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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3

“이건, 허, 대체 무슨…?”

드워프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반지를 살피기 바빴다.

그럴 리는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의 눈빛은 반지가 닳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심코 들 정도로 뜨거웠다.

흥분에 찬 그의 얼굴엔 잃어버린 드래곤 오브에 대한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여튼 드워프들이란.’

간혹 있는 별종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드워프는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온갖 열과 성을 다한다.

그런 만큼 자기가 만든 물건에 자부심이 있는 그들이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물건을 보고도 인정할 줄 모르는 오만한 종족은 아니었다.

오래전에는 그랬다는 말도 있던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

당연히 그들의 눈을 만족시킬 만한 물건은 흔하지 않았다.

대충 뚝딱뚝딱 만들어도 웬만한 대장장이가 만든 것보다 뛰어난 물건이 만들어지는데, 어중간한 물건이 눈에 들어오겠어?

그러니까, 지금 이 드워프가 보이는 반응은 내가 낀 반지가 범상치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빼서 보여주면 안 되나? …라는데?”

“안 돼.”

나는 드워프의 부탁을 일축했다.


“이런 물건이면 애지중지할 만하지.”

드워프는 아쉬운 눈치를 보이면서도 내 말에 순순히 납득하고 물러났다.

정작 의문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어차피 훔쳐 가지도 못할 텐데 잠시 빼서 보여주는 게 낫지 않아? 그러고 있으면 불편하잖아.”

다은의 의문은 타당했다.

오른손을 내민 채 수십 분 동안 가만히 있는 것보단 그냥 반지를 빼서 건네주고 살펴보라고 하는 편이 훨씬 편할 테니까.

그냥 살펴보는 것도 아니고, 아주 반지에 들어갈 기세로 보는 바람에 흥분에 찬 콧김이 때때로 내 손등을 간지럽혔다.

“그 정도로 소중한 거야?”

“소중…은 모르겠고. 귀중한 거긴 하지.”

무려 드래곤이 만든, 일국의 국보인 물건이니까.

아니, 그라시스는 이미 망했으니 ‘국보였던’이란 말이 맞겠네.

“히에에엑….”

그전까지는 그냥 예쁜 장신구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보던 다은이 내 설명을 듣자 기겁하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이, 이게 그 국보라고?”

“응. 내가 말 안 했어?”

“안 했어! 난 그냥 예쁜 반지라고만 생각했지….”

그런 어마어마한 물건일 줄은 몰랐다고 다은이 중얼거렸다.

“어쩐지 카나가 반지를 끼고 있는 게 신기했는데, 그런 거였구나. 그런 귀중한 반지면 빼지 않는 게 당연하네.”

“안 빼는 게 아니라 못 빼는 거야.”

빼면 이상한 게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하여간 파충류들이 문제야.

“드래곤 오브로 만든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뭔가 다른데….”

“이제 그만 봐.”

“허억…! 잠시만 기다리게! 조금만 더…!”

드워프가 애타게 손을 뻗는 걸 무시했다.

계속 내버려두면 며칠이고 들여다보고 있을 게 뻔했기에.

“이만하면 충분히 봤잖아. 이제 일 얘기를 해보자고.”

반지를 보여준 건 그의 흥미를 끌고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기 위함이지, 그의 안목을 길러주기 위해 한 게 아니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는 말, 못 들어봤어?

드워프가 흠칫 놀라며 제 머리카락을 쓸었다.

아무리 수염을 중요시하는 드워프라 해도 대머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은 무서운 모양이다.

* * *

“…그렇게 된 거래.”

음…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어제 제자에게 물건을 받아오라고 시켰고, 제자 외에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고, 오늘 일어나 보니 드래곤 오브가 사라진 상태였다…. 이 말이지?”

“으응. 일단은 그런 거 같아.”

“그 제자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는데?”

“작업에 필요한 도구를 가져오라고 심부름시켜서 산에 올라갔대. 제자를 보내고 영감을 얻으려고 상자를 열어보니 이렇게 빈 상자만 있었대.”

“음….”

이상이 드워프가 우리에게 말한 내용이었다.

