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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3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취미를 즐기다 잠에 든다.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잠에 드는, 단순한 일상의 반복.

사람마다 하는 일이 다르니 누군가는 밤에 출근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출근이 아니라 등교를 한다든가 하는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일상을 가지고 있다.

이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빙글빙글 도는 쳇바퀴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라고.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막상 반복되는 일상이 파괴되는 상황이 닥치면 불쾌감을 드러낼 때가 많다.

반복이라는 것은 곧 익숙함과 안정.

즉, 반복을 벗어난다는 것은 낯섦과 불안정함을 마주해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다은도 쳇바퀴에 갇힌 사람 중 하나였다.

일어나서 몸을 씻고 아침을 먹은 후, 캡슐형 가상현실 접속기에 누워 방송을 켜서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실리아 온라인에 접속한다.

그리고 이불 속에 파묻힌 카나를 보며 좌절하는 것까지…가, 최근 그녀의 일상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후아암….”

실리아 온라인에 접속한 다은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누군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


“아, 카나야!”

찌뿌듯한 몸을 쭉 펴며 하품하던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잘 잤어?”


“응.”

평소에는 말을 걸기 전엔 아는 체도 하지 않던 카나가, 오늘은 저니에게 먼저 다가온다.

이것만 해도 놀라기엔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오늘은 기분이 좋나 보네.’라는 말로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진정 놀라게 한 것은, 그 후에 이어진 상황이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머뭇거리던 카나가 수줍게 입을 열었다.

“…저니도 잘 잤어?”


“우리 카나 덕분에 잘 잤지! …음? 카나야, 잠깐 이리 와볼래?”


“응.”


“머리가 많이 헝클어졌네. …자, 됐다!”


“…고마워.”


“이런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었으니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해야지.”

스윽.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카나가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미소를 짓고, 심지어 더 쓰다듬어 주길 원한다는 듯이 은근히 머리를 비비기까지 했다.

-?

-????

-모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임??

-???????

모니터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단체로 스턴 상태에 빠져 물음표를 동동 띄웠다.

…그 카나가 마주 아침 인사를 건네고, 저니의 부름에 아무 반항 없이 얌전히 다가와서 머리를 맡긴다고?

거기까지만 해도 이미 머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굳어 있던 시청자들은, 카나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비비는 걸 본 순간 단체로 심장을 부여잡았다.

늘 무뚝뚝하던 소녀의 미소와 애교 섞인 몸짓엔 그만한 파괴력이 있었다.

-몬가, 몬가 일어나고 있음;

-와캬퍄헉ㅋㅋㅋㅋㅋ

-와 너무 귀엽다ㅠㅠㅠㅠ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길래 헤어지자고 하던 애가 저렇게 변함??? 최면 어플이라도 씀??

-그 최면 어플 얼마죠?

-(이미 씹덕사한 유저입니다)

-그래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고!!!!!

-🔥🔥🔥🔥🔥🔥🔥

주접과 의문이 섞여 아수라장이 된 채팅창.

카나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채팅창에 눈길이 닿은 저니가 채팅을 보고 씨익 웃었다.

“궁금해? 알려줄까?”

-네네네넨ㄴㄴ넨ㄴ넨네ㅔ

-네가 본 것을 우리한테도 보여줘라!

“흐음, 딱히 간절해 보이지 않는데?”

-선생님, 오늘도 기체후 일향 만강하셨습니까? 언제나 가내 두루 평안하시길 바라며, 실례가 안 된다면 어제 있었던 일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이 텐련 또 기싸움 하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악! 제가 어제 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것에 대한 승인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을 발설해도 될지에 대한 질문이 있음을 보고하는 것에 대하여 적절한지를 검

-채팅창 혼자 쓰냐 ㅡㅡ

“음! 좋아. 제법 간절해 보이는군. 제군들이 그렇게 원한다면야, 못 알려줄 것도 없지!”

저니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귓속말할 때처럼 목소리를 낮추고는-

“…근데, 안 알려줄 거야.”

이후, 채팅창이 불바다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 *

“그래, 마음은 정했니?”

기도실에 들어가자 방석에 앉아 있던 에델이 나를 반겼다.

