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색의 옥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동굴에서, 끔찍한 무언가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핏물을 뭉쳐서 만든 것 같은 적색의 형상.
구덩이에서 나온 적색의 인간은 시체를 갈아서 만든 것 같은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부족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아주 오랜 시간 굶은 끝에 죽어버린 시체처럼 앙상한 팔다리를 가진 적색의 괴물로부터 의미가 전달되어 왔다.
입을 열지 않고, 공기의 진동조차 없이 뇌리로 바로 전달되는 의지의 파동이었다.
그 의지를 들은 녹색 옥인은 큰 소리로 외쳤다.
“가져와라!”
녹색 옥인의 지시에 따라서, 준비된 오브젝트들이 차례차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있는 부분에 커다란 옥 말뚝을 박아 넣은 사람들이 커다란 녹색 옥으로 고정된 오브젝트들을 옮기고 있었다.
옥 말뚝의 남자들은 자기 부하들을 모두 적색 괴물의 제물로 바쳐버린 조직의 간부들이었다.
얼마 전까지 형님, 아우 하던 사이의 조직원들이 깻묵처럼 짓이겨졌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 눈빛이 탐욕에 가득 차서 기이하게 번들거리는 것이 광인처럼 보였다.
그렇게 준비된 오브젝트를 모두 씹어먹은 적색의 괴물은 어느새 그 모습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시체를 갈아서 뭉친 것 같은 질감의 피부 위로 반짝이는 적색 옥이 드문드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적색 옥 위에는 마치 혈관처럼 꿈틀거리는 붉은색 살점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부족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그와 동시에 적색 옥인은 오브젝트를 가져온 남자를 향해 손을 뻗더니, 그 몸을 꽉 붙잡고 뇌를 파먹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산채로 뇌를 뜯어먹히는 남자의 처절한 비명.
그 비명이 울려 퍼지자, 공터를 가득 메우고 있던 남자들은 최면에서 풀린 것처럼 깜짝 놀라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멈춰라.”
하지만 녹색 옥인의 한마디에 그들의 몸은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한 명씩, 한 명씩 뇌를 파먹히기 시작했다.
“안 돼!”
“살려줘!”
수많은 구걸과 협박 그리고 참혹한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모든 사람의 뇌를 파먹을 때까지 그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비명과 애원으로 가득했던 동굴은 다시 고요 속에 잠들었고, 온갖 오물과 피 냄새가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부족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수많은 인간과 오브젝트를 뜯어먹었지만, 적색 옥인의 가슴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뻥 뚫려있었다.
[신의 피와 살이 필요하다.]
그 말을 들은 녹색 옥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외쳤다.
“가서 찾아와라. 이 땅 어딘가에 있는 신을. 신의 흔적을. 신의 후손을. 신의 사도를. 그 무엇이든 찾아내라!”
그 외침이 동굴에 울려 퍼지자, 뇌를 파먹힌 시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수많은 시체가 서울숲 깊숙한 곳에 있는 동굴에서 나와, 서울을 향해 진격했다.
***
황혼의 빛이 하늘을 물들이며, 고즈넉한 서울숲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바람이 잎새를 간질일 때마다 나무들은 고요한 합창을 이루었고, 그 소리는 마치 숲의 호흡 같은 느낌이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청량한 이파리의 향기와 촉촉한 흙 내음 말고도 다른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었다.
신비의 근원.
문신투성이 여자 연금술사에게 더없이 익숙한 연금술의 향취였다.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군.’
벌써 서울숲에 들어온 지 이틀째였지만, 여전히 모든 재료를 수집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건 위험한데….’
연금술사는 뒤에서 천천히 쫓아오고 있는 여동생을 보면서 생각했다.
고향 숲과 흡사한 서울숲이니만큼, 혼자서는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가 나올 자신이 있었지만, 여동생을 데리고 가면 안전을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웬만하면 안전하겠지만, 돌발 상황이 터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후우.”
연금술사는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며, 여동생 걱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위험하다고 말해도 여동생은 기를 쓰고 쫓아왔고, 타인의 몸을 빌려 쓰는 연금술사는 그녀에게 강하게 강권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재료를 대부분 모아서 다행이군.’
이번에 구해야 하는 재료는 자신이 먹을 억제제 재료와 회색 사신의 광선검을 수리할 재료였다.
광선검 수리에 필요한 재료는 얼추 다 모았지만, 억제제 재료가 눈에 띄질 않았다.
‘큰일이군.’
연금술사는 남은 억제제를 꺼내서 숫자를 헤아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남은 억제제가 얼마 없었다.
테마파크 때처럼 자연스럽게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억제제가 꼭 필요했다.
억제제를 먹지 못하면 인식과 자아가 천천히 뒤틀려서,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아무리 인간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울부짖어도, 해악뿐인 존재.
마도서가, 오브젝트가 되어버린 인간의 말로는 언제나 그런 것이다.
그것은 굳건한 의지 혹은 억제제로 억누를 수 있는 변화였지만, 그것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봐야겠지.
결국 오브젝트가 된 인간은 자아가 뒤틀리기 전에 자살하거나, 스스로 자아를 버리고 일종의 기계장치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언니, 필요한 재료는 모두 찾았어?”
그때 갑자기 여동생의 목소리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연금술사의 상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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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서 깨어난 연금술사는 이미 숲속에 가득 퍼진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안전하지 않은 숲속에서 바보 같이 넋을 놓고 있었다니!’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빨리 내 등 뒤로 와! 어서!”
