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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포근한 아침 햇살의 손길에 잠에서 깬 나는 부스스하게 눈을 비볐다.

노숙과 산속 생활에 익숙해져서 어디에서든 편하게 잘 수 있다고는 해도 역시 제대로 된 잠자리보다 못한 건 사실이라.

“으응….”

오랜만에 푹신한 침대와 이불의 맛을 느꼈더니 일어나기 힘들어….

이불을 꼭 끌어안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포근함을 만끽했다.

이런 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 하는 거겠지.

마음 같아서는 이 나른함 속에 영원히 젖어있고 싶었지만.

“…일어나야지.”

계속 뭉그적댈 순 없으니까.

안락한 둥지에서 벗어나 벗어두었던 케이프를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

“오, 아가씨. 일어났나?”

끄덕.

여관 주인의 인사를 가볍게 받으며 여관을 살폈다.

저니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네.

“식사할 텐가?”

“고기반찬 있어?”

“돈만 준다면야 뭔들 만들어 줄 수 있지!”

“돈은 충분히 있으니까 제일 맛있는 거로 만들어 줘. 야채는 조금만 넣고.”

“알겠네! 일 인분이면 되나?”

“음… 이 인분으로.”

언제 일어날진 모르지만 내가 혼자 먹고 있는 걸 보면 또 귀찮게 하겠지.

현명한 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법.

오늘의 난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성장했다.

“오늘 아침에 신선한 오크 고기가 들어왔는데, 괜찮나? 몬스터 고기를 싫어하는 손님이 많아서 말이지.”

“응, 괜찮아.”

몬스터 고기를 꺼리지 않는다고는 해도 모든 몬스터를 먹는 건 아니다.

인간에 가깝게 생겼거나, 입에 대지 못할 정도로 징그럽게 생긴 몬스터는 나도 싫거든.

아, 추가로 맛없는 것도.

그게 별미라면서 좋아하는 놈들도 있지만 난 그런 부류는 아니라서.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나한테 오크 고기는 먹을 수 있는 것의 범주에 속했다.

전생에 있던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이종족에 가까운 오크와 다르게 여기 세계의 오크는 더 위험한 멧돼지 정도의 취급인 데다 생긴 것도 돼지와 무척 흡사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지능도 딱 멧돼지 수준이고.

그리고 다른 것보다….

“오크 고기, 맛있는데.”

오크 고기가 비싼 덴 모두 이유가 있다.

그리 강하진 않다고 해도 몬스터인 이상 당연히 멧돼지보다 잡기 어렵지만 그만큼 맛있거든.

도대체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네.

“뭘 좀 아는 아가씨군!”

여관 주인도 내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코카트리스 고기도 잘 먹고, 저번에 오크 고기 햄으로 만든 샌드위치도 가져온 적 있는 저니니까 아마 오늘 아침도 잘 먹겠지.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주인이 요리를 내오고, 그와 동시에 저니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좋은 아침!”

나를 발견한 저니가 사뿐사뿐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잘 잤어, 카나?”

“응.”

“우와… 카나가 주문했어?”

맛있는 냄새….

코를 킁킁거리며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오크 스테이크의 냄새를 맡은 저니가 입맛을 다셨다.

“먹어.”

“어, 정말?! 고마워!”

내 말에 냉큼 앉은 저니가 나이프를 들었다.

저니를 보던 나도 나이프를 들어 고기에 가져다 댔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나이프에 닿은 고기가 부드럽게 갈라졌다.

일단 굽기는 합격인데 과연 맛은 어떨는지.

냠.

우물우물-

“…맛있네.”

하긴, 이렇게 잘 구워진 고기가 맛이 없을 리 없지.

고기 위에 부은 소스도 너무 짜거나 달지 않고 딱 적당하고.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안 따지고 가장 먼저 보인 여관에서 묵은 건데, 아무래도 맛집을 찾은 것 같다.

“재료가 좋으니 요리도 맛있을 수밖에!”

한가롭게 카운터에 기대 우리가 먹는 걸 지켜보던 여관 주인이 흐뭇하게 웃었다.

“재료? 무슨 고긴데?”

“오크 고기.”

“…오크?”

우뚝.

신나게 움직이던 저니의 손이 우뚝 멈췄다.

“내가 생각하는 그 오크는 아니지…?”

“몬스터를 생각한 거면 맞는데.”

땡그랑!

저니의 손에서 포크와 나이프가 스르르 빠져나왔다.

“오, 오크 고기라니…. 내가 지금까지 먹던 게 오크 고기였단 말이야? 우욱…! …뭐? 코카트리스 고기는 잘만 먹지 않았냐고? 야!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아가씨, 왜 그래? 맛이 별론가?”


“아, 아뇨…! 오크 고기는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하하! 원래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고 하는 고기라네. 값도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은 물건인데, 아가씨들은 운이 좋군!”


“아, 아하하….”

웃고 있지만 꼭 우는 것 같은 저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왜 저런담.

“기분이다! 부족하면 말하게. 얼마든지 더 줄 테니!”


“아, 아뇨…. 그렇게 귀한 걸 공짜로 먹을 순 없죠….”


“어허, 사양하지 말게! 오랜만에 맛을 아는 손님들을 만난 게 기분 좋아서 그런 거니까. 사도들인가 뭔가 하는 놈들은 이런 걸 보면 일단 기겁부터 한단 말이지. 에잉, 이 맛있는 걸 모르고 말이야.”


“저도 사도인데… 그냥 사양하면 안 될까요…?”

냠냠.