에델에게 기도를 올리라고 놓아둔 방석에 본인이 앉아 있는 상황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방석을 놓아둔 사람이 보면 아마 눈물을 줄줄 흘리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멋대로 읽지 마.”

“멋대로 읽히는 걸 어떡하니? 불만 있으면 읽히지 않도록 더 노력하렴.”

“….”

기도를 올리는 자세로 나를 맞이했던 에델이 다리를 풀고 편하게 앉았다.

“못다 한 대화를 할 시간이네.”

“저번처럼 에델이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그렇겠지.”

“…도망이 아니라 시간이 부족했던 거라니까? 힘만 멀쩡해도 그럴 일 없었어.”

“허접 신.”

“뭐?! 야! 말 다 했어?!”

내 말에 울컥해서 씩씩거리던 그녀는 아차, 하던 표정을 짓더니 다시 온화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봤자 추태를 벌인 게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나도 알아. 흠흠- 아무튼, 얼굴을 보니 얼추 생각을 정리한 것 같네.”

“글쎄.”

에델의 눈엔 내가 홀가분한 것처럼 보이는 걸까.

정작 나는 아직도 에델이 말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에 대해선 잘 모르겠는데.

…뭐, 그래도.

“생각이 정리되긴 했어.”

전보다 마음이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걸음을 옮기자 손목에 찬 팔찌가 찰랑거렸다.

방석에 앉은 에델의 옆을 지나쳐서, 조각상에 도달한 나는, 며칠 전 그녀가 했던 것처럼 조각상에 몸을 기댔다.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조각상을 올려다보다가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나를 보고 검이라고 말했지?”

“응.”

“날 이 세계로 데려온 건 에델이야?”

“아니. 그건 아니야.”

에델이 고개를 저었다.

“너를 나의 세계에 데려온 것도, 네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난 것도, 네 은인이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죽은 것도-”

“…은인이 아니라 아빠야.”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던 에델이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그래. 네 아빠가 그렇게 죽은 걸 포함해서, 내가 꾸민 일은 하나도 없단다.”

“그렇다면-”

“아- 잠깐, 잠깐.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에델은 말이 끊겨 불만스럽게 보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니? 네 성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아, 키를 말한 건 아니란다? 그쪽은 오히려 늦다 못해 멈췄다고 하는 게 올바른 말일 테니.”

“….”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마나를 다루기는커녕 느끼지도 못해서 쩔쩔맨다는데, 나는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마나를 다룰 수 있었다.

빨라도 마흔은 되어야 이룬다는 마스터의 경지를 나는 고작 열 몇 살의 나이에 이루었다.

아무리 불세출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빠르지 않나.

내가 에델이 나를 데려왔다고 의심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녀가 지구에서 살던 나를 데려와서 인위적으로 키운 것이라면 내 기이한 성장 속도를 납득할 수 있었으니까.

“너는 당연히 모르겠지만, 신들이 세계를 만들 때 무조건 하는 게 있어.”

그것은 바로, 세계에 속한 영혼들에게 제한을 거는 일이야.

라고 에델이 말했다.

“제한…?”

“얼마나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같은 것들. 실제로는 더 많지만, 그렇게만 알아둬.”

“왜 그런 게 있는 건데?”

너무 강해져서 제 권위에 도전하는 걸 막으려고 하는 건가?

“그런 신도 있을 수 있지.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서야.”

기계를 생각해 봐.

엔진을 과도하게 돌리면 지금 당장엔 높은 출력을 내겠지만, 얼마 못 가서 망가져 버리잖아.

“영혼도 마찬가지야. 너무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격에 맞지 않는 강함을 가지면 영혼이 망가지거든. 기껏 빚은 영혼이 얼마 못 가서 망가지는 걸 어떤 신이 원하겠어?”

“그러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강해지는 사람들은 뭐야.”

이른바 천재라고 하는 부류.

“다른 사람들보다 영혼이 강인해서 제한치가 다른 거지.”

“죽을 위기에서 살아 돌아온 후 강해지는 사람들도 있잖아.”

“죽을 위기에서 살아 돌아오는 과정에서 제한을 일부 풀 수 있을 정도로 영혼이 강인해진 거야.“

“…일단 알겠어. 내 영혼이 강인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아니. 네 영혼이 강인한 건 맞지만, 네가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건 다른 이유야.”

