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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2

“으어어….”

다은이 반쯤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귀, 귀에서 망치 소리가 떠나질 않아…. 카나야, 나 제대로 말하고 있어?”

귀가 멍해서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뺨을 붉게 물들인 다은이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의아한 눈으로 보던 다은은, 재차 이어진 내 손짓에 의도를 파악하고 무릎을 굽혔다.

응, 이제야 키가 맞네.

딱 좋은 위치까지 내려온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오늘 훈련 못 한 대신 내일 두 배로 할까?”

“?! 아, 아까 했잖아!”

“잘 들리네.”

진단 결과, 아무 이상 없음.

그래도 다은의 엄살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를 맞으며 쇠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꼭 내가 모루 위에 올라간 쇳덩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너무한 거 아니야, 카나?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할 수 있어?”

다은이 투덜대면서 굽혔던 무릎을 폈다.

“근데, 아직도 마음에 드는 곳을 못 찾은 거야?”

“응.”

“…그렇게 실력들이 별로야?”

“으응…. 아니, 그건 아니야.”

행여나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묻는 다은의 말을 가볍게 부정했다.

발토라에 있는 대장장이들의 실력이 별로라고 하면 대륙에 있는 대장장이 중 대부분은 은퇴해야 할걸.

단지 조건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곳은 무기만 취급하고, 또 어떤 곳은 방어구만 취급하고.

겨우 마도구를 만드는 곳을 찾았더니, 제휴를 맺은 마법사가 휴가를 떠났다고 하질 않나.

만족스러운 재료가 없거나 예약이 밀려 있어서 한 달은 지나야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는 곳도 있었다.

일주일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도 한 달은 조금….

마음에 드는 곳이었지만 한 달이나 기다릴 여력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공방 문을 나섰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집어 올 생각이었다면 이런 고생도 할 필요 없었겠지만, 맞춤형 마도구를 만들어야 해서 생긴 곤란이었다.

사서 고생…은 아니지. 응.

이런 건 필요한 투자라고 하는 거야.

“조금 쉴까?”

“응. 제발.”

다은의 간절한 부탁에 우리는 공방 거리 한쪽에 위치한 분수대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드워프들의 도시 아니랄까 봐 이 분수대처럼 드워프들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구조물들이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에 손을 대고 장난을 치던 다은이 그제야 살 것 같다는 얼굴을 했다.

“난 죽어도 대장간에서 일은 못 할 거 같아.”

일을 시켜주지도 않을 거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얌전히 사탕을 입에서 굴렸다.

맥주 모양 사탕이라서 기대했는데, 모양만 맥주잔처럼 생겼지 맛은 일반 사탕이랑 다를 게 없네.

“그냥 사탕 맛이네.”

사탕을 입에 넣은 다은도 나와 같은 감상을 보였다.

“그 왜, 불량 식품 중에 그런 거 있었잖아. 맥주처럼 생긴 사탕. 그거랑 비슷한 맛일 줄 알았는데 좀 아쉽네. 너희 말대로, 그것도 솔직히 맛있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추억이 있으니까 좀 기대했지.”

여담으로, 다은은 처음에 이 사탕을 사려고 하는 나를 만류했었다.

어린아이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나 뭐라나.

아무리 사탕이라고 해도 술이 들어간 것을 먹일 순 없다며 엄격하게 막던 그녀는 사탕을 파는 상인으로부터 술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나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다.

드워프들이 맥주에 미친 종족이라고 해도 진짜로 사탕에 술을 넣어서 먹을 리가 없잖….

…아니, 생각해 보니 드워프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지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다은이 내 머리 위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맥주 맛이 그렇게 궁금했어?”

“딱히….”

“몇 년만 지나면 카나도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때가 되면 오히려 이 맛없는 걸 왜 먹고 싶어 했나 후회할지도 모른다?”

“궁금했던 거 아니라니까.”

거듭 부정했지만 다은은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앓느니 죽지.

말해봤자 오구오구 하는 반응이 돌아올 걸 알기에 나는 생산성도 없는 입씨름하는 걸 포기하고 사탕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걸 선택했다.

내 나이를 듣고, 내가 어린아이가 아니란 걸 알게 된 후에도 다은은 여전히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처럼.

자기가 나이가 더 많아서 그렇게 대하는 거라는데…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내 외형 때문이겠지.

그러니, 아마 몇 년이 지나도 그녀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은 지금 이 짤막한 몸에서 더 자라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자란다고 해도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 그렇게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도 안 되는 건 안 돼! 카나는 아직 아이니까 술 같은 거 마시면 안 된다고!”

