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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6

모두가 잠에 든 야밤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이라니.

행여나 다른 사람의 눈에 띌세라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피는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쩍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야반도주.

마법사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였다.

“…막스와 친한 사람 말입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자기는 고작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언젠가 이곳을 떠나 황실 마법사가 될 거라고 말했거든요.”

금화를 받은 마법사의 태도는 받기 전과 확연히 달랐다.

귀찮은 듯 껄렁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말투와 행동 모두 VVIP를 대하듯이 깍듯하게 변했다.

가끔씩 아시에의 주머니로 시선이 향하긴 했지만, 그 정도야 그럴 수 있지.

“굳이 돈 안 써도 깍듯하게 만들 방법이 있는데. 알려줄까.”

특히 마법사들에겐 아주 특효약인데.

모처럼 호의를 베풀었건만, 아시에는 어이없다는 듯한 어조로 내 호의를 거절했다.

“필요 없으니까 검에서 손 떼.”

‘애가 왜 이렇게 난폭해졌지?’ 같은,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는 아시에에게 마법사가 머뭇머뭇 물었다.


“저, 실례지만 세 분은 그라시스 출신입니까?”


“응?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세 분의 말이 귀에 익어서요. 예전에 잠깐 그라시스에 살았던 적이 있는지라….”


“우리 출신은 됐고.”

아시에는 다은과 마법사의 대화를 싹둑 잘랐다.

그러고는 무안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마법사를 향해 말했다.

“막스의 행방을 알 만한 인물은 없다는 말이죠?”


“뭐, 뭐… 입을 열기만 하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그와 친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거 참….”

“…뭐래?”

“막스라는 사람이랑 친한 사람 있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없대.”

“저런.”

그 말을 듣자 아시에의 안목에 대한 신뢰도가 더 올라갔다.

브론딘은 대체 그 막스라는 사람의 어떤 면을 보고 공방 열쇠를 맡길 정도로 신뢰한 걸까.

듣자 하니 주변에도 평판이 썩 좋은 인물은 아닌 거 같은데.

그 정도라면 막스와 친하게 지내는 걸 보고 주변 사람들이 충고했을 법도 한데 말이야.

‘혹시, 브론딘도 친구가 없는 건가?’

으음,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친구가 없는 게 죄는 아니니까.

“아무래도 공방에 들어가 봐야겠는데.”

내가 자문자답하고 있는 사이 결론을 내렸는지 아시에가 문고리를 잡았다.

역시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인 그가 나를 돌아봤다.

“카나. 부탁할게.”

“응.”

아까는 장난삼아 검에 손을 올렸었지만, 이런 길거리에서 검을 꺼내 들 생각은 없다.

사람들이 한창 돌아다니는 백주 대낮에 시퍼런 검날을 꺼내 들었다간 이목이 쏠릴 게 분명한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게다가 검을 꺼내서 한다는 짓이 남의 공방에 침입하는 거라면 더더욱 말이야.

적어도 드워프들의 도시… 장인의 도시, 발토라에서 행할만한 일은 아니지.

그렇기에 나는 빈손으로 문에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몸을 돌려 일행에게 합류했다.

“….”

“….”

“…저, 카나?”

“응?”

“문, 열려는 거 아니었어? 왜 그냥 돌아와?”

“?”

멍하니 내 행동을 보고 있던 다은이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아시에도 그다지 티는 안 냈지만 내심 그녀에게 동의하는 눈치였고.

일행의 면면을 쭉 훑어보던 나는 아, 하고 작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다들 멍청하게 서 있는 건가 했는데 그런 거였어?

“열었잖아.”

“…에?”

“자.”

문에 손을 대고 밀자, 언제 잠겨 있었냐는 듯 아무런 저항 없이 열린 문.

그 너머로 보이는 공방 내부의 풍경에 다은이 다시금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리고, 다은과는 다른 의미로 얼빠진 사람도 있었다.

“어, 어, 어, 어떻게…?!”

