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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82

본디 거울의 세계는 연민으로 가득 차 있어야만 했다.

주신의 사도와 그 동료들은 한없이 선한 사람들이고, 설령 쓰러트려야 하는 대상이란 걸 알고 있더라도 불우하고 불쌍한 상대에게 망설임 없이 무구를 휘두르지 못할 테니까.

아닌 척 하더라도 조금씩 정신이 깎여나갈 것이고 던전의 끝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정신에 분명한 금이 생겨날 것이란 게 교황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앞서 일어났던 여러 일들에서 주신의 사도는 정신의 연약함을 드러냈다.

아무리 강한 체 하더라도 상처 입는 평범한 사람이란 걸 보였다.

그녀의 친우들도 똑같았다.

그들은 인간이었다.

불쌍한 이들을 보며 연민을 느끼고, 아파하는 이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바닥에 쓰러진 이를 향해 손을 내밀고, 힘겨운 고난의 앞에선 가끔 주저앉기도 하는 인간 말이다.

평범하기에 고귀한 것이 사실이긴 하나 평범하단 것은 분명한 약점이었으니 교황은 기꺼이 이 부분을 건드렸다.

누구 하나라도 무너지길 바라면서, 설령 무너지지 않더라도 주신의 사도가 영향을 받기를 기원하며.

“…이는 도대체?”

교황은 던전의 광경을 보며 입을 헤 벌렸다.

주신의 사도께서 직접 공략을 하러 오신 것이니만큼 생각했던 것보다 쉬이 넘어설 수 있으리란 건 염두에 뒀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를 위한 초석이 된다면 족하다 여겼지.

어차피 악신의 완전한 부활을 위해서는 저 곳이 공략당할 필요가 있으니까.

마지막의 마지막에 상대를 무너트릴 수 있다면 충분하니 당장은 주신의 사도께 승리를 안겨드려도 괜찮노라 판단하긴 했다만 이건,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처음 사도께서 무작정 대지를 내달릴 때는 망설임이 너무도 커서 현실도피를 한다고 봤다. 결국에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각오를 다질 것이라고 말이다.

수많은 감정이 담긴 저 분의 얼굴을 보며 즐길 생각을 하고 있었거늘 갑자기 사도께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벽을 뛰어넘으셨다.

그리고는 던전을 만들어낸 장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장소에 발을 디디시더니 한 걸음만 헛디뎌도 지옥에 떨어질 곳을 당당히 내걸으셨지.

이전에 사도께서 보여주신 당혹은 이 던전이 예언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님을 증명했다.

그 분은 이 곳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알지 못했다.

위대하신 주신께서 알려주었다 말하기에도 저건 말이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공간은 교황도, 저 던전의 주인도 알지 못하는 곳이었으니까.

어떤 이도 발을 들인 적 없는 곳을 어찌 주신께서 알려준단 말인가.

과거에도 미래에도 저 공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존재치 않았다.

오롯이 주신의 사도만이 저 곳을 알았다.

“흥미롭긴 합니다만, 동시에 곤란하군요. 다른 던전도 저런 방식으로 공략될 수 있단 것이니까요.”

빈틈을 막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어디에 틈이 있는지를 모르는데 구멍을 어떻게 막겠는가.

구조를 아예 뒤엎을 수도 있겠지만 주신의 사도가 지닌 특이성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이상 어디부터 바꿔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끝의 권능으로 던전을 무작정 넓혀버리면 될 일 아닌가?”

옆에서 가만 구경하던 아그라가 한 마디를 더하자 교황이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폈다.

“사도께 그딴 수작질이 통할 성 싶습니까?”

“해보지 않으면 확신할 수도 없지.”

“이미 해봤습니다. 제가 사도께 시련을 내려드렸고 저 분께선 겨우 하루 만에 깨우침을 얻으셨죠. 주신께서 선택한 사람다운 능력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을 칭찬하는 것처럼 입꼬리를 히죽거리며 자랑을 늘어놓는 교황의 모습에 아그라는 턱을 괸 채 혀를 찼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어느새 등신 머저리가 되었구나. 아니, 생각해보면 이 녀석은 예전부터 이랬나.

*

루시 알른의 갑작스런 행동에 경악한 것은 메이스 속에 있던 사람들도 매한가지였다.

과거 악신들이 만들어낸 던전을 공략하며 온갖 고통을 받았던 이들은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제 삼의 선택지를 택하는 루시를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우리는 리더를 잘못 골랐어.”

“내가 상당히 무능했단 것은 인정한다만 루시 양과 날 비교하지는 말아주었으면 한다! 이걸 어떻게 하란 말이냐!”

용사의 당혹 어린 외침에 루엘과 가라드가 빈정거리면서 웃었지만 둘 다 속으로는 이 비교가 용사에게 가혹하단 걸 알았다. 루시가 보여준 방식은 상식에서 지나치게 벗어나 있었다.

던전을 만들어낸 당사자조차 모를 듯한 공간을 이용하는 공략 방식을 그 누가 시도하겠는가.

기묘한 공간을 찾아내는 것 자체도 어렵고, 설령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 너머로 향하는 통로를 어찌 찾아낼 것이고, 운이 좋아서 그 너머로 향했다 한들 발 한 번 잘못 디디는 순간 죽을지 모르는 곳을 어찌 넘어설 터인가.

저건 오롯이 루시만이 가능한 공략 방식이었다.

“또 다시 기적을 일으켜 고난을 넘어섰구나.”

루엘의 탄사에 가라드와 용사 둘 다 말하던 걸 멈추고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늦바람이 무섭긴 하군. 피도 눈물도 없었던 녀석이 저 꼴이라니.”