“…?”

다은이 혼자서 이상한 소리를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대신 맥주 사탕 더 사줄 테니까 그거로 참자. 알겠지?”

“아니, 필요 없는데.”

특별하지도, 그렇게 맛있지도 않는데 굳이?

필요 없다고 말했건만, 기어코 다은은 상인에게서 사탕을 한 주먹 사서 돌아왔다.

내 돈을 가져다 쓰는 것도 아니고 자기 돈 쓴다는데 뭐라고 말리겠냐마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당탕탕!

“?”

분수대에 앉아 몸을 가볍게 흔들며 평화를 만끽하고 있을 때, 근처에서 소란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목을 살짝 빼고 소란이 인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소란의 중심지는 한 공방이었다.

다른 공방들처럼 은은한 열기가 새어 나오고 있지만, 들락거리는 손님이나 망치 소리는 전혀 없는 고요한 공방에서 연신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뭘 부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요란하던 공방이 잠시 잠잠해졌나 싶더니.

벌컥!

와장창!

“없어! 없다고!”

문이 열리며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드워프가 구르듯 뛰쳐나왔다.

그는 내팽개쳐진 잡동사니가 안중에도 없는지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리며 무언가를 찾기에 바빴다.

공방 주변을 몇 차례나 빙글빙글 돌던 그가 지친 숨을 몰아쉬며 공방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치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은 도박꾼처럼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결혼반지라도 잃어버렸나?’

언젠가 봤던,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부하의 모습이 딱 저랬던 거 같은데.

늦은 밤까지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내키지 않는 걸음을 터덜터덜 옮기던 뒷모습이 얼마나 처량하던지.

다음 날, 그는 몇 날 며칠을 마물과 싸웠을 때보다 더 초췌한 모습으로 기사단에 출근했다.

더 불쌍했던 건 바로 그날 저녁에 반지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그 허망한 표정이 너무나 인상 깊어서 나는 결혼반지를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그러다가, 만약 결혼을 하더라도 내가 신부 쪽이란 걸 깨닫고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지만.

아무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드워프도 결혼반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은 그의 주변으로 다른 드워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글쎄. 도둑이라도 든 게 아닐까.”

궁금증이 묻어 나오는 다은의 목소리와 반대로,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정말로 그런 거라면 뭐.

“안타깝게 됐네.”

“…응? 그게 끝이야?”

“그러면 뭐가 더 필요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다든가, 도둑을 잡는 걸 도와준다든가…?”

“난 경비병이 아닌데.”

탐정도 아니고, 하물며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용병도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도와준다고 나서봤자 저 드워프가 반갑게 받아들이기나 할까.

생전 처음 본 외부인이, 그것도 어린애가 도와주겠다고 나서는데?

그냥 내쫓기면 다행이지, 수상쩍게 여겨져서 의심을 사도 이상하지 않을걸.

“그런가? 나는 카나 같은 아이가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흐뭇하게 볼 거 같은데.”

다은은 생각이 좀 다른 듯했지만 어쨌거나 나설 생각은 없었다.

“이제 일어나.”

괜히 근처에서 얼쩡대다 휘말릴지도 모른다.

이 정도 쉬었으니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했겠지 싶어서 다은에게 일어나라고 말했다.

“에에, 조금만 더 쉬면 안 돼? 아직 힘든데.”

“안 돼.”

힘든 게 아니라 구경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나는 다은의 투정을 단호하게 물리치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칭얼대면서도 얌전히 내 손을 잡았다.

이런 걸 보면 애 취급은 내가 아니라 다은이 받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는 손을 꼭 마주 잡은 채로 다음 공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전 재산을 털어서 산 내 드래곤 오브가…!”

“…!”

만약, 그때 뒤에서 들려온 말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르키쉬를 할 줄 몰라도, 방금 그 말 안에 있던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드래곤 오브’는 그라닉이나 아르키쉬나 부르는 법이 같았으니까.

‘드래곤 오브…?’

저렇게 애타게 찾는 걸 보면 어지간히 중요한 걸 잃어버렸구나 싶긴 했는데, 설마 잃어버린 게 드래곤 오브였어?

절박한 드워프의 모습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귀한 걸 어떻게 잃어버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불안해서 품에 안은 채로 잠들 거 같은데.

돈이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람이라면 또 모르지만, 드래곤 오브를 잃어버렸다고 망연자실해 있는 걸 보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고.

“…흐응.”

흥미가, 조금 생기는데.

