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사신 정원, 마시멜로 평원.
뀨힝힝.
나는 하얀 아귀로 만든 거대 건축물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뀨힝힝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상해….’
하얀 아귀 괴롭히는 게 너무 재미있어.
원래도 꽤 재미있었지만, TV 보는 것을 걸러 가면서 괴롭힐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주황 사신과의 융합이 원인이겠지?’
흠.
하지만 주황 사신과의 융합은 아무리 기다려도 분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려서는 영원히 분리될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융합의 헤일로로 분리를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머리 위에 헤일로를 뒤집어쓰고 분리하려고 마음을 먹자, 내 몸속에서 주황 사신이 순식간에 분리되어 튀어나왔다.
‘후.’
융합 후유증인지, 온몸에서 힘이 쭈욱 빠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주황 사신은 이미 멀리 도망쳐서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바닥에 쓰러져있으니, 솜뭉치 황금 사신들이 후다닥 달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어디 아파?’
‘엄마 아파?’
그리고 쓰러진 내 모습을 보고 ‘!!!’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황금 사신들의 시선을 확인해 보니, 내 머리카락을 보고 놀라는 것처럼 보였다.
‘아, 하긴 복슬복슬이 아니게 되어버렸지.’
황금 사신들은 내 머리 모양을 보더니, 서둘러서 자기 머리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마치 머리를 안 바꾸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다들 복슬복슬 좋아하던 것 같았는데, 왜 저러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황금 사신들은 내 근처에 달라붙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토닥거렸다.
‘엄마 괜찮아?’
‘엄마 아파 보여.’
나는 그런 황금 사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중, 한 가지 궁금증에 생각이 닿았다.
‘황금 사신이랑 융합하면 어떻게 되려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의 황금 사신을 하나 잡아서 융합의 헤일로로 합체해 버렸다.
황금 사신과 하나가 되자마자, 온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몸을 자세히 살펴봤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별로 바뀐 게 없네.
하긴 황금 사신은 거의 나랑 판박이처럼 생겼으니까, 그렇겠지.
‘엄마랑 하나!’
‘히히.’
머릿속에서 들리는 황금 사신의 행복한 목소리만 빼면 그랬다.
‘이번 융합도 별거 없나 보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예린이가 보고 싶어졌다.
‘예린이는 지금쯤이면 근무 중이려나?’
나는 예린이가 있을 법한 장소들을 떠올리고는, 세희 연구소를 향해 토도도 달려가기 시작했다.
***
언제나 사람으로 붐비는 세희 연구소 휴게실.
옴뇸뇸.
나는 예린이의 품에 안겨, 예린이가 먹여주는 과자를 냠냠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예린이에게도 과자를 먹여주었다.
“오늘따라 사신이가 상냥하네.”
예린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히.
그렇게 과자를 먹고 있는 도중, 옆에 앉아 있는 직원들은 자신의 애착 사신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황금 사신에게 막대 형태의 과자를 쉴 새 없이 먹이는 남자와 그 옆에 축 늘어져 있는 여자였다.
황금 사신이 과자를 먹는 모습을 구경하던 여직원은 살짝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푸른 사신이도 휴게실에 같이 놀러 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애착 사신이 푸른 사신이라고 했던가?”
황금 사신에게 막대 과자를 먹이던 직원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푸른 사신은 방 정리도 해주고 머리도 좋던데, 나는 그런 점은 조금 부럽더라.”
그러자 직원의 품에 안겨 과자를 먹던 황금 사신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자신의 애착 인간을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을 본 직원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황금 사신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푸른 사신의 애착 인간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두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푸른 사신 성분을 보충하고 싶어서, 거실 중앙에 커다란 펫캠을 설치해 뒀지!”
그러자 핸드폰에서 방안을 전체적으로 비추는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기다리자, 핸드폰 화면 구석에서 퐁 하고 푸른 사신이 나타났다.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푸른 사신은 행복한 표정으로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허공에 문자열을 수놓자, 먼지와 쓰레기가 사라지고 방안이 말끔하게 정돈되었다.
정리하는 것이 즐거운지, 푸른 사신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렁각시가 따로 없네.”
같이 핸드폰 화면을 보던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화면 속의 푸른 사신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카메라의 정체를 알아채더니, 화난 표정을 지었다.