들은 것만 따지면 딱히 짐작할 만한 게 없는데.

고개를 모로 꼬며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다은이 소곤소곤 귓속말했다.

“저기, 그 제자라는 사람이 수상하지 않아? 드래곤 오브의 존재를 아는 건 제자밖에 없다고 했잖아. 게다가 사라진 걸 발견한 것도 제자가 심부름하러 떠난 후고.”

“의심 가는 건 맞지만….”

과연 제자가 범인일까.

욕심 있는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스승에게 가져다 주지도 않았을 거 같은데.

받은 드래곤 오브인 걸 몰랐다고 해도, 그런 사람이 상자를 열어보지 않을 리도 없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게 제자인 건 맞지만, 속단하기엔 아직 증거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제자에 관해 더 잘 알고 있을 스승이 의심을 안 하는데 외부인인 우리가 의심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아… 그건 그렇네. 그럼 이제 어쩌지?”

“일단 제자라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범인이 아니라 해도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니 무언가 수상쩍은 걸 봤을지도 몰라.

별다른 정보가 없으니 어쩔 수 있나.

“언제쯤 온대?”

“아침 일찍 떠났으니까… 아마 몇 시간 내로 돌아올 거래.”

우리는 제자를 기다리며 사소한 잡담을 나누었다.

이를테면 서로의 이름 같은 거.

그를 통해 나는 드워프의 이름이 ‘브론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뭔가?”

“그 비싼 드래곤 오브를 잃어버려서 난리 치는 걸 보니 호기심이 생겨서. 도와주면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르잖아?”

“…우리 드워프들이 솔직한 걸 좋아하는 건 맞지만, 지나치게 솔직한 거 아닌가? 뭐, 정말로 찾아준다면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하겠다마는… .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 빈털터리라네.”

이런 얘기도 하고.

“나 말인가? 무기, 방어구, 도구, 기구, 마도구… 이것저것 만든다네.”


“우와… 그 많은 것들을 다 만들 수 있다고요? 대단하시네요!”


“크, 크흠흠! 벼, 별로 대단한 건 아니라네. …이건 내가 작년에 만든 건데. 어때, 관심이 좀 있나?”


“오오…! 멋져요!”

그가 만든 물건도 구경하고.

물건을 본 다은이 감탄사를 내뱉을 때마다 드워프의 투박한 얼굴에 웃음꽃이 한가득 피어났다.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넘치는 드워프에게 다은의 솔직한 감탄사는 그 어떤 말보다 기분 좋은 칭찬이었겠지.

그 덕분에 브론딘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으니 불만은 없지만서도.

다행히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

“카나?”

문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바깥에서 돌아다니는 수도 없이 많은 인기척 중, 하나의 인기척이 이 집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내 공방의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들어오다가-

“스승님, 돌아왔- …어?

“…!”

후드를 벗고 있던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더니 문지방을 넘는 모습 그대로 멈춰 섰다.

문 너머에서 들어오던 햇빛이 청년의 상체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근육질의 몸과 곱상한 얼굴.

뭇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게 분명한 청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대체 왜 상의를 벗고 다니는 거지?’

그렇게까지 몸을 자랑하고 싶었나?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좋은 몸은 맞지만, 남자의 벗은 몸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내게는 안구 테러와 다를 게 없었다.

나는 시시각각 시력 저하를 유도하는 끔찍한 것에서 시선을 돌렸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그건 내가 할 소리 같은데….”

끼이익.

탁.

내 말에 당황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청년이 멈췄던 몸을 움직여 공방으로 들어왔다.

청년은 놀란 눈으로 나와 그를 번갈아 가면서 보는 다른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며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브론딘이 말한 제자라는 게 너였어?”

“스승님이 그렇게 말하셨어? 나 참. 내 앞에서는 조금 가르쳐 준 것뿐이지 스승이 아니라고 그렇게 큰소리를 치시더니, 정말 솔직하지 못한 양반이라니까. 그것보다, 네 말투는 여전하구나.”

“내 말투가 어때서.”

난데없이 내 말투를 트집 잡는 그의 말에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렇게 따지면 네 말투도 만만치 않게 이상해.”

