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아 온라인을 즐기는 플레이어의 대부분은 호위 의뢰(퀘스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기간이 너무 길다.
의뢰마다 다르다고는 해도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며칠이나 되는 시간 동안 꼼짝없이 묶여있어야 하니 인내심이 어지간히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지겨울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건 보상이다.
이것 또한 의뢰마다 달라서, 보상이 후한 의뢰도 있지만, 의뢰를 수행할 시간에 몬스터를 한 마리라도 더 때려잡는 게 이득인 경우도 있다.
특히, 저레벨의 플레이어가 받는 의뢰의 경우엔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 외에도 플레이어들이 호위 의뢰를 꺼리는 덴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 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것은 시간이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실리아 세계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거의 동일하게 흘러간다.
즉, 호위 의뢰를 받아 몇 시간 동안 호위를 하게 되면 현실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시간을 써야 하는데, 일과가 끝나고 자기 전에 잠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을 리 없었다.
[호위 퀘스트 ㄹㅇ 개꿀인데??]
보상 안 좋은 곳 거르고, 괜찮은 곳 가서 일주일 뛰니까 보상 오짐;
안 하는 게 바보인 수준인데 왜 안 함?
[댓글]
-선생님. 모든 사람이 선생님처럼 백수인 게 아닙니다…
┗’시간 빌게이츠’라고 해주겠나?
┗백수 새끼
┗ㅅㅂ;
-ㄹㅇ 인생 온라인 하는 놈들 개많네. 그런 똥겜 왜 함?
┗제발 밖으로 좀 나가!!!
오죽했으면 이런 글까지 있을까.
아무튼, 그런 이유들로 호위 의뢰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실리아 세계의 원주민인 NPC들이 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건 저니도 마찬가지였다.
역마살이 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주 쏘다니는 저니에게 있어 호위 의뢰란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럼에도 저니는 호위 의뢰를 받았다.
그녀가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직업이 스트리머이기 때문이다.
게임 전문 스트리머는 아니지만, 방송을 켜고 게임을 하면 먹고 살 수 있는 덕에 저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시간의 부담을 덜 느낄 수 있었다.
‘이것도 규모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지만….’
저니는 규모가 작은, 속된 말로 ‘하꼬’ 스트리머는 방송만으로 먹고 살 수 없어서 다른 일을 병행하며 방송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의뢰를 받는다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카나는 플레이어가 아닌 NPC.
그러니 카나와 같이 다니는 이상 어차피 시간은 쓸 수밖에 없다.
“카나의 의견도 들어주고, 퀘스트 보상도 받고. 이런 걸 보고 일석이조라고 하는 거겠지?”
-우리는 이걸 기생이라고 하기로 했어요
-이 버스 서울 가나요??
-무임승차는 30배 내야 하는데
“버스가 아니라 마찬데? 푸흡! …아, 미안.”
-?????
-????????
-???
-진짜 나쁜 말 마렵네;
-PK 함 더 갈까?
“…그건 좀 참아줘.”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저니가 힘없이 중얼거리며 과거를 떠올렸다.
‘…과거라 해봤자 고작 하루 전이지만.’
무슨 연예인 팬미팅도 아니고, 카나를 직접 보겠다며 달려온 사람들.
‘게다가 나와 싸워서 이기면 카나가 기념품을 준다는 이상한 소문까지 퍼지고….’
싸움이 끝나면 또 싸우고, 그 싸움도 끝나면 또또 싸우고.
말리기는커녕 부추기던 카나를 떠올리면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가장 억울했던 건 따로 있었다.
“나는 왜 선물 안 주냐고…! 나도, 나도 카나한테 선물 받고 싶었는데!”
저니가 흑흑 우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채팅창의 반응은 영 싸늘했다.
-비틱 에반데ㅡㅡ
-있는 놈이 더 하다더니…
-험한 말 참기 레벨 9999999
-님은 카나랑 같이 다니잖아요;
저니는 현재 카나와 같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와 싸워 이긴 사람들처럼 선물을 받진 못했지만, 대신 그들은 꿈에도 못 꾸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카나.”
