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아, 혹은 미숙아.
재태 기간 37주 미만에 태어난 아이.
충분히 성장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태어났기 때문에 몸이 약한 것은 기본이고, 사망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저니, 다은은 그런 조산아 중 하나였다.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그녀는 부모의 품을 느끼기도 전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다행히 인큐베이터 안에서 쓸쓸하게 숨이 멈추는 비극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한 몸을 갖지는 못했다.
열병을 앓아 며칠 내내 드러누울 때도 있었고, 호흡 곤란으로 혼수상태에 빠질 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몸이 약해서 잔병치레가 끊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다은은 병원을 마치 제집처럼 들락날락했다.
특히,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엔 큰 병을 앓는 바람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대신 기나긴 입원 생활을 해야 했다.
남들이 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고, 싸우고, 화해하고, 공부할 때, 다은은 병원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 병마와 싸워야 했다.
그렇기에 다은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의 추억도, 추억을 공유할 친구도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가정 형편이 좋아서 병원비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그녀의 부모님은 몸이 좋지 않은 그녀를 거추장스럽게 여기지 않고 언제나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으니.
긴 간병에 지쳐 사이가 틀어지거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는 병원비의 무게에 눌려 무너지는 가정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다은의 경우는 축복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은도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더라고.”
병마에게 빼앗긴 어린 시절.
병원에 갇혀 있어야 했던 답답함.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나눌 친구 하나 없는 외로움.
그것들은 나이를 먹은 지금도 다은을 강하게 옥죄고 있었다.
그녀가 여행을 시작한 건 그런 이유였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많은 것을 보고 겪으면 기나긴 투병으로 인해 쌓인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를 위해서 언어를 익히고 대학에 진출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다은은 혼자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곧바로 온갖 지역과 온갖 나라를 돌아다녔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다은을 안타깝게 여긴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 몸이 안 좋았고, 여행을 좋아해서 많이 다녔다.
…와 같은 얘기는 가끔씩 했고, 때문에 다은의 시청자들도 아는 얘기였지만, 다은이 그녀의 과거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털어놓은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다은은 무심결에 채팅창이 있는 곳을 눈으로 훑었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그녀의 과거를 털어놓았지만, 채팅방은 여전히 고요했다.
‘당연하지.’
이 산에 오르기 전부터 방송은 이미 종료한 상태였으니까.
시청자들은 당연히 아우성쳤지만, 그녀는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곧바로 방송을 종료했었다.
과거를 털어놓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후우- 하고 깊게 숨을 내쉰 다은이 그녀의 앞에 선 소녀를 바라봤다.
Non Player Character.
줄여 말하면 NPC.
소녀는 다은처럼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게임사가 인위적으로 빚어낸 실리아 온라인의 주민이다.
게임사가 만든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0과 1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현재까지 나온 게임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완성도 높은 AI가 실리아 온라인의 장점 중 하나란 걸 알면서도,
‘…알고는 있지만.’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소녀와 대화할 때면 다은은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처음에는 흥미였다.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레이드 보스를 파헤치고 싶다는 흥미.
그저 흥미 하나만 가지고 산에 올랐던 다은은 소녀를 본 순간 푹 빠져버렸다.
“난 예전부터 동생을 갖고 싶었어.”
다은도 계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또래와 어울리지 못해 생긴 결핍을 채워줄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바란 게 아닐까 추측할 뿐.
혹은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를 간호하느라 바쁜 부모님에게 그런 말을 할 순 없어서, 그녀의 관심은 자연스레 작고 귀여운 동물들에게 향했다.
집을 비우는 날이 많은 그녀의 취미 때문에 키우는 건 무리였지만.
그러던 중, 다은은 카나를 발견했다.
“…부정하진 않을게.”
그래.
다은, 그녀가 카나에게 집착한 것은 카나가 그녀의 텅 빈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은이 꼭꼭 숨기고 있던 감정을 털어놓았다.
누군가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대체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영영 숨기고 싶었던 진실을.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소녀와 함께 한 시간이 늘어나고, 소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다은의 눈엔 소녀의 모습이 다르게 비춰졌다.
무뚝뚝한 모습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한 위장이었다.
꽃밭을 가꾸던 모습은 세상을 떠난 은인이자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한 소녀만의 방식이었다.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며 인연을 만드는 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계속 밀어붙이는 것엔 약한 모습을 보인다.
만약 정말로 사람이 다가오는 게 싫었다면 그녀에게 이름을 알려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몇 번에 걸친 생명의 위협에서 구해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녀가 달라붙어도 매정하게 쳐냈을 것이다.
묘지기, 최악의 레이드 보스, 실리아 온라인의 아이돌, 마스터 검사, 제국의 숙적 등등….
소녀에게 붙은 수식어는 많았지만, 다은의 눈엔 소녀가 그저 솔직하지 못한 한 명의 어린아이로 보였다.
