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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3

미약한 마나의 흐름.

평소라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쳤을 미약한 흐름이었지만, 집중을 기울인 지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거였구나.’

생명체들은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흘린다는 아티샤의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마나의 흐름을 느끼던 나는,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끄덕.

-끄덕.

내 신호에 맞춰 다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나. 언니가 카나를 많이 많이 좋아하는 거, 알고 있어?”

이제 막 아르키쉬를 익히기 시작한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

하지만 이제는 달라.

아티샤에게 마족의 의사소통 방식을 배웠으니까.

나는 다은이 흘리는 마나에서 뜻을 읽어냈다.

“…’나는 엑스퍼트면서 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허접입니다’?”

“아니야! 완전히 틀렸어!”

다은이 소리를 꽥 질렀다.

“어떻게 하면 많이 많이 좋아한다는 말이 허접이라는 말이 되는 거야?!”

“으응,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럴 수 없어!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하지만 못 알아듣겠는데 어떡해.”

“그러면 그냥 모르겠다고 해주면 안 될까…?”

“자존심 상해서 싫어.”

“…아으으! 얄미워서 못 참겠어!”

주우우우욱-

“…으브브브.”

다은의 손에 붙잡힌 볼이 쭈욱 늘어났다.

‘내 볼이 이렇게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솔직히 말해 봐. 알아듣고 싶은 것만 알아듣는 거지? 그게 아니고서야 초콜릿, 고기, 어린애 같은 단어들은 알아들으면서 다른 말들은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잖아!”

“으브브?”

“…뭐라고 하는 거야? 못 알아듣겠어.”

“으브….”

알아듣고 싶으면 볼을 놔주고 말하든가.

아프진 않지만, 찹쌀떡처럼 쭉 늘어난 볼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야.

그런 의미를 담아 마구마구 눈길을 쏘아 보내자 마침내 다은이 내 볼을 놔주었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은은한 열감이 느껴지는 볼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이게 내 잘못이야?”

다은의 말을 알아들은 이후, 우리는 많은 실험을 했다.

다은와 셀린이 아르키쉬로 말하는 걸 알아들을 수 있는지, 반대로 내 말을 셀린이 알아들을 수 있는지 등.

성공률은 절반 이하… 대략 30%, 혹은 그에 달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절대적으로 본다면 높은 성공률은 아니지만, 이제 막 익힌 능력이라는 걸 감안하면 만족스러운 성과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처음부터 능숙하게 할 순 없는 거니까.”

“…적어도 카나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왜?”

“그걸 몰라서 물어? 나보고 맨날 허접하다고 놀렸잖아…!”

억울함이 가득 느껴지는 목소리로 외친 다은이 또다시 마수를 뻗어왔다.

아까는 방심해서 당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그녀의 마수를 피했다.

“관심 없는 것보다 관심 있는 걸 읽기 쉬운 건 당연한 거야….”

가만히 앉아 우리가 투닥거리는 걸 보고 있던 아티샤가 한마디 거들었다.

“말할 때도 그렇잖아…. 주변에서 관심 없는 걸 떠들고 있으면 그게 귀에 들어와…?”

“음… 아무래도 아니긴 하죠?”

“그런 거야…. 나는 오히려 한 번에 성공한 게 신기한걸…. 익숙해지면 다른 것들도 읽을 수 있겠지….”

“봐. 아티샤도 저렇게 말하잖아.”

역시 내가 못 한 게 아니라니까.

“의기양양하기는.”

끝내 나를 잡는 데 실패한 다은이 혀를 차며 손을 거뒀다.

얄미운 듯이 나를 보면서도 잡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게 꽤나 보기 좋더라.

그러게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았어야지.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새로이 얻은 능력의 발전을 위해서 수련해야 했지만.

“밥만 간단히 먹고 출발할 생각이야.”

나는 그 일을 나중으로 미뤘다.

오늘은 이미 하기로 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급하게?”

“알겠어요.”

“알았어….”

반대의 의견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 하나도 완전한 반대가 아닌 이견 정도였고.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최대한 일찍 가야지.”

늦게 갔다가 해가 지기라도 하면 귀찮아지잖아.

어둠에 구애받는 경지는 오래전에 지났다고 해도 심리적으로 꺼려지는 게 있는걸.

“카나도 어두운 건 싫구나? 어른스러워 보여도 역시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응. 뒷골목에 살던 때가 생각나서 싫어.”

“…미안.”

“농담이야.”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농담이라고 말했는데도 가라앉은 다은의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짜 농담이었는데.

나는 의도치 않게 시궁창 속에 처박아버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내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아니. 실패로 돌아가기만 했으면 망정이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한다는 듯한 그윽한 눈을 하는 바람에 나는 결국 해명을 포기했다.

내 부족한 사교성과 말주변으로는 시궁창에 처박힌 분위기를 끄집어 올릴 수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대신 화제를 바꿔버렸다.

“아무튼, 곧 출발할 생각인데. 아티샤.”

