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태양이 저물지 않은 늦은 오후, 세희 연구소.
적당히 따뜻한 햇살이 내려오는 연구소 안뜰에 연구원들과 미니 사신들이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려고 안뜰에 잠시 들른 연구원들.
그 연구원들이 주는 감정과 과자를 먹는 미니 사신들.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연구소 안뜰에 뭔가 신기하게 생긴 오브젝트가 땅속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생겨나는 이변.
오브젝트의 자연발생이었다.
‘?’
그리고 그 오브젝트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아귀 사신이 있었다.
미니 사신도 아니네.
아귀 아종도 아니야.
해로운 오브젝트? 애매해. 그것도 아닌 것 같아.
마치 노란색 달이 만들었던 가짜 황금 사신처럼 정신 오염을 풍기면서 자신을 황금 사신처럼 속이려고 노력하는 오브젝트였다.
하지만 그 오브젝트가 가진 미약한 정신 오염은 자신을 황금 사신으로 속이지도 못했고, 외형도 황금 사신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천을 뒤집어쓴 유령처럼 꾸물거리고.
푸딩처럼 말랑말랑한 몸을 가진 황금색 오브젝트였다.
보들보들한 손을 허공에 뻗으면서 연구원들의 관심을 갈구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오브젝트를 신경 써주지 않고 있었다.
아귀 사신은 손바닥만 한 푸딩 덩어리 오브젝트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너, 누구야?’
아귀 사신이 의지를 뿜어내서 묻자, 황금색 오브젝트는 고개를 돌려서 의지로 대답했다.
‘모르겠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오브젝트라서 그런지, 자신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오브젝트를 이루는 형상도 주변 환경에 따라,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아귀 사신은 그 모습을 신기한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저 오브젝트는 미니 사신과 달리 심장에 장작이 없었다.
게다가 미니 사신 정원의 오브젝트들처럼 주인의 지배하에 있지도 않았다.
그럴 경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전부 인간에게 해로운 오브젝트였는데, 이 오브젝트는 전혀 해로운 냄새가 나지 않았다.
황금 사신용 빛의 검을 만들어 준 둥근 머리 오브젝트도 그랬다.
미약하게 해로운 냄새가 났었고, 점점 그 정도가 심해졌었지.
‘!’
연구원이 과자를 들고 근처를 돌아다니자, 황금색 오브젝트는 자신의 작은 손을 꾸물거리며 뻗었지만, 연구원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슬퍼.’
황금색 오브젝트는 검은 사신처럼 형상을 축 늘어트리면서 녹아내렸다.
매번 생생한 손가락의 모양을 살린 멋진 디저트를 가져가지만, 언제부턴가 ‘으악, 탄탈로스의 요리다!’라고 식겁하면서 거부하는 주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인간의 관심을 갈구하지만, 보답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아귀 사신은 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흐물흐물 녹아내린 황금색 오브젝트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아귀 사신이 의지를 전달했다.
‘내가 도와줄게.’
우선 그 흐물흐물한 형상부터 고쳐야겠지.
최소한 미니 사신과 비슷한 형상을 취해야 해.
아귀 사신은 손바닥 위에 올라간 오브젝트를 이리저리 주물럭거리면서 미니 사신 같은 형상을 취하게 도와주었다.
아귀 사신은 정교한 검술과 오브젝트를 태우는 불길까지 사용해 가며 오브젝트의 형상을 바꿔주었다.
그리고 안뜰에 위치한 매직미러로 데려가서 바뀐 모습을 보여주었다.
‘!’
정말 미니 사신과 비슷해진 모습에, 황금색 오브젝트는 정말 기뻐서 거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황금 아귀 사신의 탄생이었다.
‘비슷해졌어!’
히히, 하고 수줍게 웃는 황금 아귀 사신을 보며, 아귀 사신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성형 수술을 받은 황금 아귀 사신은 생각보다 금방 어떤 한 연구원에게 선택받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의지를 담아서 불러. 도와주러 갈 테니까.’
점점 안뜰에서 멀어져가는 황금 아귀 사신을 바라보며 아귀 사신은 의지를 보냈다.
황금 아귀 사신은 굉장히 행복한 얼굴로 아귀 사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조금은 특별한 아귀 사신의 일상이었다.
***
남자는 어둡게 불을 끈 호텔 방 안에 숨어서 담배를 태우며, 사람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벽에 등을 대고 그림자로 만든 담배를 태우고 있는 보라 사신이 있었다.
남자를 따라 하는 것을 넘어서 더욱 과장되고 허세 넘치는 모습이었다.
‘저런 자세로 담배를 필수나 있겠냐?’라는 질문이 절로 나올 것 같은 자세라서, 남자는 입꼬리만 살짝 올려서 작게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서, 보라 사신의 머리를 마구 문질러주었다.
남자가 담배를 태우며 웃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만 올려서 웃는 모습을 따라 하려고 했던 보라 사신은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손가락에 흉내를 멈추고 헤실헤실 웃었다.
남자는 길거리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허탕인가.’
남자가 찾으려는 사람은 어떤 SNS에 어떤 글을 올린 사람이었다.
남자는 휴대폰을 열어서 한 SNS를 확인했다.
[현 정부는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
[이탈리아 남부 임시 정부가 ‘선택자’를 볼 때마다, 요란하게 죽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치안 때문이 아니다.]
[‘선택자’가 양지의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해서 음지로 내몰기 위해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조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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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담은 SNS였다.