“정감이 가서 좋지 않나. 과거의 루엘에 비하면 지극히 인간적이야.”

“예전의 내가 사람 같지 않았단 말처럼 들린다만.”

“그런 의도로 말한 게 맞네. 그 시절의 자네는 인간미가 없었으니까.”

용사의 단호한 말에 루엘은 투덜거리면서도 차마 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가벼운 웃음을 흘린 용사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농담일세. 그 시절의 자네도 좋았어.”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해봐야.”

“또한 난 자네의 탄성에 공감하기도 한다네. 자네가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용사께선 무수한 기적을 일으키며 고난을 넘어서고 있지 않나.”

용사가 메이스 안에 자리를 잡은 후 루시는 무수한 시련을 눈 앞에 뒀다.

먼 과거 용사가 마주했던 것처럼 그녀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고, 자신의 삶을 타인을 위해 바쳤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루시라는 영웅은 특출난 능력을 지닌 것과는 별개로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타인의 희생을 눈에 새기고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마음 속에 슬픔의 호수를 만들어가는 선인이었다.

용사 본인이 그런 사람이기에 알았다.

저렇게 짐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짐에 짓눌려 무너질 것이란 사실을.

그렇기에 용사는 루시가 홀로 모든 던전을 감당하겠다 이야기했을 때 그녀를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용사와 달리 루시는 그 짐을 감당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고, 부족한 부분을 얼마든 채워줄 주변 사람들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가짐까지도 존재했다.

그래. 참으로 멍청한 걱정이었어.

내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하여 다른 사람까지도 그런 실수를 저지를 리 없는데 말이야.

“난 말일세. 그녀를 보며 우리가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닫고 있다네. 우리가 아니라면 멸망을 막을 수 없다니 실로 멍청한 생각이지 않나? 분명 우리는 대단한 영웅들이었지만 그래봐야 기나긴 시대 속에서 태어난 별 중 하나에 불과했어. 우리가 모르는 과거에도 별은 빛을 냈을테고 우리의 뒤에도 별은 빛을 내겠지.”

영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일어서는 자들이라면 모두가 영웅이 된다.

그리고 그 영웅의 뜻을 하늘에 있는 신들은 무시하지 않는다.

손을 내밀어 영웅이 영웅다울 수 있도록 앞으로 이끌어주지.

그러니 굳이 홀로 짐을 짊어지려 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을 홀로 구원하고자 하지 않아도 괜찮다.

용사의 시대에 용사가 세상을 구하고, 지금은 루시라는 영웅이 세상을 위해 싸우듯, 먼 미래에도 그 때의 영웅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할 테니.

“좋은 말을 하는 와중에 미안한데 이거 좀 볼래?”

조금 있으면 감동의 눈물까지도 흘릴 듯한 용사의 어투 사이에 가라드가 끼어들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뺀질거리는 어투를 유지하는 그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의 어투에 당혹이 잔뜩 서려 있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지?”

“던전 공략이 끝났어.”

“보스룸에 도달했단 건가?”

“아니. 그거까지 끝났다고. 봐.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생겨났잖아.”

“…벌써? 거짓말 하지 마라. 보스를 상대하게 되면 소란이 커질 텐데 내가 그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아니. 아니지. 문이 생겨난 걸 보면 보스를 쓰러트린 게 맞긴 한데.”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던 용사의 눈이 빙그르르 도는 와중에 에르기누스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영상을 잠시 되돌려주마. 나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거든.”

“부탁하지.”

영상 속 시간이 되감아지며 루시 일행이 다시금 하얀공간에 돌아왔다.

허공에서 갑자기 뛰어올라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올라탄다거나 걸음 개수까지 세어가며 나아가다 갑자기 어딘가에 뛰어드는 등 기행을 반복하던 루시는 어느샌가 보스룸 안에 도착한 채였다.

“잠시만. 다시 돌려주겠나?”

다시 봐도 똑같았다. 하얀 공간 어딘가에 발을 디딘 순간 루시가 갑자기 보스룸 안에 도착했다.

그것도 보스의 머리 바로 위에.

뒤늦게 기습을 눈치챈 보스였지만 그 땐 이미 루시의 메이스가 보스의 머리를 깨버린 뒤였다.

그리고 휘청거리는 보스를 향해 연이어 검과 마법이 몰아쳤고 그렇게 보스는 쓰러지고 말았다.

던전에 들어온 이들의 악몽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지닌 보스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허무한 결말이었다.

“저 녀석이 저리 쉽게 쓰러지는 적이었나?”

신화의 시대 당시 거울의 던전을 공략해보았던 용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가라드가 기겁하며 고갤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저 녀석 하나 때문에 우리가 몇 번이나 죽을 뻔 했는데!”

“공략에 실패하고 도주한 것만 해도 두 번이었지.”

“그럼 그 때에 비해 약해진 건가?”

“아니.”

혹시나 하는 어투에 에르기누스가 고갤 저었다.

“내가 보기엔 우리가 상대했던 것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군.”

“근데 왜 저리 쉽게 쓰러지는 거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는가.”

“루엘. 본인에게 물어봐줄 수 있겠나? 저게 어찌 저리 쉽게 망가진 건지!”

“…이미 물어봤다만 루시는 저걸 대체 왜 어려워하냐고 되묻더군. 저것처럼 쉬운 적이 어디 있느냐면서.”

루엘의 말에 영웅들이 입을 다물었다.

분명 기뻐해야 할 상황일 터인데 영웅들 사이에 퍼져 있는 분위기는 실로 침울했다.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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