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사신들은 빠른 속도로 레일을 질주하는 탈것의 위에서 양손을 번쩍 들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세탁기에서 빙글빙글 마구잡이로 회전하던 때만큼 즐거운 표정이었다.
뭐, 속도랑 회전 강도만 보면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분명 처음 출발했을 때는 레이싱 분위기였을 텐데, 어느새 놀이공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한 곳을 빙글빙글 도는 엄청난 속도의 고속 회전목마 같은 느낌이었다.
이 레일을 설계한 사람은 광인이 분명했다.
레일을 쭈욱 타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서 탈선하는 미친 탈것이었다.
레일에서 레일로, 점점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서 도착한 곳은 아주 작은 원형의 레일이었다.
도넛처럼 동그란 레일 위에서 나와 미니 사신들은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원심분리기에 들어간 듯한 느낌으로 끊임없이 빙글빙글.
그렇게 꽤 긴 시간 동안 빙글빙글 원심분리하고 있으니, 슬슬 이 레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광인의 탈것은 케이블카처럼 온건한 탈것이 아니라, 레일에서 레일을 뛰어넘는 스펙타클한 이동 수단으로 보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레일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는데, 레일 대부분이 허공에 도넛처럼 원형으로 종결된 것을 보면 내 예상이 맞겠지.
원하는 곳으로 가려면 이 탈것을 타고 점프해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미니 사신들은 레이싱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즐거워 보였다.
마치 이곳으로 점프하라는 것처럼 아래로 내려온 레일의 끄트머리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어쩌면 이번에는 내가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미니 사신들이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위로 향하는 레일로 점프했다.
빠른 속도로 위로 솟구치는 탈것 위에서 나는 미니 사신들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내가 1등!’
뒤를 돌아보니, 깜짝 놀란 미니 사신들이 나를 쫓아오려고 탈것의 버튼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나도 버튼을 찾는 데 꽤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부터 찾기 시작해 봐야 늦었어!
히히.
이번에는 내가 이길 수 있어!
나는 빠른 속도로 레일을 타고 오르며, 저 멀리 보이는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다.
***
문신투성이 여자는 불길한 느낌을 풍기는 실루엣을 비추기 위해 손에 들린 포션병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드러나는 새하얀 얼굴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반사해서 밝게 빛났다.
빛을 받은 무언가는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며, 어둠 속에서 길쭉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깊은 물 속에서 떠오르는 거대한 고래처럼, 흐릿했던 모습이 점점 뚜렷하게 드러났다.
검은 장갑을 착용한 길쭉한 손가락.
젓가락처럼 얇은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
그리고 몸에 비해 커다랗고 완벽하게 둥근 아귀 대가리.
젓가락처럼 얇지만, 나름대로 잘 꾸며진 검은 정복을 차려입은 아귀 대가리들이었다.
정중한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모습은 절도 있는 집사를 연상시켰다.
꾸벅.
느릿하지만 절도 있는 동작으로 연금술사 자매를 향해 인사를 했다.
여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절도 있으면서도 정중한 동작을 보면 수호자가 제대로 동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분명히 어둠 속에서는 이빨을 봤던 것 같은데?
이상하군.
하지만 여자의 상념과 의심은 집사 아귀의 과장된 행동으로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집사 아귀가 정중한 동작으로 손을 안쪽으로 뻗었다.
마치 안내하는 듯한 그 동작과 동시에, 어두운 공간 속에서 푸른색 불길이 사방에서 타오르기 시작하면서 어둠을 몰아냈다.
“와.”
드러난 공간의 모습을 보며 여동생이 감탄했다.
거대한 책장이 자매들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듯이 배치되어 있었고, 책장에 꽂힌 책들은 고급스럽게 황금으로 장식되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책장을 가르는 중앙 통로에 줄지어서 수많은 집사 아귀가 고개를 숙이며 환영하고 있었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분위기만으로 그것이 잘 느껴지고 있었다.
천천히 걷는 집사 아귀의 뒤를 따라서 여자가 걸어 나가자, 여동생이 그 뒤를 쫓아가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집사 아귀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는 막다른 길목이었다.