다른 놈들이 근엄한 척 온갖 점잔을 뺄 때 그는 지금처럼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친근한 말투를 고수했다.

말투만 보면 이상할 건 없지만 지위에 맞는 말투라고 볼 순 없었지.

그는 뾰족하게 내 말투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봐서 반갑네. 카나리아. 아, 이렇게 부르는 거 싫어했던가.”

“…나는 딱히 반갑진 않은데.”

“너무해.”

그래도 뭐,

영락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얼굴을 보니 감회가 새롭긴 하네.

다은이 슬금슬금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오, 그라닉을 할 줄 아는 사도라니. 이거 참 신기한걸? 만나서 반가워!”

“어, 어어… 저도 반가워요?”

청년이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오자 그녀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친화력을 따지면 다은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텐데, 청년의 친화력은 그녀보다 한 수 위였다.

“….”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일까.

나는 다은이 얼굴을 붉게 물들인 것과 청년의 상체로 슬쩍슬쩍 시선이 향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 아, 아니야! 벗고 있는 게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을 뿐이야!”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응원할게.”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나야 이런 몸을 하고 있어도 천생 여자는 아니라서 저런 걸 보고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다은은 한창 그럴 나이니까 난 이해할 수 있어.

“…네가 그런 데 흥미가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네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까 좀 상처받는데.”

“…흥.”

“…?”

청년이 쓴웃음을 지었고, 다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침묵을 지키다가 못마땅하게 말했다.

“그런 걸 네 입으로 잘도 말하네.”

“사실 이 정도 상처는 이제 무뎌졌거든. 그래서, 어때?”

“뭐가 어떠냐는 거야.”

“내 몸 말이야. 내가 봐도 완벽한 몸이라고 생각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청년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팔을 굽히고, 허리를 뒤틀고. 하여간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나는 자신만만한 청년의 얼굴에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징그러워.”

“….”

“왜 벗고 다니는지도 모르겠어.”

“그….”

“이상해. 꼴불견이야. 바보 같아. 멍청해 보여.”

“그, 그만….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그만 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공격에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된 청년이 비틀거렸다.

그러게 누가 이유도 없이 옷 벗고 다니랬나.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무슨 일인지 당최 알 수가 없구만.”

사태를 채 파악하지 못한 브론딘이 당혹스럽게 중얼거렸다.

상황이 조금 진정되고, 어디선가 옷을 꺼내서 입은 청년과 우리는 공방 바닥에 나란히 둘러앉았다.

옷을 챙겨 입긴 했는데 그나마도 그의 체구보다 작은 옷이라서 그가 껴입은 옷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서로서로 눈치를 보는 넷 중에서 먼저 포문을 연 건 다은이었다.

“저는 카나와 같이 여행 다니고 있는 저니라고 해요. 아까 눈치채신 것처럼 에델 님의 사도예요.”

“…저 녀석이랑 같이 여행 다닌다고? 보통 고생이 아닐 텐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쓸데없다니? 분명 저 저니라는 친구도 공감할걸?”

“아, 아하하… 그렇게 고생하진 않았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불신의 눈초리를 던지는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악! 여자애가 무식하게 발길질하기는…!”

“…그런데 그쪽도 카나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셨나 봐요. 그렇다는 건, 그라시스 사람인가요?”

“뭐야. 카나가 그런 것까지 말해줬어? 이야… 성질 많이 죽었네.”

“…한 번 더 맞고 싶어?”

“음, 그건 정중히 사양할게.”

슬쩍 다리를 들자 청년이 꼬리를 말았다.

크흠, 목을 가다듬은 그가 입을 열었다.

“맞아. 난 네 추측대로 그라시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야. 카나와는 오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네.”

“오랜 친구는 무슨.”

“그럼 이쯤에서 내 소개를 해야겠지.”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를 꾸벅 숙이며 팔을 접었다.

다소 과장된, 하지만 고상한 품위가 느껴지는 인사였다.

완벽에 가까운 인사에 압도된 다은이 얼떨떨하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그런 그녀에게 훤칠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만나서 반가워. 난 아시에 그라시스.”

한때 그라시스의 왕자였던 몸이야.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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