에델이 단박에 내 말을 부정했다.

그녀가 쥐고 있던 주먹을 활짝 폈다.

“네 영혼에는 그런 제한이 없어.”

“내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서?”

그렇게 말하던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그러면 지구의 관리자인가 뭔가 하는 게 건 제한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강함을 생각하면 그쪽 제한이 이쪽보다 더 약하진 않을 것 같은데.

“응응. 눈치챘구나. 맞아, 지금 네 영혼에는 아무런 제한도 걸려있지 않아. 내가 만든 제한도, 그쪽 관리자가 만든 제한도.”

손뼉을 짝짝 치던 에델의 낯빛이 싹 바뀌었다.

언제 온화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무표정으로 변한 그녀가 말했다.

“며칠 전에 차원수에 대해서 말해줬지. 다른 차원을 침공해서 에너지를 빨아먹는 놈들이라고. 내가 그놈들과 수백 년 동안 싸움을 했다는 것도.”

“응.”

“차원수는 그 존재만으로 차원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그러니 수백 년 동안 놈들과 싸움을 한 내 차원이 어떤 상태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어느 날, 놈들과 싸우던 나는 차원의 벽이 크게 흔들린 걸 느꼈어.”

차원이 흔들린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때의 흔들림은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큰 흔들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싸움을 하던 차원수와 에델은 느꼈다.

“이 차원이 다른 차원과 잠깐 이어졌었다는 것을.”

비록 아주 잠깐의 연결이었지만, 한 번 뚫린 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흔들린 차원의 벽과, 다른 차원. 그리고 차원수의 싸움에 눈이 팔린 그때의 나는 영혼 하나가 흘러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어. 설마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어찌 생각할 수 있을까.

나약한 영혼 하나가 차원의 벽을 넘고.

차원과 차원 사이의 소용돌이를 버티고.

또 한 번 차원의 벽을 넘어 다른 차원에 들어오는,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신인 에델조차 성패를 장담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모험이었지만, 나약한 영혼은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기적을 만들었다.

단단한 검을 만들기 위해 뜨거운 불에 달구고 수없이 두드리는 것처럼.

그 많은 고난을 겪으며 영혼은 강인해졌다.

“많은 게 지워지고, 많은 걸 잊었겠지. 지구의 관리자가 건 제한도 그중 하나였어.”

“….”

“그리고 그 영혼이-”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뒤에 이어질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나라는 거네.”

“맞아.”

내 말에 에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나리아 그라시스라는 소녀의 탄생에는, 그런 비화가 있었던 것이다.

“널 처음 발견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본 적도 없는 영혼이 내 세계에 들어와 있질 않나, 영혼에 건 제한은 안 보이질 않나, 무식하게 튼튼하질 않나…. 그래도 그 덕분에 반격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지만.”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렇구나.”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담담한 반응에 오히려 말을 꺼낸 에델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에? 그걸로 끝?”

“그럼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데?”

차원을 건너는 대모험을 한 건 알겠는데, 기억도 안 나는 일을 말해봤자 감흥이 있을 리가 없잖아.

더욱이, 에델이 한 일도 아니라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차라리 내가 이 세계에서 탄생해서 겪은 일들에 관해서 얘기했다면 할 말이 많았을 텐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구의 신과 협력한 게 그런 이유였어?”

“…그래. 이미 존재를 눈치챈 이상, 이 세계가 몰락하면 지구가 다음 먹잇감이 될 건 자명한 일이었으니까.”

실리아라는 편리한 전초기지가 생겼는데, 다음 먹잇감까지 통하는 길까지 닦여 있다고?

굶주림에 눈이 먼 차원수들이 쳐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했어. 이 차원을 격하시킨 다음, 놈들의 힘을 역이용하기로. 나도 얌전히 당하고만 있던 건 아니라서, 놈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됐거든.”

굳이 게임의 형태로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플레이어들에게 차원수를 죽이게 하여 놈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만약 끝내 막지 못해 실리아가 멸망하고 지구에 놈들의 마수가 닥친다 해도 이곳에서 쌓은 강함을 토대로 놈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것이 지구의 관리자와 에델이 만든 준비한 안배, ‘실리아 온라인’의 정체였다.


