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떨리는 손으로 드래곤 오브를 받아든 드워프, 브론딘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남이 우는 걸 보며 즐기는 취미가 있진 않지만, 투박한 얼굴의 드워프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건 꽤나 진풍경이어서 쉽게 눈을 뗄 수 없더라.
하기야, 잃어버렸던 드래곤 오브를 되찾은 거니 저런 반응을 보일만 하지.
금색 보석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드워프가 울음을 그친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다 자네들 덕분이야. 고맙네, 고마워….”
훌쩍이며 말을 잇던 브론딘이 ‘그런데…’라고 하며 운을 띄웠다.
“영락없이 다신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찾은 건지 물어봐도 괜찮겠나? 아, 자네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게!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단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네.
그 말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 * *
브론딘에게 드래곤 오브를 건네주기 몇 시간 전.
우리는 별 잡스러운 실력으로 꺼떡대던 붉은 뭐시기….
맞아, ‘붉은 갈퀴’였지. 워낙 유치한 이름이라서 잘 기억이 안 났네.
아무튼, 붉은 갈퀴 용병단으로부터 막스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구조라는 단어 대신 굳이 확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우리가 그에게 해를 끼칠지, 끼치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
“어떻게 할까?”
사람 얼굴이 저렇게까지 희게 되는 게 가능하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막스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나는 아시에에게 물었다.
“죽이는 편이 깔끔하겠지.”
내용만큼이나 깔끔한 어조의 말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다은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 죽여요? 죄를 지은 건 맞지만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닌 거 같은데….”
나라마다 차이가 있긴 해도 이 세계의 형벌은 기본적으로 지구보다 가혹하다.
정확히는 특정 계층에 한정하면, 이지만.
길을 지나던 귀족이 마차를 가로막았다는 이유로 평민을 죽여도 합법인 세상인데 뭘.
물론 ‘마차를 가로막아서 죽였어요!’라는 이유를 대면 쪽팔린 걸 알아서 별의별 죄목을 갖다 붙여서 죽이지만.
하지만 그런 세상이라도 평민의 물건을 절도한 걸로 사형에 처하진 않는다.
드워프들의 법률이 어떨지는 몰라도, 이런 점은 인간들의 나라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일반적인 절도였다면, 말이지.”
“…절도가 절도지, 다를 게 있어?”
“그냥 절도가 아니라 드래곤 오브….”
다은의 표정을 본 나는 하던 말을 멈췄다.
…이렇게 말해도 모르겠구나.
아무래도 우리의 반응을 보고 대충 비싼 거겠지 라고 생각한 모양이네.
“저니.”
“응?”
나는 허리를 숙인 다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의아한 듯이 듣던 그녀는, 나에게 드래곤 오브의 가격을 듣자 경악하더니 순식간에 납득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거 같아….”
“그렇지?”
역시 어른을 이해시키는 데는 돈만 한 게 없었고, 어른인 다은은 현 상황을 단박에 이해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어른들에게 집에 대해 설명할 때 그 집의 생김새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해 봐야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지만, 얼마짜리 집이라고 말하면 관심을 갖는다고.
그런 거지.
“돈도 돈인데 이런 녀석을 살려두고 싶진 않군.”
“동감.”
나와 아시에, 두 그라시스인의 의견이 일치했다.
“왜? 제국 사람이라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용병들만큼은 아니어도 이 녀석도 썩 질 좋은 녀석은 아니거든.”
“응응.”
“에….”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이네.”
고개를 끄덕이는 나와 달리, 다은은 아시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을 테니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제국 사람이라서 죽이고 싶어 하는 거냐니.
내가 제국을 싫어하는 건 맞긴 한데, 제국인이라고 해서 아무나 죽이고 싶어 하는 건 아니야.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그러니, 내가 아시에의 말에 동의하는 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자가 용병을 고용한 이유가 뭔지 아나?”
“어… 산에서 안전하게 내려가려면 전위가 필요해서… 아닐까요?”
다은의 대답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계통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는 준비된 상황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그러니까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전위와 행동하는 게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방식이었다.
아시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따지면 오답이었지만.
“그런 거라면 이런 놈들보다 더 믿음직한 사람들을 고용했겠지.”
아시에가 얼굴을 팍 찡그리며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걷어찼다.
저런… 고인 모독을 하다니….
“내가 쫓아올 걸 알고 죽이려고 한 거야.”
“…서, 설마요.”
“설마? 이 녀석이 약했다면 지금 널브러져 있는 건 이놈들이 아니라 우리의 시체였을걸? 게다가 대장 놈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으니 이 녀석은 죽는 것보다 더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르지. 아니. 분명 그랬을 거야.”
“음음.”
“넌 왜 계속 고개만 끄덕거리냐?”
끄덕일 수도 있지.
“정 못 믿겠으면 장본인한테 직접 물어보자고.”
아직도 반신반의한 다은의 표정을 본 아시에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이 맞다고 해도 저 막스라는 사람이 과연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할까요? 그런 사람이라면 순순히 실토할 거 같진 않은데….”
“실토할 거야.”
그렇게 말한 아시에가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이 녀석한테 죽고 싶진 않을 테니까.”
“…난 왜.”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나한테 튀는 불똥에 불퉁하게 말했다.
어쩌면 아시에는 아직도 옛날의 영광에 사로잡혀서 내가 그를 때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
내가 그의 추파를 참은 건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왕족이라서인데.
