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긴지 뭔지 얘기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잘못 만든 보스를 언제까지 들먹이냐
얜 걍 데모닌스의 자캐딸용 캐릭임
대체 뭐가 좋다고 빨아주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댓글]
-오직 ‘그’만 했으면..
┗아니 진짜 그만하라고ㅡㅡ
-꼬우면 너가 더 재밌는 떡밥 만드셈
┗이게 재밌냐?
┗패턴이고 뭐고 없이 기존 전투 시스템도 개무시하는 게?
┗개꿀잼인데?
-일기는 일기장에
열기가 많이 식었다고 해도 드문드문 언급이 나오는 상황.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게 화가 난 건지, 단순히 세상을 불태우는 게 재밌는 건지, 그도 아니면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품은 건지.
왼손에 횃불, 오른손에 쇠스랑을 든 무리는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묘지기와 관련된 글에 불을 지르고 다녔다.
“이번 목표는 저쪽이다!”
“모두 불태워! 재조차 남지 않게 태워버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는 방화광들의 무리에 질린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불길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이 피로를 느끼고 피하니 남은 무리는 승리감에 도취하여 함성을 질렀다.
“이 기세를 몰아 아예 뿌리를 뽑아버립시다!”
“그럽시다!”
달콤한 승리의 맛에 취한 그들은 이 기회에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무식한 이들을 모조리 척결하겠다는 마음으로 전진을 시작했다.
후퇴 따위 없는 맹돌진.
돌진을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렇게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는 듯했다.
갑자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거대한 장애물이 아니었다면.
[실시간 묘지기 이스터에그 발견]
(코카트리스의 목을 베며 나타난 묘지기.jpg)
(저니에게 검을 겨눈 묘지기.jpg)
(등을 돌려 멀어지는 묘지기.jpg)
[댓글]
-뭐야 왜 살려줌?
-???? 찐임?
-무조건 선공이던데 어케 한 거임? ㄷㄷ
-본인임?
┗ㄴㄴ 저니 방송 스샷임
┗걔 여행 다니는 애 아님? 레이드 하러 간 거임?
┗레이드 하러 건 아니고 궁금하다고 자기도 보러 간다 함
공략법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새로운 정보의 발견.
자신들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방화광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장애물을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들이박았다.
어쩌면 피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머리가 장애물보다 단단하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게 뭐? 그렇다고 해서 잘못 만든 보스라는 게 달라지기라도 함?]
[진짜 멍청한 애들 많네. 지금 항의해야 다시는 이런 ㅈ같은 보스를 안 만든다니까]
[갓겜이라고 겜알못들까지 다 몰려온 거 진짜 역겹네. 느그들 하던 겜으로 다시 꺼져라;]
그러나 아무리 밝은 전등이라고 해도 빛나는 태양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대형 떡밥에 정신이 팔려 방화광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원래 관심종자에게 특효약은 관심이 아니라 무관심.
불을 지르려고 해도 태울 연료가 없으니 그들이 든 횃불은 힘을 잃고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어!”
결국 그들은 제 목숨마저 바칠 기세로 최후의 발악을 시도했지만.
[관리자에 의해 차단되었습니다.]
세계를 주무르는 거대한 손에 의해 무산되었고, 주인 잃은 쇠스랑만 남아 싸늘하게 식어갔다.
[현재 도는 묘지기 관련 떡밥 정리]
사냥 좀 친다는 사람이면 ‘옛 왕국의 수도’라는 사냥터를 알고 있을 거임
제국에서 서쪽으로 쭉 가다 보면 있는 사냥턴데 고렙몹이 많아서 상당히 인기 있는 곳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끔 보이는 잔해를 제외하면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이라 사람들이 ‘옛 왕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였음
시간이 어지간히 흐른 게 아니라면 수도가 황무지가 될 리 없다고ㅇㅇ
근데 여기는 사실 실리아 세계 시간으로 1년 반 전에 멸망한 ‘그라시스’라는 왕국의 수도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불과 2년도 안 됐는데 그렇게 된 거
그래서 그게 묘지기랑 무슨 상관이냐고?