푸른 사신은 카메라를 건드려서 자신을 올려다보게 만든 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푸른 사신이 화면을 톡 건드리자, 카메라의 신호가 끊어져 버렸다.
“앗, 푸른 사신이가 화났어….”
푸른 사신의 애착 인간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뺨이 닿은 채 갑작스럽게 의식이 돌아왔다.
기자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어지러운 시야로 보이는 희미한 달빛 아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악몽 같았다.
“이… 이게 뭐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몇 미터 앞에 널브러진 군인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산산조각 난 야간 투시경과 종이처럼 찢긴 첨단 장비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기자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기자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자기 몸을 더듬었다.
피로 얼룩지고 여기저기 찢어진 옷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분명 맞았었는데…. 아니, 그러면 왜 아프지 않지?”
혼란스러운 눈으로 자기 몸을 살펴보았지만, 놀랍게도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자는 기억을 더듬으려 애썼지만, 머릿속은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흐릿했다.
간신히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은 소음기 달린 총구에서 피어오르던 연기와….
몸을 뒤덮던 검은 무언가였다.
“매립지에서 봤던, 그 꿈과 똑같았어….”
기자는 혼란스러운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 빨리….”
패닉에 빠진 기자는 현장을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비틀거리면서도 서둘러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어두운 골목을 따라 걸으며 계속해서 주변을 경계했다.
누군가 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기자는 도로를 끼고 있는 낡은 모텔을 발견했다.
프런트에 있던 남자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자의 말에 돌아보지도 않고 설렁설렁 열쇠를 건넸다.
닦아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피범벅인 기자에게는 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방에 들어선 기자는 곧바로 샤워했다.
따뜻한 물이 몸을 적시는 동안,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상황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군인들이 나를 보자마자 총을 쐈어.’
‘그리고 나는 꿈속의 괴물을 뒤집어쓴… 것 같아.’
그다음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기자는 거울 앞에 섰다.
멍한 눈으로 자기 모습을 바라보던 중,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목소리라기보다는 생각이나 감정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인간….]
그 순간, 거울에 검은 덩어리가 비치기 시작했다.
기자의 어깨 위에 돋아난, 손바닥만 한 검은 괴물의 형상.
그 모습을 보자마자, 기자는 깜짝 놀라서 크게 소리를 지를뻔했다.
그것은 크기는 작았지만, 길쭉한 양팔을 가지고 9개의 눈동자를 가진 꿈속의 괴물과 똑같이 생긴 괴물이었다.
“너… 넌 누구지?”
기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괴물을 향해 말을 걸며, 천천히 손을 뻗어 괴물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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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을 찢어 죽인 괴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말랑하고 부드러운 덩어리.
그 괴물은 이상하게도 조금 동질감이 느껴져서, 기자는 손바닥 위에 괴물을 올려두었다.
[몰라.]
[어지러워.]
[여기는 어디?]
잔뜩 들려오는 속삭임과 함께, 기자의 몸 곳곳에서 손바닥만 한 덩어리들이 잔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서로 빤히 바라보기 시작하더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뭔가 명령받았는데….]
[기억 안 나.]
[지켜야 해.]
[뭐를?]
[몰라. 어지러워.]
[너무 어지러워.]
일주일간의 기억이 없는 기자처럼, 괴물들도 뭔가를 잊은 것처럼 보였다.
끼이익.
늦은 밤, 저 멀리 모텔 주차장에 차량이 조용히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초월적인 청력.
“이 청력도 너희들이 부여한 거야?”
기자는 조금 궁금했던 사실을 괴물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해로운 인간!]
검은 덩어리들이 넓게 퍼져서 기자에게 마구마구 달라붙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군인들을 갈아버렸던 때처럼, 점점 커다란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해!”
기자는 크게 소리치며, 얼굴을 덮어버리려는 검은 덩어리를 쥐어뜯었다.
[?]
그러자 검은 덩어리들은 의아한 느낌을 기자에게 보내며, 멈춰주었다.
막무가내로 보였던 검은 덩어리들이었지만, 다행히도 기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왜 그래?”
[나쁜 인간이 다가와.]
[아주 나쁜 인간.]
검은 덩어리들의 말을 듣자, 기자는 재빨리 창밖을 확인했다.
정체불명의 검은 차가 모텔 앞에 있었고, 그 차에서는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과 화려한 복장의 남자가 내리고 있었다.
“프리즘 센티널…?”
기자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의아한 목소리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