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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6

과연 마스터 메이지… 라고 해야 할까.

쏟아지는 마법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지만.

‘이런 거에 당할 거였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어.’

어차피 저쪽도 내가 이 정도 공격에 쓰러질 리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위로 쏟아지는 마법에 전심전력으로 대응하는 대신 다른 곳에 정신을 쏟았다.

‘…이런 거였구나.’

한껏 예민해진 기감에 실오라기 같은 한 가닥의 마나가 느껴졌다.

이전의 나였다면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고, 느꼈다고 해도 어찌할 수 없었겠지.

고작해야 분신과의 연결을 끊어내는 게 고작 아니었을까.

그리고 연결을 끊어내는 것이라면 굳이 그런 걸 느낄 필요도 없이 분신을 파괴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분신에 연결된 마나 끝,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의 존재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할 수 있을까?’

대답은 바로 나왔다.

‘응. 물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나, 내 직감은 능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직감이 이끄는 대로 손을 뻗었다.

아득히 먼 거리.

닿을 리 없는 거리 너머, 둥지에 처박혀 있는 뱀의 몸통이 손에 잡혔다.

“아핫! 드디어 잡았다.”

빌어먹을 뱀 새끼.

이 뱀 새끼를 잡으려고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개고생했더라?

얼핏 생각나는 것만 따져도 열 번을 가볍게 넘어갔다.

잡았나 싶으면 도망가고, 이번엔 정말 잡았나 싶으면 분신이고.

“아하하, 아하하핫!”

그렇기에 지금의 성과가 이렇게 달콤하게 느껴지는 거겠지.

이 세계에 태어난 이후로 이렇게까지 웃은 적이 있었나?

웃어서 기분이 좋아진 건지, 기분이 좋아서 웃게 되는 건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미쳤군.

‘미쳤다니. 실례야.’

그토록 염원하던 바를 마침내 이뤘는데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이 있겠어?

가슴에서 사근거리는 고통도 잊고 웃어 젖히던 나는 한 움큼 피를 토할 때가 돼서야 간신히 웃음을 그칠 수 있었다.

손에 잡힌 즉시 잡아 죽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토록 보여주지 않던 잘난 면상을 실제로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거니와….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 부하를 구해준 보답은 덤이고.

그나저나 언제까지 꿈틀거리고 있을 생각일까.

조금 힘줘서 메쳤기로서니, 명색 마스터 메이지란 놈이 채신머리없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말이야.

하여튼 마법사 놈들이 엄살이 심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떤 기분이냐니까? 너무 충격적이라서 말도 안 나오는 거야?”

하기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긴 하다.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둥지에서 갑자기 머나먼 타지에 뚝 떨어졌으니 그럴 만하지.

“괜찮아. 내가 겪어 봤는데, 살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면 금방 적응할 수 있더라.”

“…도대체 무슨 소리를, 쿨럭!”

현자가 말하다 말고 검게 죽은 피를 토했다.

무려 차원을 넘어온 대선배로서 해준 조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별로 와 닿진 않은 모양이네.

한참을 구역질하던 그는 겨우 진정이 됐는지 입가를 훔치며 일어섰다.

“완전 괴물이 됐구나.”

“네가 하는 짓인데 나라고 못할 건 없잖아.”

“자네 나이를 생각해 봐.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계집애가 이런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뭐어….”

그건 그렇지.

근데, 어쩌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든, 말이 안 되는 일이든.

그가 나와 마주 보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걸.

“나라면 그러고 있진 않을 텐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태프가 번쩍 빛났다.

그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공간 도약.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마나의 흐름을 읽었다.

“어딜.”

어떻게 잡은 물고기인데 쉽게 놓아줄 것 같아?

저 성가시기 짝이 없는 공간 도약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처럼 ‘공간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면 막을 수 없다’였다.

‘카나리아류 – 바람 가르기’는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기술이었지만, 바람 가르기를 만든 후에도 나는 현자를 잡을 수 없었다.

미숙한 기술로 그를 잡기엔 공간에 대한 이해도 차이가 너무 극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훤히 보이면 이해도가 필요 없지.”

눈에 보이는 것도 베어 가르지 못해서야 검사라고 할 수 있겠어?