(저니와 묘지기의 만남.clip)
모 스트리머에 의해 묘지기가 그라시스 왕국 출신이라는 게 드러남
아직 확정이 아니긴 한데 사실상 확정이라고 봐도 상관없을 거 같음
그라시스 왕국은 우리나 다른 NPC들이 쓰는 언어인 아르키쉬와 다르게 ‘그라닉’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스트리머가 그라닉으로 말 거니까 영상처럼 묘지기가 멈췄음
묘지기가 있는 산이 그라시스의 영토였고, 정체를 숨기고 칩거한 게 수상해서 그라시스 사람일 거라고 추측했다 함
아무튼 스트리머가 그라닉 쓰는 걸 확인하더니 안 죽이고 그냥 돌아감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는데,
(음성 파일)
그동안 대화에 성공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몰랐는데 묘지기는 사실 눈나였음ㄷㄷㄷㄷ
그라닉으로 대화를 시도했다면 진작 알았을 텐데 맨날 아르키쉬로만 말 걸어서 대답을 안 했던 것
심지어 그라시스는 멸망 전까지 제국과 전쟁 중이었으니 악감정이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음
맨날 ㅈ망 보스라고 욕했는데 사실 진짜 나쁜 놈은 칼 들고 찾아가서 자기들만 아는 말 써놓고 말 안 통한다고 죽이려고 한 우리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맨 처음 죽은 놈도 대놓고 검 훔치려고 하다가 죽은 거고
역시 모든 문제의 원인 ㅈ간이었던 것
아.. 음해해서 죄송합니다 데모닌스..!
음해해서 죄송합니다 묘지기 눈나
[댓글]
-목소리 들어보니까 눈나가 아니라 응앤데?
┗원래 나보다 세면 눈나임
┗이거 맞다
-애기 묘지기는 사람을 묻어
-이렇게 보니까 왜 몰랐나 싶을 정도로 간단한데 이걸 아무도 몰랐다니;
┗대부분은 레벨 올리기 바쁘니까ㅇㅇ
┗아무래도 이런 거 알아내는 건 외국 애들 따라가기 힘들긴 하더라
-스트리머 저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그래서 어떻게 됨?
┗아직 진행 중 ㅇㅇ
┗어디서 봄?
┗(저니 방송 링크)
┗ㄳㄳ
┗아ㅋㅋ못 참지 당장 보러 간다
커뮤니티의 전파력은 매우 강하고 빠르다.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간다지만, 인터넷 세상 속에 사는 전파말은 천 리를 훌쩍 넘어 만 리 너머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났으니.
“시, 시청자 수가….”
-우리 방장… 월클 된 거야?
-저니! 저니! 저니!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넷 방송 1위
-놀라는 거 너무 웃긴w
일, 십, 백, 천, 만, 십만… 십만?!
생전 처음 본 시청자 수에 저니의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본래 저니의 방송은 인터넷 방송 쪽에서 흔히 말하는, ‘대기업’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규모였다.
고정 시청자 수도 많고, 구독자도 많다.
한 번 방송을 켜면 들어오는 후원도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런 저니조차도 지금의 시청자 수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숫자였다.
피시식은 해외 시장보단 국내 시장을 노리는 플랫폼이고, 안타깝게도 국내 시장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인구가 적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아무리 피시식 내에서 손에 꼽는 방송인이라고 해도 시청자 수가 십만 명을 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더 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저니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늘고 있었다.
채팅 사이사이에 섞여 있는 어색한 한국어나 외국어를 보아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유입되고 있는 게 확실했다.
방송에 적용되는 번역 모듈은 썩 좋은 게 아니라 소통하기 힘들 텐데, 채팅을 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자신에게 권한을 받아 방송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이 몰려드는 파도에 비명을 지르는 걸 본 저니의 머리가 차분해졌다.
‘아깝긴 하지만….’
소탐대실. 작은 것을 탐하다 보면 큰 것을 놓치게 된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손끝이 ‘일주일 이상 팔로우 챗’ 버튼을 꾹 누르자 거짓말처럼 잦아든 물결에 매니저들은 그제야 안도하며 숨을 돌렸다.
손이 묶이고 입이 막혀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이 떠날 테니 당장의 시청자 수는 줄어들겠지.
하지만 그녀의 방송이 마음에 든 이들은 어차피 남을 것이니, 방송 분위기를 지키려면 제한을 걸어야 한다는 게 저니의 판단이었다.
옳은 판단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집념을 망각한 판단이었다.
[‘q1w2e3’ 님의 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저 거적때기 벗기면 십만 원
[‘익명의 후원자’ 님의 천 원 후원! 감사합니다!]