마법사가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저 정도면 주먹도 들어가겠는데?

나의 조그마한 손과 그의 입을 번갈아 가며 보던 나는 실험해 보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나저나 마나에 민감한 마법사라고 해도 이걸 눈치챌 줄이야.

아시에에게 겁먹는 모습 때문에 조금 얕봤는데, 생각보다 실력 있는 마법사일지도.

나는 뭘 한 거냐고 묻는 다은에게 친절하게 대답했다.

“검기로 잠금장치를 잘랐어.”

“…검도 없이 검기를 썼다고?”

“응.”

나뭇가지로 바위도 벨 수 있는데 그 정도쯤이야.

마나로 검을 만드는 게 효율이 좋지 않아서 잘 쓰지 않는 것뿐이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닌걸.

“연습하면 저니도 할 수 있을 거야.”

“높게 사주는 건 고마운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가 아닐까?”

옛말에 꿈은 크게 가지라 했거늘, 이미 현실에 찌든 다은은 꿈을 꾸는 법을 잊은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근데-

“저니는 그렇다 쳐도. 아시에, 너는 왜 놀라는 거야.”

“놀란 적 없어.”

“열린 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서 있었잖아.”

“그건 그냥 몰라서 그랬던 거야.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열린 걸 알아?”

“왜 못 봐?”

“…세상 사람들은 다 너처럼 천재가 아니야.”

“흐으음.”

기사만큼은 아니어도 꽤 열심히 검을 익혔던 걸로 기억하는데.

검 대신 망치를 잡은 탓일까, 아무래도 그의 경지는 몇 년 전과 큰 차이 없는 모양이다.

“알람 마법은…? 도난 방지 마법은…?”

우리는 여전히 충격에 빠진 얼굴로 읊조리는 마법사를 뒤로하고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열려 있는 서랍, 아무렇게나 늘어진 종이, 나동그라진 쓰레기통에서 나온 쓰레기….

좋은 말로 해도 개판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광경이 우릴 반겼다.

“…마법사들의 공방은 원래 이래?”

그 광경을 눈에 담은 다은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있나.”

그녀의 말을 부정한 아시에가 공방을 살폈다.

나도 그를 따라서 공방 구석구석을 돌며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다녔다.

“으음….”

바닥에 있는 종이를 주워 든 나는 침음을 삼켰다.

…역시 못 알아보겠네.

마법과 아르키쉬. 둘의 합동 공격에 당한 나는 얌전히 종이를 내려놓았다.

공방 안에는 막스라는 마법사가 남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가 작업하던 공방이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무언가를 발견한 아시에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주변을 기웃거리던 다은이 후다닥 달려갔다.

“뭐 찾은 거 있어요?”

“스승님이 예전에 만드신 물건이야. 의뢰를 받아서 만들었는데, 마법진을 새기다 망가졌다고 해서 하나 더 만드신 게 기억나. 근데 그게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봐도 좋은 의미는 아니네요.”

완성품을 납품하지 않은 거라면 브론딘에게도 연락이 갔을 텐데, 그거에 관해선 말하지 않는 걸 보니 그건 아닐 테고.

망가졌다고 거짓말을 하고 하나를 더 받아왔다는 게 더 신빙성 있는 가설이겠지.

그렇게 해서 얻는 건 당연히 돈일 테고.

그 외에도 우리는 아직 미완성인 마도구라든가, 마법진을 새기다 부서진 잔해 등을 발견했지만 사라진 그를 추격할 단서는 찾지 못했다.

그나마 수확을 꼽자면 막스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 정도.

“돈 될 만한 것들은 하나도 없네.”

방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급한 와중에도 돈 될 만한 것들을 싹싹 긁어 챙기느라 그런 게 아닐까.

이런 걸 알뜰하다고 해야 하나.

빈손으로 모인 우리 셋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지금이라도 쫓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어젯밤에 출발했으면 이미 늦었으려나….”

