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우물.
냠냠.
“…이 맛이 아니야!”
다 먹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닭… 코카트리스 다리를 집어던졌다.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야.
잡내가 날까 걱정했는데 생각 외로 깔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있고….
내가 원하던 맛이 아닐 뿐.
요리는 많이 해봐서 나름대로 자신 있었는데, 역시 한 번의 시도로 현대 과학의 정수를 따라잡는 건 무리였나.
“역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나?”
오히려 첫 시도로 성공했다면 ‘내가 원하던 맛이 고작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실망했을지도 몰라.
그러니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맛있는 식재를 찾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몬스터 고기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딱히 거부감이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몬스터라고 해도 지구의 산짐승 같은 포지션이고.
다만 조금 더 포악하고, 조금 더 위험하며, 번식력이 아주 좋은 산짐승이랄까.
처음에는 나도 거부감이 있었는데, 살아남기 위해 먹다 보니 생각보다 맛있더라.
그 후로는 뭐, 가리지 않고 먹게 됐고.
“…아.”
포만감에 젖어 있을 때 한 줄기 바람이 볼을 훑고 지나갔다.
케이프가 벗겨지지 않게 꾹 누르며 바람을 즐기다 잔뜩 어질러진 주변에 시선이 닿았다.
재료가 좀, 많이 남았네….
코카트리스의 크기가 크기다 보니 재료를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너무 많이 산 모양이다.
심지어 기껏 만든 음식도 남아버렸어.
향신료야 남겨놨다가 다시 쓰면 되지만, 우유나 음식은 그냥 두면 상할 테고…. 보관용 아티팩트를 사둘 걸 그랬나.
우유는 그냥 마셔버리면 되긴 하는데 지금은 배가 너무 불러서 마시고 싶지 않은걸.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마음을 다잡고 남은 우유를 컵에 따랐다.
꿀꺽꿀꺽.
“퍄아…!”
윽, 배 터질 거 같아….
그래도 이만큼 마셨으면 키가 좀 크지 않을까?
“…에휴.”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잘 아는 탓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장신까지는 아니어도 땅꼬마는 벗어나고 싶었는데.
저번 생은 키가 컸으니 이번 생에는 작게 살라는 신의 뜻일까, 안타깝게도 내 키는 몇 년 전과 다름이 없었다.
한창 성장기인 나이인데도!
그 이유도 알고,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알지만… 서러운 건 어쩔 수 없네.
“정리나 마저 하자.”
아직 뒷정리가 끝난 게 아니니까.
향신료는 종류별로 선반에 넣어두고, 남은 치킨은 내일 마저 먹고.
날씨가 이렇게 선선한데 설마 하루 만에 상하겠어?
차곡차곡 정리를 마친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제 마무리를 해볼까?”
찰캉.
스르릉.
허리에 찬 검이 검집에서 나오며 쇳소리를 냈다.
케이프보다 낡고 금이 간 철검은 곧바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확실히 오래 쓰긴 했지. 작은 마을 대장간에서 대충 집어 온 철검이 이 정도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하긴 해.
심지어 관리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니까.
이런 철검을 만든 실력이면 나중에는 명검을 만들 수도 있겠는걸.
험상궂게 생겼지만 순수한 열망이 엿보이던 대장간 주인의 얼굴이 떠오른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촤악!
날카로운 은빛 궤적과 함께 피가 흩뿌려진다.
붉게 핀 꽃에 붉은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푸른 꽃이었으면 난감했을 텐데. 다행이다.
“…!”
언뜻 보기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삭사삭 기어다니는 걸 보면 쥐새끼가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게, 밤 중에 몰래 찾아와 기어다니는 게 사람일 리가 없잖아.
그리고 나는 쥐새끼 하나 잡았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아가페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아, 아가페는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던가? 뭐, 뜻만 통하면 되지.
미래에 장인이 될 이가 만든 철검을 고작 쥐 잡는 일에 쓰니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마땅한 도구가 없는데 어쩌겠어.
미안해, 이름 모를 대장장이 씨. 다음에 가면 더 비싼 검을 사는 거로 사죄할게.
“흐음.”
쥐새끼의 시체가 빛무리에 휩싸여 사라졌다.