“?”
포옥.
‘이렇게 껴안는 거라든가.’
저니는 마차 옆자리에 앉은 카나를 꼭 끌어안았다.
“….”
후드를 눌러써서 표정이 보일 리 없건만, 저니는 카나가 후드 아래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짧은 힐링 타임을 끝낸 저니가 팔을 풀자, 카나는 저니에게서 좀 더 떨어진 구석으로 들어갔다.
그래봤자 마차 안이라서 닿지 않을 리 없는데.
소동물 보는 듯한 눈으로 보던 저니가 혀를 쏙 내밀었다.
“흐흥. 부럽지?”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메세지된 삭제입니다.
-?? 뭔가 이상한데
저니의 기만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는 시청자들.
불을 지른 방화범이 끓어오르는 채팅창을 못 본 체 하니, 애꿎은 매니저들만 죽어 나갔다.
같은 마차에 타고 있던 용병이 푸근하게 웃으며 저니에게 말을 걸었다.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자매인가요?”
“맞아요. 친자매는 아니지만요.”
“보기 좋네요.”
“후후, 감사합니다.”
용병의 말에 날조로 답하는 저니.
그러나 마차 안에 있는 사람 중 저니의 거짓말을 폭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리아인과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도님은 처음 봤어요.”
“그런가요? 아참, 그냥 저니라고 부르시면 돼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그러면 저니 님이라고 부를게요. 제 이름은 캐서린이에요.”
“편하게 저니라고 하셔도 되는데….”
캐서린이 부드럽게 웃었다.
“에델 님의 부름을 받은 분께 제가 어찌 그러겠어요.”
“아하하….”
부드러운 거절에 저니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캐서린의 태도는 많은 NPC들이 플레이어를 대하는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에델의 사도에게 경외를 표하는 반응.
비교적 덤덤하게 대하는 NPC들도 있지만,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 또한 같은 NPC들을 대할 때보다 플레이어를 대할 때 더 존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리아인에게 에델은 그만큼 큰 의미를 가진 거겠지.’
무려 직접 하계에 강림한 적도 있다니까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플레이어인 저니 입장에선 그다지 와닿는 얘기는 아니었다.
저니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은 급 용병이에요. 저니 님은…?”
“저는 금 급이요.”
“와, 저보다 어리신 것 같은데 벌써 금 급이라니….”
‘역시 에델 님의 부름을 받은 분답네요.’
혹은,
‘역시 사도님이네요.’
저니는 캐서린의 감탄 속에 숨겨진 말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정작 더한 사람은 옆에 있지만.’
저니의 눈이 순간적으로 카나를 향했다가 다시 원위치를 찾았다.
진짜 재능 있는 아이를 옆에 두고 경탄을 받고 있으려니 저니의 속이 간질거렸다.
캐서린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호위가 적어서 걱정했는데, 저니 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아, 아하, 아하하….”
안도하는 캐서린의 말에, 그녀와 똑같은 버스 승객에 불과한 저니가 다시금 멋쩍게 웃었다.
* * *
덜컹, 덜컹.
일행을 실은 마차가 울퉁불퉁한 흙길을 달렸다.
간혹 바퀴가 툭 튀어나온 곳을 밟으면 마차가 덜컹 흔들리며 마차 안에 앉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아야야… 엉덩이 아파 죽겠네…. 전투 중 통각 수치는 줄일 수 있으면서 도대체 이런 데선 왜 적용이 안 되는 거야?”
당연히 그 사람들엔 내 옆에 앉은 저니도 포함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이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덜컹거릴 때마다 퉁 튀어 오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런 비슷한 놀이 기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동그랗게 생기고, 마구 흔들리는….
잡힐 듯 말 듯 약 올리며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입술을 깨물었다가, 이내 포기하고 훌훌 털어버렸다.
