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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7

마족.

다은이 사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종족이었지만, 다은은 마족이라는 종족이 낯설지 않았다.

‘그야, 판타지 소설에서 단골 등장하는 종족이잖아?’

등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섭섭할 정도로.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다은의 내적 친밀감은 이미 한참 전에 만렙을 찍은 상태였다.

비록 카나의 말을 들었을 땐 조금 당황하긴 했어도-

‘…그럴 수 있지!’

생각해 보면 마족을 착한 모습으로 그린 창작물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이제 와서 하나가 더 추가 됐다고 해서 딱히 특별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다은은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양보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셀린이 동행해 주신다면 안심해도 되겠네요. 신성력과 마기는 상극이니까요!”

마족의 약점은 무엇인가.

바로 신성력 아니던가.

거세게 휘몰아치는 마기의 폭풍을 꿋꿋하게 버텨내는 황금색 신성력.

가녀린 사제의 몸으로 강력한 마기와 맞서 싸우는 장면은 다은의 내면에 숨어 있던 낭만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만약 실리아 온라인의 ‘사제’가 전투 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직업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주저 없이 사제를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연유로-

말로만 듣던 마족의 고향, 락시아로 가게 된 것은 여전히 무서웠지만.

든든한 탱커이자 딜러인 카나와, 힐러 셀린.

저 둘과 같이 락시아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멈춰있던 다은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완전 용사 파티잖아…!’

카나는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다은의 눈엔 조그마한 소녀가 듬직한 용사님으로 보였다.

‘…어라.’

…뭔가 좀 이상한데?

다은이 끝없이 이어지던 망상을 멈추고 미간을 좁혔다.

카나가 딜러, 셀린이 힐러라고 하면 내 역할은 뭐지…?

물론 용사 파티에 딜러가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은의 머릿속엔 그녀가 마대륙에서 활약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나, 설마, 짐꾼?

사실 후회 피폐 집착물이었던 건가?

다은이 하등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카나가 그녀를 한심하게 바라봤지만, 그녀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정신을 차린 건 의아한 듯이 되묻는 셀린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네? 상극이요?”

셀린이 생전 처음 듣는 소리인 양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목소리 덕분에 자신만의 세계에서 깨어난 다은도 덩달아 혼란에 빠졌다.

“설마 아니에요?”

마(魔) 속성 생명체에게 두 배의 데미지를 입히다든가, 마기로 물든 땅을 정화한다든가.

“…그런 거는.”

“그런 건 확실히 없네요.”

콰광!

셀린의 즉답에 다은의 머리에 번개가 내리쳤다.

“내… 낭만이….”

흐느적흐느적 흘러내린 다은이 카나를 끌어안았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또 시작이네.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에 그런 기색이 잠시 떠올랐지만, 카나는 그녀의 포옹에 저항하지 않았다.

카나를 끌어안아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다은이 말했다.

“그렇다면 같이 가도 별 의미 없는 거 아니에요? 아, 셀린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후훗. 걱정하시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어요.”

셀린이 가슴에 손을 살포시 올렸다.

“하지만 이래 봬도 에델 교의 견습 성녀인 몸. 실력은 나름대로 자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된답니다?”

“…견습, 성녀요?”

“네에.”

“…그게 뭐예요?”

“…네?”

자부심 넘치는 셀린을 보면 뭔가 대단한 것 같긴 한데.

견습 성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뒤에 ‘성녀’라는 직함을 달고 있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감탄을 해야 할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야 할지.

다은은 두 가지 갈림길 사이에서 갈팡질팡 헤매었다.

그녀가 그러고 있는 사이, 다시 차분함을 찾은 셀린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견습 성녀란 성녀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수녀들을 뜻하는 말이에요.”

“어라? 성녀는 에델 신님의 선택으로 정해지는 거 아니었어요?”

“으음,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성녀는 에델 님의 은총을 다른 분들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으니 그런 관점으로 볼 수도 있겠군요?”

돌려 말했지만 요약하면 아니라는 말이었다.