“산의 밤은 위험하니 아마 어제 출발하지는 않았을 거야. 도시를 떠났다고 해도 동이 튼 후겠지.”

“…산의 밤이 위험해? 왜?”

“넌 가만히 있어.“

그렇게 셋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을 때,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

어느샌가 우리를 따라 들어와서, 공방을 둘러보던 마법사가 나지막하게 우리를 불렀다.

“여러분은 막스를 찾고 싶은 거 맞죠? 그렇다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만….”


“예?”

아시에의 머리가 부러질 것처럼 빠르게 돌아갔다.

기세에 움찔했던 마법사가 그의 재촉에 말을 이었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해 주는 놈들이 있습니다. 썩 질 좋은 무리는 아니지만요.”


“…혹시.”


“아, 이미 알고 계십니까? 알고 계시면 얘기가 빠르겠네요.”

마법사의 말을 들은 아시에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당연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나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 *

발토라에도 텔레포트 게이트는 있다.

하지만 발토라에서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는 경우 다른 도시에서 이용할 때보다 큰 비용이 들었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는 도시와의 거리가 상당히 멀기 때문이었다.

돈에 혹해서 드래곤 오브를 훔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급한 와중에도 돈 될 만한 것들을 싸그리 챙겨 달아난 사람이 그 비싼 텔레포트 비용을 감수할까.

답은 당연히 ‘아니요’였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는 비용이 아무리 비싸다고 한들 드래곤 오브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다.

조금의 코스트를 지불하면 안전과 안정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테지만, 돈에 눈이 먼 막스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턱.

“…흡!”

어깨를 짚는 손에 막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슈?”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거참.”

막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던 용병이 지저분한 머리를 긁적였다.

우수수 쏟아지는 비듬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던 막스는 급하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지저분하고 천한 놈들이라고 해도 지금 아쉬운 사람은 그였다.

괜히 성질을 건드려서 마찰을 빚어봤자 좋은 꼴을 보진 못하리라.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막스가 선택한 건 발토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용병단에 몸을 의탁하는 것이었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한다.

그런 말이 대놓고 도는 데다가, 심지어는 본인들이 그 말을 자랑스럽게 떠벌거리는 질 낮은 용병단이었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했다.

그들이라면, 만약 브론딘이 눈치채고 쫓아온다고 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없애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품에 넣은 가죽 주머니의 감촉을 느낀 막스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멍청한 브론딘은 그가 범인일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놈…. 아지에라는 놈은 다르지.’

예전부터 그를 마음에 안 들어 하던 놈이니 눈치채고 사람들을 모아 쫓아올지도 모른다.

용병단은 그런 경우를 위해 든 보험이었다.

배신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제국의 귀족임을 증명했으니 아마 괜찮을 것이다.

그들도 제국을 적으로 돌리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나저나, 정말 다른 도시까지 데려다주기만 하면 되는 거요?”

“그래. 그렇게만 하면 사례는 충분히 챙겨주지.”

“뭐, 이런 간단한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면야 우리야 좋지만.”

지저분한 머리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막스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친한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막스의 어깨에 팔을 두른 남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씨도 꽤 뒤가 구린 일을 했나 봐? 어디, 사람이라도 죽였나?”

“…비슷하다.”

“이런! 무시무시한 형씨였네! 우리도 조심해야겠어.”

막스는 그에게 친한 척하는 남자를 당장에라도 쳐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살인은 무슨.

그런 지저분한 짓을 그의 손으로 직접 할 리가.

하지만 여기서 물건을 훔쳐서 도망가고 있다고 말이라고 했다간 재물에 눈이 먼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럴 바엔 그들과 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나았다.

남자는 푸하하 웃으며, 하지만 붉은 살기가 은은하게 도는 눈으로 막스를 보았다.

“아무튼, 우리만 믿고 있으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 테니까.”

남자의 팔이 스르르 멀어졌다.

남자가 그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막스는 그제서야 한숨을 쉬며 어깨에 남은 악취를 털어냈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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