오전에 도둑놈을 해치웠을 때와 똑같은 현상에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내가 모르는 조직이라도 생긴 건가?”
한 명… 아니, 한 마리라면 몰라도 둘이나 이러니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걸.
몇몇 정보 길드나 암살자 길드가 증거 인멸을 위해 자결과 동시에 시체까지 녹여버리는 독이나 아티팩트를 쓴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리고 이로써 알게 된 또 다른 사실.
오전에 도둑놈이 내 기감을 뚫고 크림슨 이지스에 손댄 게 이상했는데 방금 쥐새끼를 잡으며 확실해졌다.
이 녀석들 기척이 보통 사람과 달라.
안 느껴지는 건 아닌데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내가 아는 사람의 기척과 달라서 방심했고, 그 결과 접근을 허용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인식이 흐릿해서 인상착의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은밀함은 기척을 줄이는 건데,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이런 방법도 고안하고. 역시 사람의 상상력이란 대단하네.
근데, 이런 놈들이 왜 여기를 찾아온 거지?
아까도 생각했던 거지만 여긴 길도 없고 지형도 험한 깊은 산속인데.
제아무리 산에 익숙한 약초꾼이라 해도 여기까지 도달하기 쉽지 않을 터.
“설마….”
무의식중에 허리에 찬 검을 툭툭 건드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겠지.”
응, 그냥 우연일 거야.
마음속 불안함을 애써 지우며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만에 하나, 기우가 아니라 사실이라면….’
나는 허리에 찬 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똑같은 붉은색이지만, 크림슨 이지스와 달리 진득한 느낌이 드는 붉은색의 검을.
* * *
한 커뮤니티 글이 인기글로 올라가고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났을 때.
해당 글을 올렸던 작성자의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인디아나 존스 후기]
(You Died)
개같이 실패ㅋ
안 들키려고 최대한 기척 죽이고 기어갔는데 바로 눈치까고 죽이러 오더라
실리아 온라인을 즐기는 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사망 메시지가 첨부된 글이었다.
기대하고 있던 이들은 실망하고, 내심 실패를 바라던 이들은 쌤통이라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만약 글의 내용이 그것뿐이었다면.
가까워지니까 전투 상태 진입하는데
(체력바.jpg)
아깐 미처 찍을 생각을 못 했는데 체력바 유형 보면 레이드 보스 맞는 듯?
근데 원래 이렇게 이름이랑 레벨 둘 다 ???로 뜨냐
난 레이드 안 다녀서 몰루?
아는 사람 있으면 좀 알려주셈
이건 3인칭으로 찍은 보스 사진
(후드 케이프를 뒤집어쓴 사람.jpg)
1인칭으로 찍어볼까 했는데 진짜 순식간에 베여서 찍을 새가 없더라
미리 3인칭 촬영 모드로 안 돌려놨으면 이것도 못 찍었을 듯 ㅇㅇ;;
[댓글]
-오 신규 보스 맞네
-반응속도가 얼마나 느리면 스샷도 제대로 못 찍냐
┕그냥 모험 다니는 거 좋아하는 아재야.. 너그럽게 봐줘..
┕그렇게 반응하면 내가 뭐가 됨;
┕쓰레기?
┕우우 쓰레기
-검 성능 궁금했는데 ㄲㅂ
-산속에 숨어 사는 은거기인 검사? 이거 못 참거든요. 당장 머리 박으러 간다ㅋㅋ
┕이상 고인의 유언이었습니다
-이름은 보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면 저렇게 뜨기도 함ㅇㅇ. 근데 레벨까지 숨겨져 있는 건 처음 보네;
-잡으면 검 드랍되려나
┕박혀 있는 거 보면 드랍템은 따로 있고 최초 클리어 보상 아닐까?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한, 막대한 자유도를 자랑하는 게임이지만 게이머들의 갈증은 끝이 없다.
새 옷, 새 폰, 새 컴퓨터.
새로운 것들은 항상 가슴을 뛰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실리아 온라인의 유저들은 항상 새로운 정보에 목이 말라 있었고, 수많은 인기글 중 정보글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 와중 새로운 보스의 발견은 목마른 유저들에게 마치 가뭄 속 단비와 같았고.
