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셀린이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눈을 빛냈다.
“….”
꾸욱.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눈빛에 나는 수녀복 자락을 꼭 쥐며 그녀의 눈을 피했지만.
그녀의 눈은 집요하게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슬쩍-
결국 저니의 뒤로 숨고 나서야 나는 나에게 꽂히는 시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귀여운 꼬마 수녀님이네요! 이대로 에델 교에 들어오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앗, 안 돼요…! 카나는 저와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고요!”
“어머, 수녀가 되어도 여행은 할 수 있답니다.”
“…수녀가 되면 수녀복만 입어야 하죠?”
“쉴 때는 편하게 입어도 괜찮지만, 활동할 때는, 네. 그래야 해요.”
“그렇다면 역시 안 되겠어요. 수녀복을 입은 카나가 귀여운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카나에게 한 가지 옷만 입히기엔 아까운걸요.”
“과연…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네요.”
장담하건대, 지금 둘이 나누는 이야기는 들어봤자 정신 건강에 하등 도움이 안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둘의 대화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애꿎은 수녀복 자락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이런 옷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데….
그러니까, 여자들만 입는 이런 옷은 말이야.
…대체 다리 부분에 옆트임은 왜 있는 거야?
이런 게 있으면 치마를 길게 만드는 이유가 없잖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이런 옷을 입고 있는 내 처지가 달라질 리 없으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을 놓을 것 같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잘 어울리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한 적 없어.”
잘 어울리길 바란 적도 없고.
축제를 즐길 생각에 잔뜩 신난 저니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최대한 빨리 용무를 마치고 떠나야겠어.
나는 저니의 팔을 주욱 끌었다.
“응? 왜 그래?”
“말 좀 전해줘.”
“말? 아, 셀린한테?”
“응.”
내 말을 들은 저니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언니 해주세요~’ 하면 해줄게!”
“….”
이럴 때 쓰려고 데려… 가져온 번역기가 고장 나 버리다니.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으응…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문득 과거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런….’
‘무슨 일이야.’
‘아, 부단장님. 보시다시피 마도구가 망가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작전 속행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후퇴할까요?’
‘비켜 봐.’
‘예? 뭘 하시려고… 아니, 단장님! 그거 비싼 겁니다! 함부로 건드리시면 안 돼요!’
‘어차피 고장 났다며.’
‘그렇다고 그렇게 막 두드리시면 어떡해요! 수리공에게 보이면 고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이 비싼 것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 지금 하고 있잖아. 수리.’
‘그게 어딜 봐서 수리입니까! 때려 부수-’
‘아, 됐다.’
‘-는… 거…지…?’
‘자. 너도 확인해 봐.’
‘…대체 이게 왜 작동되는 거지? 망가졌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원래 망가진 건 두드리면 고쳐져.’
-그런 일도 있었지.
갑자기 그때 일이 생각난 이유는, 그때 얻은 교훈을 써먹으라는 뜻 아닐까?
응. 분명 그럴 거야.
“자, 잠깐만! 말로 하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런 위기 감지 능력 하나는 기가 막히네.
마음만 먹었지, 아직 주먹을 들지도 않았는데 귀신같이 눈치챈 저니가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나는 짐짓 아쉬운 마음을 숨기고 모르는 척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그렇게 순진한 척해도 소용없어! 내가 똑똑히 느꼈다고! 카나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살의를…!”
“기분 탓이야.”
내가 눈치를 안 보는 편이라고 해도 고작 이런 이유로 성국 안에서 살인을 저지를 리 없잖아.
“…도대체 어디에 태클을 걸어야 하지?”
‘고작 그런 이유’에 태클을 걸어야 하나? 아니면 ‘성국 안에서’라는 말에 걸어야 하나?
저니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잇, 됐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아, 고쳐졌다.”
“응? 고쳐져?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개인 기도실을 쓸 수 있나 물어봐 줘.”
“개인 기도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가 있는 예배실보단 개인 기도실을 이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에델이 내 물음에 답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카나가 이렇게 신앙심이 깊은 아이였나…?”
미심쩍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저니는 셀린에게 나의 말을 전해주었다.
진중한 표정으로 내 말을 전해 들은 셀린이 답했다.
“‘본래는 교단 사람들에게만 개방되는 곳이지만… 한 번 방법을 찾아볼게요.’…라고 했어.”
저니가 셀린의 말투를 흉내 냈다.
으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걸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어 셀린의 얼굴을 살피자, 며칠간 봐온 얼굴과 별 다를 바 없는 온화한 얼굴이 나를 반겼다.
정말 곤란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내색을 하지 않는 건지.
통 가늠할 수가 없어서 나는 그냥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 해.”
“감사합니다, 야.”
“감사합니…다?”