사람의 온기를 바라지만, 사람이 주는 상처가 무서워 숨는 어린아이.
그것이 다은의 눈에 비친 카나였다.
에런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카나는 상당히 불우한 과거를 가지고 있으니 아마 그 영향일 것이다.
그렇기에 다은은 카나가 안쓰러웠다.
이 아이의 손을 잡고,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무뚝뚝한 얼굴에 웃음을 짓게 하고 싶었다.
먼 옛날,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이거 하나만 믿어주면 안 될까? 내가 카나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걸.”
그녀가 병마를 이겨냈던 것처럼, 이 어린 소녀 또한 상처를 딛고 이겨낼 수 있기를.
미소를 지은 다은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카나, 손 내밀어 볼래?”
“….”
오르도에서 산, 별다른 장식이 달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묘한 매력이 있는 은색의 팔찌.
당시, 목걸이와 팔찌 중 무엇을 살까 고민하던 다은은 카나가 목에 검은색 초커를 차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팔찌를 골랐다.
이미 초커가 있는데 목걸이를 주는 건 어울리지 않을 테니까.
직후에 일어난 소란 때문에 줄 타이밍을 놓쳐 지금까지 인벤토리에 얌전히 넣어두고 있던 팔찌였다.
카나의 손을 잡은 다은이 손목에 팔찌를 끼워주었다.
“…됐다!”
손을 잡은 채로 요리조리 살피던 다은이 밝게 웃었다.
“응. 잘 어울릴 줄 알았어. 역시 내 안목은 어디 안 간다니까? …사실 옷거리가 좋아서 그런 거 같긴 하지만.”
과연 저 옷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게 있기나 할까.
누더기를 입혀도 어울릴 판인데, 이런 팔찌가 어울리지 않을 리 없지.
“오르도에서 주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별 선물이 됐네….”
아, 그래도 이거 줄 테니까 철회해 달라는 말은 아니야.
혹시나 뇌물이라고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거라며 다은이 황급하게 덧붙였다.
“그냥, 카나가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길고 긴 다은의 이야기가 끝이 날 때까지 카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서 있었다.
듣고는 있는 건지, 아니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건지.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다은은 카나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확신했다.
“….”
“….”
밤이 되었어도 떠들썩하던 거리도 잠잠해지고, 거리를 비추던 불빛도 하나하나 사라진 지금.
그나마 있던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진 탓에 다은이 바라보고 있던 카나의 얼굴도 어둠에 잠겼다.
밤의 마력에 취한 걸까.
카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다은이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있잖아. 자세히 말해줄 순 없지만, 사실 나는 바다 건너 대륙이 아니라 그보다 먼 곳, 아주아주 먼 곳에서 왔어.”
움찔.
별안간 카나의 손을 잡고 있는 다은의 손에 미미한 반응이 전해졌다.
실리아 세계의 주민들은 다은과 같은 플레이어들이 바다 건너 대륙에서 에델의 인도를 받아 아르디나 대륙에 왔다고 알고 있다.
아마 카나가 놀란 이유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얘기를 들어서겠지.
다은이 지레짐작했다.
“…알아.”
“…어, 으, 으응? 안다고…?”
“….”
다은은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카나의 대답에 한 번 놀라고, 그 내용에 두 번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평정심을 되찾은 다은이 배시시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던데 역시 카나는 똑똑해.”
바다 건너 대륙에 가본 적 있어서 아는 거겠지.
다은은 카나의 말을 그렇게 치부하고 넘겼다.
“이건 비밀인데, 고향에서의 내 이름은 저니가 아니야. 생각해 보니 카나는 이름을 알려줬는데, 나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면 불공평하잖아? 그러니까 나도 알려줄게. 무, 물론 비밀을 지키지 않은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그녀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다은’. 그게 내 이름이야.”
만약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이 이름으로 불러줄래?
때마침, 구름이 걷히며 달빛이 다시 둘을 비추었다.
달빛 아래 드러난 카나의 얼굴은, 다은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애처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아, 이제야 알겠어.’
다은은 이제서야 제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이것은 동정도, 연민도, 단순히 어여삐 여기는 것도 아닌.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애착이었다.
그녀는 분명, 평생을 가도 이 아이를 마음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스윽.
카나가 손을 뻗었다.
작은 손이 다은의 볼에 와 닿았다.
아침에 카나의 검이 훑고 간 바로 그 자리였다.
카나의 손가락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다은은 살짝 화끈한 느낌이 볼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체력바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은이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는 달빛을 가리던 구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한참 동안 다은의 상처를 어루만지던 카나가 등을 돌렸다.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다은에게서 멀어지던 카나리아가 다시 등을 돌리고.
소녀의 조그마한 입술이 열렸다.
* * *
“그래, 마음은 정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