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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9

비록 도구의 힘을 빌려야 하긴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에게 하늘을 난다는 건 그다지 신비롭거나 신묘한 일이 아니다.

당장 다은만 해도 최근엔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제집처럼 들락거리지 않았던가.

그 덕에 다은의 항공사 계정엔 마일리지가 빵빵하게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다은도 도구 하나 없는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일은 상상도 못….

…솔직히 말하면, 비행기 표를 살 때마다 ‘내가 하늘을 날 수 있었다면 푯값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긴 했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 건 다은도 알고 있었다.

‘새도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맨몸으로 하늘을 날아?’

카나의 등에 업혀 하늘을 날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꺄아아아아아!”

작은 발이 땅을 박찰 때마다 카나는, 그리고 카나에게 매달린 다은을 비롯한 일행은 하늘을 날았다.

땅을 딛고, 위로 솟구친다.

일반적으로는 도약이라고 부르는 행동이지만, 다은은 이걸 감히 도약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세상 어떤 뜀박질이 건물 몇 층 높이를 가뿐히 넘는단 말인가.

카나가 한 행동은 도약이라기보단 비상에 가까웠다.

심지어 땅이 아니라 나뭇가지를 톡 밟고 뛰어오르거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박차는, 물리학자가 봤다면 경악할 만한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까지.

그러나 다은은 그런 걸 감상할 정신이 없었다.

자기보다 한참 작은 소녀의 등에 업혀 하늘을 나는 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몸은 이리저리 흔들리지, 주변 배경은 휙휙 바뀌지….

올라가는가 싶었더니 내려가고 있고, 내려가는가 싶으면 이번엔 올라가고.

아주 인상적인 탑승감을 제공하는 카나 익스프레스는 시스템으로 인해 둔화된 다은의 감각을 뚫고 그녀에게 멀미를 선사했다.

시스템이 없었다면 나무와 땅바닥을 붙잡고 구역질하는 두 사람처럼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한동안 멀미에서 시달리다가 이제 좀 살 만해졌다 싶었더니.

“빨리 와. 훈련해야지.”

이번에는 용병들과 싸우라고 하니, 다은으로서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

카나가 그녀에게 주먹을 휘두를 리는 없지만, 다은은 포기하고 카나의 말을 따랐다.

“그래…. 직접 나서면 1분도 안 돼서 끝날 텐데, 카나도 날 위해서 귀찮은 걸 감수하는 거잖아. 실제로 실력이 늘기도 했고.”

-꿀밤 마려운 저니면 개추

-이분 언제 검투사로 전직하셨나요?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저니가 마중나온다는 말이 있다. 난 이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우린 이런걸보고 정신 승리라고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다은의 시청자들은 그녀가 카나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좋아했다.

개인 방송, 스트리밍을 보는 시청자들은 원래 짓궂은 구석이 있다.

그걸 알고 있는 다은이기에 장난에 어울려 주기도 하고, 반대로 그들에게 장난을 걸기도 했다.

그런데 다은은 요즈음 들어 시청자들이 더 짓궂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카나와 최초로 대화를 나눠서 시청자들이 대거 유입된 덕분이겠지.

좋냐 싫냐를 따지면 당연히 좋다.

방송 분위기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원래 분위기와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고, 나쁜 쪽으로 바뀐 것도 아닌데 싫을 리가.

…가끔씩 밉살스럽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카나를 밉게 보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야.’

어린애가 어른에게 버르장머리 없게 군다며 고깝게 봤으면 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겠지.

다은은 아픈 과거를 가진 아이가 미움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저니?”


“응? 아, 미안.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채팅창을 보며 입술을 삐죽이던 다은이 카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꿀꺽.

험상궂은 얼굴들을 마주한 그녀가 침을 삼켰다.

아시에에게 듣기로는 살인, 방화, 강도, 강간, 절도 등 온갖 짓을 저지른 놈들이라고 하던데….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레벨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낮다.

그러나 상대의 레벨이 더 낮다고 해서 무조건 이기는 게 아니란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근데 누구와 싸우라는 거야? 설마 일곱 명 전부와 싸우라는 건 아니지?”


“설마.”

훈련에 들어가기만 하면 무시무시한 교관으로 변하는 카나였지만 다은에게 불가능한 걸 시키지는 않았다.

그리고 카나가 보기엔 다은이 살인에 익숙한 용병 일곱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죽었다 깨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죽었다 깨어나지 않는 이상?’

그렇다는 말은….

그때, 카나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다은이 말했다.

“…카나야.”


“응?”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


“저기요? 카나 양? 왜 대답이 없으시죠?”


“아, 안 했어.”


“누가 봐도 이상한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반응이잖아.”


“안 했다니까.”

다은은 아픈 것을 싫어한다.

시스템 덕분에 통각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고 해도, 아예 못 느끼는 건 아니다.

카나는 그런 그녀에게 일부러 죽는 걸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실력은 빨리 오를 수도 있겠지만….’

다은에게는 역효과만 나겠지.

그런 건 대검 삐약이처럼 호전적인 이에게나 어울리는 방식이다.

“선택권을 줄게. 누구와 싸우고 싶어?”


“아무도 안 고른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지?”


“일곱 명 모두와 싸우고 싶다는 뜻이구나. 좋은 패기야.”


“지금 고르면 되지?”

다은은 진중하게 용병들의 얼굴을 훑었다.

