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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1

에델 신의 강림을 기리는 강림제가 시작된 오늘.

세데스 성국 내의 거리는 들뜬 분위기가 가득했다.

“엄마, 나 저거 먹을래!”

“저거? 음… 알았어. 대신 오늘만이다?”

“응! 엄마 최고!”

“아휴, 이럴 때만 최고지?”

“헤헤.”

아이의 조름에 평소에는 눈을 부라리며 핀잔을 주던 어머니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지갑을 열었다.

“아…! 이런 실수를….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옷은 빨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저도 제대로 안 보고 다닌 잘못이 있으니까 넘어갑시다.”

음료수를 들고 가던 다른 행인과 부딪혀 옷을 버려도, 자비를 미덕으로 삼는 에델 교의 뜻에 따라 너그럽게 넘어가는 행인.

“자기야, 이거 봐. …어때?”

“….”

“왜 그래…? 별로야?”

“아니. 너무 예뻐서 순간 정신을 잃었어.”

“아이참, 부끄럽게~….”

“손님. 안 사실 거라면 가주시겠습니까.”

물론 이처럼 북적북적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무뢰배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극악무도한 짓마저, 흥겨운 축제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의 눈엔 흐뭇하게 보일 뿐이었다.

하루하루가 오늘과 같았으면 세상에 불화란 게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평화로운 풍경.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과 즐거운 분위기를 깨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


“….”


“….”

거리에 한 명의 소녀와 한 명의 여성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외모가 험상궂다거나 행동거지가 위협적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외모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넋을 놓고 볼 정도로 뛰어났다.

먼저, 검은색 중단발을 한 여성.

살짝 올라간 눈매에, 길쭉한 키와 군살 없는 몸매가 더해져 매력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이 지나가자 뭇 남성들이 시선이 자석처럼 따라붙었다.

타고난 외모와 후천적인 노력.

그 둘의 조화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여성의 옆에서 함께 발을 맞추는 소녀를 본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엔 더 이상 여성의 외모가 남아있지 않았다.

어쩜 저리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을 수 있을까.

동글동글한 얼굴과 그 안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이목구비는 누가 저렇게 만들라고 해도 불가능할 정도로 앙증맞아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볼을 잡아당겨 보고 싶은 충동이 일게 했다.

이따금 분홍색 눈을 깜박일 때마다 발산하는 깜찍함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슴을 부여잡게 만들었다.

유일한 흠이라고 한다면 귀여운 외모에 맞지 않게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표정 덕분에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꼭 끌어안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보호 욕구를 자극하는 소녀.

아직은 귀엽게만 보이지만,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나라에서… 아니 대륙에서 제일가는 미인이 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깜찍한 소녀이건만.

“…둘이 싸운 건가?”

“저런 아이가 내 동생이었다면 얼마든지 져줬을 텐데. 그냥 좀 져주지.”

“친자매가 아닌가? 하긴. 친언니였으면 저럴 리 없겠지?”

은연중에 느껴지는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사리 그 둘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다가, 소녀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왠지 모를 압박감에 눈을 피하곤 했다.

둘이 걸음을 옮기면 경로를 따라 인파가 갈라지며 빈 공간이 생겼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보이는 둘.

한참을 그렇게 다니던 중.

중단발을 한 여자, 저니가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

“…이런 건 내가 원하던 축제가 아니야!”

“깜짝이야!”

“에잉, 쯧쯧! 저러니까 동생이랑 싸웠지.”

졸지에 동생과 싸운 나쁜 언니가 되어버린 저니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가뜩이나 카나가 삐진 이유도 알 수 없는 데다가, 이대로 가면 카나와 헤어질 절체절명의 위기인데, 주변에서는 그녀를 향해 혀를 차며 손가락질했다.

그렇다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예요.’라고 말하면서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 혼자 분을 삭일 수밖에.

저니는 사람들에게 해명하는 대신, 거기에 쏟을 신경을 카나와 대화하는 데 할애했다.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 수녀분들한테 들은 건데, 축제 기간엔 평소에 보기 힘든 맛있는 것들이 잔뜩 있대. 꼭 먹을 게 아니더라도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있다고 하니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만 해!”

돈은 많거든!

…물론 카나가 잡은 오우거들의 사체를 처분해서 얻은 돈이니 따지고 보면 카나 돈이나 마찬가지지만.

카나가 들고 다니기 번거롭다고 저니에게 떠넘기고, 돈도 필요없다고 하는 바람에 큰돈을 만지게 됐지만, 내심 마음에 걸렸던 그녀였던지라, 이런 데 돈 쓰는 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그게 아니었더라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없어.”


“음,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구나? 그러면 카나가 좋아하는 초콜릿은 어때?”


“싫어.”


“…그러면 고기, 고기는? 아까 지나온 길에 오크 고기 꼬치를 봤거든. 줄까지 서 있는 걸 보면 맛집 아닐까?”


“안 먹어.”

그러나 카나는 저니가 무슨 말을 던지든 단답형으로 답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했으니 어울려 주긴 하지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라고 말하는 것처럼.

후우-

저니는 카나에게 들리지 않게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쉽지 않네.

카나와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은 건 맞다.