오묘하게 빛나는 검이 공간을 헤집었다.

복잡하게 꼬이고 얽매인 공간 사이를 유영하던 검이 작은 매듭 하나를 잘라냈다.

내 눈이 줄곧 읽고 있던 바로 그 흐름이었다.

“안녕.”

“….”

눈 한 번 깜박이는 짧은 사이, 방금까지 앞에 있던 현자가 수 미터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이렇다 할 소리는 없었다.

잔뜩 굳은 얼굴로 도주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내 검은 번번이 그가 향하고자 하는 공간을 잘라냈다.

도망가고, 막아서고.

그 짓을 다섯 번 정도 반복했을 때 현자가 도약을 멈췄다.

“…요행이 아니구나.”

“요행으로 할 수 있는 짓은 아니잖아. 그런 것쯤은 끌려왔을 때 눈치채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현자가 스태프를 쥔 팔을 늘어뜨렸다.

도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한 걸까.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겠지?”

아니. 그는 포기한 게 아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있건만 현자의 로브 자락이 거칠게 나부꼈다.

“내가 뭐라고 대답할지 알고 있지?”

“역시 그렇구나.”

현자를 감싸고 있던 마나가 흘러내렸다.

젊은 청년의 모습이 사라지고, 이윽고 중후한 인상의 노인이 나타났다.

저 모습이야말로 제국의 현자라고 불리는 남자의 진짜 모습이었다.

“자네가 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운명이란 건 역시 잔혹하구나.”

“네 의견에 동의하고 싶진 않지만, 그 말엔 동의할 수밖에 없네.”

“이 또한 에델 님의 뜻일까….”

“아니.”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 뜻이야. 네 뜻이기도 하고.”

어쭙잖게 신의 이름을 빌려 도망칠 생각하지 마.

“하. 그런가.”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은빛 마나가 한 줄기 선을 그렸다.

갈라진 경계 사이로 어슴푸레한 밤하늘이 비추고.

번쩍-!

고오오오-

밤하늘을 유영하던 거대한 운석 하나가 경계를 비집고 지상에 강림했다.

성 하나는 가볍게 짓뭉갤 수 있는 거대한 질량이 공기를 내리눌렀다.

시시각각 덮쳐오는 질량 덩어리 앞에서도 내 마음은 평화로웠으니.

“돌려줄게.”

현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검을 내리그었다.

물감이 물에 퍼지듯, 부드럽게 퍼져나간 세 빛깔의 마나가 공간을 찢어발겼다.

갈라진 공간 너머로 엿보이는 크고 견고해 보이는 성과 여러 건물, 잘 정비된 길거리 등은 나에게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글쎄, 과연 저쪽에게도 그럴까.

호기심을 해결할 새도 없이, 입을 쩍 벌린 공간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운석을 집어삼켰다.

‘흐음.’

제국 수도에 운석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노인의 표정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저 정도면 다른 이들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완전히 신경을 끌 순 없었는지, 그 이후 나에게 날아오는 마법은 대체로 규모가 작은 것들이었다.

물론 살상력은 거대 운석에 못지않았지만.

스각-

적색의 검이 아롱거리던 마나를 잘라냈다.

마법을 이루지 못한 은색 마나가 사방팔방으로 자욱하게 흩어졌다.

파스스.

자욱한 안개에 붉은 섬광이 잇달아 새겨졌다.

알게 모르게 주위를 감싸고 있던 마법들이 전부 순수한 마나의 형태로 돌아갔다.

그에 그치지 않고, 검이 들려 있지 않은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콰자자작!

종이를 움켜쥐는 듯한 소리와 함께 풍경이 구겨졌다.

구겨진 풍경 사이로 언뜻 노인의 모습이 비치는가 싶더니.

쩌적!

딛고 있던 땅이 무저갱이 되어 입을 벌리고, 그와 동시에 혹한의 창이 달려들었다.

창이 지나는 궤적을 따라 얼어붙은 공기가 떨어지며 와장창 부서지는 게 시야 구석에 보였다.

그러한 창이 대충 세기에도 수십 개가 넘어서니, 한순간에 빙하기가 찾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아-

내뱉은 숨결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다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래는 무저갱.