다시 봐도 마음을 꺾이게 만드는 얼굴들이다.

못난 놈들이 그런 짓을 한 건지, 그런 짓을 해서 못나진 건지.

심도 있는 고찰을 하며 그들의 레벨을 살펴보던 다은이 한 명을 콕 집었다.

“저 사람.”

일곱 명 중 가장 레벨이 낮은 용병이었다.

레벨이 강함을 따지는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해도, 실력을 모르는 이상 제일 낮은 상대를 고르는 게 상책이었다.

“흐음. 알았어.”

카나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비음을 흘리면서도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필요 없겠지.”

선택받지 못한 여섯 명의 운명을 결정짓는 건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먼저 간 이들과 뒤따라갈 친구가 있으니 그다지 억울하지는 않으리라.

“아, 대장은 살려두는 게 나았으려나.”


“…뭐? 갑자기 웬 생뚱맞은 소리야?”


“생포해서 대령하면 현상금을 받을 수도 있잖아.”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잡혔겠지.”


“으음, 그러려나.”

순식간에 동료를 모두 잃고 혼자 남은 남자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살이 뒤룩뒤룩 쪄서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몰든의 실력은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

그를 우습게 보고 반란을 계획했다가 목이 잘린 용병이 얼마나 많던가.

남자는 매일 아침 장대에 걸린 머리를 보며 절대로 몰든을 거스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몰든이, 엑스퍼트 검사인 몰든이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엑스퍼트 수준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

“마, 마, 마스터…!”

따라서 남자가 그런 결과를 도출한 것은 당연했다.

“마스터가 왜 이런 곳에!”

그것보다, 모두가 얕본 저 작은 소녀가 마스터라니.

“이건 꿈이야….”

남자는 아주 지독한 악몽이라고 생각하며 볼을 후려쳤다.

그러나 뺨이 붉게 달아오르기만 했을 뿐, 그가 바란 대로 악몽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라. 망가졌는데.”

들고 있던 무기까지 떨어뜨리며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남자.

카나의 중얼거림에 아시에가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너라면 앞에 마스터가 있는데 싸울 생각이 들겠어?”


“나라면 싸웠는데.”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싸우지 않을 이유가 있나?

태연한 카나의 말에 아시에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도 죽음이 코앞에 닥치면 말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카나는 정말로 그랬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가리드와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래. 너라면 그랬겠지. 아무튼, 망가지는 게 싫었으면 나중에 죽이지 그랬어. 이렇게 될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잖아.”


“응… 근데.”


“근데?”

“눈이 기분 나빴어. 내가 무슨 음식도 아니고.”


“….”


뚫어져라 보질 않나, 입맛을 다시질 않나.

바로 죽이고 싶은 걸 그때까지 참은 것만 해도 카나로선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아시에가 소녀의 머리에 손을 턱 올렸다.

“?”


“잘했어.”


“…??”

여기서 갑자기 칭찬을?

카나는 영문 모를 칭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힘차게 머리를 흔들어 그의 손을 뿌리쳤다.

“모처럼 실전을 겪게 해주려고 했는데.”

소녀의 무심한 눈을 본 남자가 몸을 떨었다.

“이래서야 쓸모없겠네.”


“…휴우.”

사람을 두고 망가졌다고 하는, 듣기에 따라선 섬뜩한 말이었지만 적어도 다은에게는 천만다행인 말이었다.

‘몬스터와 싸우는 거라면 몰라도 인간은 역시 조금 그래….’

싸우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야.

“싸워서 이기면 살려준다고 해볼까?”


“정말 살려줄 생각이냐?”


“경우에 따라선.”


“그러면 하지 마라. 살려줘 봤자 똑같은 짓을 저지를 놈이니.”


“사, 살려주시면 착하게 살겠습니다!”


“응? 알아들은 건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시에의 말대로 알아듣진 못했지만, 본능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처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눈치챈 남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생에 대한 강한 집착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착하게 살겠다고?”

“네? 네, 넵! 꼭 그러겠습니다!”

“착하게 사는 게 뭐지?”

“…그, 남의 돈을 뺏지 않고, 사람도 안 죽이고….”

“그건 문명인이라면 당연한 거 아닌가?”

카나가 들었다면 ‘응? 왕족들은 그러던데?’라고 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 카나는 뺨을 잡아당기려는 다은의 손을 피해 도망가고 있었다.

아시에의 반박에 남자의 말문이 막혔다.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남자를 보며 아시에가 고개를 저었다.

남자의 눈에는 흔들리는 아시에의 머리카락이 사신의 낫처럼 보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부, 불쌍한 사람을 돕고-”

남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가슴팍을 꿰뚫은 검.

그 검의 손잡이는 남자에게 무척 익숙한 모양이었다.

남자의 손에 들려 수많은 피를 흐르게 만든 검은, 주인의 피를 머금는 것으로 끝이 났다.

털썩.

아시에는 차가운 눈으로 영혼을 잃은 몸뚱이가 넘어지는 것을 바라봤다.

“…자, 그럼.”

하지만 차갑다는 게 꼭 무심함을 뜻하는 건 아니다.

서늘한 분노가 담긴 눈이 다른 곳을 향했다.

용병들이 둘러싸고 있던 나무, 그 앞에 주저앉은 막스에게로.

“우리, 할 말이 좀 많죠?”

막스 씨?

“…!”

막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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