“후후, 별말씀을요. 그보다 일단….”
손사래 치며 웃은 셀린이 한 편을 가리켰다.
“식사부터 할까요?”
* * *
“으음~! 맛있어…!”
“입에 맞으세요?”
“입에 맞다뇨.”
셀린의 물음에 저니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눈썹을 세워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훌륭한 음식이 입에 안 맞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니의 너스레에 셀린이 기분 좋게 웃었다.
“혹시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숙소를 제공받은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근사한 식사까지 대접받다니….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아까도 말했지만, 두 분이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더 크니 괘념치 마세요. 오히려 이 정도밖에 못 해 드리는 게 죄송스러운걸요.”
“이 정도밖에라뇨! 셀린이 아니었으면 카나와 부둥켜안고 쌀쌀한 길바닥에 누워 잠을 청할 뻔했는걸요. …어라, 그렇게 생각하면 마냥 나쁜 것도 아닌가?”
말하다 말고 스스로 고민에 빠진 저니.
카나는 그런 그녀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빵을 입에 물었다.
“불평하지 않고 먹는 걸 보면 카나의 입맛에 맞나 봐요. …모르셨겠지만 이 녀석 입맛이 상당히 까다롭거든요.”
“어라, 그런가요?”
“말도 마세요. 완전 어린애 입맛이라 야채는 입에도 안 대려고 하는 아이예요. 저번에는 무슨 말을 했는지 아세요? 글쎄-”
입이 풀린 저니가 나불나불 떠들었다.
카나가 얼마나 야채를 싫어하는지, 그러면서 단 거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카나의 입맛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들은 셀린의 감상은 심플했다.
“귀엽네요.”
“에-”
“귀엽지 않나요?”
“…아니 뭐, 귀엽냐 귀엽지 않냐를 따지면 귀엽긴 하죠.”
야채를 보면 투정을 부리는 거나, 초콜릿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거나.
평소의 모습과 갭이 크다 보니 귀여움이 더욱 부각되는 건 사실이긴 한데….
셀린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녀에게서 원하는 반응을 얻어내지 못한 저니는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셀린이 따뜻한 눈으로 카나를 바라보았다.
“저니 님의 마음은 저도 잘 알아요. 카나 님의 건강이 나빠질까 걱정하시는 거잖아요?”
“어, 그건 아닌-”
걱정할 사람이 따로 있지, 누가 누굴 걱정해?
장난으로 푸념을 늘어놓던 저니가 부정하려 했지만, 셀린의 말이 나오는 게 그보다 한발 빨랐다.
“저희가 돌보는 아이들 중에도 종종 그런 아이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저도 저니 님처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저절로 고쳐지더라고요. 분명 카나 님도 그럴 거예요.”
“그, 그렇군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한 답변에 저니의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지금 저희를 쳐다보는 저 아이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고요.”
“셀린 님…!”
근처 식탁에서 저니 일행을 힐끗힐끗 보던 어린 수녀 하나가 얼굴을 붉히다가, 저니의 시선이 닿자 황급하게 도망쳤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셀린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음….”
시간이 지나면 고쳐진다, 라.
저니는 셀린의 말을 곱씹으며 카나를 보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
그러나 저니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눈썹 각도가 약 1도 정도 올라갔고, 입술도 아주 살짝 나와 있어.’
그리고 음식을 입에 가져다 댈 때, 고기를 먹을 때처럼 곧바로 입에 넣는 게 아니라 아주 잠깐의 텀이 있어.
이를 종합해 보면 카나는 현재 불만이 있는 상태라는 결론이 나온다…!
카나를 볼 때만 발휘되는, 광기에 가까운 관찰력으로 내린 저니의 결론이었다.
부르르-
“…?”
무언가 불온한 낌새를 느꼈는지 카나가 몸을 떨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끝내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속마음을 들킬까 봐 괜히 마음을 졸이던 저니가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저렇게 싫어하는 걸 보면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삭.
저니는 굳이 말을 잇는 대신 야채와 함께 뒷말을 삼켰다.
“아참, 아까 카나 님이 요청하신 거 말인데요. 방법을 찾았어요.”
“네? 벌써요?”
빨라서 좋긴 하지만 이건 너무 빠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저니는 카나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다만, 카나 님이 그걸 좋아하실지….”
말을 흐린 셀린의 시선이 카나에게 가서 닿았다.
정확히는, 카나가 입은 수녀복에 닿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그게-”
셀린이 선뜻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답답한 마음에 그녀를 재촉해낸 끝에 저니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셀린이 말하는 ‘방법’을 들은 저니의 소감은 이러했다.
“…그걸 받아들일까요?”
“글쎄요….”
누구 하나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상황.
유일하게 대화에 끼지 못한 카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