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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3

마포구의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어둑어둑한 하늘 사이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건물 벽면의 유리들이 점점 따뜻한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7일째 밤이 끝난 것이다.

어렴풋한 새벽녘의 빛으로 만들어진 실루엣에 불과했던 고층 빌딩들이 태양 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직은 낮게 떠오른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좁은 골목과 넓은 도로를 가로지르며,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엮어나갔다.

불길한 어둠과 달빛에 잠겨있던 도시는 태양의 온기로 활력을 되찾아,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으으, 눈부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밤을 새우며 미니 사신들의 활약을 구경하던 예린이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빛 때문인지, 눈이 부신 것처럼 손바닥으로 태양 빛을 가렸다.

그렇게까지 자극적인 햇빛은 아니었지만, 예린이는 밤을 새우는 바람에 빛에 민감해진 것처럼 보였다.

뒤를 돌아서 확인해 보자, 내 더듬이를 물고 있는 예린이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감이 내려앉아 있었다.

봉쇄된 마포구로 몰래 들어온 데다가, 한참 동안 뛰어다니면서 밤까지 새버렸으니 피곤하겠지.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까지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가짜 사신들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태양을 피해서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태양 빛에 닿으면 재가 되어버리는 뱀파이어처럼,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지만 별로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들의 파괴 조건은 태양 빛에 닿는 것이 아니라, 아침이 오는 것 자체였으니까.

그림자 속으로 도망가도, 결정된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태양의 영역이 점점 늘어감에 따라,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 가짜 사신들은 고통스러운 것처럼 온몸을 비틀면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뒤틀리던 가짜 사신들은 마른 진흙처럼 부서지고, 결국 다시 그림자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다른 가짜 사신처럼 거대 가짜 사신마저 까맣게 탄 숯 더미처럼 부스러지자, 황금 사신들은 양손을 번쩍 들고 폴짝폴짝 뛰면서 승리를 축하했다.

다른 미니 사신들도 황금 사신의 해맑은 미소를 따라서 웃었다.

거대 검은 사신들은 모래탑이 무너지듯이 수많은 검은 사신으로 변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구름 고기들이 건물 사이사이를 경쾌하게 날아다녔다.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이 사람들에게 달라붙어서 즐거워하자, 마포구의 주민들 사이에도 점점 웃음이 번져나갔다.

드디어 악몽 같은 밤의 끝을 실감한 것이다.

태양이 뜨면 달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듯이, 노란 보름달도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사람들은 미니 사신들과 같이 거리로 나와,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햇살의 따스함을 만끽했다.

뚜방뚜방.

미니 사신들은 그런 사람들 사이를 해맑은 미소로 돌아다니면서, 인간들과 맛있는 과자를 나눠 먹었다.

오브젝트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마포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인간을 지킨 미니 사신들.

모두 행복하게 웃는 결말이었다.

“뀨힝힝.”

승전 축하 과자가 된 아귀를 제외하고.

***

밝게 내리쬐는 태양 빛이 헬멧 위로 떨어져서 산산이 부스러지고 있었다.

오브젝트 협회 소속 연구원은 공원 벤치에 앉아, 헬멧의 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은은한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이나 하늘을 올려다보던 연구원이 시선을 내려보니, 호텔 근처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즐거운 웃음소리와 설탕이 타는 것 같은 달콤한 향기.

인간들에게 섞여 있는 것이 정말로 행복한 것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황금 사신.

그리고 그 웃음이 전염된 것처럼 같이 웃고 있는 사람들.

조금 전까지 건물에서 떨어져나온 콘크리트 덩어리가 날아다니고, 사람을 죽이려는 살인 오브젝트를 맞닥뜨린 사람들 같지 않았다.

분명 정신 오염 때문이겠지.

그런 소란스러운 공원 한편에 위치한 미끄럼틀 뒤로 조그마한 황금색 머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연구원을 쫓아다니던 황금 사신이었다.

마치 연구원이 살아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처럼 히히 웃고 있는 황금 사신이었다.

다가오면 불편하니, 절대로 다가오지 말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래도 계속 기웃거리길래, 너희들이 싫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러자 굉장히 슬픈 것처럼 우는 황금 사신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황금 사신은 연구원의 위기에 나타나서, 연구원을 구해주었다.

황금 사신은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가며 싸웠다.

죽어버려도 어디선가 다시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황금 사신은 죽지 않는 존재였으니 생명의 가치가 조금 다르겠지만, 연구원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었다.

그야말로 분투였다.

‘정말로 해롭지 않은 오브젝트는 없는 걸까?’

마음속으로는 황금 사신은 해롭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연구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닭 모이를 주는 손이 언젠가는 닭 목을 꺾어버린다는 이야기처럼, 인간을 도와주는 황금 사신이 언젠가 인간의 목을 꺾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 상념을 깨버리는 것처럼, 연구원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오브젝트 협회.

“네, 받았습니다.”

