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세희 연구소에서 멀리 떨어진 박람회장에서는 커다란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멀리서 조그맣게 울리는 불꽃놀이 소리와 함께 하늘 한쪽을 수놓은 불꽃들이 은은하게 연구소를 비췄다.
대부분 직원이 퇴근했을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이 연구소 뒤뜰에 잔뜩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회식을 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일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미니 사신들 때문이었다.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미니 사신들은 자신의 애착 인간들이 연구소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평소 같은 하루였지만, 퇴근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세희 연구소는 난장판이 되기 시작했다.
가지 말라는 것처럼 바지 밑단을 꼭 잡고, 바닥에 쓰러져서 질질 끌려가는 황금 사신.
5조 4교대로 쉬고 있던 보안팀 직원들에게 구석에 숨어서 눈싸움하듯이 물방울을 던지는 푸른 사신.
강력한 힘으로 양발을 단단히 고정해서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든 검은 사신.
그리고 연구소 계단을 내려가려고 해도, 끊임없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새싹 사신.
평범한 연구소라면 “드디어 미니 사신들이 본색을 드러냈구나!”라고 소리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희 연구소는 평범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연구원들이었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자 다른 쪽에 생각이 닿았다.
‘혹시 뭔가 일이 있는 건가?’
‘밖에 위험한 오브젝트라도 돌아다니고 있나?’
언제나 오브젝트 탐지에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던 미니 사신들이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최근 퇴근을 하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었던 이세희 연구소장이었다.
“오늘은 축제다! 파티다!”
그 말과 함께 파티가 시작되었다.
연구원들은 널찍하고 잘 꾸며진 뒤뜰에서 박람회의 불꽃놀이를 보며 바비큐와 맥주를 즐겼고, 미니 사신들은 그런 애착 인간들의 근처를 뚜방뚜방 돌아다녔다.
그런 파티 분위기에 취한 연구원들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애착 사신과 놀고 있었다.
옴뇸뇸.
초콜릿을 냠냠 먹고 있던 어떤 황금 사신이 연구원이 먹고 있는 황금색 액체에 관심을 가졌다.
달아 보이지 않은 데다가 냄새가 좋지 않아서 황금 사신은 평소 술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의 경험이 쌓이고 애착 인간에게 관심이 많아져서 그런지, 많은 황금 사신이 맥주에 관심을 보였다.
“먹어볼래?”
평소 연구원들은 황금 사신들이 왠지 애기들처럼 느껴져서 술을 주기 꺼렸다.
그때 한 연구원이 용감하게도 조그마한 황금 사신 전용 컵에 맥주를 조금 따라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연구원이 ‘황금 사신에게 술을 줘도 되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연구원은 ‘어차피 황금 사신은 인간이 아니잖아!’라는 논리로 꿋꿋이 황금 사신에게 술을 넘겨주었다.
황금 사신은 수상한 냄새를 풍기는 맥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혀를 내밀어 맥주 표면을 살짝 핥았다.
그렇게 맥주 맛을 본 황금 사신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인상을 조금 찡그리더니, 한 번에 마셔버렸다.
베-.
황금 사신은 맛없는 것을 먹은 것처럼 혓바닥을 내밀었다.
그리고 도대체 왜 이런 걸 마시냐고 하는 것처럼 연구원의 뺨에 뚜시를 날리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은 그렇게 잠시 주먹을 날리다가, 흥미를 잃어버렸는지 다시 탁자 위로 폴짝 뛰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콩’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져 버렸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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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 버린 황금 사신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우리 황금 사신이, 취했네?”
연구원은 어딘지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황금 사신을 보며, 황금 사신의 말랑한 볼을 콕콕 찔렀다.
그러자, 황금 사신은 간지러운 것처럼 히히 웃더니, 연구원의 손가락을 잡아서 가볍게 ‘앙’ 물었다.
원래도 애교가 많은 황금 사신이었지만, 술을 먹고 나자 한층 더 잘 웃으면서 자주 깨물었다.
그것을 본 연구원들은 자신의 애착 사신에게도 맥주를 권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세희 연구소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파티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모든 미니 사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술에 취했던 황금 사신들조차 전신에서 황금색 불꽃을 뿜어내서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엄마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 위험해!’
‘엄마가 부르고 있어!’
그리고 마치 전파를 수신하는 것처럼 더듬이를 쫑긋 세우던 미니 사신들은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세희 연구소를 지키기 위해 소수의 인원만 남기고 대부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왠지 이렇게 될 것 같긴 했어.”
연구원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이바이 하며 손을 흔들고 있었던 황금 사신이 있던 손바닥 위를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가 어느새 조용해진 파티장에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
나는 인형 박람회에 마련된 가장 높은 건물 위에 올라서,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손을 열정적으로 흔들었다.
하지만 내 손짓은 악기들을 조율하는 대신, 공간과 인형들을 찢어버리고 있었다.
‘부숴도 부숴도 끝이 없네.’
다행히도 인형들의 전투력은 형편없었다.
