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를 죽이는 방법에 대해 잠깐 얘기를 해보자면….
분류가 몬스터일 뿐, 오크도 어쨌든 살아있는 생명이니 심장이나 뇌 같은 급소를 당하면 죽는다.
그 외에도 과다 출혈, 쇼크사, 감전사, 소사 등, 오크를 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허접 검사인 저니가 쓸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한 것밖에 없겠지.
“흐압!”
찌르거나.
“하앗!”
혹은 베거나.
내가 마법쟁이들을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이래서 어딜 가든 마법쟁이들이 환대받는 것이다.
전투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기도 하고, 병장기를 쓰는 사람들과 다르게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많거든.
불로 지진다든가, 지면을 미끄럽게 만들어 넘어트린다든가.
물론 병장기를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속성을 담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마나를 능숙하게 다루는 경지에 이르면 여러 속성까진 무리더라도 속성을 담는 것 자체는 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돈이 많아서 속성이 담긴 무기를 사서 쓰는 방법도 있긴 한데… 어느 쪽이든 이제 막 무기를 다루기 시작한 사람들에겐 무리지.
괜히 마법사들 몸값이 비싼 게 아니다.
가뜩이나 재능이 없으면 마법의 길에 입문조차 할 수 없는 탓에 인구도 적은데, 초보 마법사와 초보 검사를 놓고 비교하면 마법사 쪽이 압도적으로 유용하거든.
그래서,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냐고 하면….
‘도대체 왜….’
오크에게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저니를 본 나는 머리를 싸맸다.
오크의 가죽은 꽤 질긴 편이라서 병장기로 상대하기 힘든 상대는 맞지만, 그렇다고 엑스퍼트 경지의 검사가 고전할 정도는 아니다.
엑스퍼트의 마나와 검술이라면 오크의 가죽 정도는 아침에 먹은 스테이크처럼 쉽게 가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정작 저니가 싸우는 걸 보면 그녀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초보 마법사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아니지, 내가 왜 미안해?
나쁜 건 내가 아니라 비기너 급 실력을 가진 저니인걸.
“좀, 죽어…랏!”
저니가 악을 쓰며 휘두른 검이 오크의 목에 박혀 들었다.
“이야앗…!”
질긴 가죽과 뼈에 걸리는 듯싶더니, 이윽고 거칠게 파고들며 오크의 목을 완전히 갈라버렸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은 급 용병들보다 잘 잡고는 있지만 영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꾸이익!”
오크와의 싸움에 집중하던 용병이 자신의 곁에 다가온 다른 오크를 보고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상황.
“으, 으아악!”
촤악!
“어, 어…?”
“…이게 그렇게 어렵나?”
깔끔하게 오크의 목을 분리해 용병을 구해주며 중얼거렸다.
이런 건 검에 마나를 두를 것도 없이 기본적인 신체 강화만으로도 충분하다.
신체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마저도 필요 없을 테고.
어리둥절한 용병을 뒤로하고 가볍게 땅을 박찼다.
“가, 감사합니다….”
“살았다…!”
“흐, 흐어억….”
위기에 처한 용병들을 구해줄 때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용병들.
한 용병의 머리 위로 도끼를 내리치는 오크를 해치우자, 간신히 살아남은 용병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존엄성을 위해 축축한 액체에 의해 색이 변하는 바지는 못 본 척해주었다.
삼도천을 반쯤 건너다가 돌아왔으면 당연히 그럴 만하지.
“흐읍!”
푹!
내가 다른 용병들을 구해주는 사이 저니가 마지막 남은 오크를 처리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오크의 목을 꿰뚫은 저니.
피거품 무는 소리가 멎고, 오크의 눈에 빛이 꺼지는 것을 확인한 저니가 목에 박아 넣은 검을 회수했다.
“으, 징그러워….”
나는 질색을 하며 검에 묻은 지방과 피를 털어내는 저니에게 다가갔다.
“저니.”
“아, 카나. 돌아왔구나!”
“…돌아와?”
다른 곳을 간 건 아닌데.
용병들을 도우면서도 저니가 싸우는 건 계속 살피고 있었고.
“나 어땠어? 제법 잘했지?”
요래요래.
저니가 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아무 도움 없이 오크를 몇 마리나 해치운 게 퍽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가장 많은 오크를 처리한 건 저니이니 객관적으로 본다면 이번 전투의 MVP는 두말 할 것이 그녀가 맞았다.
당연히 나는 제외했다.
애들 노는 데 어른이 끼어들면 안 되지. 애들은 애들끼리 놀게 내버려둬야 하는 거야.
아까처럼 위험할 때나 조금씩 도와주고.
“달콤한 거짓과 씁쓸한 진실. 어떤 걸 원해.”
“….”
저니의 눈이 데굴데굴 굴렀다.