아니었구나….

그렇다면 성녀는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지. 또, 견습 성녀는 얼마나 많은 건지.

궁금한 것은 여전히 많았으나.

다은의 품 안에 갇혀있는 카나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품 안의 작은 기척을 통해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낀 다은은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는 걸 포기했다.

굳이 지금 모든 걸 물어볼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하기로 한 이상 대화할 시간은 많을 테니까.

그 대신 다은은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 진짜진짜 셀린을 못 믿어서 하는 말은 아닌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딱 하나만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죄송한 말씀일 수도 있지만… 견습 성녀라고 하면 결국 성녀보다는 아래 직책인 거잖아요?”

“…그렇죠?”

“듣자 하니 마대륙 락시아는 굉장히 위험한 곳 같은데, 그런 곳에 가는 거라면 견습 성녀가 아니라 성녀를 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 물론 저는 셀린과 같이 갈 수 있어서 좋지만요!”

아무리 셀린을 폄훼할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무례한 말로 들리기엔 충분한 질문이었다.

당사자인 다은도 그걸 알기에 질문을 하면서도 이중삼중으로 밑밥을 깔았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다은의 말을 들은 채팅창은 그녀의 예상대로 ‘상습 무례’, 혹은 ‘나’와 ‘락’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하지만 궁금하잖아.’

제일 실력 좋은 이를 내버려두고, 굳이 그 아래 급을 보낼 이유가 있나?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가 큰 자리라서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없는 건가?

“아! 그게 궁금하셨군요?”

다행히 셀린은 언짢은 기색 하나 없이 흔쾌하게 대답했다.

“지금 성녀 자리는 공석이거든요.”

그래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제가 가게 된 거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셀린의 목소리엔 자긍심이 가득 묻어났다.

* * *

마족은 본래 아르디나 대륙에 없던 종족이다.

그러나, ‘아르디나 대륙’에 없었다는 말이지 실리아 세계에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에델의 패배와 동시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차원수와 다르게 그들은 오래전부터 서쪽 바다 너머에 있는 대륙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즉, 마족은 에델의 손으로 빚은 생명체라는 뜻이다.

인간, 엘프, 드워프, 마족, 몬스터… 여러 짐승과 작은 날파리 하나까지.

차원수를 제외하고, 실리아 세계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는 모두 에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아참, 나도 빼야지.

아무튼, 에델이 빚은 생명체에게 에델의 신성력이 악영향을 미칠 리 없잖아.

뭐든 과하면 좋지 않을 테니 하루 종일 쬐고 있으면 당연히 좋지 않겠지만, 다은이 생각한 것처럼 극적인 효과가 있지는 않겠지.

-라는 것이 다은의 말을 들은 나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바보.”

“윽….”

이것이 나의 심정을 담은 한마디였다.

물론 다은은 외부인이니 그런 속사정을 모를 수도 있다지만.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놀리는 게 재밌어서 한마디 얹으니 다은이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몸을 휘청였다.

“몰랐으니까…! 그런 줄 몰랐으니까!”

이상이 피고인의 변론이었다.

애초에 다은의 생각처럼 마기와 신성력이 상반되는 힘이었으면 2차 종족 전쟁 때 세데스 성국이 나서서 중재하지도 않았을걸.

신성력과 상반이라는 말은 에델의 뜻에 반하는 힘이라는 뜻이니까.

“신성력은 생명과 관련된 힘이야.”

모든 성법이 생명과 관련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상처를 회복하고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기운을 북돋아서 몸을 튼튼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아… 그래서….”

나의 말에 다은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사제가 다른 힐러들보다 힐량이 높은 게 그래서였구나.”

갑자기 아르키쉬로 혼잣말하는 걸 보면 시청자들한테 말을 걸고 있는 모양이네.

내가 아르키쉬를 알았다면 알아들을 수 있었을 텐데.

배우지 않은 걸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빨리 배워야 할 필요성을 새삼스레 느끼며 그녀의 혼잣말… 이 아니라, 혼잣말을 빙자한 대화를 못 들은 척 넘겼다.