심지어 ‘아귀급’이라고 불리는 경호 인형조차 허위 과장 광고이었던 건지, 너무 허약했다.
다만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협회 인형들은 아무리 죽이고, 파괴해도 계속해서 부활했다.
‘눈’으로 보이는 파괴 조건은 <인형 여왕의 죽음>이었기에, 인형 여왕이 이 박람회장에 있지 않다면 당장 해결이 불가능하겠지.
다행히 ‘인형 여왕’의 위치는 명확히 밝혀진 상태였다.
아귀에게서 얻은 빛나는 추적의 더듬이로도 알아낼 수 있었고, 하늘을 점점 일그러트리고 있는 색채 우주를 자세히 살펴봐도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서울 한 곳을 중심으로 ‘색채 우주’가 점점 번져나갔다.
아무래도 이 협회 인형을 만든 미치광이가 색채 우주를 불러내서 이 사달이 난 것 같았다.
하지만 인형들에게 위협을 받는 인간들 때문에 도무지 박람회장에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박람회장에 있던 사람들도 점점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협회 인형이 무슨 좀비라도 되는 건지, 인형에게 상처 입거나 근처에 오래 있으면 ‘감염’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감염된 인간들은 마치 자신이 인형이 된 것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브젝트가 되었다면 그냥 갈아버렸을 텐데, 그들은 여전히 인간이었다.
‘….’
인간은 오브젝트가 아니기에 죽이기는 너무나 쉬웠다.
마음 같아선 짝짝 콩콩콩으로 박람회장 전체를 싱크홀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는데, 그러면 너무 많은 장작이 죽어버리니까 꾹 참고 있었다.
인형들은 공간 절단으로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인간들은 주황달에서 얻은 ‘확률 조작’ 능력으로 넘어트리고 데굴데굴 굴리며 시간을 끌었다.
내 ‘눈’으로 확률을 비틀면 반드시 뭔가가 파괴되거나 죽어야 했지만, 주황달의 능력은 반드시 파괴나 죽음을 동반하지 않아 이런 상황에 알맞았다.
사실 이럴 때는 미니 사신들을 불러야 하는데, 아무리 시도해도 미니 사신 정원이 열리지 않았다.
분명 색채 우주 때문에 그런 거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박람회 사람들을 포기해도 되는 거 아닐까?’
‘사실 박람회장에 놀러 온 것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겠지.’
‘내가 그들의 희생정신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아.’
게다가 박람회장에는 위태로운 구조물과 폭발물과 기름, 가스등이 널려있었다.
어서 빨리 싱크홀을 만들라고 판을 깔아주는 수준!
‘어쩔 수 없네. 너무 안타깝지만, 관람객의 희생정신을 무시할 순 없지.’
짝짝.
그렇게 박수를 두 번 치는 순간.
‘엄마!’
‘도와주러 왔어!’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황금 별빛이 쏟아지듯 황금 사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유령화-겹치기로 인형에 황금 사신 모양 구멍을 뚫는 무시무시한 우박이었다.
이와 동시에 하늘에서 수많은 구름 고기들이 밀려 들어와 인간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름 고기들은 감염된 사람들을 하나씩 삼켜 격리했다.
인형 한 마리당, 황금 사신 한 마리.
장작 하나당, 구름 고기 한 마리.
황금 사신들은 순식간에 골치 아픈 박람회장을 정리하고는 나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할 테니, 엄마는 색채 우주의 외신을 잡으라는 웃음이었다.
***
송파구 외곽에 위치한 제임스 타워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순식간에 요새화를 마쳐버렸다.
제임스 타워의 단단한 외벽은 인형들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막고 있었고.
높은 곳에 설치된 기관총은 위협적인 대형 인형들을 순조롭게 파괴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펴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인형들은 오브젝트 탄으로 죽여도 부활하는군. 이대로 가면 탄약이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지금 페이스대로 인형 숫자가 늘어나면, 대략 한 달 정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래, 지금 같은 페이스로 인형이 침입할 것으로 생각하는 건 너무 낙관적인 판단이겠지.”
그도 그럴 것이 이 인형 사태는 제임스 타워 인근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였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서울에 인형 아포칼립스가 발발한 셈이었다.
제임스가 1층 로비로 돌아와서 물자들을 체크하고 있을 때,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주먹으로 쇠문을 내리치는 소리였다.
“살려주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외부를 비추는 CCTV를 확인한 직원이 제임스에게 말했다.
“겉으로 보기엔 인간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할까요?”
“인형 확인 테스트를 해야겠지.”
그 말을 들은 직원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뭔가를 들고 가서 입구에 뚫린 조그마한 구멍 앞에 내려놓았다.
“이 구멍 앞에 얼굴을 가져오세요!”
구멍에 달린 조그마한 문을 열고, 직원이 어눌한 한국어로 외쳤다.
그러자 초췌한 남성의 얼굴이 구멍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때찌.
그리고 튀어나오기 무섭게, 구멍 앞에 서 있던 황금 사신이 남자의 뺨을 때렸다.
“인형이군.”
미국에서 개발된 어떤 장비보다도 정확한 판정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