“카나는 괜찮아?”
생각을 갈무리하는 사이 저니가 나를 돌아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그때 영 좋지 않은 곳을 밟았는지 크게 덜컹거리는 마차.
그에 질세라 저니의 몸도 따라서 솟구치고, 그대로 천장에 쾅.
쾅!
“악!”
“괜, 괜찮으세요?”
“으으…. 괘, 괜찮아요…!”
혀는 깨물지 않았는지 저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고통에 젖어 있을지언정 뭉개지진 않았다.
마차 천장과 요란한 인사를 나눈 머리를 쓰다듬던 저니가 앗, 하고 작은 탄성을 냈다.
“카나 멀쩡해. 어떻게?”
“…?”
부딪히면서 언어 능력이라도 잃었나?
혀를 쯧쯧 차니 저니가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 마차 움직이잖아. 근데 카나는 멀쩡해. 어떻게?”
음, 언어 능력이 망가진 게 아니라 그냥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그런가 보네.
여전히 이상하지만 이번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마차가 덜컹거려도 흔들림 없이 좌석에 붙어있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지.
근데, 알려준다고 해도 못 따라 할 텐데.
“마나를 쓰면 돼.”
“마나를? 어떻게?”
“….”
설명해 주면 알아들을 수는 있고?
그런 의미를 담아 지긋이 바라봤다.
대검 삐약이가 학구열도 뛰어나고 재능도 뛰어난 학생이라면, 저니는 학구열과 재능 둘 다 별로인 학생이다.
물론 전투 쪽의 이야기라 언어 쪽은 다르지만.
아무튼, 내 분석대로 학구열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저니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그 대신 엉덩이를 움직여 내 옆에 찰싹 붙었다.
“…뭐 하는 짓?”
“이렇게 있으면 나도 멀쩡할 거야.”
저니는 황당하게 보는 내 시선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이번엔 내 팔 안쪽에 자신의 팔을 끼워 넣어 팔짱을 꼈다.
…진짜 어이가 없네.
“이거로 완- 우왓?!”
덜컹!
저니의 엉덩이가 붕 떠올랐다가, 잠시 허공에 머문 후 떨어졌다.
“왜 안 되지…?”
‘…되겠냐.’
내 팔이 안전벨트도 아니고.
“앗.”
한숨을 쉬며 팔을 빼내자 저니가 아쉬운 소리를 냈다.
“동생이 부끄럼을 많이 타나 봐요.”
“맞아요! 얼마나 낯을 가리는지 친해지는 데 엄청 오래 걸렸다니까요. 어휴, 먼저 반한 게 죄지…. 아니, 반했다는 게 그런 뜻이 아니잖아! 너희들 자꾸 그렇게 몰고 갈래?”
뭔가 좋지 않은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은데.
의심스럽게 보던 나는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정면을 보았다.
신나게 떠드는 둘은 아직 못 느낀 것 같지만, 아마 이제 곧….
“어라?”
“응?”
내 예상대로 마차가 멈췄다.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보던 두 여자는 이윽고 들려오는 외침에 급하게 마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몬스터다! 습격이다, 습격!”
“모두 전투 준비!”
다른 마차에 타고 있던 용병들도 뛰쳐나오자 마냥 평화롭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꾸와악-!
돼지 멱따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오늘 저녁은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우욱…!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라….”
느긋하게 마차에서 내리며 중얼거리자 검을 빼 들고 긴장하던 저니가 헛구역질했다.
몰랐을 땐 잘만 먹었으면서. 정말 새삼스럽네.
“도와줄 거야?”
속삭이듯 묻는 저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기우뚱했다.
“조금만.”
마차에 얻어 탄 이상 값은 할 거지만 그 이상으로 나설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 저니를 강하게 키우겠다는 내 목표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걸?
원래 사람은 시련이 있어야 강해지는 법이야.
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도 있잖아.
옛 선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번 기회에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