저니가 떠들거나 말거나 나는 스테이크를 먹는 데 집중했다.

이렇게 맛있는데, 왜 안 먹고 저러고 있는 걸까.

따뜻할 때 먹어야 더 맛있을 텐데 말이지.

* * *

식사를 마치고, 하룻밤 묵었던 여관에서 나오는 길.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서자 저니가 허리를 숙이고 헛구역질했다.

“윽… 토할 것 같아.”

아까부터 욱욱거리더만, 속이 안 좋은 건가?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저니가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카나… 오크 고기라고 말해주지….”

“?”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지금까지 그러고 있던 게 오크 고기를 먹어서 그런 거였어?

“맛없었어?”

“맛있었어. …아니! 맛이 중요가 아니야!”

나는 친절하게 저니의 말을 고쳐주었다.

“중요한 게.”

“맛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면?”

“오크를 먹은 게 문제라고…!”

“그게 왜? 저번에도 먹었으면서.”

“…저번에? 언제?”

그 말에 나는 기다란 무언가를 잡고 먹는 시늉을 했다.

그러니까, 샌드위치를 먹는 시늉을.

“저번에 먹었던 햄, 그것도 오크로 만든 건데.”

안타깝게도 내 혀는 한 번 맛본 음식의 재료를 모두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지 않다.

덕분에 아무거나 주워먹고 살 수 있었으니 마냥 안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가 저번에 먹은 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오크 고기가 다른 돼지고기와 확연하게 차이 나는 맛을 가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햄을 구한 건지, 참 재주도 좋아.

“그 햄이 오크로 만든 거였다고…?”

설마 자기가 산 햄의 정체도 몰랐던 걸까.

충격을 받았는지 저니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나는 나대로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산 게 뭔지도 모르는 게 말이 돼?’

먹을 수 있는 거라서 다행이지, 독이 들었거나 해서 못 먹는 거였으면 어떡하려고.

그런 거를 길거리에서 팔 리 없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도 있잖아.

이런 걸 보고 백치미라고 하는 걸까?

바보 같은 저니를 뒤로 하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갈 길이 먼 마당에 저런 바보짓에 어울려줄 시간 같은 건 없다.

“같이 가!”

좁다란 골목길을 나와 대로에 접어들었다.

아침을 먹는 사이 시간이 꽤 흘러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지금 어디 가?”

“상단.”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

말이나 마차를 살까도 생각했는데, 돈은 아낄 수 있으면 아껴야지.

호위를 하든 동행 요청을 하든, 세데스나 그 근처로 향하는 상단이 있다면 슬쩍 껴서 가고, 만약 괜찮은 상단이 없다면 그때 살 계획이다.

상단, 상단….

중얼거리던 저니가 가슴을 활짝 폈다.

“나에게 맡겨!”

“….”

상단 호위는 나보다 용병인 그녀가 적합….

…하기는 한데,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원래도 썩 믿음직스럽진 않았는데 방금 그 얼빵한 모습을 보고 나니 그나마 있던 믿음마저 사라져 버렸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으니 저니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하며 자신만만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리베리 오르도 지부였다.

그런데, 뭔가 잊고 있지 않아?

“나, 용병 아닌데.”

용병이란 족속을 좋아하지 않는 건 둘째 치고, 나 같은 외부인이 의뢰를 받을 수 있는 거야?

내가 괜히 직접 찾아가려고 한 게 아닌데.

“어… 괜찮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않았던 모양인지 저니의 말에 담긴 자신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힘낼게!”

대충 어떻게든 해보겠단 뜻일까.

주먹을 불끈 쥔 저니는 나를 남겨두고 리베리 지부 안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나는 근처에서 팔짱을 끼고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다.

“….”

그러고 있기를 한참.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이목이 조금씩 나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저거 설마….”


“…는 거 같지?”


“왜 …기에?”

“…거슬리네.”

후드 쓴 사람 처음 보나. 왜 사람을 보고 저렇게 쑥덕대는 거야.

아니, 자세히 보니까 쑥덕대는 놈들의 대부분이 사도들이다.

여기까지 내 소문이 퍼진 모양이네.

다행히 그렇게 성가시게 굴던 놈들이 조용히 눈치만 살피는 걸 보면 사도들도 공권력의 맛이 무섭긴 한 모양이다.

“카나…!”

저니가 폴짝거리며 뛰쳐나왔다.

“해냈어!”

“…됐어?”

“응!”

이게 될 줄이야….

어쩌면 내 생각과 다르게 리베리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목적지는?”

“리베리!”

자유 용병 도시 리베리.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며 저니가 활짝 웃었다.

“리베리….”

제국의 북동쪽에 있었지, 아마?

동쪽 끝, 거기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세데스 성국과 거리가 좀 있긴 해도 그렇게 나쁘진 않네.

방향이 완전히 어긋난 것도 아니니까.

“언제 출발이야.”

“음, 10….”

“10시라.”

여유가 없긴 한데 어차피 더 챙길 것도 없으니 괜찮으려나.

그러나 저니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이제 9분 남았어.”

“…?”

“우리, 달려야 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손을 꼭 잡은 저니가 길거리를 질주했다.

“뭐야?!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아이고, 내 어깨 부서지겠네!”


“아야야…. 죄송해요, 지금 너무 급해서…! 으악! 죄송해요!”

“에휴….”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일이 잘 풀리나 했다.

저렇게 부딪히면 어깨가 남아나긴 할련지.

나는 지나가는 사람을 피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부딪치려고 하는 건지 모를 저니의 질주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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