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그리고, 방송은 보지 않지만 관심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최근 돌고 있는 떡밥이 있었다.
[카나 쨩은 얼마나 강할까?]
대충 짱 센 건 알겠는데 얼마나 센지 알 수가 없네
[댓글]
-왜 글에서 연배가 보이지?
사실, 최근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카나의 무력은 아주 예전, 카나가 묘지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꾸준히 나오던 화두였으니까.
반대로 말하면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의 의견은 수도 없이 변화했다.
“솔직히 말하면 묘지기는 패턴이 개 같은 거지. 저렇게 만들면 안 어려운 보스가 어딨음?”
강한 건 맞지만 데모닉스가 개 같이 만들어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거지, 실제 무력만 따지면 묘지기보다 강한 NPC는 많이 있다.
심지어는 이미 공략이 된 것도 모자라서, 템 파밍용 반복 노가다 레이드가 된 보스와 비교하기까지.
시스템의 혜택을 받은 물로켓.
그것이 초기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카나의 모습을 가리던 후드가 벗겨지고, 단 두 번의 검격으로 제국의 기사들을 몰살시켰을 때.
[미친놈들아 물로켓이라며;]
언제부터 물로켓이 수소폭탄이었냐???
물로켓 두 번 쏘면 나라 하나 없어지겠네 ㅅㅂ;;;
[댓글]
-어라…? 분명 물로켓이었는데…?
-지금 당장 물로켓 만들기 키트 사러 간다 ㅇㅇ
┗어어 안 된다;
┗네 녀석, 3차 세계 대전을 일으킬 생각이냐?
사람들은 카나가 단순히 시스템이 내린 수혜의 대상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그 또한 데모닉스가 그렇게 설계했기에 가질 수 있는 무력이겠지만, 그건 다른 NPC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연스레 사람들의 궁금증은 커졌다.
플레이어 중 가장 강하다고 여겨지는 유키도, 제국의 기사 앞에선 감히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기사조차 벌벌 떨며 목숨을 구걸하게 하는 초천재 미소녀 검사 카나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카나의 신분을 알게 됐을 때도 잠깐 시끄러웠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뭐?! 멸망한 왕국 그라시스의 홍염 기사단 단장이었다고?!”
…그래서 그게 뭔데 씹덕아.
그라시스인은커녕, 실리아인조차 아닌 지구인들에게 휘황찬란한 명함을 들이밀어봤자 알아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제국의 기사단이라면 모를까, 이미 멸망한 왕국의 강함은 지구인들이 알기엔 힘들었기에.
한 왕국의 최고 기사단 단장이었다고 하니 아무튼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딱 그 정도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카나는 사람들의 인식을 다시 한번 박살 냈다.
무려 78레벨의 차원수를 해치우는 것으로.
건물보다 큰, 거대한 늑대의 형상을 한 차원수가 작은 소녀의 발치에 쓰러지는 광경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권투나 씨름 같은 스포츠에서 체급을 나눠 겨룰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검과 마법의 세계라 해도, 덩치가 큰 쪽이 작은 쪽을 이기기 쉽다는 싸움의 기본 명제는 다르지 않았다.
괜히 플레이어들이 오우거나 골렘 같은, 덩치가 큰 몬스터를 상대하기 꺼리는 게 아니다.
그런데 카나는 그 자그마한 몸으로, 하늘을 가릴 것처럼 거대한 차원수를 때려잡았다.
…어떻게?
검 한 자루로.
그날, 방송을 보던 플레이어 중.
검을 동료로, 바람을 벗 삼아 모험을 나서는 외로운 길을 선택한 자들, 검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
더러운 활쟁이와 마법쟁이들에게 검붕이라고 놀림 받은 세월이 얼마던가.
앞에서 막아주는 검사들이 있기에 안전한 곳에 박혀서 딜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근접 무기를 쓰는 근딜들이 그들을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흔히들 검을 두고 다재다능한 무기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정 수준 이상의 훈련을 받은 숙련자들의 이야기.
무기라는 것을 제대로 쥔 적 없는 대부분의 지구인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검을 휘두를 시간에 창으로 찌르거나 도끼로 패 죽이는 게 더 효율적이니, 검에 대한 인식도 낮아졌다.