커다란 화로와 거대한 철문.
여자는 화로와 철문을 보자마자, 저 구조물들이 어떤 이유로 배치된 것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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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잘 만든 연금술사 공방이군. 정석적인 구조를 제대로 따르고 있어.’
아마 저 화로에서 초록색 불꽃이 타오르고 철문을 열기 위한 문제가 나올 것이다.
그러면 주변의 책들이 노래를 시작하고, 집사형 수호자들은 벽면에 바짝 붙어서 문제를 풀기를 기다리겠지.
자매들이 커다란 화로 앞에 도착하자, 초록색 불꽃이 타오르며 주변을 자기 색으로 물들였다.
일렁이는 초록색.
그 초록색을 보며, 여자는 문제를 기다렸다.
자신은 나름대로 괜찮은 연금술사였던 만큼 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초록색 불꽃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서 천장에 닿을 것처럼 치솟았지만, 그밖에 특이한 변화는 없었다.
“언니, 불꽃색이 신기해. 초록색이면 바륨인가?”
여동생이 얼마 전에 배운 거라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지만, 여자는 대답해 줄 겨를이 없었다.
덜그럭. 덜그럭.
그리고 책장 속의 책들이 스스로 자기 몸을 진동시키더니, 바닥으로 하나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공간을 밝히고 있는 푸른 불꽃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초록색 불꽃과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는 책장, 그리고 점점 어두워지는 공간.
불길한 분위기가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여동생은 불안한 얼굴로 여자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모든 푸른 불꽃이 사그라들자, 화로에서 불타는 초록 불만이 남았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초록 불은 그렇게 크고 밝은데도, 멀리 퍼지지 못해서 불안한 분위기를 강조할 뿐이었다.
집사 아귀들은 모두 그림자 속에 잠겨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하얀 얼굴이 여동생을 향해서 떨어져 내렸다.
흉측한 인간의 치아를 드러낸 집사 아귀였다.
여자는 서둘러서 여동생을 안아 들고 바닥을 굴렀다.
딱. 딱.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집사 아귀는 자매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에서 딱딱거리는 소리를 계속 내고 있었다.
그때마다 집사 아귀가 집어삼킨 돌조각이 부스러지며 흘러나왔다.
기괴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 언니 팔이!”
피하던 중에 팔을 먹혔는지, 여자의 팔은 팔꿈치 중간부터 싹둑 잘려져 있었다.
“조용히 해. 나는 ‘오브젝트’니까.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여자는 이를 악물며 남은 손으로 시약을 움켜쥐었다.
‘태양을 닮은 하얀 꽃, 피를 머금은 붉은 줄기, 마도서에 내리는 뿌리.’
여자가 시약을 흩뿌리며 속으로 염원을 강하게 되뇌었다.
‘연금술사의 방패!’
허공에서 하얀 불꽃이 번지며 둥글게 자매의 주변을 둘러쌌다.
입을 크게 벌리고 돌진하던 집사 아귀는 하얀 불꽃의 방패를 물어뜯었지만, 뚫지 못했다.
오히려 입에서 번지기 시작한 불꽃이 전신을 살라 먹기 시작하자, 집사 아귀는 고통스러운 것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뛰어!”
초록색 불꽃이 여전히 타오르는 화로를 향해 뛰어가며, 여자는 시약을 사방으로 뿌렸다.
시약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완전히 타버려서 재가된 동료의 모습을 봐서 그런지, 집사 아귀들은 시약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딱. 딱.
이빨을 맞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입맛을 다시는 소리 같았다.
“언니, 어떡해.”
여동생은 여전히 피가 줄줄 흐르는 여자의 팔뚝을 양손으로 꽉 쥐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피를 막아보겠다고 그러고 있는 것이겠지만, 힘이 모자란 소녀가 맨손으로 지혈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오히려 피를 짜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여자는 남은 손을 초록색 불 속에 집어넣더니 염원을 되뇌었다.
