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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7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하느라 소란스러운 TV 소리와 몸을 감싸는 푹신한 이불.

평소처럼 따스한 온기가 가득한 격리실의 풍경이었다.

마치 캠프파이어를 피운 것처럼 은은한 온기가 더해진 격리실의 공기는 평소보다 살짝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옴뇸뇸.

나는 그런 격리실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서 구운 마시멜로를 받아먹고 있었다.

침대 옆에 놓인 탁자 위에는 사로잡힌 사슴처럼 사지가 결박된 아귀가 매달려 있었고, 그 밑에는 해맑은 표정의 붉은 사신이 불을 뿜고 있었다.

‘엄마!’

아귀 등을 굽고 있던 붉은 사신은 헤실헤실 웃으며 아귀의 등을 뜯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처음에는 금발 소녀랑 자주 놀던 붉은 사신은 요즘 내 곁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아마 금발 소녀와 검은 요원이 자주 안 돌아다녀서 심심해진 거로 보였다.

금발 소녀와 검은 요원은 정원 안에 과자집을 만들어 두더니, 아예 정원의 주민처럼 정원에 눌러 앉아버렸다.

옴뇸뇸.

붉은 사신은 내가 뭔가를 먹는 걸 보는 게 즐거운지, 벌써 몇분이나 아귀를 구워서 내 입에 넣어주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붉은 사신은 내가 먹는 걸 싱글벙글 웃으며 구경하면서, 자기도 구운 마시멜로를 작게 오물오물 뜯어 먹었다.

그리고 내가 마시멜로를 다 먹으면 즐거운 표정으로 재생된 아귀의 등을 다시 굽기 시작했다.

마시멜로 구이를 먹으면서 TV를 보고 있으니, 이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눈동자 교’에 대한 방송이었다.

[‘눈동자 교’는 오브젝트로 인한 사이비 종교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정신 오염 수치가 전혀 없는 신기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만 이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들은 모두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는군요.]

특히 나는 눈동자 교의 ‘교주’라는 사람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 신나게 치고받고 싸웠던 거인이 눈동자 교의 교주였다니.

그리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푸른 사신의 애착 인간 구출기’와 ‘미국에서 다친 황금 사신 사건’이 결국 같은 사건이었다니.

꽤 신기한 연관성이었다.

[이처럼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피해자가 속출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도 비교적 두드러지지 않은 편이라 다행입니다.]

그래도 푸른 사신이 구하러 간 덕분에 한국의 피해자들은 별다른 정신적 문제가 없었다.

푸른 사신이 치료를 해준 덕분이겠지.

푸른 사신의 치료가 어설프긴 하지만 진짜 뛰어난 부분이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통증을 잘 잡았다.

정신 오염이 주전공인 푸른 달 출신이라 그런지, <아프지 말아 주세요.> 한방이면 몸이 불에 타는 작열통조차 전혀 안 느껴지게 할 정도였다.

두 번째는 정신적인 문제를 없애버리는데 탁월했다.

역시 이 부분도 정신 오염 관련이겠지.

불안이나 공포를 포함해서 수많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을 바로 황금 사신처럼 해맑게 웃게 만들 수 있었다.

이번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들에게 꼭 필요한 치료가 푸른 사신의 장기이었으니, 좋은 결과가 나온 거겠지.

사이비 종교의 여파와 이후 처리를 한참 이야기하던 뉴스의 한 타임이 끝나고 광고로 전환되자,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뚝딱뚝딱.

다른 채널을 향해 채널을 돌리던 도중, 침대 밑에서 미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세희가 만들고 있는 ‘워터 파크’ 건설 때문에 발생한 소음과 진동이었다.

오브젝트 표준 격리실이라 소리와 진동을 꽤 차단해 주는 덕분에 별로 거슬리는 일은 없었다.

그나저나 미니 사신이랑 함께하는 테마파크라….

아마 오픈만 하면 돈이 꽤 벌릴 것이다.

오픈만 하면.

그야, 내 아이들은 귀여우니까!

문제는 과연 일반인에게 표를 파는 것이 허용될 것이냐가 관건인데, 협회에서 절대로 허가를 안 내주겠지.

그래서 그런지 요즘 빚더미에 앉은 세희 연구소의 모습이 자꾸 아른아른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서아가 얼마나 화낼지가 궁금했다.

아마 세희는 한 달 정도 도망가 버리지 않을까?

왠지 웃긴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아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히히.

***

밝은 태양이 내리쬐는 강남에 위치한 오브젝트 협회 건물.

새로 지은 건물답게, 세련되고 깔끔한 건물 내부로 환한 태양 빛이 내리쬐는 모습은 꽤 괜찮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 복도를 이질적인 인간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수군수군.

커다란 헬멧을 쓴 사람이 오브젝트 협회 건물 내부를 천천히 돌아다니자, 주변 직원들이 이상한 것을 보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생산된 정신 오염 차단 헬멧 위에는 커다랗게 ‘James’라고 적혀있었다.

오브젝트 협회에서 사용하는 헬멧보다 몇 배는 좋은 성능.

하지만 가격도 몇 배나 하는 물건.

“도대체 뭔 유난이래?”

그중 한 목소리가 헬멧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헬멧을 쓴 연구원은 그대로 무시하고 자신의 사무실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후우.”

