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은 눈을 깜박였다.
중앙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돔 모양의 하얀색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가 생각했다.
‘저런 식으로 천장을 만드는 공법을 뭐라고 하더라….’
분명 학창 시절에 배웠던 것 같은데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건축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했고.
“아아… 낯선 천장이다.”
플레이어 사이에서 반쯤 밈이 된 말을 중얼거린 파인이 몸을 일으키자 마음이 차분해지는 신전의 풍경이 그를 반겼다.
이곳에서 눈을 떴다는 것은 죽음을 맞이했다는 뜻.
“구에에에엑….”
“우워어어….”
파인과 같이 죽음을 맞이한 다른 공대원들도 하나둘씩 눈을 뜨며 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어디 아픈 게 아닌지 걱정되는 기괴한 소리였지만, 파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저러는 게 한두 번이었어야지.
실없는 장난이란 걸 아는데 굳이 반응해 줘서 힘을 뺄 이유는 없었다.
“그어어어!”
공대원들을 무시하며 인벤토리를 점검하는 그의 귀에 별안간 좀비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그러는 거 안 지겨워요?”
“컨셉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퇴마 마렵네.”
마려우면 해야지.
파인은 퇴마(물리)를 시도했으나 진작 낌새를 알아챈 좀비가 목을 뒤로 쭉 빼고 물러나 있었던 탓에 수포로 돌아갔다.
‘…모기?’
여름철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모기가 딱 저런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귓가에서 왱왱대다 불 켜면 사라지고, 포기하고 누우면 다시 나타나고….
저것 봐라. 그가 포기한 것 같으니까 또 슬그머니 다가올 기색을 보이지 않는가.
“됐고. 이리 와서 앉아 봐요. 다른 사람들도요.”
숨겨 놓은 성적표를 찾아낸 어머니처럼 공대원을 부르는 파인의 목소리에 공대원들이 쪼르르 모였다.
공대원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파인이 입을 열었다.
“저만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 아니죠?”
“저희 공대는 원래 이상했는데요?”
“…아니.”
-일단 이름부터가 이상하긴 함
-ㄹㅇㅋㅋ 하와이안 피자 같은 걸 누가 먹는다고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꺄아아악 사람이 죽었어!!!!
-ㄷㄷㄷㄷㄷㄷㄷㄷㄷ
“이단은 사형이다.”
파인의 방송 채팅 규칙 중 하나.
‘하와이안 피자를 욕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어긴 이단들이 대규모 숙청당했다.
이때다 싶어서 튀어나오는 불신자들을 처단한 파인이 한숨을 쉬었다.
“하와이안 피자의 매력을 모르는 당신들이 불쌍해.”
-정말 불쌍한 건 우리가 아니라…
-쉿!
-읍읍…!
-하와이안 피자는 세계 최고의 피자이며 이는 고구려 수박도에도 나와 있다
-그래서 망했나? <<<<< 넌 나가라 ㅇㅇ
불온한 낌새가 보이는 이들이 몇 있었지만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애초에 파인이 닉네임과 공대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도 죽고 못 살 정도로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질색하는 걸 보는 게 즐거워서였으니 진심으로 화난 것도 아니었다.
짝.
“우리 공대가 이상한 거야 당연한 건데 그걸 묻는 거겠어요?”
“그런 걸 당당하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안 될 건 뭐 있어요? 이미 맛알못 공대라고 불리고 있는 마당에.”
한 걸음 빠져있던 레모니가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저, 저는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레이드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
“맞아요.”
레모니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는 공대원은 없었다.
잠깐 장난을 친 거지, 그들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럿이 힘을 합쳐 강한 적을 상대한다’는 게 레이드의 정의라고 한다면 그전에도 레이드가 맞긴 했지만.
레모니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후열 먼저 노리는 대신 적개심 수치를 가장 많이 쌓은 사람을 공격하고, 공격을 피하거나 막지 않고, 우리가 먼저 공격하기 전까진 아무 반응도 안 했죠.”
“패턴으로 추정되는 공격도 있었어요.”
다르게 말하면, 이전의 카나리아는 방금 늘어놓은 말과 정확히 반대되는 행동을 했었다.
“다른 레이드 보스들을 상대할 때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예전의 카나리아가 제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던 NPC였다면, 지금은 다른 보스들처럼 개발사에서 짜놓은 행동 양식을 그대로 이행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몇 번 더 트라이 해봐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본 것만 해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죠.”
“‘이게 같은 보스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예전 모습이 더 좋지 않아요?”
“네?”
모두의 고개가 그 말을 한 공대원을 향해 돌아갔다.
순식간에 집중된 시선에 멈칫했던 그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멋지잖아요. 난공불락인 절대 강자 느낌도 나고…. 오히려 유니크해서 좋았는데 아쉽네요.”
“데모닌스가 봐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죠.”
난이도가 높은 것도 어느 정도 상식선에서 높아야 하는 거지.
