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의 예상은 보기 좋게….
아니, 보기 나쁘게 빗나갔다.
“카나, 저녁….”
“안 먹어.”
“아, 안 먹는구나…? 응, 알았어.”
저녁 시간이 되어도.
“카나… 나도 눕고 싶은데 조금만 비켜주면 안 될까…?”
“….”
“…아하하, 갑자기 침낭에서 자고 싶네. 나는 침낭에서 잘게!”
잘 때도.
“두 분, 안녕히 주무셨나요? …어라, 카나 님은 아직 주무시나요?”
“그러게요….”
아침이 되어 셀린이 찾아왔을 때도.
카나는 이불 속에 파묻힌 채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언젠간 풀리겠지, 하고 기다리기 시작한 지 벌써 이틀이나 지난 지금.
빠르면 몇 시간, 늦어도 하루면 풀릴 거라고 생각하던 카나의 기분은 마치 여름철 장마처럼 밤이 두 번이나 지나간 지금도 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분만 안 좋은 거면 다행이지.
카나는 이틀 동안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는 건 물론이고, 이불 밖으로 얼굴 한 번 내민 적 없었다.
간간이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앉는 이불이 아니었다면 저니는 분명 카나가 죽은 게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며칠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다니.
이제 저니는 걱정을 넘어서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사실, 그녀는 이미 카나가 덮은 이불을 들추기 위해 시도한 적이 있었다.
‘카나야아~’
‘하지 마.’
‘…넵.’
귀신같이 눈치채고 서늘한 경고를 날리는 카나로 인해 무산되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러는 걸까.”
저니의 방송 시청자들의 여론은 ‘카나 사춘기설’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사춘기라고 해도 며칠 동안 저러는 게 말이 됨?
-사춘기도 사람마다 다르니까
-조금 심하게 겪나 보지
-조?금
-밥이라도 먹여야 하는 거 아닌가… 벌써 며칠째 굶고 있는데
“아니, 나도 먹이고 싶지…. 하지만 저러고 있는 걸 어떡해.”
저니의 시선이 이불을 뒤집어쓴 카나에게 가서 닿았다.
이쯤 되면 거북이처럼 이불이 몸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카나… 카나리아… 거북이….
그녀가 흠, 하고 턱을 짚었다.
카북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카나북이?
-둘 다 구린데요;
-저하하하하
-방장은 나중에 아기 낳으면 꼭 작명소 가서 이름 받아오자 ㅇㅇ;
“아이 씨, 그러는 너희들은 얼마나 잘 짓는지 한번 보자!”
-저희는 안 지을 건데요??
-저희가요? 그걸요? 왜요?
-삼신기 ㄷㄷ
-저하다 추니야..
…하여튼 얄미운 놈들!
‘…나름 괜찮지 않았나?’
카나북이…. 나름 귀여운 거 같은데.
이불로 된 등껍질 밖에 머리와 팔만 쏙 내민 카나를 상상한 저니의 입가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또또 이상한 생각하지
-경찰 아저씨! 여기 변태가 있어요!
-북극곰은 오늘도 울고 있습니다
“…쓰읍, 그런 거 아니야! 멀쩡한 북극곰 울리지 말라고!”
자신은 어디까지나 카나를 여동생으로 생각하고 아끼는 거지, 그런 의미로 좋아하는 게 아니다.
밴까지는 너무하니까 채금 정도만 먹이자.
저니는 손가락을 움직여 북극곰의 안위를 걱정한 환경 운동가의 입을 봉인했다.
-사람이 죽었어!
-끼야아아아악아악!!
-내 친구를!! 돌려줘!!!
“너희도 같은 꼴이 되고 싶지 않으면 처신 잘하라고.”
그녀가 손가락을 붕붕 휘두르며 엄포를 놓았다.
‘그나저나,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거 같긴 한데….’
손을 댈 낌새만 보이면 하악질을 하는 게 꼭 경계심 강한 고양이 같네….
