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강하냐는 다은의 질문에 난색을 보였다.
강함은 언제나 상대적인 거니까, 그런 걸 물어도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잠깐 예를 들어볼까.
제국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뱀 새끼와 일대일로 싸운다고 가정해 보자.
오만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놈과 일대일로 싸운다면 난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하지만 군대와 군대가 맞붙는 전장에서 붙는다면, 결과는 나의 패배로 끝나리라.
놈은 갖은 꾀와 마법으로 군대를 유린하는 데 능숙하니, 내 몸 하나는 멀쩡할지 몰라도 내가 이끄는 군대는 멀쩡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도 놈의 마법에 물 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
당장이라도 뱀 새끼를 잡아 죽이고 싶었어도 하지 못한 덴 다 이유가 있다고.
…공멸을 각오했으면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때의 난 지켜야 할 게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었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가장 익숙한 뱀 새끼를 예로 들어서 그렇지, 아르디나 대륙에 있는 강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답하겠어.
보통은 ‘나, 마스터’라는 말이면 납득하고 돌아가는데 이미 내 경지를 알고 있는 다은이 그런 답을 원하는 건 아닌 거 같고.
다은은 그녀와 나의 차이를 보여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재차 질문을 던져왔다.
“그러면, 카나는 전력을 다해서 싸운 적 있어?”
“전력….”
당연히 있다.
내 손을 잡아끌고 가던 주정뱅이에게 저항할 때도.
더 맞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판사판으로 양아치에게 덤벼들 때도.
도시에서 탈출하다가 늑대 마물과 싸우다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난 언제나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겠지.
“…크흥!”
조용조용히 읊자 다은이 갑자기 코를 훌쩍였다.
“그, 그런 거 말고. 그래, 기사단 시절엔 어땠어?”
그녀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했던 화제 전환이라서 당연히 나도 눈치챘지만.
굳이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건 나한테도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음….”
나는 짐짓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제국과의 전쟁에서 한 번, 그 외의 위협에서 두어 번.
내 말을 들은 다은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전력을 다하는 카나라니. 완전 멋질 거 같아…!”
“…?”
보지도 못했으면서?
“딱히 좋은 것도 아니야.”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건, 그만큼 강한 적이 나타났다는 말이잖아.
이길 수 있다고 한들 그런 적과 싸우는 건 피곤한 일이라 나로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러자 다은이 아차 싶은 얼굴을 했다.
“아, 아니, 카나가 고생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멋질 것 같아서….”
“응. 알아.”
다은의 성격상 저 말은 변명이 아니라 진짜일 것이다.
그걸 알기에 나도 그녀의 말이 그다지 거슬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외에도 전력을 내고 싶지 않은 이유는 몇 있었다.
“전력을 내면 몸도 아프고, 이상한 것들도 꼬이고….”
무엇보다,
“시끄러워.”
“…시끄러워?”
“응.”
쓸데없이 나불대는 걸 듣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인생에 하등 도움 되지 않는 잡소리를 들으면서 싸우고 있으면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다은을 잠시 바라봤다.
‘어떻게 보면 다은이랑 비슷할지도.’
세세한 점은 달라도 크게 보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네.
다은은 늘 시청자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까.
새삼 그녀가 대단하게 보였다.
“…에? 에? 시끄럽다니, 대체 무슨 소리…? 설마 나한테 한 말은 아니겠지?”
여전히 다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 * *
마기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는 방법은 경지를 높이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돈 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비싼 마도구를 둘둘 두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강력한 마도구는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기에 대한 저항력을 올려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주인이 받을 데미지를 마도구에 전가하는, 일종의 여벌 목숨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물론 마도구를 둘둘 두르는 데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비싼 마도구가 되기 위한 조건은 뭘까?
“저요, 저요! 정답이요!”
단 하나뿐인 수강생인 다은이 열정적으로 손을 들었다.
“고등급 마법을 새기는 것입니다!”
“음….”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50점이야.”
“엑?!”
고작 50점?!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 든 다은이 부들부들 떨었다.
“어째서인가요 교수님!”
“고등급 마법을 새기는 건 중간 과정이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야.”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고요?”
“응. 왜 마법사들은 고등급 마법을 새기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왜 그런 마도구만 만들지 않고 값싼 마도구도 만드는 걸까.”
“어… 실력이 안 돼서?”
“그것도 맞지만.”
좋은 마도구를 만들기 위해선 제작자의 능력도 중요한 게 맞다.
실력 있는 장인이 좋은 검을 만들 듯이, 실력 있는 마공학자가 좋은 마도구를 만드는 법이니까.
나는 팔을 내밀었다.
손목에 걸린 팔찌가 찰랑, 하고 맑은 소리를 냈다.
“이 팔찌에 어느 정도의 마법을 새길 수 있을까.”
“그, 글쎄요…?”
마법에 대해선 까막눈인 다은이 대답을 피했다.
나도 마법을 잘 모르는 건 그녀와 매한가지지만, 이건 마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하급 마법 정도일 거야.”
“하, 하급 마법이요? 그래도 꽤 비싸게 주고 산 건데….”