“허수아비처럼 맞아 주는 것보다 적당히 막고 피하는 게 더 현실성 있다고 해도 솔직히 말이 안 되긴 했잖아요. 악명 높은 다크니스 스피릿이나 로열 링 보스들도 이렇지는 않다고요.”
“아예 깰 수 없게 막아놓은 거라고 생각하면….”
“뭐, 그런 거라면 그럴 수도 있죠.”
게임에서는 스토리적으로, 혹은 세계관적으로 말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강한 적을 통해 대신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패배 이벤트’라고 하는, 반드시 질 수밖에 없는 이벤트를 통해 연출하는 일도 많이 있었고.
그런 적을 마주했을 때 플레이어는 ‘망겜 수준. 이런 걸 어떻게 잡으라고.’라고 분노하는가?
‘그런 사람은 많지 않지.’
그들도 안다.
조금 속되게 표현하면, 그런 것들은 모두 플레이어가 ‘뽕 차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근데 카나리아는 그런 역할을 하는 NPC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카나리아라는 NPC는 그런 연출을 위해 만든 NPC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럴 목적으로 만든 NPC였으면 엉덩이가 무거워야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가차 없이 썰어 버리는 게 말이 되나?
적어도 파인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흠…
-ㄱㄹㄱ?
-그냥 취향 차이 아님? 꼭 무게감 있으란 법은 없잔슴
“그건 그렇지. 그래서 나도 딱히 설득할 생각은 없어.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전과 다르다는 거였으니까. 이건 다들 동의하죠?”
“네.”
“공격에 영혼이 없긴 했죠.”
“그래서 어떡할 거예요?”
“….”
누군가의 물음에 파인이 입을 다물었다.
단순히 이전과의 차이를 말하고 싶었던 거라면 이렇게 공대원을 모아두고 진지하게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추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이 사람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 컨디션이 좋은지 나쁜지 등.
그리고 파인이 알 수 있다는 것은, 상대도 파인에 대해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레이드, 하고 싶어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속마음을 정확히 읽힌 파인이 순순히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의견을 들어보려고 이렇게 모은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해서요.”
호승심, 호기심, 복수 등, 다시 도전하고 싶은 이유는 많다.
그럼에도 도전할 생각이 쉬이 들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압도적인 무력에 겁먹어서?’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무력하게 썰리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긴 하지만, 바뀐 카나리아의 모습에선 이전과 같은 압도적인 무력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차라리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라는 이유가 더 맞을지도.
아니면 민심이 신경 쓰인다든가.
운을 띄운 파인은 잠시 입을 다문 채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책임 전가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공대를 운영해 왔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고, 최종 결정은 그가 내리는 식으로.
“파인 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툭, 툭.
발을 두드리며 공대원들을 기다리는 파인에게 레모니가 말을 걸었다.
“저니 님은 지금 뭐 하고 계시나요? 분명 가만히 계실 것 같지는 않은데….”
“아.”
궁금하면 직접 방송을 보면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파인은 그가 파악한 저니의 동향을 말해 주었다.
“저니 님은-”
* * *
“…레이드를 도와달라고요?”
“정확히는 제압하는 걸 도와달라는 말이지만… 네, 맞아요. 유키 님은 강한 적과 싸우는 걸 좋아하시니까 분명 마음에….”
“거절할게요.”
“…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거절에 다은이 멍청하게 눈을 끔벅였다.
“제가 싸움만 보면 달려드는 미친년인 줄 알아요?”
“…아니었어요? …아, 죄송해요.”
무심코 필터링 없이 말을 내뱉었던 다은은 눈을 날카롭게 치뜬 유키를 보고 제 실수를 깨달았다.
“흠흠…. 미친년은 아니어도 싸우는 건 좋아하시잖아요. 그렇죠?”
“네.”
“그러니까-”
“그러니까.”
팍!
유키가 대검을 거칠게 땅에 박아 넣었다.
그녀는 튀어 오르는 흙먼지가 바지 끝자락을 더럽히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대검에 몸을 기댔다.
“그러니까 안 한다는 거예요.”
원래부터 유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독 더 심했다.
다은은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레벨이 높다는 것과 실력이 좋은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그러나 유키는 다은이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고 제일 실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합을 맞추는 건 미숙해도 원체 실력이 좋으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찾아온 건데, 제대로 된 이유도 듣지 못하고 거절만 듣고 있으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다은의 마음을 알아챈 걸까.
대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유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미 찾아가 봤어요.”
“어디를요? …설마?”
“네. 스승님한테요.”
“…스승님? ”
못 본 사이 카나를 부르는 호칭이 또 바뀌어 있었다.
괴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에 다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키의 덤덤한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찾아가서 검을 맞대어 봤는데….”
유키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가슴이 뛰지 않았어요.”
“…?”
“가슴이 뛰지 않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아요.”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다은의 머리가 또다시 덜커덕 멈춰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