“어, 어? 카나, 어디 가?”

“저기.”

“아깐 관심 없다며.”

“지금은 생겼어.”

드래곤 오브를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흥미가 안 생겨.

나는 다은을 이끌고 인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인파의 대부분이 드워프라서 비집고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키가 작은 게 특징인 드워프들과 눈높이가 비슷하다는 점은 썩 기분 좋게 와닿지 않았다.

“어헝헝헝…! 난 이제 끝이야!”

인파의 중심에 주저앉아 있는 드워프는 이제 망연자실을 넘어 땅을 치며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자랑인 수염이 푹 젖을 정도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으헝헝…. …으, 응? 쿨쩍! 뭐냐, 네 녀석은.”

드워프가 울음을 멈추고 벌게진 눈으로 나를 훑었다.

후드 너머를 꿰뚫어 볼 듯한 기세로 훑던 그의 시선이 다은의 손과 맞잡느라 케이프 밖으로 노출된 팔에 닿았다.

그러자 그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체구를 보니 동족인 것 같은데, 쿨쩍! 드워프가 그런 팔을 하고, 훌쩍, 부끄럽지도 않나?”

“…푸흡!”

“….”

드워프의 말을 들은 다은이 급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봤자 이미 들을 건 다 들은 후였지만.

다은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그가 무슨 말을 했을지는 대충 짐작이 됐다.

…참자.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누르며 다은의 손을 꾹꾹 당겼다.

“내가 도와줄게.”

다은의 번역을 통해 내 말을 전해 들은 드워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 돕는다고?”

“응.”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내가 자네들의 뭘 믿고 일을 맡기나?”

대뜸 의심부터 받을 것도 각오했는데, 이 정도면 상당히 부드러운 대답이었다.

아마 자포자기하는 심정이라 그런 게 아닐까.

어찌 됐든 저렇게 나오는 건 나한테 좋은 일이지.

“자. 이걸 봐.”


“…반지? 이걸 갑자기 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주의하며 반지 낀 손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는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반지를 확인하자 점점 입이 벌어졌다.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변한 드워프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정확히는 반지를 만지려고 했지만.

내가 손을 거둔 탓에 그의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체험은 여기까지야.”

“조, 조금만 더 보여주게!”

“싫어.”

더 보고 싶으면, 알지?