그럼에도 검사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어쨌든 플레이어 사이에서 검사는, ‘검사’라는 이름보다 어그로 셔틀용 ‘검붕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렸다.
그런 그들에게, 카나의 존재는 마치 바이블과 같았다.
너희의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바이블.
우리가 걷는 길의 끝엔, 찬란한 빛이 기다리고 있구나.
수많은 검붕이…
아니,
검사들은 작은 소녀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심지어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고 검을 드는 이들까지 생길 정도로 카나가 불러온 파급력은 컸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플레이어들의 호기심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레벨이란 시스템은, 플레이어들에게 강함을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다.
몇몇 NPC들이 그러하듯, 카나의 레벨 또한 보이지 않았기에 정확한 레벨은 알 수 없었지만, 78레벨의 차원수를 처치하고도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으니 그것보다 훨씬 높으리란 것은 알 수 있었다.
“제국 황제보다 강하지 않을까?”
“황제라고 꼭 강하리란 법 있냐? 황제보다 제국의 검들이 더 강할 수도….”
“소문에 따르면 대삼림의 엘프 대족장이 그렇게 강하다던데.”
“응~ 어차피 드래곤 냥냥 브레스 한 번이면 새 구이 돼~”
“미친 새낀가?”
카나가 강하다는 것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과연 ‘얼마나 강한지’라는 의문만이 남은 상황.
그리고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의문을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임을.
“카나야~”
“…?!”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분홍색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경계 모드로 변해서, 당장이라도 부리로 쫄 기세인 카나를 본 다은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좀 아니었나?’
다은이 생각하기에도 방금 그녀가 낸 목소리는 너무 나긋했다.
간드러지다 못해 닭살이 오스스 돋을 정도로.
카나와 진솔한 대화를 한 날 이후, 데레데레 성분이 다수 함량 된 뉴 카나라고 해도 다은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흠흠.”
얼굴을 작게 붉힌 다은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그녀를 주시하는 카나에게 말을 걸었다.
“카나는, 얼마나 강해?”
맥락도 없이 튀어나온 질문에 맞은 카나가 멀뚱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러나 질문자인 다은에게는 질문을 할 이유가 있었다.
[‘익명의 후원자’ 님의 …원 후원! 감사합니다!]
[‘맛없는걸먹으면짖는개’ 님의 …원 후원! 감사합니다!]
[‘유키’ 님의 …원 후원! 감사합니다!]
바로 후원이라는 이유가.
후원에 담긴 메시지들의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카나에게 직접 물어봐 주면 안 되겠냐는 내용들.
이미 오래전부터 비슷한 내용의 채팅을 봐왔던 다은에게는 익숙한 말들이었다.
단지, 대놓고 물어보기엔 뭔가 애매한 질문이라서 유야무야 넘겼는데, 오늘은 웬일이지 한 마음 한뜻으로 후원을 쏟아내고 있었다.
채팅창도 후원들이 만든 물결에 휩쓸려 의문을 표하는 상황.
이렇게까지 불이 지펴졌으면 다은도 더 이상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절대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이라 그런 게 아니라.’
분위기,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거야.
…그것보다, 유키 저 사람은 또 뭐지? 설마 진짜인가?
사칭인가 싶어 유키라는 이름의 후원자를 살핀 다은은, 사칭이 아니라 본인인 것을 알고 실소를 터뜨렸다.
아무튼, 다은이 카나에게 질문을 던진 덴 그런 사연이 있었다.
하지만 대뜸 얼마나 강하냐는 질문을 받은 카나로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강함이란 무형의 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한단 말인가.
하다못해 비교할 대상이라도 있다면 그에 맞춰서 설명해 줄 수 있을 텐데….
‘…비교할 대상?’
순간 카나가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앉아 있던 바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소녀가 허리춤에 매인 검을 검집째 손에 들었다.
“…!”
고, 공격이다!
카나가 검을 들면, 방어 태세를 취한다.
며칠 간의 훈련으로 새겨진 기억은 다은의 몸에 조건 반사를 새기기에 충분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카나가 봤다면 흡족해하며 손뼉을 쳤겠지만, 카나는 그녀의 행동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다은은 쏟아지는 채팅창의 웃음을 뒤로 한 채 무안하게 검을 내렸다.
“뭐 하는 거야?”
