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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3

빠안-

“….”

“…냠.”

“맛있겠다.”

“응. 맛있어.”

“….”

독한 년.

저니의 눈에 담긴 감정을 말로 바꾸면 대충 그런 말이 아닐까.

“안 먹는다고 했잖아.”

“…아니, 그건…!”

“못 먹는다고도 했어.”

“…으으으윽!”

그래서 안 주는 것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옛말에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잖아.

멀뚱멀뚱하게 올려다보자 저니가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었다.

음, 장난은 여기까지만 할까.

애초에 정말로 혼자 먹을 생각도 아니었으니까 놀리는 건 딱 이 정도까지.

“…맛있어!”

황홀한 얼굴을 한 저니가 와구와구 고기를 뜯어 먹었다.

오크 고기를 먹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레인 버팔로나 오크나 똑같은 몬스터인데 말이야.

우리는 제법 근사했던 식사를 마치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레인 버팔로 무리를 떠나 다시 길을 나섰다.

“엉덩이를 안장에 붙이고, 허리를 곧게 펴.”

“이렇게?”

“그것보다 조금 더… 이렇게.”

“헉, 카나가 직접 교정해 줬어…!”

저니가 으흐흐, 하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찰싹!

“아야!”

“…집중해.”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불량 학생에게 벌을 준 뒤 교육을 이어 나갔다.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

“아까는 허리 쭉 펴라고 하지 않았어?”

“허리를 펴라고 했지 힘을 주라곤 안 했어.”

“…그게 그 말 아니야?’

“그게 어떻게 같은 말이야.”

교육을 끝마쳤을 때 저니의 자세는 처음보다 훨씬 좋아졌다.

과정이 썩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만 좋으면 됐지.

카나의 승마 교실 제 1기 졸업생 저니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남겼다.

“검술을 가르칠 때와 다르게 상냥하게 가르쳐 줘서 좋았어! 헤헤, 역시 카나는 친절하다니까.”

“…딱히 상냥하게 대하려고 그런 건 아닌데.”

“부끄러워하기는~”

콕콕.

“하지 마.”

집요하게 내 볼을 콕콕 찌르는 저니의 손가락을 쳐냈다.

말을 탈 때와 검을 다룰 때의 문제점이 다르니까 당연히 다르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건데.

뭐, 착각하는 건 자유니까 굳이 바로잡아줄 필요는 없겠지.

* * *

“흐아암….”

저니가 늘어지게 하품했다.

카나에게 올바른 승마 자세를 배운 후 그녀를 괴롭히던 근육통이 잦아들었다.

처음에는 ‘마차나 탈걸…’하고 후회하던 저니의 생각도 어느새 ‘말 타길 잘했다’로 바뀐 지 오래였다.

마차보다 속도도 빠르면서 더 편하고….

-마도공학 마차 타면 훨씬 편하다는데

-이걸 아직도 안 샀음?

-구두쇠 방장 때문에 불쌍한 카나만 고생하네…

“너희 돈 아니라고 아무 말이나 하지? 그런 말 할 거면 돈이라도 주고 말해!”

-저희가 웨요???

-지금 현거래를 조장하시는 건가요?

“…그냥 말을 말아야지.”

태업 선언이냐, 스트리머의 본분을 다하지 않으려는 거냐, 등등.

채팅창은 그녀의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하여튼 한결 같은 놈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저니는 이번엔 카나를 향해 눈을 돌렸다.

몇 시간 동안 말을 타고 움직이는 게 지겹지도 않은지, 카나는 말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저니가 말을 걸 때마다 대답하는 게 아니었다면 인형을 앉혀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카나가 인형처럼 귀엽긴 해.’

그러니 인형으로 착각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지.

저니는 속으로 한차례 주접을 떨었다.

문득 저니는 주접을 들은 카나의 반응이 궁금해졌지만, 충동을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다.

바람에 날려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반개한 채 생각에 잠긴 분홍색의 눈동자.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모습을 보니 감히 방해할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여움이 곧 정의다.