사무실에 도착한 연구원은 가방에서 정신 오염 측정기를 꺼내 책상 위에 꺼내두고, 스위치를 넣었다.

협회에서 사용하는 정신 오염 측정기랑 달리, 정신 오염 여부뿐만 아니라 그 수치도 표시해주는 최신 모델이었다.

삐-.

얼마나 기다렸을까, 측정기는 작은 경고음 소리를 토했다.

확인해 보니 장치에 달린 아날로그 바늘이 붉게 칠해진 영역으로 그 끝을 뻗고 있었다.

‘정신 오염 수치, 위험. 아직은 괜찮아.’

연구원이 착용 중인 헬멧은 측정기의 붉은 영역까지는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얼마 전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사무실 내 정신 오염 수치 기록장>에 오늘의 오염도를 적어놓고는 작업 준비를 시작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시작한 연구원의 뒤편으로 불쑥,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여러 서적이 가득한 책장 위로 황금색 더듬이가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황금 사신이었다.

황금 사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신기한 도구가 많은 연구원의 책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금살금.

마치 숨바꼭질하는 느낌으로 황금 사신은 천천히 연구원의 책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측정기의 눈금도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붉은색 영역을 넘어, 천천히 검은색 영역으로.

위험 영역을 넘어, 매우 위험 영역으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것일까?

연구원이 뭔가의 시선을 느끼고 뒤로 돌았지만, 황금 사신은 잽싸게 책장 속으로 숨어들어 간 상태였다.

히히.

즐거운 것처럼 웃던 황금 사신은 연구원이 다시 고개를 돌리자, 살금살금 연구원의 책상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이 책상 위까지 올라서자, 어느새 측정기의 눈금은 ‘매우 위험’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헬멧 앞 유리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헬멧의 보장 한도를 넘어갔으니, 빨리 도망가라는 신호였다.

“!”

연구원은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서, 탐지기를 확인했다.

마치 감지기를 뚫어버릴 것처럼 검은색 끝자락까지 도달한 바늘.

그리고 그 위에 달라붙어서 신기한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탐지기를 만지작거리는 황금 사신.

의자에서 일어난 연구원이 자신을 쳐다보자, 황금 사신은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양손을 내밀었다.

헤실헤실 웃는 황금 사신의 표정과 자세는 마치 안아달라는 것 같았다.

시야는 갑자기 붉게 물들었고 탐지기의 바늘은 ‘매우 위험’을 표시해 버린 상황이라서 그런지, 연구원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으로 복잡해진 상태였다.

세희 연구소에서 격리 중인 황금 사신이잖아?

갑자기 그게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

황금 사신의 정신 오염에 대한 보고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감사관의 보고처럼 귀엽긴 하네. 회색 사신 감사 보고서에 갑자기 ‘황금 사신’ 이야기가 나와서 이상했는데, 이 정도로 귀여우면 쓸만….’

쓸만하지 않아!

정신 오염이잖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몰려오자, 연구원은 그대로 창문을 깨고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인간의 위험한 돌발행동에 황금 사신은 깜짝 놀라서 창문가로 뛰어가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밖을 내려다보았다.

황금 사신의 눈에 3층에서 뛰어내린 연구원이 절뚝거리며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인간, 아파 보여.

황금 사신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짓까지 하며 자신을 피한 인간을 우울한 기분으로 내려다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

끝없는 적막.

마치 무향실에 들어선 것처럼 소리가 먹먹했다.

주변의 소리가 너무도 없어서 생기는 그 기분 나쁜 느낌에, 나는 저절로 눈이 뜨였다.

눈을 뜨니,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검게 물든 무언가.

그리고 회색과 빛의 고리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회색빛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 세계.

구름 한 점 없는데도, 파랗지도 검지도 않은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 회색빛 하늘 위로 빛의 고리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바닥도 끝없는 회색으로 물들어서, 지평선과 하늘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회색의 내 몸과 대지의 구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회색의 대지 위로 거대한 검은 존재가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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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눈 안에는 검은빛의 고리로 이루어진 눈동자가 딱 하나 덩그러니 담겼다.

“….”

하지만 검은 구체안에서 봤던 시체처럼 이미 죽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 검은 존재를 계속 쳐다보다 보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

그 이상한 느낌이 무언인지 살펴보려는 순간, 누군가가 볼을 꾹꾹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사신아. 빨리 일어나봐!”

예린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

눈을 뜨니 예린이의 품속이었다.

그래, 분명 예린이의 품에 안겨서 TV를 보다가 예린이가 마사지를 시작하는 바람에 잠들어버렸었지.

팔다리를 꾹꾹 누르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으면서 졸음이 쏟아진단 말이야.

“사신이를 꼭 봐야겠다는 사람이 있어. 얼마 전, 연구소에 왔던 사형수야!”

예린이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서 시선을 돌리자, 익숙한 오브젝트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오브젝트 뒤편에 빼꼼하고 고개를 내민 소녀도 함께였다.

오브젝트와 인간이라, 신기한 조합이네.

테마파크에서 자주 봤던, 둥글고 눈이 꿰매진 인형 대가리.

테마파크의 부속품일 텐데, 아직도 남아있는 녀석이 있었나 보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인형 대가리는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연금술사인가?]

한국어는 물론, 지구상의 어떤 언어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내뱉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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