“…기다려.”
지이이익-
카나가 검집 끝을 땅에 대고 긋자 기다란 금이 완성되었다.
난데없는 흙장난에 다은이 으응? 하고 의아한 소리를 냈다.
아니, 뭐… 귀엽기는 하지만….
“이게 지금 다, …저니 수준이야.”
“아하?”
이래서였구나.
다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끄덕이는 걸 본 카나가 조금 떨어진 곳에 다시 금을 그었다.
“이게 대검 삐약이.”
“으음… 생각보다 꽤 차이가 크구나.”
“이것도 많이 줄어든 거야.”
예전이었다면 이것보다 훨씬 멀었을 거라고 카나가 작은 목소리로 핀잔을 놓았다.
흠… 그 정도인가? 하긴, 유키 님이 강하긴 하지.
카나가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어쨌든 예전보다 강해졌다는 말이니 다은은 기분 좋게 카나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면 카나는?”
“이제 말하려고 했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카나가 검을 안은 채 도도도 달렸다.
처음에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다은도, 카나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다 못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로 작아질 정도가 되자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쳐다봤다.
안 그래도 조그맣던 카나가 더 자그마해진 팔을 들어 금을 긋는 게 보였다.
이윽고, 임무를 완수한 새가 돌아왔다.
“…봤지?”
무뚝뚝한 표정 너머로 자부심이 엿보였다.
…다은은 우쭐거리는 분홍색 머리에 딱밤을 먹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
그런 짓을 했다간 바로 ‘훈련 1만 배’ 형벌에 처해질지도 몰랐다.
심지어 이 경우에는 어린아이가 놀리는 걸 참지 못하고 폭력을 가한 것이니, 법조차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모 인터넷 방송인, 전자오락 속 어린 소녀에게 폭력을 행사해 논란…’
‘도 넘은 인터넷 방송. 이대로 괜찮나?’
-같은, 뉴스들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는 동요가 그런 식으로 실현되는 건 다은이 원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다은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에, 에이~ 장난하지 말고, 응?”
“…장난?”
장난… 아닌데.
카나가 한없이 진지한 얼굴을 했다.
다은의 입꼬리도 덩달아 제자리를 찾아 내려왔다.
지구인이 동급 용병을 똥급이라고, 은급 용병을 실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실리아인이 마스터 경지를 일컫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한낮에 꾸는 꿈, 헛된 공상을 뜻하는 단어.
‘백일몽’이라는 이름이.
전투에 몸을 던진 이들은 모두 마스터를 꿈꾼다.
하지만 그중에서 실제로 마스터에 오르는 이는 한 줌도 되지 않았다.
엑스퍼트와 고작 한 단계 차이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컸다.
플레이어들은 신을 등에 업은 덕에 빠르게 강해질 수 있으니 실리아인보단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글쎄.’
일단 지금은 요원해 보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나가 다은 앞에 단어 카드를 내밀었다.
“…응?”
어벙한 얼굴의 다은이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앞에 내밀어진 단어 카드를 읽은 다은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뭐야 이게? 허…접? 잠깐, 난 이런 단어를 쓴 적 없는데?”
카나는 좋은 것만 배워야 해!
그런 일념으로 바르고 고운 말들로 단어 카드를 채웠건만, 그녀가 쓴 적 없는 못된 단어가 단어 카드에 떡하니 적혀 있었다.
귀여운 글씨로 삐뚤빼뚤 적혀 있는 ‘허접’이라는 단어가.
카나가 그 단어를 아는 건 맞지만, 아직 아르키쉬를 쓰는 법까지는 몰라서 적을 수는 없었을 텐데?
날카롭게 눈을 뜬 상태 그대로 주변을 둘러보던 다은은 어렵지 않게 범인을 찾아냈다.
애초에 카나와 그녀가 아니면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인 데다가, 유력한 범인이 제 발 저려하며 눈을 피했기 때문에.
셀린이 헛기침했다.
“으흠! 죄송해요. 카나 님이 어떻게 쓰는지 알려달라고 하셔서 저도 모르게 그만….”
“셀리이이인!”
그러거나 말거나, 카나는 펜을 들어 ‘허접’이라는 단어 옆에 그라닉으로 된 단어를 끄적였다.
‘저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