저니는 오늘도 진리를 되새기며 카나의 옆얼굴을 흐뭇하게 감상했다.

평소 그녀는 얼굴만 봐도 지루하지 않다는 말을 흔하디흔한 주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카나를 지켜보고 있으니 어쩌면 주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뚫어져라 본 탓일까.

멍하니 앞만 보던 카나의 눈동자가 저니를 향했다.

“…왜.”


“…응? 내가 무슨 말이라도 했어?”


“말은 안 했는데 눈이 기분 나빠.”


“….”


“기분 나빠.”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 줄래…?”

카나는 욕은커녕 나쁜 말 하나 하지 않을 것처럼 순둥순둥하게 생겼지만, 정작 그 고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보면 은근히 매서운 구석이 있었다.

오늘도 갑자기 날아든 꽉 찬 돌직구에 얻어맞은 저니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낫지.’

말을 걸어도 무시로 일관하던 처음보다야, 그녀의 마음은 조금 아프지만 생기 넘치는 지금이 훨씬 나았다.

저니에게 말을 건 게 정말 그 용건 하나 때문이었는지, 카나는 다시 관심을 끄고 앞을 직시했다.

아니, 직시하려고 했다.

“아참! 카나야,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때마침 궁금증이 생겨 말을 건 저니가 아니었다면.

“카나는 왜 성국으로 가려고 하는 거야? 생각해 보니까 성국에 간다는 건 들었는데 왜 가는진 못 들은 거 같아서….”

물음을 들은 카나가 해괴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으로 저니를 보았다.

늘상 무덤덤한 카나에게 있어 정말 보기 힘든 감정 변화였다.

“에, 에헤헤….”

저니가 멋쩍게 웃었다.

그녀가 생각해도 상당히 우스운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카나와 여행을 시작한 게 벌써 며칠째인데, 이제 와서 그걸 묻는단 말인가.

묻고 싶으면 일찍 묻든가, 묻지 않을 생각이었으면 아예 묻질 말든가.

물론 저니는 그저 카나와 같이 여행하는 게 신나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을 뿐이었다.

굉장히 애매한 타이밍에 나온 질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할 질문도 아니었던지라 카나는 순순히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궁금한 게 생겨서.”


“궁금한 거?”

궁금증이 생겼다고 해도 대륙 반대편에 있는 나라까지 갈 생각을 하나?

보통은 안 그럴 거 같은데.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다른 의문이 생긴 저니가 재차 물었다.

“카나가 성국까지 가려는 걸 보면 그 궁금증을 성국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거지?”


“응.”


“혹시 뭔지 물어봐도 돼?”


“아니.”


“그렇겠지~”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줄 알다니. 참 똑 부러진 아이라니까.

단호하게 돌아온 거절에 저니는 수긍하고 물러났다.

카나는 모르는 듯하지만, 저니가 파악한 바로는 카나의 거절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싫어.’

‘아잉, 그러지 말고~’

‘하아….’

열심히 떼쓰고 매달리면 마음을 돌릴 여지가 있는 거절과,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는 단호한 거절.

방금 카나의 거절은 후자에 속했다.

그렇기에 저니는 카나에게 꼬치꼬치 묻는 대신 혼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굳이 성국에 가야 한다고 하는 걸 보면 에델 교에 관련된 걸까?’

그다지 신앙심이 있어 보이진 않던데.

“헉, 설마 수녀가 되려는 건 아니겠지?”

-ㅖ?

-이 사람 상상력이 대단하다

-최강의 검사였던 내가 하급 수녀가 된 건에 관하여

-귀의한다 해도 성기사가 되겠지;

“잠깐만. 카나의 수녀복 스킨…? 쓰읍, 오히려 좋을지도?”

-ㅇㅈ;; 이건 못 참지

-뭐? 에델 교에 들어가면 수녀복을 입은 카나를 볼 수 있다고??