아직 때가 아니니까. 응.

“마기에 대해 말했던 거, 기억해?”

“그것도 몰랐냐고? …그러는 너희는 알고 있었- 응? 카나가 말했다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씩씩대던 다은이 낯빛을 싹 바꿨다.

“흠, 흐흠. 카나, 뭐라고 했어?”

“…마기에 대해 말한 거 기억하냐고 말했어.”

“응. 당연히 기억하지. 마족이 아닌 생명체에게 독과 같다고 했잖아. 아니야?”

“맞아.”

아직 강림제가 기간 중이라 거리는 여전히 떠들썩했다.

나는 후드를 눌러쓴 채로, 활기가 넘치는 거리를 다은과 함께 거닐었다.

“마기와 접촉한 생명체는 점점 쇠약해져.”

마기에 접촉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짙은 농도의 마기에 접촉할수록 그 영향은 더 강하고 더 빠르게 나타난다.

마기에 대한 저항력을 갖추고 있다면 괜찮지만, 모든 생명체가 선천적으로 강인한 몸을 타고나거나 높은 경지에 이를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몸을 잠식한 마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패배한 생명체의 말로는 두 가지야.”

죽거나, 마물이 되거나.

마족이 사는 곳 부근에 마물이 유독 많은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거 때문에 그라시스도 꽤 골머리를 앓았지.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마족들이 정착한 땅이 있는 탓에 그라시스 주변에도 덩달아 마물이 들끓었으니까.

…뭐, 사실 그라시스는 자업자득이었지.

마족이 그라시스 주변에 자리 잡으면 그로 인해 마물들이 들끓게 될 것은 기정사실이었고.

그래서 아르디나 대륙의 모든 세력이 마물 토벌을 지원해 주기로 했는데, 파멸적인 외교로 그 지원을 없애버렸으니 말이야.

나라와 종족을 뛰어넘은 대통합을 제 발로 걷어찬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 아닐까?

“이제 사람들이 왜 마족과 공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잘 알겠어?”

아마 짐작이지만, 마족이 마물을 다룬다는 소문이 난 것도 이 때문이겠지.

“으, 으응…. 근데, 왜 갑자기 그걸 알려주는 거야? 덕분에 더 무서워졌는데….”

죽어도 살아나는, 정확히 말하면 죽는 것처럼 보일 뿐인 다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전 같았으면 죽지도 않으면서 쓸데없이 겁먹는다고 생각했겠지.

“…셀린과 함께 하기로 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다은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가 아픈 걸 병적으로 꺼리는 이유를 알게 됐으니까.

“말했듯이 신성력은 생명과 관련된 힘이야. 그러니, 그녀의 신성력이라면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게 보호할 수 있을 거야.”

에델이 공증할 정도의 실력자이니 그 정도 능력은 있겠지.

만약 셀린이 힘을 쓰지 못할 정도면 나도 버티지 못할 테고.

그렇게 되면 차라리….

“….”

…으응, 이건 아니야.

순간적으로 든 생각을 재빨리 지워버렸다.

생각은 자유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멀리 갔어.

“죽게 내버려두진 않을 거야.”

“카나야…!”

내 말에 다은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울먹였다.

그러더니 문득, 무슨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울먹임을 멈췄다.

“…그러면 이제 검술도 더 상냥하게 가르쳐 주는 거야?”

“….”

“…카나? 저기, 카나 양? 제 말 안 들리세요?”

“….”

아니. 그건 아니지.

본인이 검술을 배우고 싶어 했잖아?

그건 검술을 가르쳐 주는 거지, 죽이려는 게 아닌걸.

오히려 그렇게 혹독하게 가르쳐야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몸을 지킬 수 있을 테니,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말에 더 어울리는 거 아닐까?

응, 분명 그런 걸 거야.

나는 다은의 말을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으아앙! 카나 미워!”

원래 진정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은 미움을 받을 때도 있는 법.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 또한 감내해야겠지.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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