‘악마를 태운 초록색 불꽃, 마도서의 희생, 속삭이는 나뭇잎. 새벽을 여는 뱀!’
초록색 불꽃 속에서 여자가 손에 집어 든 나뭇잎, 그리고 남은 한쪽 손이 빛 가루로 변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화로에서 초록색 불꽃이 솟구쳐 나와,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커다랗고 압도적인 모습에 집사 아귀도, 여동생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천장에 똬리를 튼 것 같은 뱀은 천장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초록색 불길의 파도는 집사 아귀들을 잿가루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태워버렸다.
여자는 피가 전부 빠진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여동생을 재촉했다.
“빨리 가자. 하얀 꽃을 안 넣은 연금술이라, 금세 재생할 거야.”
여동생이 그 말에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자, 기괴하게 생긴 하얀 덩어리들이 둥실둥실 떠올라 있었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얀색 반죽 같은 것들이 허공에서 꿈틀거리면서 뭉쳐지고 있었다.
집사 아귀가 달려들 때보다 몇 배는 징그러운 모습에, 여동생은 여자를 부축해서 서둘러서 철문 앞에 섰다.
“언니, 이제 어떻게 해?”
여동생은 굳게 닫힌 것처럼 보이는 철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동생의 어깨에 반쯤 기대고 서 있는 여자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밀어. 집사 아귀 꼴을 보니까, 문도 제대로 작동할 것 같지 않네.”
굳게 닫힌 철문은 여동생이 살짝 밀기가 무섭게 열려 버렸다.
자매는 천천히 철문 너머의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전부 재생한 집사 아귀들도 4발로 바닥을 천천히 기어가며 쫓아가려고 했지만.
그 순간 철문은 굳게 닫혀버렸다.
그극. 그그극.
집사 아귀들은 그저 철문 위를 손가락으로 긁으며 아쉬워할 뿐이었다.
***
나와 미니 사신들은 장대한 레이싱 끝에 건너편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귀처럼 억울한 표정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엄마 약해!’
‘약해!’
흑흑.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미니 사신들의 운전 솜씨가 훨씬 좋았다.
거의 운전 연수 중인 초보 운전자와 F1 드라이버와의 차이만큼 실력 차가 났다.
내가 몇 번이고 잘못된 점프를 해서 나락으로 떨어질 때, 미니 사신들은 정확한 타이밍에 점프해서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약해!’
검은 사신과 황금 사신이 해맑게 웃으면서 내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푸른 사신만이 바닥에 대자로 누운 내 얼굴 근처로 다가와서, 볼을 토닥였다.
역시 푸른 사신뿐이야!
그리고 푸른 사신은 약간 수줍은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의지를 전달했다.
‘엄마 약해…!’
황금 사신의 표정을 따라 하는 듯한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놀린 푸른 사신은 부끄러운 것처럼 멋쩍게 웃으면서 날아가 버렸다.
아니, 푸른 사신 너마저!
배신당한 슬픔에 몸부림치고 있었더니,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묵직한 발걸음 소리.
어둠을 헤치고 하얀 아귀 얼굴의 오브젝트들이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옷을 차려입고, 팔다리가 가늘게 뻗은 아귀 얼굴의 오브젝트들이 정중한 동작으로 우리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오브젝트는 우리 앞까지 다가와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으음.
정중하긴 한데, 왠지 이 녀석도 흉측한 이빨이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약간 피 냄새도 나고 말이야.
나는 작은 하얀 아귀를 불러내서 명령했다.
‘물어!’
내 품에서 폴짝 뛴 미니 아귀는 고개를 숙인 집사 아귀의 목덜미를 그대로 물어뜯었다.
그러자 집사 아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입을 크게 벌렸다.
꼭 다문 입속에는 징그러운 이빨들이 가득 숨겨져 있었다.
윽, 징그러워.
도대체 왜 아귀 입속에 이빨이 있는 거야?
나는 미니 아귀 떼에 물려서 버둥거리는 집사 아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세심한 동작으로 허공을 뀩 움켜쥐고 이빨을 하나하나 뽑아내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그 순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던 집사 아귀의 입속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