이유도 알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헤어지는 것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

그러나 그녀가 지금 카나에게 매달리는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좋아! 그러면 일단 돌아다녀 볼까? 무작정 돌아다니다 보면 흥미로운 게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마음대로 해.”

기운차게 외친 저니가 작은 손을 꼭 잡았다.

다행히, 이번엔 갑자기 검이 날아들지 않았다.

카나는 저니와 맞잡은 손을 풀지 않고 묵묵히 그녀를 따라갔다.

‘….’

저니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원치 않은 이별은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을 동반하는 법이다.

만약 설득에 실패해서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아쉬움이 남지 않게 이 순간을 즐기자.

한숨과 함께 슬픈 기색을 얼굴에서 지운 저니가 부러 활발하게 거리를 거닐었다.

* * *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저니의 손에 이끌려 성국 거리거리를 누비며 생각했다.

사실, 저니의 말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와 축제를 즐기고 싶어서 약속을 잡지 않았다는 말….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 거짓말은 아닐 거야.

근데,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어차피 사는 세계가 다르잖아.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게임 속 NPC들인걸.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차라리 여기서 끊어내는 편이 나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좋을 거야.

“….”

그런데 왜일까.

거절하려던 순간, 저니의 볼에 길게 남은 상처가 눈에 들어온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제안을 수락해 버렸다.

에델의 말대로라면 진짜 상처도 아닐 텐데.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에 고민하던 나는, 결국 답을 찾아냈다.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유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연을 끊는 입장이니 이 정도 배려는 해야겠지.

그래서 수락한 거야.

…분명 그럴 거야.

그렇게 답을 내렸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커다란 돌이 누르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내가 깊은 바닷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이에도 저니는 부지런히 거리를 쏘다녔다.

어쩔 땐 달달한 간식거리를 파는 곳을 기웃거렸다가, 또 어쩔 땐 몬스터 고기를 파는 곳에 가서 기웃거리고.

이번엔 꽃을 파는 상인에게 가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와아- 이런 꽃도 있었구나.”


“대삼림에서만 피는 꽃이라네. 딱 이 시기에만 피어서 ‘에델의 발자취’라고도 부르지.”


“에델의 발자취…. 낭만적인 이름이네요. 혹시 꽃말을 알 수 있을까요?”


“새로 찾아올 만남에 대한 기대와, 떠나간 이에 대한 그리움이라네. 자- 받게.”


“에? 그냥 주시는 거예요? 그, 그냥 받아도 괜찮아요?”


“동생이 귀여워서 주는 거니 사양하지 말게.”

저니와 대화를 나누던 상인이 이쪽을 흘깃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대신 동생이랑 화해 잘하고. 원래 저 나이대 아이를 달랠 때는 잘못한 게 없어도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게 낫다네.”


“아, 아하하…. 충고 감사해요.”

상인과의 대화를 마친 저니가 숙였던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잘 가게!”


“감사해요! 다음엔 꼭 살게요!”

그 후로도 우리, 정확히는 저니는 축제 구경을 이어 나갔다.

사소한 거 하나를 볼 때마다 나한테 쪼르르 달려와서 묻고, 시무룩해져서 다시 돌아가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사이, 뉘엿뉘엿 지던 해가 어느새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원래라면 건물에서 드문드문 흘러나오는 불빛만이 있었을 거리는 밤이 됐음에도 온통 밝은 빛을 뽐내고 있었다.

저니가 오가는 행인들을 피해 거리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고마워 카나. 덕분에 재밌었어.”

“…응.”

아무 반응도 없는 목석을 데리고 다니는 게 정말 재미있었을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얼굴을 살폈지만, 아무런 거짓의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잠시 거리의 불빛에 기대어 서로를 바라봤다.

사도를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저니를 덮은 에델의 힘 때문에 기척은 물론이고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보려고 애를 쓰면 어떻게든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저니를 만나고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볼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피는 나를 발견했다.

고양이상의 미녀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나처럼 이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나를 볼 수 있겠지.

얼굴을 마주 보는, 이런 사소한 상황에서도 그녀와 나의 차이가 느껴졌다.

“카나는, 나와 함께 해서 즐거웠어?”

“…응.”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저니가 희미한 미소를 걸쳤다.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마지막까지 어울려 줄래?”

나는 말없이 끄덕였다.

이미 어울려 줄 만큼 어울려 줬는데, 한 번 더 어울려 주는 것쯤이야.

저니는 꼭 잡고 있던 손도 놓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고 걸어서, 거리 밖으로 나간 그녀는 난데없이 달밤 아래 등산을 시작했다.

나직한 동산이라서 우리는 금방 정상에 올라 탁 트인 정경을 맞이했다.

가고 싶은 곳이라는 게-

“여기야?”

“응. 셀린한테 들었거든. 이 산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강림제의 풍경이 그렇게 예쁘다고 하더라고.”

“….”

확실히, 낮은 동산이라고 해도 다른 곳보다는 높아서 정상에 오르니 넓은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었지만 거리는 낮 못지않게 활기찼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 말 없이 거리를 내려다봤다.

정적이 사위를 가득 메울 무렵,

“…있지?”

저니가 입을 열었다.

“나는 어릴 때만 해도 이런 산에 오르는 것은 상상도 못 했어. 왜냐하면 많이 아팠거든. 의…. …사제님도 생사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많이.”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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