그녀는 불과 몇 분 전에 거북이라고 생각하던 것도 잊고 생각했다.
으음, 고양이라.
저니가 손바닥을 탁 내리쳤다.
“카냥이는 괜찮지 않아? 카나랑 고양이를 합쳐서 카냥이. 원래 이름이랑 별로 다르지 않으면서 어감도 귀여운 것 같은데?”
이번엔 시청자들의 반응도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다.
-카나냥이도 괜찮지 않나? 빠르게 읽으면 카냐냥 같은 느낌도 나고
-뭐가 됐든 카북이보단 나을 듯ㅋㅋ
-어감은 괜찮은데 그걸 설명하는 게 좀 짜치네요
-아니 그래서 어떡할 거냐고;
“아 맞다.”
한 시청자의 일침에 다른 곳으로 떠났던 저니의 정신이 돌아왔다.
거북이고 고양이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셀린이라면 무언가 알까 싶어서 그녀에게 물어 본 저니였지만.
“기도실에서 있었던 일은 저도 알 수 없어서….”
셀린이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통에 덩달아 고개 숙여 사과해야만 했다.
뾰족한 수는 생각나지 않고, 도움을 줄 사람은 없고.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려봐도 영 시원찮은 아이디어만 나오니 저니의 입에서도 답답한 심정을 담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정말 신이라도 만났나?’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어서 곧바로 머릿속 한구석으로 치워버렸지만.
웅성웅성.
저니가 문득,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마음과 다르게, 창밖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엔 설렘과 즐거움이 서려 있었다.
고요하던 수녀원의 분위기도 오늘따라 들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재밌겠다….”
성국을 넘어, 아르디나 대륙의 대축제.
강림제가 시작되었으니까.
강림제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날만을 기다렸는데.
카나의 손을 꼭 잡고 같이 축제 구경하는 걸 오매불망 기다려 왔던 저니로서는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눈치챌 정도로 창밖을 빤히 바라보던 저니가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아니! 포기하긴 아직 일러!”
카나가 아직 묘지기라고 불리던 시절, 그때만 해도 작은 소녀와 이렇게까지 친해질 줄 알았던가.
물론 친해지기 위해서 올라갔던 건 맞지만, 답이 안 보이던 건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돌아오지 않는 답에 지쳐서, 말이 통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포기했다면 지금처럼 카나와 여행하고 같은 방에서 자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끈기를 갖고 끈덕지게 달라붙은 끝에 얻어낸 성과.
‘참고 견디는 건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해서 익숙하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저니의 눈이 화르륵 타올랐다.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내버려두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 끄집어내 주는 게 더 도움이 될 때도 있지 않던가.
마음을 굳힌 그녀가 침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카나, 미리 사과할게.”
짤막한 말을 남기고 그대로 이불을 들어 올린 저니.
사아악!
그 순간, 갑자기 엄습하는 서늘한 느낌에 그녀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판단이 그녀의 목숨을 구했다.
펄럭-
화끈!
“…!”
나풀나풀 떨어지는 이불 조각과 볼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촉.
저니는 주르륵 떨어지는 핏줄기를 보고 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손에서 놓친 이불이 땅에 떨어지고,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던 카나는 서늘한 눈을 한 채 저니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듯한… 오히려 그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
만약 몸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검이 닿았을 곳은 분명….
검의 궤적을 그려보던 저니는 털이 쭈뼛 솟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카나는 저니가 아무리 귀찮게 해도 말로 위협하거나, 친구 사이에 으레 할 법한 가벼운 장난 수준의 공격만 했었다.
하지만 방금 카나가 한 것은, 명백히 살의가 담긴 공격이었다.
“어차피 너희는 ────.”
“…어?”
자그마한 입술은 연신 벙긋거리는데, 정작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확히는 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인식이 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화등잔처럼 커진 저니의 눈이 채팅창을 훑었다.
-ㄷㄷㄷㄷㄷ
-불량 카나;;
-방금 진짜 죽을 뻔한 거 아님?