당연히 이번 사태에 대한 질문을 할 줄 알았지만, 협회는 그런 일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추모 공원에서 회수한 오브젝트 관련 책들을 모두 소각했다는 이야기였다.

연구원이 해석을 해보기 위해서 열람 신청을 했던 서적들이었다.

전혀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진 데다가, 오브젝트와 관련성이 엄청나 보이는 책들을 소각했다고?

왜?

어쩌면 그 책들이 오브젝트의 연구에 중요한 핵심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걸 그냥 태워버렸다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이 내려진 거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오브젝트 협회의 기본 방침에 따라서 처리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오브젝트가 금전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우선 파괴를 시도한다.]

[파괴가 힘들거나, 힘들어 보일 경우. 격리한다.]

오브젝트에서 나온 서적이니, 오브젝트.

그러니까 파괴.

오브젝트 격리실이 포화상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 파괴를 최우선으로 따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격리가 쉬운 서적에 그런 규칙을 적용하다니….

연구원은 힘없이 전화를 끊고, 공원 벤치 위에 축 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힘이 빠진 연구원의 손에서 보고서가 떨어졌다.

마포구에서 작성한 ‘황금 사신 정신 오염 보고서’였다.

연구원은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그의 마음과 다르게 하늘은 맑고 청명하기만 했다.

오브젝트와 어울려 놀며,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

빤히 보이는 위치에 숨어서,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황금 사신.

하하.

연구원의 입에서 마른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연구원은 이젠 필요 없어진 보고서를 주워 들더니, 불타는 아귀 위에 올려놓아서 태워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헬멧을 벗었다.

그러자 연구원의 뇌리에서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이렇게 스트레스받느니, 오브젝트 협회는 때려치워 버려야겠어.

그리고 세희 연구소에 취직해야지.

헬멧을 벤치 위에 올려둔 연구원은 짝짝 박수를 치면서 숨어있는 황금 사신을 불렀다.

연구원이 자신을 부르자, 황금 사신은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갸웃거렸지만, 이내 진짜로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연구원에게 달려들었다.

폴짝폴짝 달려오는 황금 사신을 바라보는 연구원의 표정도 황금 사신처럼 행복한 표정이었다.

***

마포구 사태가 끝나자마자 예린이와 함께 세희 연구소로 돌아와 보니, 세희가 엄청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조사하는 등, 마치 김중뢰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서아는 그 모습을 약간 미묘한 것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세희가 일을 한다는 엄청난 사태에, 왜 저런 표정으로 보는 걸까?

궁금증을 담은 표정으로 예린이를 올려다봤지만, 예린이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예린이는 서아에게 다가가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언니,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 오예린 연구원. 돌아왔네요. 연구소장은 지금 땅값이 올라서 저러는 겁니다.”

서아는 대답하면서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땅값?

아 설마 송파구 근처에 만든다고 했던 ‘회색 사신 테마파크’ 관련 이야기인 건가?

서아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금 웃긴 이야기였다.

테마파크를 만든다는 터무니없는 일을 위해서 세희가 시세 10배를 주고 땅을 사 모았는데, 그게 엄청나게 폭등해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빚까지 져가며 땅을 잔뜩 산 것은 누가 봐도 파산하기 딱 좋았는데, 오히려 돈을 잔뜩 벌게 되다니.

제임스 타워 건설 소식으로 한번 오르고.

이번 마포구 미니 사신 사태로 한 번 더 폭등해 버린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세희 연구소’ 주변이라는 소문 덕분이었다.

구입한 땅 일부만 팔아도 빚을 다 갚고 세희 연구소를 하나 더 지을 정도의 돈이 생겼으니, 세희가 저렇게 열정이 넘치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 진짜로 회색 사신 테마파크가 생기는 건가?

그런 기대를 품으면서 나만의 포근한 격리실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세희 연구소 근처로 누군가 찾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기대감. 호의. 감사.

예린이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를 향한 대량의 긍정적인 감정을 뿜어내는 사람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마포구에서 미니 사신들에게 구해진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잠도 자지 않고, 바로 세희 연구소로 찾아온 셈이었다.

마포구 사태 이후로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긴 했지만, 내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력이었다.

지금부터 이 정도면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귀찮아질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

미니 사신의 대부분이 마포구로 떠나서 한산해진 미니 사신 정원.

그 한산한 정원을 마포구에서 막 돌아온 황금 사신이 느긋하게 뚜방뚜방 걸어 다니고 있었다.

다른 황금 사신은 사람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지만, 이 황금 사신은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새로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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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사신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노란 달에서 파생된 동생을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황금 사신의 앞에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황금색 피부.

흔들흔들 좌우로 살랑이는 더듬이.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미소.

그리고 인형의 눈처럼, 단추처럼 생긴 눈.

눈을 제외하면 황금 사신과 비슷하게 생긴 미니 사신이 튀어온 것이다.

갸웃.

‘동생 아니야?’

황금 사신은 새로 나타난 미니 사신을 보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미니 사신도 똑같이 고개를 기울였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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