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소원을 들은 후배 2호는 갑자기 현실 세계로 돌아와 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다시 폐허가 된 ‘교단’ 앞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쌀쌀한 밤공기가 그녀의 피부를 스쳤고, 그녀는 추위를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후배 2호는 난감했다.
조그마한 옥판을 아무런 단서도 없이 찾으라니….
“하아, 어쩌지? 옥판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후배 2호는 그 답답함을 토해내는 것처럼, 손바닥 위에 앉아 있는 애착 사신에게 물었다.
‘몰라!’
황금 뿔 사신은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흔들며 대답했다.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해맑은 표정을 짓는 황금 사신이 귀여워서, 후배 2호는 애착 사신의 말랑말랑한 뿔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건 정말 불가능한 미션이야….’
후배 2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태블릿만 한 크기의 옥판을 찾는 것은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
제임스 연구소 같은 거대 조직이 몇 년을 투자해야 할 법한 일이었다.
“역시 쉬운 일은 하나도 없구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모두에게 물어볼까?’
그때, 황금 뿔 사신이 후배 2호를 바라보며 의지를 보내왔다.
미니 사신들에게 물어봐도 소용없을 것 같은데….
후배 2호는 미니 사신들이 정보원으로서는 별로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사라져야 할 황금 뿔이 오히려 커지면서 미니 사신들과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지만, 그래서 그런지 더욱 그런 점을 절실히 느끼곤 했다.
미니 사신들은 평범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특히 옥판처럼 심심한 물건은 미니 사신들이 기억할 리가 없었다.
알 만한 오브젝트는 미니 사신들의 주인이자 신과 같은 힘을 가진 ‘회색 사신’이었지만, 램프의 남자와의 계약으로 ‘회색 사신’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나아갈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음 가는 대로 한번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후배 2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어보자고 하자, 황금 뿔 사신은 하늘을 향해 양손을 뻗으며 강렬한 의지를 쏘아 올렸다.
‘도와줘!!’
이 정도면 회색 사신에게 들리지 않을까 싶어서, 후배 2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회색 사신에게 들리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황금 뿔 사신은 슬픈 표정으로 울먹이며 의지를 중얼거렸다.
‘엄마는 우리 네트워크를 안 들어….’
그 모습을 보자, 후배 2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황금 뿔 사신을 꼭 안아 주었다.
그렇게 황금 뿔 사신에게 과자를 먹이고 있자, 어느새 미니 사신들이 잔뜩 몰려들어 있었다.
후배 2호는 마음속으로 성녀가 보여준 옥판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니 사신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옥판이 어딨는지 알아?’
그러자 시무룩한 다른 사신들과 달리, 검은 사신들이 환하게 웃으며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마치 발표를 하고 싶어 안달 난 초등학생들처럼 손을 번쩍 들고, 의지를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알아!’
‘본 적 있어!’
‘건물 속에 묻혀 있었어!’
그 활기찬 모습에, 후배 2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거기가 어디야?’
그렇게 묻자, 검은 사신들이 일제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의 절반을 가린 흐릿한 검은 행성이 보였다.
후배 2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길 어떻게 가지?”
그때, ‘촥’하는 망토를 휘두르는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의지가 들려왔다.
‘갈 수 있어.’
고개를 돌리자, 우아한 망토를 두른 보라 사신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 어?
그렇게 엉겁결에 미니 사신들의 주도로 일이 진행되다 보니, 어느새 후배 2호는 검은 행성 위에 서 있었다.
“미니 사신들, 엄청 유능하네….”
후배 2호는 절벽 위에서 검게 물든 바다를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
익숙한 곡선을 그리는 마시멜로 평원의 캐노피 하늘 아래.
‘후, 겨우 성공했어.’
나는 새롭게 탄생한 간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금 사신을 괴롭혔던 빙의형 오브젝트를 간식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였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간식이 되지 않을 것 같았고.
그래서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으니까, 막대한 양의 장작 소모와 함께 간식이 되어 내 발 앞에 떨어졌던 것이다.
내가 거느린 미니 사신 숫자가 늘어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죽음을 보는 헤일로’를 사용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걸까?
어쨌든 내 간식화 능력이 어느새 성장한 상태였다.
뭐, 능력이 강해지는 건 좋은 일이겠지.
시선을 내려 방금 만든 간식을 살펴보았다.
한때 미라 같은 유령이었던 그것은 이제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넣은 그릇을 가득 채운 이산화탄소처럼 하얗고 몽실몽실했다.
호기심에 손을 뻗어보니, 그것의 육체는 너무나 옅은 밀도를 지녀 연기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건드리지 않으면 허공에 뭉쳐 있어, 연기와 고체 중간의 대단히 보드라운 무언가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아귀 닮은 것 같기도 하네….’
아귀처럼 코는 없었고 눈도 아귀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좀 더 길쭉했다.
아귀랑 족제비랑 섞은 뒤, 연기로 만들어 버리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이거 진짜로 먹을 수는 있는 건가?’
연기 덩어리에 불과해서, 아무리 봐도 먹을 것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미니 사신 정원 소속으로 생겨나는 것은 보통 간식인데 말이다.