           


Chapter 63

Chapter 63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취미를 즐기다 잠에 든다.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잠에 드는, 단순한 일상의 반복. 사람마다 하는 일이 다르니 누군가는 밤에 출근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출근이 아니라 등교를 한다든가 하는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일상을 가지고 있다. 이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빙글빙글 도는 쳇바퀴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라고.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막상 반복되는 일상이 파괴되는 상황이 닥치면 불쾌감을 드러낼 때가 많다. 반복이라는 것은 곧 익숙함과 안정. 즉, 반복을 벗어난다는 것은 낯섦과 불안정함을 마주해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다은도 쳇바퀴에 갇힌 사람 중 하나였다. 일어나서 몸을 씻고 아침을 먹은 후, 캡슐형 가상현실 접속기에 누워 방송을 켜서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실리아 온라인에 접속한다. 그리고 이불 속에 파묻힌 카나를 보며 좌절하는 것까지…가, 최근 그녀의 일상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후아암….” 실리아 온라인에 접속한 다은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누군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 “아, 카나야!” 찌뿌듯한 몸을 쭉 펴며 하품하던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잘 잤어?” “응.” 평소에는 말을 걸기 전엔 아는 체도 하지 않던 카나가, 오늘은 저니에게 먼저 다가온다. 이것만 해도 놀라기엔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오늘은 기분이 좋나 보네.’라는 말로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진정 놀라게 한 것은, 그 후에 이어진 상황이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머뭇거리던 카나가 수줍게 입을 열었다. “…저니도 잘 잤어?” “우리 카나 덕분에 잘 잤지! …음? 카나야, 잠깐 이리 와볼래?” “응.” “머리가 많이 헝클어졌네. …자, 됐다!” “…고마워.” “이런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었으니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해야지.” 스윽.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카나가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미소를 짓고, 심지어 더 쓰다듬어 주길 원한다는 듯이 은근히 머리를 비비기까지 했다. -? -???? -모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임?? -??????? 모니터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단체로 스턴 상태에 빠져 물음표를 동동 띄웠다. …그 카나가 마주 아침 인사를 건네고, 저니의 부름에 아무 반항 없이 얌전히 다가와서 머리를 맡긴다고? 거기까지만 해도 이미 머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굳어 있던 시청자들은, 카나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비비는 걸 본 순간 단체로 심장을 부여잡았다. 늘 무뚝뚝하던 소녀의 미소와 애교 섞인 몸짓엔 그만한 파괴력이 있었다. -몬가, 몬가 일어나고 있음; -와캬퍄헉ㅋㅋㅋㅋㅋ -와 너무 귀엽다ㅠㅠㅠㅠ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길래 헤어지자고 하던 애가 저렇게 변함??? 최면 어플이라도 씀?? -그 최면 어플 얼마죠? -(이미 씹덕사한 유저입니다) -그래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고!!!!! -🔥🔥🔥🔥🔥🔥🔥 주접과 의문이 섞여 아수라장이 된 채팅창. 카나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채팅창에 눈길이 닿은 저니가 채팅을 보고 씨익 웃었다. “궁금해? 알려줄까?” -네네네넨ㄴㄴ넨ㄴ넨네ㅔ -네가 본 것을 우리한테도 보여줘라! “흐음, 딱히 간절해 보이지 않는데?” -선생님, 오늘도 기체후 일향 만강하셨습니까? 언제나 가내 두루 평안하시길 바라며, 실례가 안 된다면 어제 있었던 일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이 텐련 또 기싸움 하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악! 제가 어제 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것에 대한 승인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을 발설해도 될지에 대한 질문이 있음을 보고하는 것에 대하여 적절한지를 검 -채팅창 혼자 쓰냐 ㅡㅡ “음! 좋아. 제법 간절해 보이는군. 제군들이 그렇게 원한다면야, 못 알려줄 것도 없지!” 저니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귓속말할 때처럼 목소리를 낮추고는- “…근데, 안 알려줄 거야.” 