-오팬무 물어보면 천 원
[‘Atomic’ 님의 십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WTF!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익명의 후원자’ 님의…]
‘소, 소탐대실….’
채팅이 막히자 그에 대한 반발으로 밀려드는 후원의 파도.
아까와 달리 이번엔 저니도 선뜻 막지 못한 채 갈등했다.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며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를 구원해 주는 이가 있었다.
불쑥.
“…에?”
저니의 눈 앞에 무언가 들이밀어졌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가열된 단백질 덩어리, 그러니까 구운 고깃덩이였다.
“에, 그러니까… 아씨, ‘먹으라고요’를 어떻게 말하지?”
저니의 머릿속 얇디얇은 그라닉어 사전엔 ‘살려줘’나 ‘잠깐’ 같은 말은 있어도 ‘먹으라고 주는 거예요?’라는 일상적인 말은 없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길 한참, 묘지기는 여전히 그녀에게 고깃덩이를 내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사람 앞에 고깃덩이를 내미는 게 그라시스만의 특별한 식사 예절이겠어?
…그래서 망한 건 아니겠지?
큰맘 먹고 받아 드니 다행히 묘지기는 별 반응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먹으라고 준 건가?”
-그럼 버리라고 준 거겠음?
-와 처음 보는 사람한테 먹을 것도 나눠주네ㄷㄷ 인성 봐
-이렇게 착한데 우린 지금까지 대체 무슨 짓을..?
-묘지기님이 손수 구워주신 고기다. 충분히 음미해라
“아니 근데 이거 코카트리스 고기 아니야…?”
몬스터 고기는, 먹어본 적 없는데….
-???
-이걸 안 먹어?
-감다죽
-몬스터 고기들도 먹어보면 의외로 맛있음ㅇㅇ
-그걸 먹어봤다고?
-실제로 NPC들은 많이 먹음. 노점이나 여관 같은 곳에서도 팔고
-사서 먹어봤는데 맛없던데; 한입 먹고 다 버림
-그건 거기서 파는 고기가 품질이 안 좋아서 그럼 맛있는 건 진짜 맛있음
하지만 이걸 거절하기엔 시청자들의 눈치가 보인다.
‘사실 눈치보다는….’
저니의 눈이 묘지기를 향했다.
자기가 직접 구워서 준 고기를 눈앞에서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화를 참지 못할, 그야말로 칼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짓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을 위협하던 몬스터를 외려 먹게 된 잔혹한 약육강식의 생태계에 저니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머뭇거리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하여 채팅창의 분위기도 험악해진다.
“으윽…. 합!”
결국 매질을 이기지 못한 저니가 눈을 감고 고기를 베어 물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니인 만큼 그녀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각양각색의 요리를 먹어보았다.
당연히 야생동물 요리도 먹은 적 있는데, 어지간한 맛은 모두 접했던 그녀도 상당히 먹기 힘들었다.
야생동물 특유의 지독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고, 단단한 육질은 고기가 아니라 껌을 씹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마도 요리사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너무나 인상 깊은 기억이어서 그 후로 야생동물 고기를 멀리했었다.
야생동물이 아닌 몬스터라고 해도 더 심하면 심했지,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묘지기가 요리한 방식은 아주 기초적인 향신료만 뿌려서 구운 직화구이.
누린내를 잡는 과정조차 없었던 만큼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저니였으나….
우물우물.
“…어?!”
저니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이가 고기의 겉면을 부드럽게 파고든다.
그러자 속에 갇혀 있던 육즙이 폭발적으로 흘러나와 저니의 입을 거칠게 유린했다.
“맛…있어…?”
걱정했던 누린내는 눈곱만큼도 없다.
육질은 질기기는커녕 어린아이의 약한 이로도 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
직화에서 비롯된 은은한 불향이 고기에 입혀져 화려한 멋을 뽐냈다.
“뭐야 이거… 진짜 맛있는데?”
저니는 언제 꺼렸냐는 듯 정신없이 고기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생긴 것도 꼭 만화에서 나올 것 같이 생겨서 보는 맛까지 있으니, 저니의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입맛을 꿀꺽 다셨다.
-오늘부터 코카트리스만 잡으러 다닌다
-몬스터 고기 맛있다니까
-와 진짜 맛있게 먹네..
-라면 물 올리러 간다
저니보다 앞서 고기를 먹던 묘지기가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지만 식사에 정신이 팔린 저니는 눈치채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