사실 ‘전부’ 간식일 가능성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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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사신은 조금 맛있는 향기가 나니까,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추측일 뿐이었다.
아직 미니 사신을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언젠가는….’
나는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궁금증을 풀어줄 착한 미니 사신이 나타날 거라고 믿고 있었다.
히히.
“쿠…?”
갑자기 들려온 작은 소리에 나는 시선을 옮겼다.
기절한 듯 쓰러져 있던 연기 족제비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눈에는 혼란과 공포가 가득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족제비는 자신이 어떤 처지가 되었는지 깨달은 듯,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그 녀석을 내려다보며 어떤 벌을 줄지 고민했다.
지금까지 벌을 받았던 간식들이 떠올랐다.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하얀 아귀.
예린이를 다치게 한 햄스터.
그리고 푸른 사신을 다치게 한 플라밍고.
그 형벌들을 떠올리며 생각을 거듭했다.
‘연기 같아서 아귀처럼 뜯어먹는 형벌은 힘들 것 같네….’
그때, 예린이의 집에서 봤던 롤러코스터가 떠올랐다.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미궁의 헤일로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너는 이제부터 시시포스가 미는 바위처럼 롤러코스터를 영원히 밀게 되는 거야.’
족제비에게 의지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마시멜로 정원에 거대한 롤러코스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미니 사신용으로 만들어진 이 롤러코스터 차량은 장난감처럼 작았다.
하지만 그 코스의 길이는 진짜 롤러코스터 부럽지 않을 정도로 길었고, 평범한 인간이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고속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롤러코스터 지하에는 연기 족제비를 위한 특별한 레일이 만들어졌다.
‘자, 너는 여기서 계속 달리는 거야.’
나는 하얀 아귀 몇 마리를 골라 관리자로 임명했다.
마치 햄스터를 관리하던 설탕 플라밍고처럼 그들은 간수 역할을 부여받았다.
뚜방뚜방.
롤러코스터가 완성되기 무섭게 검은 사신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신기한 점은 황금 사신 하나 없이, 전부 검은 사신들이라는 점이었다.
탑승객이 나타나자 하얀 아귀들은 자기 더듬이를 길게 늘여 채찍처럼 휘둘러, 연기 족제비를 마구잡이로 후려쳤다.
뀨히히.
더듬이에는 오브젝트를 태우는 불꽃이 붙어 있어, 연기 형상의 족제비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며 달리기 시작했다.
검은 사신들은 내가 특별히 고심해서 만든 롤러코스터를 타며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재밌어!’
‘빨라!’
즐거운 미니 사신 정원의 일상을 보여주는 듯한 미소였다.
반면 롤러코스터 지하에서는 비열한 웃음소리와 고통에 찬 신음만이 가득했다.
“쿠우….”
마치 미니 사신 정원 지하에 마련된 지옥 같은 느낌이었다.
뀨히히히히히히.
아귀의 웃음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아귀를 괴롭히고 싶어질 것 같아서, 나는 지하의 문을 닫고 정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가스램프 거슬리네.’
진화액과 연관이 있었을 때부터 거슬렸는데, 이번에 벌어진 황금 사신 배신자 사건의 배후에도 가스램프가 있었다.
‘어떻게든 해야 해.’
‘램프의 남자’는 수상쩍은 데다가,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들었지만,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검은 바다는 갈라져 있었다.
후배 2호는 그 사이를 걸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태양이 없는 검은 하늘은 저 하늘 높이, 작은 틈으로 보이고 있었다.
보랏빛 사신들이 공간을 자르는 그림자를 이용해 길을 만들어 낸 상태였다.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진화액 한 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었지만, 석유 냄새 같은 특유의 악취가 나지 않았다.
양옆으로 끝없이 늘어선 물의 벽 사이를 걷는 후배 2호는 그 광경에 압도되어 숨이 막힐 듯했다.
하늘에 닿을 듯이 양옆으로 솟아오른 물의 벽은 경이로웠다.
거대한 유적을 마주한 것 같기도 하고, 끝없이 높은 폭포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저기야!’
진화액에 닿지 않도록, 황금 사신들에게 철통같은 경호를 받으며, 한 검은 사신이 해맑은 표정으로 의지를 내뿜었다.
검은 사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진화액 속에 파묻혀 있었다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온전한 모습을 한 도시의 입구가 보였다.
바닥에 잔뜩 깔린, 유리 같은 재질로 코팅한 것처럼 반들거리는 자갈들.
이 도시는 입구부터 보라색 빛을 반사하는 유리 공예품과 유리창, 거울로 가득했다.
도시의 모습은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그것을 닮아 있었지만, 유독 유리로 만든 장식품이 많아서 조금 특이하게 느껴졌다.
또각또각.
검은 사신의 인도를 따라, 거울이 가득한 길을 걸어 나갔다.
“조금 으스스하네.”
거리가 너무 멀쩡한 데다가, 거울이 많아서 그런지 유령이 나올 것만 같았다.
‘!’
후배 2호는 빠르게 움직이는 뭔가가 보인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는 깨진 조각을 억지로 짜 맞춘 거울이 있을 뿐이었다.
마치 모자이크처럼 조각조각 색깔이 달라서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거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