드워프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Chapter 72

Chapter 72

“으어어….” 다은이 반쯤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귀, 귀에서 망치 소리가 떠나질 않아…. 카나야, 나 제대로 말하고 있어?” 귀가 멍해서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뺨을 붉게 물들인 다은이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의아한 눈으로 보던 다은은, 재차 이어진 내 손짓에 의도를 파악하고 무릎을 굽혔다. 응, 이제야 키가 맞네. 딱 좋은 위치까지 내려온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오늘 훈련 못 한 대신 내일 두 배로 할까?” “?! 아, 아까 했잖아!” “잘 들리네.” 진단 결과, 아무 이상 없음. 그래도 다은의 엄살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를 맞으며 쇠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꼭 내가 모루 위에 올라간 쇳덩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너무한 거 아니야, 카나?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할 수 있어?” 다은이 투덜대면서 굽혔던 무릎을 폈다. “근데, 아직도 마음에 드는 곳을 못 찾은 거야?” “응.” “…그렇게 실력들이 별로야?” “으응…. 아니, 그건 아니야.” 행여나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묻는 다은의 말을 가볍게 부정했다. 발토라에 있는 대장장이들의 실력이 별로라고 하면 대륙에 있는 대장장이 중 대부분은 은퇴해야 할걸. 단지 조건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곳은 무기만 취급하고, 또 어떤 곳은 방어구만 취급하고. 겨우 마도구를 만드는 곳을 찾았더니, 제휴를 맺은 마법사가 휴가를 떠났다고 하질 않나. 만족스러운 재료가 없거나 예약이 밀려 있어서 한 달은 지나야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는 곳도 있었다. 일주일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도 한 달은 조금…. 마음에 드는 곳이었지만 한 달이나 기다릴 여력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공방 문을 나섰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집어 올 생각이었다면 이런 고생도 할 필요 없었겠지만, 맞춤형 마도구를 만들어야 해서 생긴 곤란이었다. 사서 고생…은 아니지. 응. 이런 건 필요한 투자라고 하는 거야. “조금 쉴까?” “응. 제발.” 다은의 간절한 부탁에 우리는 공방 거리 한쪽에 위치한 분수대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드워프들의 도시 아니랄까 봐 이 분수대처럼 드워프들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구조물들이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에 손을 대고 장난을 치던 다은이 그제야 살 것 같다는 얼굴을 했다. “난 죽어도 대장간에서 일은 못 할 거 같아.” 일을 시켜주지도 않을 거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얌전히 사탕을 입에서 굴렸다. 맥주 모양 사탕이라서 기대했는데, 모양만 맥주잔처럼 생겼지 맛은 일반 사탕이랑 다를 게 없네. “그냥 사탕 맛이네.” 사탕을 입에 넣은 다은도 나와 같은 감상을 보였다. “그 왜, 불량 식품 중에 그런 거 있었잖아. 맥주처럼 생긴 사탕. 그거랑 비슷한 맛일 줄 알았는데 좀 아쉽네. 너희 말대로, 그것도 솔직히 맛있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추억이 있으니까 좀 기대했지.” 여담으로, 다은은 처음에 이 사탕을 사려고 하는 나를 만류했었다. 어린아이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나 뭐라나. 아무리 사탕이라고 해도 술이 들어간 것을 먹일 순 없다며 엄격하게 막던 그녀는 사탕을 파는 상인으로부터 술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나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다. 드워프들이 맥주에 미친 종족이라고 해도 진짜로 사탕에 술을 넣어서 먹을 리가 없잖…. …아니, 생각해 보니 드워프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지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다은이 내 머리 위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맥주 맛이 그렇게 궁금했어?” “딱히….” “몇 년만 지나면 카나도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때가 되면 오히려 이 맛없는 걸 왜 먹고 싶어 했나 후회할지도 모른다?” “궁금했던 거 아니라니까.” 거듭 부정했지만 다은은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앓느니 죽지. 말해봤자 오구오구 하는 반응이 돌아올 걸 알기에 나는 생산성도 없는 입씨름하는 걸 포기하고 사탕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걸 선택했다. 내 나이를 듣고, 내가 어린아이가 아니란 걸 알게 된 후에도 다은은 여전히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처럼. 자기가 나이가 더 많아서 그렇게 대하는 거라는데…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내 외형 때문이겠지. 그러니, 아마 몇 년이 지나도 그녀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은 지금 이 짤막한 몸에서 더 자라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자란다고 해도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 그렇게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도 안 되는 건 안 돼! 카나는 아직 아이니까 술 같은 거 마시면 안 된다고!” “…?” 다은이 혼자서 이상한 소리를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대신 맥주 사탕 더 사줄 테니까 그거로 참자. 알겠지?” “아니, 필요 없는데.” 특별하지도, 그렇게 맛있지도 않는데 굳이? 필요 없다고 말했건만, 기어코 다은은 상인에게서 사탕을 한 주먹 사서 돌아왔다. 내 돈을 가져다 쓰는 것도 아니고 자기 돈 쓴다는데 뭐라고 말리겠냐마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당탕탕! “?” 분수대에 앉아 몸을 가볍게 흔들며 평화를 만끽하고 있을 때, 근처에서 소란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목을 살짝 빼고 소란이 인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소란의 중심지는 한 공방이었다. 다른 공방들처럼 은은한 열기가 새어 나오고 있지만, 들락거리는 손님이나 망치 소리는 전혀 없는 고요한 공방에서 연신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뭘 부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요란하던 공방이 잠시 잠잠해졌나 싶더니. 벌컥! 와장창! “없어! 없다고!” 문이 열리며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드워프가 구르듯 뛰쳐나왔다. 그는 내팽개쳐진 잡동사니가 안중에도 없는지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리며 무언가를 찾기에 바빴다. 