약간 떨어져서 따라오고 있던 여동생에게 다그친 연금술사는 검을 뽑아 들고, 주변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달려오기 무섭게, 숲의 그림자 속에서 끔찍한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심장에 거대한 옥 말뚝이 박혀있고, 뇌가 있어야 하는 부분이 모조리 파먹힌 괴물들이었다.
“윽.”
그 끔찍한 모습에 여동생은 공포에 질려 자기 언니의 옷자락을 살짝 붙잡았다.
“옥 말뚝? 그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기술일 텐데?”
연금술사는 칼을 뽑아 든 채,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황금 사신에게 사기를 치다가 걸린 주황 사신은 살짝 토라진 상태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늘을 잔뜩 날아다니는 수많은 구름 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을 세계 곳곳으로 나르고 있는 구름 고기들이었다.
그렇게 잘 날아가고 있던 구름 고기떼를 바라보던 주황 사신은 갑자기 재미있는 ‘실수’가 생각나 버렸다.
애착 인간을 찾으러 가던 미니 사신들이 사람 하나 없는 서울 숲에 떨어져 버리면 어떻게 될까?
마침 황금 사신을 태우고 서울숲 상공을 날아가고 있던 구름 고기를 발견한 주황 사신은 더욱 짙은 웃음을 지었다.
마치 회색 사신처럼 작게 웃은 주황 사신은 그 구름 고기에게 다가가서 명령했다.
‘떨어트려.’
그러자 구름 고기는 보통 구름처럼 물리력을 잃어버렸다.
‘!’
갑자기 발판이 사라져 버린 황금 사신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손을 마구 휘저으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의문을 가득 품은 황금 사신이 하늘을 바라보자, 회색 사신과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는 주황 사신이 보였다.
‘!!!’
언제나 얌전했던 동생의 배신!
충격적인 장면을 본 황금 사신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울숲에 처박혀 버렸다.
키득키득.
그 모습을 보며 조그맣게 웃던 주황 사신은 떨어진 황금 사신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져서 점점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서울숲의 높은 나무들이 꽤 가까이 다가온 순간, 주황 사신의 눈에 급박한 장면이 보였다.
인간의 시체를 모독한 해로운 오브젝트들이 인간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장면이었다.
“태양을 닮은 하얀 꽃, 피를 머금은 붉은 줄기, 마도서에 내리는 뿌리. 연금술사의 방패!”
인간을 지키는 것으로 보이는 오브젝트가 하얀 불꽃을 뿌리며 분투하고 있었지만, 승산은 없어 보였다.
“언니!”
인간의 다급한 외침 소리.
주황 사신은 생각보다 급박해 보이는 상황에 서둘러서 확률을 비틀기 시작했다.
***
싱글벙글한 웃음을 지은 채, 헤일로를 들고 뛰어다니는 나에게 의지가 들려왔다.
‘엄마!’
살려달라는 처절한 염원이었다.
도움을 바라는 미니 사신의 목소리였다.
내 손아귀에 붙잡힌 하얀 털 뭉치가 지르는 비명이었다.
히히.
나보다 민첩한 황금 사신이나 검은 사신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느릿느릿한 주황 사신을 타깃으로 잡았더니 순식간에 붙잡을 수 있었다.
사실 진짜로 붙잡을 생각은 없었는데, 주황 사신이 너무 짜증 나게 만들어서 진짜로 붙잡아버렸다.
갑자기 바닥이 미끄러워지고.
물건이 쓰러져서 내 머리를 때리고.
이런 식으로 확률을 비틀어서 방해한 것도 조금 짜증이 났지만, 잡힐 듯 말 듯 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특유의 웃음을 짓고 있는 게 너무 짜증이 났다.
그래서 홧김에 시간 가속에 공간 지배까지 사용해서 붙잡아버렸다.
문제는 붙잡은 뒤의 일을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헤일로는 미니 사신 사이즈로 줄어든 상태였다.
어쩔 수 없지, 엄마는 한다면 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씌워야겠어.
헤일로를 점점 가까이 가져가자, 주황 사신은 두 눈을 꼭 감고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마치 추위에 떠는 강아지 같은 느낌의 떨림이었다.
다른 미니 사신들은 도망치는 것을 멈춘 뒤, 고개를 빼꼼 내밀고 구경하고 있었다.
구경하는 미니 사신들은 ‘설마 진짜로 씌우는 건 아니겠지?’하는 표정이었다.
헤일로를 주황 사신의 머리 위에 씌우려는 순간, 공기가 질감을 가지고 일그러지며 파동치기 시작했다.
‘!’
갑작스러운 사태에 머리만 내밀고 숨어있던 미니 사신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나도 주황 사신을 손에서 놓고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겪었던 오브젝트의 악의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 악의가 세희 연구소로 잔뜩 몰려들었다.
이상한 감각이 느껴져서 하늘을 올려다보자, 하늘 위로 거대한 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붉은 오로라처럼 하늘을 수놓은 붉은 벽.
하지만 오로라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실체를 가진, 옥으로 만든 것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붉은 벽이었다.
저벅저벅.
그와 동시에 세희 연구소 주변으로 뇌를 파먹힌 시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슴팍에 옥으로 만든 말뚝을 박아 넣고, 뇌가 텅텅 비어있는 기괴한 괴물들.
하지만 나는 그런 괴물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그저 붉은 옥 벽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위험해.
오브젝트 같지만, 뭔가 다른 존재가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