주변은 영혼마저 얼릴 듯한 혹한의 창이라.

“…흐.”

문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단언컨대, 무기를 쓰는 싸움에서는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령 그것이 마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도, 창의 형태를 한 이상 나를 해칠 순 없었다.

숨을 짧게 삼켰다.

샤악-

한 줄기의 섬광이 창을 베어 갈랐다.

하나의 창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아직도 수십 개의 창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검을 더 이상 휘두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사사사사삭!

수십 개의 섬광이 창 사이를 누볐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허공을 수놓은 섬광이 먹잇감을 붙잡았다.

섬광의 수는 정확히 사십오 개.

반으로 갈라져 사라진 창의 개수와 정확히 같았다.

마지막으로, 발꿈치를 들어 땅을 강하게 내리밟았다.

쿠웅!

“냄새나니까, 입 다물어.”

짙은 마기가 게걸스럽게 나를 삼키려던 무저갱을 역으로 집어삼켰다.

끼기기기기─!

귀를 긁어대는 불쾌한 소음이 울려 퍼지던 것도 잠시.

부드러운 흙바닥이 나를 반겨주었다.

마법사는 준비된 환경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의식이 없는 사이 내 몸이 깽판을 쳤음에도 그가 안배해 놓은 것들은 여전히 잔존해서 지금까지는 밀릴 수밖에 없었지만.

“내 차례네.”

이제 그것도 끝이다.

은근슬쩍 문양을 드러내는 마법진에 검을 찔러 넣음과 동시에 두 다리를 연달아 박찼다.

파앗!

저 멀리 있던 노인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긴 턱수염에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는 꼴이 그렇게 맘에 들 수가 없었다.

“아하하! 보기 좋네…!”

저 수염을 모조리 붉게 물들이면 더 유쾌하겠지.

적색의 검이 낭창낭창 흔들리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노인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떨어져라]!”

몸이 부웅 떠올랐다.

나를 밀어내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공중에서 몸을 두어 바퀴 돌렸다.

탁.

십 점 만점에 백 점을 받을 만한 완벽한 착지.

그렇기에 균형을 잡을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연이은 쇄도.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 등을 간지럽혔다.

챠악.

노인에게 달려들며 수직으로 잡고 있던 손잡이를 비스듬하게 올려 벴다.

검 끝에 긁힌 땅거죽이 갈라지며 속살을 드러냈다.

아쉽게도, 노인의 거죽은 갈라지지 않았다.

대신 그가 두르고 있던 견고한 방어막을 산산조각 내고, 그의 몸에 붉은 실선을 남겼을 뿐.

공간 도약으로 피하려고 했으면 반으로 갈라졌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한쪽 손에 쥐고 있던 공간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나이에 잘도 피하네. 무릎도 안 쑤셔?”

“….”

노인은 내 말에 말 대신 거친 숨소리로 대답했다.

둥지에 틀어박혀 분신만 조종하다가 몸소 나서니 죽을 맛이겠지.

공간 도약까지 막혀서 직접 뛰어다녀야 하니 아마 더 그러할 것이다.

‘…아직 부족해.’

고통을 참아내던 아빠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쳤다.

고작 이 정도로 아빠가 느꼈던 고통을 갚을 수 있을 리 없어.

-하지만.

“슬슬 끝내자.”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뜨겁고 비릿한 핏덩이를 꿀꺽 삼켰다.

‘아빠, 미안.’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용서해 줘.

닿지 않을 용서를 핏덩이와 함께 삼키며 검을 들었다.

끝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낀 노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지막을 장식할 검.’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하늘로 날아오르겠다는 의지를 담아 만든 검술.

부모가 지은 이름에 얽매여 있던 내가, 아빠 덕분에 비로소 새장에서 벗어나 빚어낸 검술.

바닥에 닿을 듯이 늘어져 있던 적색의 검이 흔들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난 작은 새가 날갯짓했다.

흔들리고, 곤두박질치고, 꺾이고. 때로는 은빛 바람에 부딪혀 부서졌지만.

작은 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새가 날개를 완전히 편 순간.

카나리아류 – 비상(飛上)

사아아아…

오색찬란한 날개가 노인의 몸을 갈랐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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