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카나가 짤막한 반문과 함께 얼굴을 찌푸렸다.
야채를 먹을 때보다 훨씬 극적인 표정 변화였다.
“그러니까 카나 네가-”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거 같아?”
“…역시 그렇지?”
평소보다 확연히 올라간 목소리 톤에 저니가 삐질 땀을 흘렸다.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을 훑었던 카나는 손에 걸리는 게 없자 다소 어색한 몸짓으로 팔짱을 꼈다.
그렇게 싫나?
사실 저니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셀린이 카나에게 요구한 것.
그것은 수녀 행세를 하라는 것이었다.
“대체 내가 왜 수녀가 돼야 하는 건데?”
“수녀가 되라는 게 아니라 행세를 하라는 거-”
“행세고 나발이고, 그래서 왜 해야 하는 거냐고.”
매우 합당한 의문에 셀린이 답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개인 기도실은 기본적으로 교단의 신도들에게만 허용되는 곳이에요.”
“그래서?”
“그런 곳에 외부인을 들이는 것이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겠죠? 최소한의 명분을 챙기기 위해서예요.”
카나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로 저니가 통역해 주는 셀린의 말을 경청했다.
“물론 외부인의 출입을 허가한 사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교단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거나,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면 허가가 떨어지죠.”
“중대한 사안?”
“대표적으로는 종족 전쟁 건이 있겠네요.”
그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면 제가 교황님께 건의를 드릴게요.
셀린이 그렇게 말하자, 카나는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나온 소녀의 말은 암묵적인 부정을 담고 있었다.
“그럼 교단에 큰 도움을 준 건 무슨 뜻인데?”
“거액의 기부금을 주셨거나, 에델 님의 빛을 멀리 퍼뜨려주셨거나….”
카나 님은, 그런 사례에 속하는 분인가요?
그에 대한 카나의 답은 당연히 ‘아니다’였다.
원칙이 그렇다는데 더 이상 뭐라고 말하겠는가.
결국 먼저 고집을 꺾은 건 카나였다.
애초에 상대의 홈그라운드에서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요청하는 입장에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다만,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최후의 항전을 해 보는 카나.
“강림제는 큰 축제니까 제국에서도 올 거 아니야. 제국과의 악연이 있어서 함부로 얼굴을 보일 수 없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 수녀원은 외부인의 출입을 받지 않고 있답니다. 두 분은 예외지만요.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저희 에델 교에서 도와드릴게요.”
“…외부인의 출입을 받지 않는 거라면 시선을 신경 쓸 이유도 없잖아. ”
“시선이란 게 꼭 외부인의 시선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
말하는 것마다 준비했다는 듯이 대답이 척척 나오니, 카나의 말문이 막힌 건 금방이었다.
“…내가 뭘 하면 돼?”
저니는 시무룩하게 말하는 카나에게서 꼬리를 축 내린 강아지의 모습을 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디까지나 명분 챙기기니까 어려운 일은 시키지 않을 거예요.”
“…거짓말 아니지?”
“그럼요.”
그렇게 말하며 셀린이 눈꼬리를 살포시 휘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은 손길을 느낀 카나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 * *
“여기부터 저기까지 쓸어 주시고, 다 하시면 이 걸레로 닦아 주시면 돼요.”
“…응.”
청소.
“빨래를 해야 하는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알았어.”
빨래.
“이를 어쩐담…? 정리를 해야 하는데, 손이 부족하네요….”
“…도와줄까?”
“아, 자매님. 말씀은 고맙지만 괜찮아요. 여기 있는 물건들은 꽤 무게가 나가는 것들이라 어린 자매님이 도와주시기엔 힘들 거예요.”
“도와줄게.”
“아앗…! 안 돼요! 그러다가 다치시면…. …에? 어떻게…?”
“이 정도는 들 수 있어.”
“세상에….”
창고 정리.
나는 수녀복을 입은 채로 수녀원에서 여러 허드렛일을 수행했다.
열심히 쓸고, 닦고, 빨래하고, 정리하고….
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본 저니는 이런 감상을 남겼다.
“…뭐지? 왜 잘 하지? 나는 카나가 허둥대는 걸 기대했는데…?”
걸레질을 하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지고.
설거지 중에 접시를 와장창 깨 먹거나.
물건을 한 아름 들고 옮기다가 떨어뜨려서 울상을 짓는.
“…그런 덜렁이 수습 수녀 같은 모습을 기대했는데!”
“….”
그건 덜렁이가 아니라 폐급 아닌가?
“결국 연이은 실수에 선배 수녀에게 혼나고 방에 틀어박혀서 훌쩍훌쩍 우는 거지. 그때, 카나를 혼낸 선배 수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으흐흐….”
“…드디어 미친 거야?”
망상도 이 정도면 병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까지 나는 수녀와는 거리가 한참 먼 삶을 살았다.
그건 전생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거리만 따지면 현생보다 전생이 훨씬 더 멀었지.
그때는 성별의 장벽 때문에 아예 수녀라는 직업을 가질 수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한 일들은 수녀로서의 일이라기보다 메이드가 하는 일에 가까운, 사소한 잡일들이었다.
어려운 일은 시키지 않을 거라는 셀린이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게 의미가 있어?’
‘신도는 아니지만 수습 수녀 체험을 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다, 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말했잖아요? 최소한의 명분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웃었던 셀린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인해 나는 수녀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산재한 잡일을 처리했다.
수녀원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잡일의 양도 상당했지만, 이미 천외천을 본 나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고작 이 정도로 힘들다고 포기할 거였으면 가리드와 같이 살지도 못했을걸.