“장신구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게 좋은 마공학 재료라는 뜻은 아니니까.”
정말 비싼 마도구 중에 보기에도 예쁘고 성능도 좋은 것들이 없는 건 아니다.
반지, 목걸이, 팔찌, 머리핀처럼 자신을 꾸밀 수 있으면서 패용하기도 간편한 것들.
그런 것들의 가격이 어떤지는…
“말 안 해도, 알지?”
“음, 으음….”
…안다는 거야, 모른다는 거야?
대충 알아들었을 거라 믿고 다음 설명으로 넘어갔다.
“마법은 등급이 높아질수록 시전에 필요한 마나의 양이 많아져. 마도구에 새길 때는 마법을 축약해서 새기니 요구량이 더 적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나를 느끼지도 못하는 일반인들이 마법 시전에 요구되는 마나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지.
마도구에서 시전되는 마법은 모두 마도구에 저장된 마나를 통해 시전되는 것이다.
고등급의 마법을 새기는 걸 버틸 내구성과, 많은 양의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수용력.
이 두 가지가 갖춰져야 고등급 마법을 새길 수 있고, 비싼 마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나가 많은 사람들은 내구성은 높지만 수용력이 낮은 재료로 만든 마도구를 쓰기도 해.”
“…음! 완전히 이해했어!”
“…이해한 거 맞지?”
“그럼!”
보통 저렇게 말하면 이해 못 한 거던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는 걸 보니 오히려 불안했지만,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까 넘어갔다.
“그래서 교수님!”
“응?”
“전 분명 북쪽을 향해 가는 이유를 물은 거 같은데, 왜 갑자기 마도구 강의를 하신 건가요?”
지금까지 한 것은 어차피 그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빌드업이었으니까.
“셀린의 옆에 있으면 웬만해선 안전하겠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잖아.”
만약 셀린이 옆에 붙어있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만약 나와 셀린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대비해서, 내가 보험으로 선택한 것이 마도구였다.
마기를 버티는 것 하나만을 목적으로 만든 마도구라면 마기가 가득한 락시아의 환경에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
마음 같아서는 마도구보다 에델 교의 성물 같은 걸 집어 오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에델이 그건 안 된다고 하더라.
“나를, 위해서?”
“…괜히 다치면 귀찮으니까 그런 거야.”
가뜩이나 갈 길이 멀어서 바쁜데, 마기에 당하기라도 하면 치료하기 위해 발을 멈춰야 할 테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런 거야.
정말로.
빠안-
“….”
“….”
빠아안…-
나를 향해 내리쬐는 따뜻한 시선이 거슬려서 눈을 피했다.
그러다 힐긋, 곁눈질로 다은을 살폈을 때.
와락!
“…우븝?!”
“아으으, 귀여워~~!”
다은이 포옹 공격을 감행했다.
…또 이런 전개야?
이런 식으로 흘러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난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응, 응! 그렇구나, 카나는 언니가 걱정됐구나~?”
“…으브브븝.”
“응? 맞다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완전히 틀렸어.
라고 말해도, 어차피 제대로 전해지지도 않겠지.
“두 분은 오늘도 사이가 좋으시네요.”
“헤헤, 그런가요?”
“네에. 보고 있는 제가 무심코 질투할 정도로요. 후후.”
셀린과 대화할 거면 적어도 날 놔주고 하면 안 될까.
결국 다은은 팔을 툭툭 치고 나서야 나를 놔주었다.
악마의 마수에서 풀려난 나는 손부채질하며 따끈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더워.
“마도구를 구하기 가장 쉬운 곳은 제국의 수도야.”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는 제국, 그리고 제국에서도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엔 당연히 온갖 사람과 물건들이 모여든다.
나는 제국 수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내용이었다.
“어? 그렇지만 카나는-”
“응. 그래서 우리는 수도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갈 거야.”
애초에 제국으로 갈 거였으면 방향을 북쪽으로 잡지도 않았겠지.
마도구의 재료는 광석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르디나에서 광석을 제일 잘 다루는 종족을 꼽으라면 모두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드워프들의 나라. 우린 거기로 갈 거야.”
엘프에게 대삼림이 있다면, 드워프들에겐 대산맥이 있다.
정식 명칭은 대산맥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고, 나라 이름은 또 따로 있지만.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인간들이 귀쟁이 놈들이 사는 숲을 대삼림이라고 부른다고? 질 수 없지! 그렇다면 우리는 대산맥이라고 하겠소!’
…이런 이유로 대산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던데.
듣는 사람 모두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이유로 그랬을까’라고 하며 웃어넘기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드워프를 본 적 있는 나로서는 어쩐지 소문이 진실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뭐, 조그마한 언덕을 보고 대산맥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고, 크고 웅장한 산맥이니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런 이유로 붙여졌다고 생각하면 싸해지는 게 정상 아닐까.
“…드워프들의 나라!”
역시나 다은은 강한 반응을 보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처럼, 다은도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네.
그래서 지치지도 않고 여기저기 쏘다닐 수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