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흡.”
“…?”
아무도 없던 기도실에 갑자기 등장한 인물과 아르키쉬.
그 둘의 조합으로 인해 멍해져 있는 나의 귓가에 가벼운 웃음소리가 날아들었다.
“아하하하! 장난이야, 장난. 네 생각대로 명색이 신인데 인간이 만든 언어에 구애받을 리 없잖니?”
“…에델?”
“응. 에델이랍니다!”
여자, 에델이 손가락으로 만든 브이 자를 눈에 가져다 대며 발랄하게 말했다.
흘러나오는 신성력과, 보통 사람들과 다른 묘한 기척을 보면 에델이 맞는 거 같긴 한데.
…그러니까, 신이라고?
이게?
“…‘이게’는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응?”
그런 생각을 한 건 맞지만, 말로 꺼내진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에델이 ‘네 생각대로 명색이 신인데 인간이 만든 언어에 구애받을 리 없잖니’ 라고 말했었지.
설마, 생각을 읽는 건가?
“정답~! 뭐, 전부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귀여운 작은 새 양의 실력이 워낙 고절해서 읽는 게 쉽진 않거든.”
“정말 에델이구나.”
“그렇다고 말했잖아?”
말하긴 했지.
신이 저렇게 가벼운 언행을 할 줄은 꿈에도 몰라서 믿기 힘들었을 뿐이지만.
저래선 신이 아니라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수라고 하는 게 더 신빙성 있을 거 같은데.
“…저기, 내가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거, 까먹은 건 아니지?
알아. 편하네.
“넌 참 신기한 아이구나.”
보통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하면 꺼리던데, 꺼리기는커녕 편리하다고 생각하다니.
그렇게 중얼거린 에델이 신비로운 은색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웬만하면 말로 해주지 않을래? 아까도 말했지만 네 생각은 읽기 꽤 어렵거든.”
“알았어.”
“옳지, 착하다. 그래서, 우리 작은 새 양은 뭐가 궁금했길래 먼 곳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걸까?”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 내가 찾아온 이유는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에델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능청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뭐가 궁금해서 찾아왔냐, 라.
에델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성국까지 찾아왔지만, 설마 신이 직접 강림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답을 들을 수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신탁 정도로 예상했지-
“신탁도 ‘기껏해야’라고 말할 정도로 가벼운 건 아니지 않을까?”
…아무튼 그 때문에 당황한 나는 기껏 생각했던 것들을 깡그리 잊어버려서, 다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라 잊고 있던 걸 떠올리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너는 운영자야?”
“….”
내 질문에 말문이 막힌 듯 에델이 웃는 얼굴 그대로 멈춰버렸다.
조금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생각을 고르는 것처럼 보이던 에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말버릇은 이미 알고 있지만, 하다못해 에델이라고 불러주지 않겠니? 이래 봬도 신인데, 너무 위엄 없어 보이잖아.”
질문과는 거리가 꽤 있는 말로 포문을 연 에델이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모습을 본떠 만든 조각상으로 걸어간 그녀가 조각상에 몸을 기댔다.
에델을 보기 전까진 몰랐는데, 에델의 조각상과 실제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괴리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각상을 보고 에델을 찾으라고 하면 찾지 못할 정도였다.
하긴, 에델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본 사람들은 이미 관에 들어간 지 오래일 텐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에델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새삼스레 느껴졌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그다지 감동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아무튼- 여기서 그게 뭐냐고 부정해 봤자 소용없겠지. 설마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떨떠름하게 말한 에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 알아챘던 거니?”
“글쎄.”
언제부터냐고 묻는다면, 아마 정신 나갈 정도로 매운 볶음밥을 먹었을 때부터 아닐까.
잊고 있던 기억을 깨울 정도로 강렬한 매운맛은 이 실리아 세계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그것뿐이었다면 의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상하잖아. 있는지도 몰랐던 바다 건너 대륙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넘어오고, 그들에게 가호를 내려줬다는 건.”
“마족들도 그렇게 왔는데?”
“하지만 마족들은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
두 차례에 걸친 종족 전쟁이 왜 일어났겠어.
아르디나 대륙으로 건너와 살려고 하는 마족들을, 원주민들인 실리아 인들이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긴 일이잖아.
물론 실리아 인들이 왜 마족들의 정착을 결사반대했는지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을 탓하려는 건 아니야.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아무리 에델, 너의 가호가 있다는 걸 감안해도 그만한 수의 사도가 대거 정착하는데 별다른 잡음이 없다는 게 이상하잖아.”
그리고 이상한 점은 그거뿐이 아니었다.
“대륙의 역사서를 뒤져도 몇 번 찾아보기 힘든 부활의 권능, 다른 대륙에서 넘어온 걸 감안해도 실리아 인들과 너무 다른 언행들, 지나치게 빠른 성장세.”
대표적인 것만 들어서 이 정도지, 더 말해 보라고 하면 얼마든지 더 말할 수 있었다.