하지만 단 한 줄이 남자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선택자가 푸른 빛에 휩싸여 죽는 것을 본 적 있는가? 그것은 ‘선택자’가 ‘조직’을 거부해서 생기는 일이다.]
마치 여동생이 죽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남자는 그 직감을 더욱 강화하는 증거를 발견해 버렸다.
‘확실히 수상하군.’
길거리에 묘하게 ‘조직’의 인간이 많았다.
사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작전을 펼치는 ‘조직’이니만큼 어디에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 문제였다.
‘조직’의 헌병과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는, 청소부가 나타났다는 게 문제였다.
확실히 뭔가가 있었다.
조직이 청소부를 보낼 정도로 중요한 무언가가.
‘더 이상 여기 있는 것은 위험하겠어. 우선 돌아가야겠군.’
노인에게 관련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군.
남자는 협회의 청소부 ‘펭귄’을 눈에 똑똑히 담은 뒤, 호텔 방을 나섰다.
***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늦은 시간.
나는 달라붙어 오는 황금 사신들을 피해서 부소장실로 대피한 상태였다.
내가 집어던지지 않는 것을 깨달은 황금 사신들이 ‘엄마가 상냥해!’라고 외치며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상냥한 엄마 주간’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귀찮아져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달라붙어서, 상냥한 엄마 주간 조기 종료 위기였다.
고개를 돌리자, 서아는 새싹 사신과 함께 모니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집중해서 관찰하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수면실에 설치된 ‘영체 카메라’가 보내주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사실 연구원 시절이었다면 영체 카메라가 신기해 보였겠지만, 이젠 영체를 그냥 볼 수 있게 돼서 그런지 그렇게 신기하진 않았다.
화면에는 손가락만 했던 미니 새싹 사신이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새싹 사신보다 머리 하나 작은 정도로 자라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걸까?’
품에 안겨서 잠을 자거나, 같이 장난을 치면서 놀던 새싹 사신들이 처음 보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큰 새싹 사신이 미니 새싹 사신을 옆구리에 끼운 채, 반복적으로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면 작은 새싹 사신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곤 했다.
계속된 거부에 피곤해진 것 같은 새싹 사신은 미니 새싹 사신을 끌어안고 화분 위에 누워버렸다.
그리고 찹쌀떡처럼 부풀어 오른 미니 새싹 사신의 볼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서아는 홀린 것처럼 어깨 위의 새싹 사신을 잡아서 통통한 뺨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나도 갑자기 해보고 싶어져서, 서아 곁으로 다가가 새싹 사신의 터질 것 같은 볼을 톡톡 건드렸다.
새싹 사신이 아귀 사신처럼 커다랬다면 한번 깨물어 보고 싶은 볼때기였다.
그러던 도중, 화면 속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콕콕.
미니 새싹 사신이 큰 새싹 사신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큰 새싹 사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니 새싹 사신은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어떤 연구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자 큰 새싹 사신은 은은한 남색 빛을 뿜어내며 잎사귀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그 연구원의 주의를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구원이 자신을 바라보자, 열매를 똑 하고 떼어내서 연구원을 향해 내밀었다.
연구원이 홀린 것처럼 열매를 받아 가자, 그 연구원의 어깨 위에는 미니 새싹 사신이 올라가 있었다.
‘오. 저런 식이었나?’
나와 서아가 새싹 사신이 퍼져나가는 원리를 깨달은 밤이었다.
***
남자는 보라 사신을 어깨에 얹고, 익숙한 뒷골목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노인’이 운영하는 한산한 가게로 향하는 길.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중, 보라 사신이 깜짝 놀란 것처럼 어깨 위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다급한 표정으로 남자의 옷깃을 마구 잡아당겼다.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남자는 조용한 뒷골목을 빠른 속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인의 가게가 가까워지자, 비릿한 피 냄새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피 냄새.’
그 불길한 냄새에 남자는 한층 더 표정을 굳히고 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도착한 노인의 가게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건물 철거용 쇠공에 맞은 것처럼 구멍이 크게 뚫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
그 안에서 풍겨오는 짙은 혈향.
뚫린 구멍을 통해서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처참하게 죽은 노인의 시체가 있었다.
보라 사신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굉장히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온몸이 그림자로 까맣게 물들고, 그 그림자는 마치 끓는 것처럼 부글거리고 있었다.
노인의 시체는 커다란 쇠공에 맞은 것처럼 가슴 아래가 전부 짓이겨진 상태였다.
‘이 흔적은 ‘레킹 볼’인가.’
건물 철거용 쇠공을 휘두르는 ‘선택자’의 흔적이었다.
조직원이 왜 노인을 공격한 거지?
남자는 심상치 않은 상황을 느끼고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던 도중,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인의 손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오른손은 엄지손가락만 접어서, 마치 4를 표현하는 것 같았고.
나머지 손은 집게손가락만 뻗고 있어서 숫자 1을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41.
남자와 노인이 자주 사용하던 암호처럼 보였다.
41번 보관 장소.
그곳을 확인해야겠어.
남자는 노인의 부릅뜬 눈을 감겨주고, 폐허가 된 가게를 나섰다.
먼지와 부스러기로 뒤덮인 건물 밖으로 나선 그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입고 있는 검은 코트의 먼지를 털어냈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쇳소리가 울리며 거대한 남자가 가로등의 빛 속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총잡이. 너는 폐기 처분이다.”
총을 가볍게 쥐고 주변을 빠르게 훑는 푸른 눈동자의 ‘총잡이’.
커다란 쇠공을 질질 끌며 점점 거리를 좁히는 ‘레킹 볼’.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주변의 공기마저 팽팽해지는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