“응…?”

“길 안내, 부탁해.”

“어차피 같이 갈 생각이었어…. 그놈이 쓰러지는 걸 보고 싶었거든….”

나른한 말투와 다르게 호전적인 아티샤는 내 말을 바로 받아들였다.

“저도 도울게요.”

다은의 통역을 통해 대화를 듣고 있던 셀린도 흔쾌히 돕겠다고 나섰다.

무려 견습 성녀가 돕겠다고 나섰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그녀의 도움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나, 아티샤, 셀린. 그리고 우리를 도와줄 마족 몇 명.

크루모의 그림자를 사냥하기 위한 파티가 얼추 완성되었다.

아티샤와 마족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아티샤가 당당한 걸 보면 믿어도 되겠지.

“그러면 밥 먹고 바로-”

“저니는 여기 있어.”

“…어?”

나는 다은의 말을 가로챘다.

“나, 나?”

“여기 그 이름을 쓰는 사람이 또 있어?”

“없긴 한데….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다은이 의자를 박차듯이 밀치며 일어났다.

“셀린이랑 아티샤는 같이 가는데 왜 나만 여기 있으란 거야?!”

“약하니까.”

“….”

원성을 쏟아내던 그녀의 말문이 턱 막혔다.

차마 약하다는 말을 부정할 순 없었는지 생각을 고르던 그녀가 반박할 말을 찾았는지 재차 입을 열었다.

“라, 락시아는? 락시아도 위험한 건 마찬가진데 거긴 같이 가자고 했으면서….”

“락시아는 싸우러 가는 게 아니-”

“어쨌든! 위험한 건 마찬가지잖아.”

“으음… 그런가. …그래서 싫어?”

“아, 아니… 같이 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왜 지금은 안 되냐고 묻는 거잖아.”

혼자 남겨지는 게 그렇게 싫은 걸까.

다은은 평소엔 싸움의 ‘ㅆ’ 자만 나와도 기겁하던 그녀답지 않게 고집을 부렸다.

몇 차례 말을 해봐도 그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대체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야.”

“…카나도 아까 고집부렸잖아.”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그건 고집이 아니라 마땅히 할 수 있는 거라서 그렇게 말한 거고

게다가 전투력은 싸움에 직결된 요소이고.

“하나도 다르지 않아.”

다은이 고개를 저었다.

“분명, 카나가 그렇게 말하는 건 나를 걱정해서 그런 거지? 혹시라도 크루모의 그림자와 싸우는 도중에 내가 다칠까 봐.”

“…응.”

“나도 마찬가지야. 동생이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어.”

“….”

걱정하는 마음은 마찬가지라는 다은의 말.

자꾸 위험한 곳에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게 솔직히 조금 답답해서.

‘혹시 다른 목적이 있는 건가’라는, 애먼 생각을 하던 나에게 다은의 말에 담긴 마나가 흘러들어왔다.

그 마나엔, 다은이 말한 대로 걱정과 염려가 담겨 있었다.

“무슨 말인진 알았어.”

“그러면-”

그렇지만 다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적을 사냥하는 것엔 자신 있지만, 지키는 것은 자신 없으니까.

지키는 건 아빠의 특기였지.

“피… 알았어. 기다리면 되는 거잖아.”

보다 못한 셀린까지 나서서 만류한 덕에 다은은 겨우 고집부리는 걸 멈췄다.

그러나 마지못해 받아들였을 뿐, 다은의 얼굴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결정을 철회할 생각은 없지만 조금 미안하긴 하네.

소외감을 느끼게 한 것도 그렇고, 애먼 생각을 해서 오해한 것도 그렇고.

말로 꺼내진 않았어도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마음에 강하게 걸렸다.

“…돌아오면.”

“응?”

“사냥 끝내고 돌아오면 부탁 하나 들어줄게.”

의아한 기색을 보이던 다은이 말했다.

“어… 이럴 땐 보통 소원이라고 하지 않아?”

“그건 너무 거창하니까.”

“그러면 하루 종일 끌어안고 쓰담쓰담 하는 것도 받아주는 거야?”

“…그런 걸 원해?”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박하다고 해야 할지, 욕망에 충실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원한다면야.”

“야호! 약속 했으니까 꼭 지켜야 해. 알았지?”

“알았어.”

다은은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지.

속인 건 아니지만 속인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애써 지워냈다.

“꼭 살아서 돌아올게.”

“…어?”

“무사히 돌아오면… 응, 같이 밥이라도 먹자.”

“자, 잠깐 카나야…?”

“걱정하지 마. 저니도 내 실력 알잖아. 금방 처리하고 돌아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역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일부러 플래그 꽂는 거 맞지?!”

“플래그가 뭐야?”

“윽….”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건데 어째 다은의 얼굴에 담긴 불안감은 옅어지기는커녕 말을 하기 전보다 더 짙어졌다.

왜 저러는 거지?

영문을 모르겠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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