-공격 날아오는 거 보지도 못했는데;
-레이드 할 때 PTSD 오네ㅁㄴㅇㄻㄴㅇㄹ
그러나 채팅창은 조금 전 카나가 했던 공격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
카나의 말이 방송을 통해 나가고, 그에 대한 피드백이 돌아오기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였구나.”
입을 벙긋거리던 카나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말을 멈추고 짜증스레 목을 긁다가, 손끝에 걸리는 초커의 감촉을 느끼고 손을 내렸다.
“너랑 놀아주는 것도 이제 끝이야.”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놀아주는 게 끝이라니.
충격을 받은 저니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카나가 그녀와 놀아주는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 말에 담긴 진의를 느꼈기 때문에, 관계의 절연을 의미하는 말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순간 정신을 놓았던 그녀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자신을 놀리는 반응 반,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는 반응 반.
상반된 분위기의 채팅창을 무시한 저니가 카나에게 말했다.
이런 말을 하면 흑역사로 박제돼서 몇 년 동안 고통받을지도 몰라.
그렇다 해도, 이럴 땐 창피함을 감수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혹시 내가 서운하게 한 게 있으면 말해줄래? 물론 직접 말하는 게 부끄러울 건 알지만, 그래도 말해줬으면 좋겠어. 난 카나가 너무 좋아서,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거든.”
원래 사람들은 감정이 북받치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감정을 다스리는 게 미숙한 어린 나이엔 감정에 휘둘리는 일이 더 잦다.
분명, 카나도 그런 걸 거야.
“….”
그녀의 마음이 통한 걸까. 카나는 말없이 입술을 짓씹었다.
저러면 입술 다 상할 텐데….
저니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이나 말없이 저니를 노려보던 카나의 눈매가 평소의 눈매처럼 축 늘어졌다.
동시에 그녀를 겨누고 있던 검도 바닥을 향하고, 금방이라도 베일 것처럼 날 서 있던 분위기도 한층 풀어졌다.
그렇다 해도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걸 해내?이걸 해내?이걸 해내?이걸 해내?
-특대저니
-애들 달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던데…
-이건 인정협회도 인정할 듯
-인정협회가 조스로 보이냐?
-조스바 먹고 싶다
-ㄴ에반데;
카나의 변화에 채팅창이 아우성쳤다.
“…아니. 아니야.”
“…?”
카나가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에 저니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카나의 입이 열렸다.
“…놀아준다고 한 건 미안.”
“음… 괜찮아. 카나가 나를 놀아준 건 사실인걸.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좀 많이 귀찮게 하긴 했지.”
“….”
카나는 아하하, 하고 웃는 저니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카나가 다시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더 이상 어울리고 싶지 않은 건 진심이야.”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못 알려 줘.”
“음, 그렇겠지?”
‘안’ 알려 주는 게 아니라 ‘못’ 알려 준다니.
그 와중에도 저니는 카나의 마음을 돌릴 단서를 캐치해 기억 속 상자에 잘 넣어 두었다.
“그러면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나는 이대로 성국 주변을 둘러볼 생각인데, 카나는 나와 헤어지고 나면 뭐 할 거야?”
“…글쎄.”
정말로 생각한 게 없다는 듯, 카나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뱀 사냥이라도 할까.”
“뱀 사냥?”
땅꾼이라도 될 생각인가?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저니는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카나의 텅 빈 눈을 보면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니는 알 수 없는 카나의 대답에 대해 되묻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언니랑 데이트 한 번만 해주면 안 될까? 오늘부터 강림제가 시작됐는데, 카나와 같이 가고 싶어서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았거든. 혼자 구경하기엔 외롭고, 그렇다고 못 보고 가려니 너무 아쉽고…. 그러니까 오늘 딱 하루만 어울려주라. 응?”
“….”
저니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카나의 입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침내, 자그마한 분홍색 입술이 열렸다.
“…알았어.”
휴우-
시원한 수락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받아낸 수락에 저니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