“…그게 참은 거라고?”
“때리진 않았잖아.”
무언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날 보던 아시에가 고개를 돌렸다.
마물이라도 마주한 사람처럼 나를 보며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고 있던 막스가 아시에의 시선을 느끼고 몸을 움츠렸다.
강한 어조로 그를 취조하던 아시에가 문답의 결과를 공유했다.
Q. 스승님이 드래곤 오브를 산 걸 어떻게 알았는가.
A. 그가 술에 취해 자랑하는 걸 듣고 알았다.
Q. 드래곤 오브로 뭘 하려고 했나.
A. 다른 도시에 가서 팔려고 했다.
Q. 용병들을 고용한 이유가 뭔가. 우리를 죽이려고 한 게 아닌가?
A. 절대 아니다. 몬스터와 마주칠까 봐 그런 것뿐이다.
Q.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라.
A. …죄송하다. 한 번만 용서해달라.
이것 말고도 더 있긴 한데, 대충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그들의 문답을 지켜보던 다은은 아시에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꽤나 침울한 얼굴을 했다.
“네 생각은 어때.”
“마음대로 해.”
원래 같았으면 말이지? 대답을 들은 시점에서 가차 없이 죽였을 거야.
일을 꾸밀 땐 누가 찾아올지 몰랐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날 죽이려고 한 게 됐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에선 난 어디까지나 브론딘이 도둑맞은 물건을 찾으러 온 사람일 뿐이니까, 나보다 더 깊게 관련되어 있는 아시에에게 맡기는 편이 낫겠지.
“음, 그래도 괘씸한 건 맞으니까.”
나는 막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무기 하나 없는 맨손을 본 막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나자빠졌다.
다 큰 남자가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이래서 마법사들이 안 된다니까.
속으로 혀를 쯧쯧 차며 가능한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진 거 다 내놔.”
어쩌면,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았을지도.
* * *
브론딘에게 사실을 알릴지 말지.
내내 고민하던 아시에는 그의 스승에게 아무 거짓도 없는 사실을 고했다.
브론딘이 상심한다고 하더라도 알 건 알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랬군. 정말 막스가 범인이었어….”
예상대로, 믿고 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한 브론딘은 제법 상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됐나?”
“….”
“그래. 그렇게 됐군.”
침묵을 지키는 아시에.
브론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지. 그보다, 그쪽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막스의 옆 공방에서 일하는 마법사입니다. 이번에 막스를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딱히, 말씀처럼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닙니다. 정말 큰일을 한 건-”
“?”
브론딘과 대화하던 마법사의 눈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나를 왜 보는 거지?
“저 분이죠.”
“…저 꼬마 아가씨가?”
“사실입니다 스승님. 저 녀석이 아니었다면 드래곤 오브를 회수하는 건 고사하고 이렇게 돌아올 수도 없었을 겁니다.”
“하긴. 그런 마도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브론딘이 그의 거친 수염을 쓸었다.
막스의 품속에서 잠자고 있던 금색 보석은 이제 고급스러운 천이 깔린 상자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복잡한 눈으로 드래곤 오브를 내려다보는 브론딘.
“아까 콩고물을 바란다고 말했지. 귀한 물건을 되찾아 줬으니 당연히 보상해야겠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지금 빈털터리네. 이걸 사기 위해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넣었거든.”
“으음, 괜찮아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먼저 돕겠다고 한 건 저희니까-”
“그러니 제안하겠네. 이 드래곤 오브로 마도구를 만들어 줄 테니, 그걸 사지 않겠나?”
“…네?”
“물론 공짜는 아니라네.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다른 마도구보다 훨씬 싸게 팔겠다고 약속하겠네.”
“자, 자, 잠시만요…!”
다은이 다급하게 브론딘의 말을 내게 전했다.
“…드래곤 오브로 만든 마도구를 준다고?”
“으, 응. 그냥 주는 건 아니고 값은 치러야 하지만.”
“그건 당연하지.”
오히려 그런 걸 공짜로 준다고 했으면 부담스러워서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되찾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해도 말이야.
사실 드래곤 오브로 만든 마도구를 다른 마도구보다 싸게 준다는 건 거저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응, 좋아.”
“…스승님. 돈이 부족하시다면 제가 대신 값을 치뤄도 됩니다.”
“예끼! 은인한테 그게 무슨 말이냐! 어차피 나는 이걸 다루고 싶었던 거지, 이걸로 돈을 벌고 싶었던 게 아니라서 상관없다! 돈이야 뭐, 맥주 살 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냐? 마도구를 팔면 그 정도 돈은 충분히 나오겠지!”
얼굴 가득 드리워져 있던 어둠을 걷어낸 브론딘이 껄껄 웃었다.
“어떤 마도구를 원하나?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지!”
“마기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마도구를 원해요.”
“…마기?”
아시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기는 왜?”
“필요하니까.”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왜 필요하냐고 묻는 거잖아.”
아시에가 이상할 정도로 꼬치꼬치 캐물었다.
대답해 줄 의무는 없지만, 딱히 숨겨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나는 그에게 우리의 다음 행선지를 알려주었다.
“마대륙 락시아. 우리는 거기에 갈 거야.”
늘 곱상한 얼굴이 망가지는 광경은, 생각보다 볼만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