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달에 의해 밀림처럼 변해버린 제임스 우주 정거장.
유례가 없을 정도로 거대했던 제임스 우주 정거장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구조물이 밀림 한복판에 처박혀 있었다.
제임스 우주 정거장의 핵심인 제어실의 일부였다.
새하얀 외벽의 우주 정거장 일부가 온전하게 지면에 처박혀 있으니, 왠지 모르게 밀림에 만들어진 연구 시설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그런 제어실 안에서 한 남자가 제어 콘솔을 이리저리 조작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제어실의 외부를 비추는 CCTV에는 처참하게 갈기갈기 찢긴 동료의 시체들이 비치고 있었다.
동료들은 밀림으로 변해버린 밖에서 식량과 물을 구하기 위해 호기롭게 밖으로 나섰지만, 저렇게 시체가 되어버렸다.
동료들을 처참하게 죽인 것은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공룡이었다.
흔히 알려진 ‘벨로시랩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제 벨로시랩터랑 달리 깃털도 없고, 덩치가 사람이랑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가짜’.
마치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가짜 벨로시랩터들은 제어실 밖으로 나온 동료들을 일제히 습격해서 죽여버리더니,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어디냐.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남자가 중얼거리며 콘솔을 조작할 때마다, 제어실 주변을 비추는 CCTV 화면이 휙휙 돌아가고 있었다.
기이이이익.
모터 구동음과 함께 CCTV를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제어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벨로시랩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랩터는 동료들이 쏜 총에 맞아 죽은 랩터 시체뿐이었다.
“선배, 그만 해요. 랩터들은… 모두, 떠나가 버린 것 같아요.”
CCTV를 같이 확인하던 후배는 우울한 표정으로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후우.
남자는 애써 슬픔을 참는 것 같은 후배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미안하다.’라고 짧게 말하며 CCTV 확인을 멈췄다.
안타깝게도 식량 탐사대에 후배의 약혼자가 있었지.
후배는 억지로 미소를 띠며 남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밖에 저런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제어실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겠죠?”
나름대로 밝은 주제를 선택한다고 선택한 거겠지만, 후배가 선택한 주제는 별로 밝아 보이지 않았다.
“글쎄, 어쩌면 몇몇은 살아 있을 수도 있겠지.”
남자는 애써 긍정적으로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당연히 살아남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주에서 오브젝트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안전지대가 제어실인데도 이런 상황이니 당연한 판단이었다.
비상용 통신 안테나.
대 오브젝트용으로 만든 외벽.
오브젝트 감시용으로 설치한 대량의 CCTV.
마지막으로 오브젝트를 활용해서 우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비상 발전 시설까지 있었다.
이런 풍족한 설비를 가진 제어실조차 그저 버티면서 구조를 기다릴 뿐이었는데, 다른 곳에 있던 직원들은 죽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 순간, 후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선배! CCTV 화면 좀 확인해 보세요!”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서 화면을 확인해 보자, CCTV 화면 끄트머리에 조금씩 움직이는 후배의 약혼자가 보였다.
화면에 비친 그의 가슴은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상하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멀어서 잘 안 보이는군. 게다가 상반신 밖에 안 보여.’
CCTV의 시야각과 가동 범위의 한계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빨리, 빨리 나가서 구해줘야 해요!”
남자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후배를 제지하고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대 오브젝트 탄환이 장전된 권총을 챙겼다.
“내가 나가서 확인해 볼게.”
후배는 자신이 나가겠다고 주장했지만, 다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건장한 남성을 부축해서 옮기려면 후배가 나가봐야 의미가 없었다.
“근처에 랩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보안 철저히 하고.”
남자는 권총을 뽑아 들고 천천히 제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외부랑 이어지는 문을 열고, 천천히.
습기가 가득한 공기에는 짙은 혈향이 감돌고 있었다.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가 가득했다.
‘랩터들은 왜 기껏 사냥한 사람들을 남기고 떠나간 걸까?’
고개를 어디로 돌리든 시체가 잔뜩.
‘아무래도 시체를 치워야 할 것 같은데, 겨우 두 명으로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시체와 피 냄새는 분명 다른 포식자를 부를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사방을 조심하며 CCTV가 찍힌 곳까지 걸음을 옮기자, 잔해 뒤에서 튀어나온 동료의 상반신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허, 정말로 살아남은 건가.’
벨로시랩터들이 생존자를 남겨두고 떠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회였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아, 동료가 훤히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자, 남자는 허탈한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 젠장맞을 영화 같으니라고.”
바닥에 쓰러진 동료는 상반신밖에 남지 않은 시체였다.
그리고 CCTV 범위 바로 밖에서 랩터가 그 시체를 건드리고 있었다.
마치 미끼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낚는 낚시꾼처럼, CCTV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었다.
‘역시 오브젝트 현상인가. 야생 동물이라기엔 지능이 너무 높아.’
그리고 남자와 시선을 마주친 랩터는 마치 재미있다는 것처럼 웃는 듯했다.