이윽고 그녀가 대답했다.
“다, 달콤한 거짓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어.”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달콤한 거짓이라 해놓고 사실이라니, 뭔가 모순적인 말이네.
“…달아!”
“그런데- 읍.”
“잠깐만요! 씁쓸한 진실은 주문 안 했어요!”
내가 문제점을 지적하려 하자 저니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입을 막았다.
하여튼 요즘 애들은 이게 문제야.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하고. 이러니까 발전을 못 하지.
“저기….”
못마땅하게 보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사실 이미 접근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니 주변에 있던 용병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 인사일 게 분명한 말을 들은 나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용병들이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 반응이 딱 적당하다.
“후후후.”
저니가 기분 좋게 웃었다.
감사받은 건 나인데 정작 저니가 기쁜 기색을 보였다.
오해를 바로잡을까 하다가 귀찮아져서 내버려두었다.
내가 말하면 생색내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갑자기 오크 무리를 맞이할 줄은 몰랐는데… 두 분 덕분에 살았습니다…!”
용병들이 물러나자 이번엔 상인들이 다가와 감사를 표했다.
용병들이야 똑같이 의뢰를 수행하는 처지니 그렇다 치고. 상인들도 뭐, 고마워할 수는 있는데….
애초에 이러려고 의뢰를 한 거면서 지나치게 고마워하는 거 아닌가?
으응… 모르겠네.
애초에 감사를 받은 적이 그다지 많지 않은 나에겐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다른 곳에 주의를 돌렸다.
그러니까, 여기저기 널브러진 오크들의 시체로.
“…먹고 싶어?”
“….”
…먹고 싶냐 아니냐를 따지면 먹고 싶은 쪽이긴 하지만, 지금은 먹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고.
내가 무슨 먹을 거에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먹을 거만 생각하는 줄 알아?
아무 말하지 않고 뾰로통하게 있으니 저니가 상인에게 물었다.
“전리품이나 부산물은 어떻게 하나요?”
“보통은 값을 책정한 후 저희 쪽에서 매입하는 방식입니다만, 사도님이라면 그럴 필요 없겠죠.”
“엥? 사도가 왜요?”
“사도님들은 아공간을 갖고 계셔서 짐이 늘어나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무래도 저희가 매입할 땐 값을 좀 싸게 하는 편이라….”
“아하…. 그런데 그걸 대놓고 말하셔도 돼요?”
“용병분들도 합의한 내용이라 상관없어요. 일일이 들고 다니는 수고를 덜어주는 값인 셈이죠. 원한다면 몫을 따로 빼서 들고 다녀도 됩니다만,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분들은 적죠. 그래서, 어떻게 해드릴까요?”
“음… 대신 처리해 주세요. 아, 그런데 고기는 조금 주실 수 있나요?”
“오크의 부산물은 고기가 대부분이라 값이 많이 줄어드는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제 동생이 오크 고기를 좋아해서요.”
“아….”
상인의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렇다면 매입은 매입으로 하되, 오늘 저녁 식사로 오크 고기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사양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어차피 두 분이 아니었다면 아무 피해 없이 이렇게 많은 오크를 상대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부끄럽게도, 저도 이윤을 따지는 상인인지라 많은 걸 드릴 수 없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보답하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아예 보답하실 필요가 없다니까요!”
“맙소사, 겸양까지 갖추고 계시다니…! 그야말로 사도의 귀감인 분이시군요.”
“진짜 미치겠네.”
저니가 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크들의 시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크가 무리를 짓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닌데….’
번식력이 뛰어나서 암수 한 쌍만 있어도 순식간에 불어나니까.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지은 오크가 이 정도 규모로 돌아다니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보통은 영역을 지킬 놈들을 남겨두고 몇 놈만 돌아다니지.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 건 거의 인간이나 다른 몬스터의 영역을 침범할 때인데.
“…뭐, 상관없나.”
수가 너무 많이 불어나서 영역을 넓히려고 했다고 해도 어차피 다 죽였으니까.
영역에 조금 남아있을 수는 있지만, 이렇게 싹 죽인 이상 한동안 활동할 일도 없을 테고.
“응? 뭐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싸매고 절망하던 저니가 내 중얼거림에 고개를 들며 반응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뭐가 됐든 공짜로 먹을거리가 굴러들어 온 건 반가운 일이다.
막 잡은 돼지고기가 맛있는 것처럼, 오크 또한 잡은 직후가 제일 신선하고 맛있다.
야외라서 아침처럼 잘 차려진 요리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 맛이 있지.
캠핑과 레스토랑의 차이랄까.
여차하면 돈을 지불하고 고기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침을 삼켰다.
“역시 먹고 싶어서 그런 거 맞잖아.”
“…아니야.”
먹고 싶긴 하지만 정말로 그거 때문에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라고.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