이후, 채팅창이 불바다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 * “그래, 마음은 정했니?” 기도실에 들어가자 방석에 앉아 있던 에델이 나를 반겼다. 에델에게 기도를 올리라고 놓아둔 방석에 본인이 앉아 있는 상황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방석을 놓아둔 사람이 보면 아마 눈물을 줄줄 흘리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멋대로 읽지 마.” “멋대로 읽히는 걸 어떡하니? 불만 있으면 읽히지 않도록 더 노력하렴.” “….” 기도를 올리는 자세로 나를 맞이했던 에델이 다리를 풀고 편하게 앉았다. “못다 한 대화를 할 시간이네.” “저번처럼 에델이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그렇겠지.” “…도망이 아니라 시간이 부족했던 거라니까? 힘만 멀쩡해도 그럴 일 없었어.” “허접 신.” “뭐?! 야! 말 다 했어?!” 내 말에 울컥해서 씩씩거리던 그녀는 아차, 하던 표정을 짓더니 다시 온화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봤자 추태를 벌인 게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나도 알아. 흠흠- 아무튼, 얼굴을 보니 얼추 생각을 정리한 것 같네.” “글쎄.” 에델의 눈엔 내가 홀가분한 것처럼 보이는 걸까. 정작 나는 아직도 에델이 말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에 대해선 잘 모르겠는데. …뭐, 그래도. “생각이 정리되긴 했어.” 전보다 마음이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걸음을 옮기자 손목에 찬 팔찌가 찰랑거렸다. 방석에 앉은 에델의 옆을 지나쳐서, 조각상에 도달한 나는, 며칠 전 그녀가 했던 것처럼 조각상에 몸을 기댔다.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조각상을 올려다보다가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나를 보고 검이라고 말했지?” “응.” “날 이 세계로 데려온 건 에델이야?” “아니. 그건 아니야.” 에델이 고개를 저었다. “너를 나의 세계에 데려온 것도, 네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난 것도, 네 은인이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죽은 것도-” “…은인이 아니라 아빠야.”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던 에델이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그래. 네 아빠가 그렇게 죽은 걸 포함해서, 내가 꾸민 일은 하나도 없단다.” “그렇다면-” “아- 잠깐, 잠깐.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에델은 말이 끊겨 불만스럽게 보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니? 네 성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아, 키를 말한 건 아니란다? 그쪽은 오히려 늦다 못해 멈췄다고 하는 게 올바른 말일 테니.” “….”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마나를 다루기는커녕 느끼지도 못해서 쩔쩔맨다는데, 나는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마나를 다룰 수 있었다. 빨라도 마흔은 되어야 이룬다는 마스터의 경지를 나는 고작 열 몇 살의 나이에 이루었다. 아무리 불세출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빠르지 않나. 내가 에델이 나를 데려왔다고 의심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녀가 지구에서 살던 나를 데려와서 인위적으로 키운 것이라면 내 기이한 성장 속도를 납득할 수 있었으니까. “너는 당연히 모르겠지만, 신들이 세계를 만들 때 무조건 하는 게 있어.” 그것은 바로, 세계에 속한 영혼들에게 제한을 거는 일이야. 라고 에델이 말했다. “제한…?” “얼마나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같은 것들. 실제로는 더 많지만, 그렇게만 알아둬.” “왜 그런 게 있는 건데?” 너무 강해져서 제 권위에 도전하는 걸 막으려고 하는 건가? “그런 신도 있을 수 있지.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서야.” 기계를 생각해 봐. 엔진을 과도하게 돌리면 지금 당장엔 높은 출력을 내겠지만, 얼마 못 가서 망가져 버리잖아. “영혼도 마찬가지야. 너무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격에 맞지 않는 강함을 가지면 영혼이 망가지거든. 기껏 빚은 영혼이 얼마 못 가서 망가지는 걸 어떤 신이 원하겠어?” “그러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강해지는 사람들은 뭐야.” 이른바 천재라고 하는 부류. “다른 사람들보다 영혼이 강인해서 제한치가 다른 거지.” “죽을 위기에서 살아 돌아온 후 강해지는 사람들도 있잖아.” “죽을 위기에서 살아 돌아오는 과정에서 제한을 일부 풀 수 있을 정도로 영혼이 강인해진 거야.“ “…일단 알겠어. 내 영혼이 강인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아니. 네 영혼이 강인한 건 맞지만, 네가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건 다른 이유야.” 에델이 단박에 내 말을 부정했다. 그녀가 쥐고 있던 주먹을 활짝 폈다. “네 영혼에는 그런 제한이 없어.” “내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서?” 