탕! 탕!
남자는 도망가기 위해 뒷걸음질 치며 권총을 마구잡이로 발포했지만, 랩터는 이미 한번 겪은 총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랩터는 능숙한 동작으로 권총의 사선을 피하며 장애물 뒤로 숨어들어 갔다.
남자는 그렇게 위협사격을 가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고개를 돌린 순간 랩터의 거대한 입이 머리 위로 덮쳐 내렸다.
***
제임스가 만든 골든-메카-티라노 로켓 안에서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전띠까지 매고 두근두근.
하지만 로켓 발사를 그렇게 순식간에 할 수는 없는지, 생각보다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심심하네.’
나는 심심해져서 내 손바닥 위로 황금 사신을 하나 소환했다.
황금 사신은 ‘짠!’ 하는 자세로 내 손바닥 위로 튀어나왔다.
‘엄마!’
그리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심심풀이로 황금 사신의 말랑말랑한 볼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더니, 황금 사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생소해 보이는 주변 환경을 보고는 호기심이 돋아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 옆에 마련된 조그마한 미니 의자를 발견하더니, 나를 따라서 의자에 앉고 안전띠를 맸다.
처음에는 로켓 안에 영화관 미니어처 같은 게 있는 줄 알았는데, 미니 사신 전용 좌석이었구나.
의자에 앉아 있는 것뿐인데도 즐거운지, 양발을 휘적휘적 흔들면서 나를 향해 계속 기대된다고 의지를 쏟아내었다.
황금 사신에겐 열차를 타고 멀리 소풍 가는 기분이려나?
어느새 황금 사신이 미니 사신 네트워크에 정보를 흘렸는지, 내 발밑에서 미니 사신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좌석이 차례차례 채워지더니, 총 100개의 의자가 전부 채워지자, 로켓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출발!’
그리고 미니 사신들의 행복한 의지와 함께 로켓이 우주를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완전히 밀림이 되어버린 제임스 우주 정거장.
여자는 괴생명체의 밑에 숨어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갑자기 공룡이라니!’
괴생명체 밑에 숨어있던 그녀가 만난 것은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였다.
이니, 어쩌면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닐 수도 있었다.
특급 오브젝트 ‘녹색 달’이 만들어 낸 것일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진짜든 아니든 위협적인 괴물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인간은 한입에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
이미 그 티라노사우루스는 떠나버렸지만, 여자는 공포에 질려 괴생명체 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상당한 시간이 흘러 정글에 천천히 어둠이 드리울 때가 돼서야, 여자는 괴생명체 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숨겨 줘서 고마워.”
여자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괴생명체를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밍밍!”
괴생명체의 온기를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녹색으로 빛나는 이질적인 달이 하늘에 떠올라 있었다.
특급 오브젝트 ‘녹색 달’.
특급 오브젝트이니만큼 아마 미국 오브젝트 협회에서도 손쓸 방법이 없겠지.
최악의 경우, 구조대를 보내지 못할 가능성도 높았다.
남은 희망은 단 하나.
‘회색 사신이가 놀러 오면 좋을 텐데….’
‘그러면 황금 사신이들도 잔뜩 놀러 오겠지?’
여자가 작은 희망을 품으며 속으로 웃자, 품 안의 괴생명체가 여자의 팔뚝을 약하게 물었다.
“밍!”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괴생명체 밍밍이의 행동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마치 여자의 생각을 읽고서, 다른 아이에게 한눈팔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
위를 올려다보면 끝없는 별 무리.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지만 커다란 지구.
발을 디딜 땅도 없이, 그저 떠 있기만 한 상태라서 오랜만에 가슴 안쪽이 간질간질했다.
물리 면역과 유령화를 얻은 뒤 느낀 적이 거의 없는 약간의 스릴감이었다.
히히.
이 간질간질한 감정만으로도 우주에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내 뒤편으로는 우리를 우주 정거장 근처까지 데려다준 골든-메카-티라노 로켓이 보였다.
아마 이 로켓의 목적은 정거장에 도킹하는 것이었을 테지만,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정거장 근처에서 작동을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 골든-메카-티라노 로켓을 배경으로 황금 사신들이 우주 공간을 유영하고 있었다.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하고 빙글빙글.
황금 사신들이 서로 밀치고 붙잡고 놀다 보니, 오래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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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조금만 떼도 서로 밀쳐내서 우주 미아가 될 뻔한 녀석들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지면에서 멀어져서 그런지 조금 나른한 기분이었는데, 황금 사신들은 마치 술을 먹은 것처럼 조금 들떠 보였다.
다른 미니 사신들은 졸린 표정으로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는데, 황금 사신들은 오히려 생기가 넘치는 것 같기도 했다.
태양 빛을 바로 받아서 그런가?
‘가자!’
둥실둥실 떠다니며 놀기 바쁜 황금 사신들을 그러모아서, 의지를 전달했다.
목적지는 정면에 있는 우주 정거장!
정거장의 중심에 자리 잡은 거대한 녹색 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