공방 주변을 몇 차례나 빙글빙글 돌던 그가 지친 숨을 몰아쉬며 공방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치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은 도박꾼처럼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결혼반지라도 잃어버렸나?’ 언젠가 봤던,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부하의 모습이 딱 저랬던 거 같은데. 늦은 밤까지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내키지 않는 걸음을 터덜터덜 옮기던 뒷모습이 얼마나 처량하던지. 다음 날, 그는 몇 날 며칠을 마물과 싸웠을 때보다 더 초췌한 모습으로 기사단에 출근했다. 더 불쌍했던 건 바로 그날 저녁에 반지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그 허망한 표정이 너무나 인상 깊어서 나는 결혼반지를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그러다가, 만약 결혼을 하더라도 내가 신부 쪽이란 걸 깨닫고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지만. 아무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드워프도 결혼반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은 그의 주변으로 다른 드워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글쎄. 도둑이라도 든 게 아닐까.” 궁금증이 묻어 나오는 다은의 목소리와 반대로,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정말로 그런 거라면 뭐. “안타깝게 됐네.” “…응? 그게 끝이야?” “그러면 뭐가 더 필요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다든가, 도둑을 잡는 걸 도와준다든가…?” “난 경비병이 아닌데.” 탐정도 아니고, 하물며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용병도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도와준다고 나서봤자 저 드워프가 반갑게 받아들이기나 할까. 생전 처음 본 외부인이, 그것도 어린애가 도와주겠다고 나서는데? 그냥 내쫓기면 다행이지, 수상쩍게 여겨져서 의심을 사도 이상하지 않을걸. “그런가? 나는 카나 같은 아이가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흐뭇하게 볼 거 같은데.” 다은은 생각이 좀 다른 듯했지만 어쨌거나 나설 생각은 없었다. “이제 일어나.” 괜히 근처에서 얼쩡대다 휘말릴지도 모른다. 이 정도 쉬었으니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했겠지 싶어서 다은에게 일어나라고 말했다. “에에, 조금만 더 쉬면 안 돼? 아직 힘든데.” “안 돼.” 힘든 게 아니라 구경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나는 다은의 투정을 단호하게 물리치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칭얼대면서도 얌전히 내 손을 잡았다. 이런 걸 보면 애 취급은 내가 아니라 다은이 받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는 손을 꼭 마주 잡은 채로 다음 공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전 재산을 털어서 산 내 드래곤 오브가…!” “…!” 만약, 그때 뒤에서 들려온 말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르키쉬를 할 줄 몰라도, 방금 그 말 안에 있던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드래곤 오브’는 그라닉이나 아르키쉬나 부르는 법이 같았으니까. ‘드래곤 오브…?’ 저렇게 애타게 찾는 걸 보면 어지간히 중요한 걸 잃어버렸구나 싶긴 했는데, 설마 잃어버린 게 드래곤 오브였어? 절박한 드워프의 모습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귀한 걸 어떻게 잃어버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불안해서 품에 안은 채로 잠들 거 같은데. 돈이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람이라면 또 모르지만, 드래곤 오브를 잃어버렸다고 망연자실해 있는 걸 보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고. “…흐응.” 흥미가, 조금 생기는데. “어, 어? 카나, 어디 가?” “저기.” “아깐 관심 없다며.” “지금은 생겼어.” 드래곤 오브를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흥미가 안 생겨. 나는 다은을 이끌고 인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인파의 대부분이 드워프라서 비집고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키가 작은 게 특징인 드워프들과 눈높이가 비슷하다는 점은 썩 기분 좋게 와닿지 않았다. “어헝헝헝…! 난 이제 끝이야!” 인파의 중심에 주저앉아 있는 드워프는 이제 망연자실을 넘어 땅을 치며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자랑인 수염이 푹 젖을 정도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으헝헝…. …으, 응? 쿨쩍! 뭐냐, 네 녀석은.” 드워프가 울음을 멈추고 벌게진 눈으로 나를 훑었다. 후드 너머를 꿰뚫어 볼 듯한 기세로 훑던 그의 시선이 다은의 손과 맞잡느라 케이프 밖으로 노출된 팔에 닿았다. 그러자 그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체구를 보니 동족인 것 같은데, 쿨쩍! 드워프가 그런 팔을 하고, 훌쩍, 부끄럽지도 않나?” “…푸흡!” “….” 드워프의 말을 들은 다은이 급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봤자 이미 들을 건 다 들은 후였지만. 다은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그가 무슨 말을 했을지는 대충 짐작이 됐다. …참자.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누르며 다은의 손을 꾹꾹 당겼다. “내가 도와줄게.” 다은의 번역을 통해 내 말을 전해 들은 드워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 돕는다고?” “응.”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내가 자네들의 뭘 믿고 일을 맡기나?” 대뜸 의심부터 받을 것도 각오했는데, 이 정도면 상당히 부드러운 대답이었다. 아마 자포자기하는 심정이라 그런 게 아닐까. 어찌 됐든 저렇게 나오는 건 나한테 좋은 일이지. “자. 이걸 봐.” “…반지? 이걸 갑자기 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주의하며 반지 낀 손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는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반지를 확인하자 점점 입이 벌어졌다.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변한 드워프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정확히는 반지를 만지려고 했지만. 내가 손을 거둔 탓에 그의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체험은 여기까지야.” “조, 조금만 더 보여주게!” “싫어.” 더 보고 싶으면, 알지? 드워프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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