그렇게 말하던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그러면 지구의 관리자인가 뭔가 하는 게 건 제한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강함을 생각하면 그쪽 제한이 이쪽보다 더 약하진 않을 것 같은데. “응응. 눈치챘구나. 맞아, 지금 네 영혼에는 아무런 제한도 걸려있지 않아. 내가 만든 제한도, 그쪽 관리자가 만든 제한도.” 손뼉을 짝짝 치던 에델의 낯빛이 싹 바뀌었다. 언제 온화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무표정으로 변한 그녀가 말했다. “며칠 전에 차원수에 대해서 말해줬지. 다른 차원을 침공해서 에너지를 빨아먹는 놈들이라고. 내가 그놈들과 수백 년 동안 싸움을 했다는 것도.” “응.” “차원수는 그 존재만으로 차원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그러니 수백 년 동안 놈들과 싸움을 한 내 차원이 어떤 상태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어느 날, 놈들과 싸우던 나는 차원의 벽이 크게 흔들린 걸 느꼈어.” 차원이 흔들린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때의 흔들림은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큰 흔들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싸움을 하던 차원수와 에델은 느꼈다. “이 차원이 다른 차원과 잠깐 이어졌었다는 것을.” 비록 아주 잠깐의 연결이었지만, 한 번 뚫린 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흔들린 차원의 벽과, 다른 차원. 그리고 차원수의 싸움에 눈이 팔린 그때의 나는 영혼 하나가 흘러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어. 설마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어찌 생각할 수 있을까. 나약한 영혼 하나가 차원의 벽을 넘고. 차원과 차원 사이의 소용돌이를 버티고. 또 한 번 차원의 벽을 넘어 다른 차원에 들어오는,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신인 에델조차 성패를 장담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모험이었지만, 나약한 영혼은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기적을 만들었다. 단단한 검을 만들기 위해 뜨거운 불에 달구고 수없이 두드리는 것처럼. 그 많은 고난을 겪으며 영혼은 강인해졌다. “많은 게 지워지고, 많은 걸 잊었겠지. 지구의 관리자가 건 제한도 그중 하나였어.” “….” “그리고 그 영혼이-”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뒤에 이어질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나라는 거네.” “맞아.” 내 말에 에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나리아 그라시스라는 소녀의 탄생에는, 그런 비화가 있었던 것이다. “널 처음 발견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본 적도 없는 영혼이 내 세계에 들어와 있질 않나, 영혼에 건 제한은 안 보이질 않나, 무식하게 튼튼하질 않나…. 그래도 그 덕분에 반격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지만.”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렇구나.”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담담한 반응에 오히려 말을 꺼낸 에델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에? 그걸로 끝?” “그럼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데?” 차원을 건너는 대모험을 한 건 알겠는데, 기억도 안 나는 일을 말해봤자 감흥이 있을 리가 없잖아. 더욱이, 에델이 한 일도 아니라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차라리 내가 이 세계에서 탄생해서 겪은 일들에 관해서 얘기했다면 할 말이 많았을 텐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구의 신과 협력한 게 그런 이유였어?” “…그래. 이미 존재를 눈치챈 이상, 이 세계가 몰락하면 지구가 다음 먹잇감이 될 건 자명한 일이었으니까.” 실리아라는 편리한 전초기지가 생겼는데, 다음 먹잇감까지 통하는 길까지 닦여 있다고? 굶주림에 눈이 먼 차원수들이 쳐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했어. 이 차원을 격하시킨 다음, 놈들의 힘을 역이용하기로. 나도 얌전히 당하고만 있던 건 아니라서, 놈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됐거든.” 굳이 게임의 형태로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플레이어들에게 차원수를 죽이게 하여 놈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만약 끝내 막지 못해 실리아가 멸망하고 지구에 놈들의 마수가 닥친다 해도 이곳에서 쌓은 강함을 토대로 놈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것이 지구의 관리자와 에델이 만든 준비한 안배, ‘실리아 온라인’의 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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