[신규 레이드 뛸 용병 구함]
[약초에 대해 알아보자]
[지금 핫한 신규 보스에 관한 떡밥 정리]
[추측) 신규 보스 정체]
[기본기의 중요성]
[자유 용병 도시 리베리에 관하여]
글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 * *
“신규 레이드 보스가 나왔다고?”
-엄밀히 말하면 나온 게 아니라 발견된 거긴 함
-아직 한 번도 업뎃 안 했으니까 글킨 하네
-이걸 보니 업뎃 한 번 없었는데 아직도 할 게 많은 실리아 온라인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지네
-안 밝혀진 것도 많고 밝혀진 것도 다 못 끝냄 ㅋㅋㅋ
-심지어 흔한 버그 하나 없음;
-우주갓겜
“진짜 놀랍긴 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게임이 나왔는지….”
-?
-??
-그 발언
-우리나라 게임 무시하는 건가요?
-스트리머 저니 / 논란
“아,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나락각을 감지한 스트리머, 저니가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그냥 신기하다는 거지! 솔직히 해외 기술력에 비하면 우리나라 기술력이 달리는 건 맞잖아.”
-흠…
-그건 맞긴 한데
-??? 실리아 만들었는데 딸리긴 뭘 딸림 ㅋㅋ 진짜 알못이네
-실리아 전에는 거의 다 해외 겜이긴 했지
“근데 봐봐. 테스트도 안 했는데 버그 하나 없어, 최적화를 얼마나 잘했는지 렉도 안 걸려. 특 SSS급 해외 겜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ㅇㅈ
-외계인 갈아 넣은 거 아니면 설명이 안 됨
-난 그 겜들 사람들이 다 갓겜이라고 해도 버그 고쳐질 때까지 묵혀뒀다가 했는데
-나도ㅋㅋ
활활 타오르던 채팅창이 가라앉고 저니에게 동조하는 채팅이 올라왔다.
나락각을 신속하게 회피한 저니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레이드 하는 분들은 신났겠네.”
-방장은 트라이 안 함?
-솔직히 방장 정도면 컨트롤 나쁜 편은 아니라서 볼만할 것 같은데
-주 컨텐츠가 레이드는 아니니까
-머리 박고 썰리는 거 보고 싶긴 해
-ㄹㅇㅋㅋ
“아직 할 생각은 없는데.”
저니는 다소 부정적인 태세를 보였다.
“레이드도 재밌긴 한데 난 여행 다니는 게 더 재밌거든. 너희도 그래서 내 방송 보는 거잖아.”
-맞지맞지
-저니의 여행엔 감성이 있다
-돌아다니다가 고렙 몹 만나서 죽는 게 재밌긴 해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도 여행의 매력 중 하나지.”
-매력(맞고 죽음)
-매력(물리)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저니의 눈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빠르게 훑었다.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명확한 정보 없이 추측만 가득한 글들.
“확실히 흥미롭긴 하네. 아서 왕 전설의 엑스칼리버 느낌도 나고. 무덤을 지키는 걸까?”
-그렇지 않을까 추측 중
-그래서 묘지기라고 부름
-아직 본명이 안 밝혀져서 ㅇㅇ
“묘지기라. 이름 잘 지었네.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은 드랍템을 더 궁금해하던데
-아니면 패턴이나
-그냥 얘는 스토리를 사랑함
저니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가 볼까? 아, 트라이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기대하지는 말고.”
방송을 하다 보면 자기가 한 말에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이 될 때가 있다.
때로는 그걸 이용해 원하는 반응을 유도할 때도 있었고.
그래, 이번처럼.
시청자들이 설레발칠 것을 예상해 미연에 차단한 저니가 제 예상대로 올라오는 반응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묘지기….’
케이프에 가려져 몸 선이 제대로 보이진 않아도 체구가 작은 인물이란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 드워프? 아니면 등이 굽은 노인?
무슨 사연이 있길래 묘지를 지키고 있고, 무덤에 꽂힌 검에는 또 무슨 사연이 있을까?
미지를 마주한 저니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트라이 할 생각이 없으니 당장에 찾아가진 않겠지만.
어쩐지 머지않은 시기에 묘지기를 마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