-입교 신청서가 어디 있더라…

-에델 교 신도 폭증 ㄷㄷ

[‘ㅇㅇ’ 님의 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녀 캐릭터들은 고증이 잘못된 캐릭터임. 실제 수녀들은 관심을 끌면 안 된다는 이유로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머리카락도 드러내면 안 됐음 ㅇㅇ. 그러니까 에델 교 사제들 복

“아… 설명 고마워!”

-‘찐’

-어우; 요즘 밥값 비싸네 ㄷㄷ

-고봉밥이 만 원이라고???

-한국 망했네;

-와! 정말 알고 싶은 정보였어요!

-방장 표정ㅋㅋㅋㅋㅋ

저니는 그 후로도 마이크를 끈 채 한동안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따금씩 그런 그녀를 향해 카나가 눈길을 던졌지만, 시청자들과의 소통에 빠진 저니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녀들이 탄 말은 부지런히 발을 놀려 성국으로 향하는 길을 열심히 내달렸다.

“오늘은 이제 쉬자.”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이 되자 카나가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마침 대화거리가 점점 떨어지던 저니는 반갑게 카나의 말을 받았다.

“야영은 오랜만이네. 카나, 야영해 본 적… 아, 있겠구나.”

카나의 전 직업을 떠올린 그녀는 머쓱하게 말을 멈췄다.

모르긴 몰라도 야영 경험은 카나가 그녀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야영하려고?”

위치도 그렇고 지면도 그렇고. 야영하기에 썩 적합한 곳은 아닌 거 같은데.

카나보다는 못해도 캠핑 경험이 꽤 있는 저니의 눈으로 보기엔 그러했다.

“괜찮은 곳을 찾아야지.”

대수롭지 않게 답한 카나가 말의 옆구리를 가볍게 두드리자 주인의 뜻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말이 느릿하게 걸었다.

“어, 저기 불빛이 보이는 거 같은데?”

야영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저니의 시야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가지런히 쌓인 장작 위에서 춤추는 불.

자연적으로 불이 날 순 있어도 장작이 저렇게 예쁘게 쌓일 리 없으니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게 분명했다.

“잠깐-”

저니는 반가운 마음에 카나를 제치고 모닥불을 향해 말을 몰았다.

“계세요~?”

이런 곳에 공터가 있다니.

먼저 온 사람만 괜찮다면 같이 묵었으면 좋겠는데.

모닥불이 있는 작은 공터에 도착한 저니가 목을 길게 빼고 선객을 찾아 헤맸다.

다그닥.

“저니.”


“아, 왔구나!”


“…하아.”

그녀의 뒤를 따라 도착한 카나가 한숨을 쉬었다.

“응?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입술을 달싹이던 카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스락.

“어라, 여행자분들인가요?”

“…수녀?”

작은 나뭇가지, 혹은 나뭇잎을 밟는 소리를 내며 나타난 인물은 수녀복을 입은, 성인처럼 보이지만 아직 앳된 티가 남은 여성이었다.

부풀어 오른 특정 부위에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간 저니는 불현듯 아까 받은 후원 메시지가 떠올라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수녀가 걱정스레 물었다.

“어디 아프신가요?”

“아, 아뇨…! 벌레가 있어서요.”

“저런. 이 근처 벌레들은 대부분 독성이 없긴 하지만, 있는 것들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혹시 모르니 제가 봐 드릴까요?”

“괘, 괜찮아요….”

‘진짜 수녀야…!’

자애로움을 그대로 형상화한 듯한 수녀의 모습에 검게 물들었던 저니의 마음이 하얗게 정화되었다.

“여기서 혼자 야영하시는 건가요?”

“네에. 일행과는 이전 도시에서 헤어져서 혼자랍니다.”

“호,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도 여기서 같이 묵어도 될까요?”

“그럼요. 제가 이 땅의 주인도 아닌걸요. 마침 다가올 밤이 걱정됐는데, 든든한 분들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네요.“

수녀가 빙긋 웃으며 품에 안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았다.

마른 나뭇가지와 열매 같은 것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카나야, 허락 받았어! 여기서 같이 묵어도 된대!”


“…에휴.”

해맑은 저니의 손짓에 카나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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