밑에는 지금 중앙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브젝트가 숨겨져 있다네.”
엘리베이터로 한참을 내려간 끝에 도착한 곳은 조명도 얼마 없이 어둑어둑한 지하실이었다.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모습은 좋게 말하자면 실용성만 생각한 방공호같은 모습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공사가 덜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걸어서 도착한 곳은 바닥이 철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밑에는 피로 물든 콘크리트와 투명한 괴물의 형상이 보였다.
“‘아귀’라는 녀석이지. 사고로 풀려나서 서울 광장 참사를 일으킨 오브젝트로 발표됐었어. 사실은 협회에서 나를 죽이려고 서울 광장에 풀어놓은 거지만 말이야.”
“협회에서는 사살이 성공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렇게 버젓이 중앙 연구소에 보관 중이라네.”
아귀의 생김새는 생선 아귀랑 닮았는데, 그 몸을 빼곡하게 덮은 촉수가 징그러워서 생선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전에 크기가 너무 커서, 집채만 한 생선을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인지 절실히 알 수 있었다.
“아귀는 오브젝트를 먹는 오브젝트라고 불렸지만, 나는 이렇게 부르고 싶네.”
“협회의 적을 먹는 오브젝트.”
“너무 유능하거나 협회의 늙은이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모두 아귀 뱃속으로 들어갔네.”
철창 밑의 아귀는 무언가를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핏물도 빼지 않은 생고기인지 아귀의 입에서는 연신 핏물이 튀어 올랐다.
“자네는 아주 잘 봐둬야 할 거야. 중앙 연구소에서 제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오브젝트는 아귀 먹이로 주거든.”
갑자기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형상이 자글자글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소장은 이런 현상을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이었다.
“역시 오브젝트를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군. 협회의 무능함과 비열함, 그리고 아귀의 강력함을 묘사하기에는 너무 짧은 만남이었어.”
강물 위의 살얼음판이 깨져서 물속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허상이 부서져서 현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조금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군.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길 바라지, ‘KR – 897’.”
그리고 꿈에서 깨는 것처럼 현실로 돌아왔다.
***
눈을 감았다 뜨니, 내가 갇혀 있던 격리실 벽 너머였다.
시간은… 얼마 흐른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연구소의 분위기는 평온했고, 시계의 시간도 그리 많이 지나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조금 이상한 장소에 들어갔다 왔지만 영체를 가둔다는 벽을 통과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밖으로 나온 나를 보고는 맞은 편의 고양이는 부러운 듯이 애옹거렸다.
소리 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자, 한층 더 크게 울며 몸부림쳤다.
고양이의 절규를 들으며 격리실 밖의 자유를 한층 더 만끽하고 있을 때, 문득 복도에 간간이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눈에 띄었다.
순수하게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나비였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보아 유령화한 오브젝트로 보였다.
검은 나비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고 가끔 보이는 수준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오브젝트를 관리한다는 연구소에서 공공연하게 날아다니는 오브젝트라니?
아무도 존재를 모르는 걸 보면 의도적으로 배치된 오브젝트가 아닌 건 분명해 보였고, 무언가 사건의 냄새가 났다.
팔랑팔랑 예쁘게 날아다니는 나비들이니만큼 흉흉하지 않은 헤프닝을 기대하며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복도를 돌아다녔다.
***
복도 곳곳을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쳐다 보면서 쫓아다니길 몇 분째, 사이렌이 큰 소리로 울리기 시작했다.
“회색 사신이 탈출했다!”
“모든 cctv를 뒤져서라도 이동 경로를 확인해.”
격리실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이 발각된 걸로 보였다.
연구소의 직원들은 나를 찾으려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나는 가장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방의 캐비넷 위에 올라가서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상황실?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방이었다.
여기에도 없다. 저기에도 없다. 내 위치를 찾을 수 없다는 소식이 잔뜩 들어오는 와중에도 나는 전혀 다른 것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나비 덩어리로 보였다.
어떤 사람 몸에 나비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영체로 된 나비라서 무게가 느껴질 리도 없을 텐데, 무언가 영향을 받는 건지 그 사람은 굉장히 무겁고 피로한 표정이었다.
그 남자 주변에는 나비가 진짜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붙어 있었다. 벽과 천장은 물론 공중에도 빼곡하게 날아다녔다.
진짜 내가 저 남자 입장이었다면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질렀을 정도였는데, 다행히 저 남자는 저 나비들을 보지 못하는 듯했다. 만약 보인다면 눈앞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니까 말이다.
귀여운 나비들도 저 정도 숫자면 징그러웠다.
다행인 점은 저 나비들이 나를 피한다는 건데, 내가 영체화를 풀고 툭 건드리면 화들짝 놀라서 날개를 엄청 빠르게 펄럭거리면서 거리를 벌렸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수색을 하는 남자는 이따금씩 혼잣말로 나비가 거슬린다고 중얼중얼거렸다.
나비가 보이는 건가?
남자는 손을 휘휘 저으며 나비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그런 식으로는 나비떼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내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 나비남자를 따라 상황실을 나선 뒤였다.
나비가 남자를 물어뜯은 것이다.
겨우 한 마리가 팔뚝을 살짝 물어뜯은 거지만 공격은 공격이었다.
가끔 보이는 것 같던 나비가 언제나 보이는 것처럼 쉬지 않고 손을 사방으로 휘젓는 남자.
나비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남자는 나비들을 치우려고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영체를 보기 시작한 남자는 유령상태인 나의 모습도 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는 분명 나를 보고, 나를 가리키려고 했다.
다만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는 남자의 손짓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해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이대로 천천히 말라죽이는 오브젝트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생각보다 끔찍한 오브젝트였다.
남자는 이미 죽어 있었다.
나비들이 그 육체 속에 잔뜩 파고들어서 움직이는 척을 하는 것이었다.
그 상상을 초월하는 시신 모독에 유령화를 풀고 그 남자에게 훌쩍 뛰어서 다가갔다.
나비는 나를 무서워하니까 이 행동만으로도 저 나비들을 손쉽게 쫓아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정답이었지만,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결됐다.
남자 몸속에 파고든 나비들이 일제히 날아올랐고, 남자는 말 그대로 폭발하듯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주위는 피와 살점, 그리고 비명만이 가득했다.
실수한 건가?
***
중앙 연구소의 기재 창고 한 켠에서 비밀스러운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선배. 지금 외부 출입도 금지된 상태에 뭔가 분위기도 수상해서 불안했어요.”
“아냐 아냐, 괜찮아. 오히려 내가 고맙지. ‘아귀’가 아직도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니! 이런 큰 사건에서 이 내가 빠질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중앙 연구소 직원복의 여자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연구소의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은 샛노란색의 정장을 입은 남성이었다.
“한국 넘버 1의 탐정이 여기 왔으니 안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