사도와 접촉한 게 얼마 안 된 내가 이질감을 느끼는데, 정작 나보다 훨씬 많이 부대낀 사람들은 그다지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냥 ‘에델 님의 사도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말로 넘어갈 뿐.
그 점이 오히려 나의 의심을 더 부추겼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저니 덕분이야.”
내 의심에 쐐기를 박은 건 저니의 언행이었다.
아무리 혼잣말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많이 하잖아.
꼭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의 말과 행동은 내 기억 속 저 깊숙한 곳에 있는 옛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녀와 동행하기로 마음 먹은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의심하고 있었으면서 왜 그녀에겐 말하지 않았니?”
“만약 내가 생각한 대로 여기가 게임 속 세상이라면, 그걸 말하고 다녔을 때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게임 속 캐릭터가, 자신이 게임 속 인물 중 하나란 것을 깨닫고 플레이어에게 말을 걸다니.
고의적으로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면 즉시 삭제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잖아.
그나저나 다른 건 가물가물하면서 이런 건 기억나는 걸 보면, 전생의 나는 어지간히 게임을 좋아했던 모양이야.
“헤에…. 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지금도 위험한 거 아니야?”
“상관없어.”
어쩌면 지금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생에 지구에 살던 남자였지만, 이세계에서 환생했다’라는 컨셉의 캐릭터일지도 모르지.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며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으니까. 나는 단지, 답을 알기 전에 죽는 게 싫었을 뿐이야.”
“…안심해. 넌 꼭두각시 같은 게 아니야. 굳이 말하면… 그래, 검이라고 할 수 있겠네.”
“검?”
위험을 대비해, 잘 벼려 품속에 고이 넣어둔 검.
영문 모를 말을 한 에델이 재차 말을 이었다.
“결론만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네가 생각한 것처럼, 이 세계가 게임인 것도 맞지만…”
에델이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렸다.
기분 탓일까. 그녀의 몸이 아까보다 흐릿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실제로 있는 세계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면 아닌 거고 맞으면 맞는 거지, 후라이드 반 양념 반도 아니고 그게 뭐야?
나도 모르게 불퉁한 어조로 묻자, 그녀가 쓴웃음을 입가에 걸쳤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실제로 있는 세계에,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넘어왔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너와는 다르게 그들은 게임을 통해 넘어오게 된 거고.
설명은 들었지만 여전히 납득은 되지 않았다.
“그게 가능해?”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구의 기술력이 다른 세계를 통째로 게임을 만들 정도로 발전했다는 말 아닌가.
내가 죽은 후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길래 그런 게 가능한 거야?
“당연히 불가능하지. 아무리 기술력이 발전한다고 한들 신의 힘을 넘볼 수 있겠어?”
에델이 빠르게 수긍했다.
“이 세계가 정상이었고, 내 힘도 멀쩡했다면 말이야. 너도 알고 있지 않아? 내가 빚어내지 않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존재들을. 차원을 넘어 침략하는 것들의 존재들을.”
그 말을 듣자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불과 얼마 전에도 그것 중 하나와 싸운 적이 있었던지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것들과 싸워왔어. 인간의 시간으로 말하면…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지. 그 결과 생겨난 게-”
“차원수.”
“맞아.”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선선한 대답이었다.
차원수가 대륙에 모습을 처음 드러낸 건 내가 네 살 때였으니, 고작 십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에델이 패배한 것도 그때라는 거구나.
“그것들에 의해 내 세계는 갉아먹히고, 망가지고, 부서졌어. 그리고 세계가 망가지면 신의 힘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돼.”
“지구인들이 그 틈을 노려 이 세계를 게임으로 만들어 버린 거야?”
“응? 아냐 아냐! 아무리 내 힘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고작 인간들에게 그런 수모를 당할 리 없잖아?”
“그러면 왜 이렇게 된 건데?”
“후흐, 짜증 내는 거야? 귀엽기는.”
은근히 짜증을 드러내자 에델이 귀신같이 눈치채고 키득키득 웃었다.
아니지, 귀신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신이구나.
나는 그녀를 마뜩잖게 바라보았다.
“이 세계를 게임으로 만든 건 내 선택이었어. 그 수가 최선이라고 생각했거든.”
“…게임으로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고?”
“지구의 신… 그쪽 표현으로는 관리자겠구나. 그 녀석과 계약을 맺었어.”
왠지 모르게 처연하게 느껴지는 얼굴을 한 그녀가 말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실리아를 게임으로 만들어서 녀석의 세계에 예속되는 대신, 이 세계를 계속 존속시켜 주기로.”
그대로였다면, 이 세계를 기다리는 건 파멸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엔 갖은 감정들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한 거야. 나는 게임이 된 세계… ‘실리아 온라인’의 운영자이면서 신이니까.”
어때, 문제를 맞힌 기분은?
좋아? 시시해? 홀가분해?
나는 그렇게 묻는 에델에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응, 응.”
“거지 같네.”
“아하하하!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빵 터진 에델이 배를 붙잡고 웃었다.
…뭐가 저렇게 웃긴 거람.
도무지 알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