가리드와 같이 살면서 웬만한 집안일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거든.
그러니 저니의 망상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뜻이야.
게다가, 설령 온갖 사고를 쳐서 혼났다고 해도 내가 방에 틀어박혀서 울 리가 없잖아.
“이상한 소리할 거면 저리 가.”
“응? 내가 없어도 괜찮겠어?”
“…저리 가진 말고 그냥 조용히 있어.”
개인 기도실을 이용할 생각이 없어서 나처럼 수습 수녀 행세를 할 필요 또한 없는 저니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유.
‘성국 사람들은 다 아르키쉬를 쓰잖아? 그리고 카나는 아직 아르키쉬를 잘 못 하고.’
그것은 자기가 없으면 의사소통에 큰 난항을 겪을 테니 통역해 주겠다는 명목이었다.
처음부터 그녀를 데려온 게 그런 이유였으니 거절할 이유는 없어서 당연히 수락했건만.
정말 따라만 다니면서 돕지 않는 거야 상관없는데, 저렇게 쫑알대는 건 조금 신경 쓰이네.
그렇다고 떼어놓고 다닐 수도 없고.
참 계륵 같은 사람이야.
‘심심할 텐데, 괜찮겠어?’
‘에이, 고작 며칠 정도야. 카나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지.’
‘…흥.’
…그래도, 조금 고맙긴 하네.
* * *
쭈욱-
촤르르.
두 손으로 걸레를 쭉 비틀자 잔뜩 머금고 있던 물이 쏟아졌다.
수녀 행세를 시작한 지 어느덧 삼 일째.
셀린의 말로는 아무리 길어도 사 일이 넘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수녀 행세를 하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었다.
‘….’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과연 어떨는지….
“아, 자매님! 끝나셨나요?”
걸레질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 나에게 일을 시킨 수녀가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자매, 아니야.”
그녀의 말에 나는 며칠 동안 지겹게 되풀이 한 말을 다시 한번 내뱉었다.
자매라는 말이 꼭 수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수녀복이 이렇게 잘 어울리시는데. 아쉽네요.”
“….”
그녀들이 나한테 말할 때는 그런 의도를 담아서 하는 게 맞거든.
수녀복을 입고 그들과 섞여 일하고 있다고 해도 진짜 수녀가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녀들은 나를 꼭 막 들어온 막내 수녀를 대하는 것 같은 태도로 대했다.
…대체 왜?
그런 의문을 셀린에게 털어 놓았지만, 그녀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답을 주진 않았다.
“고생하셨어요. 사탕 드실래요?”
“아-”
냠.
그래도 사탕은 받아야지.
우물우물.
청소하느라 더러워진 손 대신 입으로 사탕을 받아먹은 나는 달짝지근한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며 복도를 슥 훑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복도.
누가 오더라도 이 복도를 보고 청소를 못 했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둘 중 하나일 거야.
청소 결과와 상관없이 남을 괴롭히고 싶은 사람이거나, 청결함의 기준이 남들과 완전히 반대인 사람이거나.
내 앞에 있는 수녀는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카나 님의 청소 실력은 볼 때마다 정말 감탄만 나오네요. 발을 딛는 게 죄송스러울 정도로요.”
“기본이야. 근데, 무슨 일이야?”
잘하고 있는지 감독하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아참, 내 정신 좀 봐.”
수녀가 손뼉을 짝 쳤다.
“셀린 자매님이 부르셨어요.”
“…!”
…드디어.
셀린이 말은 하긴 했지만, 일이라는 게 언제나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계획이 틀어져서 하루 정도 더 일하는 것도 각오했는데.
셀린의 말대로 돼서 다행이야.
“잘 됐다! 그렇지 카나?”
“응.”
저니 딴에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긴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지루해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심지어 그녀는 나처럼 일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얼마나 심심했는지, 나중에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빗자루를 들고나와 같이 청소하고 있더라.
간만에 의견이 일치한 나와 저니는 서둘러 셀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깐만.’
왜 부르는지 이야기는 못 들었잖아.
설마 이렇게 불러놓고 ‘조금만 더 수고해 주세요’ 같은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다행히 내 염려가 현실이 되는 일은 없었다.
“이제 기도실을 이용하셔도 되는데… 오늘 바로 이용하실 건가요?”
“그래도 돼?”
“네. 원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용하실 수 있어요.”
“그러면 지금 갈게.”
이미 내 예상보다 훨씬 늦어졌다고 해도 더 미룰 필요는 없겠지.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느긋하게 다녀 와!”
저니의 배웅을 받은 나는 셀린을 따라 기도실에 도착했다.
명색이 신인데 고작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통이 불가능하진 않겠지.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를 여기까지 인도한 셀린도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떠나가자, 기도실에는 오로지 나 혼자만 있는 공간이 되었다.
하긴, 개인 기도실인데 혼자가 아니라면 그것도 웃긴 일이겠지.
여기에 들어오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말이야.
에델의 모습을 한 조각상 하나와, 방석 하나.
기도실에 있는 것이라곤 오직 그 두 개 뿐이었다.
살풍경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갈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묘한 감상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방석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음….”
에델 교 신도들이 하던 것을 흉내 내서 어설프게 손을 모은 뒤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운을 띄워야 할까.
하고 싶은 질문은 많았는데, 막상 기도실에 앉으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안녕.”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것은 친구에게나 할 법한 가벼운 인사였다.
만약 내 인사에 불만이 있어서 대답하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 아니겠어?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각오는 했던 터라 실망감이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
“어라, 벌써 끝이야?”
나를 내려다보며 빙글빙글 웃는 한 쌍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런데 잠깐만.
…아르키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